# 제157화: 불타는 것의 끝
세아가 엄마의 손을 놓았을 때,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연처럼 느껴졌다. 손가락들이 천천히 펼쳐졌다. 마치 불이 꺼지듯이. 엄마는 세아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 눈 속에는 여전히 무언가가 있었다. 포기라고 불렀던 그것이.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포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어떤 결정이었다.
“세아야.”
엄마가 말했다. 목소리가 조금 더 또렷해졌다. 마치 물 속에서 올라온 다이버가 처음으로 공기를 마시는 것처럼.
“엄마가 너한테 말해야 할 게 있어. 진짜로.”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말을 할 힘이 없었다. 아니, 말을 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엄마가 이미 말했던 것들—아버지에 대한 것, 제주 바다에 대한 것, 자신의 삶에 대한 것들—이 이미 충분했다. 그런데 엄마가 또 무엇을 말하려고 했다. 세아는 그것이 두려웠다. 더 이상의 진실은 자신의 몸이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강리우라는 그 남자. 너는 그 남자가 뭔지 알아?”
“엄마…”
세아가 말했다. 하지만 엄마는 계속했다.
“너는 그 남자가 너를 사랑한다고 생각해?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해?”
엄마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그 순간 심장 모니터가 다시 불규칙적으로 움직였다. 비프비프, 비프비프비프. 의료진이 들어올 것 같은 그런 속도.
“진정해. 진정해.”
세아가 일어났다. 자신도 모르게. 마치 자동으로 작동하는 시스템처럼. 엄마를 진정시키려고. 엄마의 손을 다시 잡으려고. 하지만 엄마는 손을 빼냈다. 조금 거칠게.
“너는 아직도 모르는 거야? 그 남자가 너한테 한 게 뭔지? 그 남자가 너한테 왜 그러는 건지?”
“엄마가 왜 이래?”
세아가 물었다. 그 목소리는 거의 비명에 가까웠다.
“엄마는 강리우를 모르잖아. 왜 그래?”
“내가 안다.”
엄마가 말했다. 그 단순한 세 단어 안에 뭔가 거대한 것이 숨어 있었다.
“내가 안다고.”
세아의 피가 차가워졌다. 그 순간, 정확히 그 순간에. 엄마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세아는 이미 감각적으로 알아챘다. 하지만 그것을 말로 듣고 싶지는 않았다.
“너는 아버지를 만난 적 없지?”
엄마가 물었다.
“너는 아버지가 뭔지 몰라.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아버지가 너한테 뭘 했는지.”
병실의 공기가 응고된 것처럼 느껴졌다. 세아는 호흡을 할 수 없었다. 마치 물 속에 빠진 것처럼. 아니, 정확하게는 엄마처럼. 해녀처럼. 물 속에서 숨을 참고 있는 것처럼.
“아버지는…”
엄마가 말했다. 그리고 멈췄다. 눈을 감았다. 다시 열었다. 그 사이 뭔가가 결정되었다.
“아버지는 너라는 존재 자체를 두려워했어.”
그 말이 병실을 가로질렀다. 마치 칼처럼. 세아는 그 말을 받아냈다. 무릎이 구부러졌다. 의자에 앉았다. 다시 앉지 않고도 앉아 있었다.
“아버지는 너의 목소리를 두려워했어. 너의 노래를. 너가 자면서 중얼거리는 그것들을.”
엄마의 목소리가 더 작아졌다. 하지만 더 명확해졌다.
“그리고 아버지는 너를 고치려고 했어. 너의 목소리를 없애려고. 너의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세아는 움직일 수 없었다. 마치 자신이 돌이 되어가고 있는 것처럼. 이 병실에서. 이 형광등 아래에서. 엄마의 목소리로 인해.
“그래서 내가 너를 데리고 나왔어. 제주로. 너는 그걸 기억해?”
세아가 기억했다. 어렴풋하게. 어린 시절의 기억들은 항상 그렇다. 불분명하고, 마치 다른 누군가의 삶인 것처럼. 하지만 그 안에 무언가가 있었다. 어두움. 두려움. 도망침.
“내가 너를 데리고 나왔을 때, 아버지는 나한테 말했어. ‘그 아이를 데려가면 돌아오지 마’라고.”
엄마가 눈물을 흘렸다. 아까와는 다른 종류의 눈물이었다. 이것은 슬픔의 눈물이 아니라, 분노의 눈물이었다.
“그래서 나는 돌아가지 않았어. 그리고 너는 자랐어. 너는 노래를 했어. 너는 살았어.”
세아는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그 행동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마치 물고기처럼. 마치 자신의 입이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그런데 지금 너는 뭘 하고 있어?”
엄마가 물었다.
“너는 너의 노래를 버렸어. 너는 너의 목소리를 잃었어. 그리고 이제 너는 그 남자, 강리우 같은 사람한테 끌려가고 있어. 마치 너의 아버지가 했던 것처럼.”
“아니야.”
세아가 말했다. 하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말이 형태를 이루지 못했다.
“너는 정말로 모르는 거야? 그 남자가 너한테 하는 게 뭔지?”
엄마가 다시 물었다.
“그 남자는 너를 ‘구원’하려고 하는 거야. 그런데 너는 구원받아야 할 사람이 아니야. 너는 이미 살아 있는 사람이야. 너는 이미 불타고 있는 사람이야.”
세아의 눈이 떨렸다. 눈물이 나오려고 했지만, 나오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눈도 자신의 통제 밖에 있는 것처럼.
“너는 강리우를 위해서 너 자신을 태우고 있어. 그리고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르고 있어. 하지만 그게 사랑이 아니야, 세아야. 그건 죽음이야. 그건 천천히 사라지는 것이야.”
병실 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복도를 지나가고 있었다. 그 소리도 세아에게는 다가올 불행의 전조처럼 들렸다.
“내가 너한테 한 가지만 부탁할게.”
엄마가 말했다. 손을 다시 뻗었다. 이번에는 세아가 그것을 잡았다.
“강리우한테 가지 마. 더 이상. 제발.”
세아는 엄마의 손을 쥐었다. 그 손이 떨리고 있었다. 아니, 자신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둘 다였다. 이 가족의 모든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것은 질병이 아니라, 저주였다. 세대를 거쳐 내려온 어떤 저주.
“엄마.”
세아가 간신히 말했다.
“내가 어떻게 해야 돼?”
엄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세아의 손을 자신의 가슴 위에 올렸다. 심장 모니터가 비프비프 하고 있는 바로 그곳. 그 불규칙한 박동 바로 위에.
“엄마가 너한테 해줄 수 있는 게 이것뿐이야. 내 심장이 너를 위해 뛰고 있다는 걸 느껴. 이게 사랑이야. 이게 진짜 사랑이야. 다른 모든 것은 불이야. 그냥 불일 뿐이야.”
세아는 엄마의 가슴 위에 놓인 자신의 손을 느꼈다. 심장의 박동. 비정상적인 것. 스트레스성 부정맥이라고 의사가 부르는 그것.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그것이 세아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엄마의 심장이. 자신의 딸을 위해 불규칙적으로 뛰는 그것이.
시간이 흘렀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 세아는 모를 것 같았다. 분이었을 수도, 시간이었을 수도 있었다. 이 병실에서는 시간이 다르게 흘렀다. 마치 물 속에서처럼. 마치 제주 바다에서처럼.
엄마의 호흡이 다시 규칙적이 되었다. 진정된 것이었다. 약의 영향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그냥 엄마가 자신이 할 말을 다 했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세아는 자신의 손을 들었다.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강리우의 손처럼. 아버지의 손처럼. 아니, 정확하게는 자신의 손이었다. 자신의 떨림이었다. 자신의 저주였다.
병실의 형광등이 다시 깜빡였다. 1초, 2초, 3초. 세아는 그것을 세었다. 다시. 또 다시. 마치 그것을 세는 것이 자신의 유일한 일인 것처럼.
도현이는 어디에 있을까. 복도에 있을까. 아니면 병원을 떠났을까. 세아는 남동생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자신이 그 남자, 강리우에게 가지 않겠다고 약속해야 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자신의 휴대폰이 울렸다. 알림이 떴다. 강리우로부터의 메시지.
“언제 올 거야?”
세아는 그 메시지를 봤다. 하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마치 뜨거운 것을 만진 것처럼.
병실의 문이 열렸다. 의료진이 아니었다. 하늘이었다. 타투 가게의 하늘이. 그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세아.”
하늘이가 말했다.
“너 괜찮아?”
세아는 대답할 수 없었다. 괜찮은지 아닌지를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자신은 여전히 불타고 있었다. 그것이 사랑인지 죽음인지를 구분할 수 없는 그런 방식으로.
“하늘아.”
세아가 간신히 말했다.
“내가 뭘 잘못한 거야?”
하늘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세아를 안았다. 병실의 형광등 아래에서. 엄마와 도현이를 보며. 그리고 세아는 처음으로, 자신이 정말로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 감정도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세아의 휴대폰은 계속 울렸기 때문이었다. 강리우로부터의 메시지들이. 계속. 계속. 멈추지 않으면서.
“언제 올 거야?”
“답장을 해.”
“너 어디야?”
“내가 너 찾아갈까?”
그 메시지들이 화면을 채웠다. 마치 밀려오는 파도처럼. 마치 제주 바다처럼. 세아를 삼키려고 하는 그런 파도처럼.
세아는 휴대폰을 들었다. 그리고 타이핑을 시작했다. 하지만 무엇을 쓸지 몰랐다. “가지 않겠다”? “끝내자”? 아니면 다시 “미안해”?
결국 그녀는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대신 휴대폰을 꺼버렸다. 완전히. 화면이 검게 변했다. 마치 불이 꺼지듯이.
하지만 그것도 해결책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강리우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아가 어디에 있는지. 병원에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는 올 것이었다. 세아는 그것을 알았다. 마치 자신의 심장 박동을 아는 것처럼.
병실의 형광등이 또 깜빡였다. 1초, 2초, 3초. 그리고 또 다시 밝아졌다. 이 반복. 이 무한한 반복. 이것이 세아의 삶이었다. 불이 꺼졌다가 다시 켜지는. 죽음과 삶 사이의 어떤 곳에서. 불타고 있으면서도 타지 않는. 떨리고 있으면서도 말을 할 수 없는.
세아는 엄마를 봤다. 엄마는 이미 자고 있었다. 또는 자인척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얼굴에는 무언가가 있었다. 결정이. 마침내 세아도 무언가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 결정이 무엇이어야 할지, 그녀는 아직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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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실의 밤
## 1부: 울림
휴대폰의 진동음은 마치 작은 벌이 화면 위에서 윙윙거리는 소리였다. 세아는 그 소리를 들었다. 병실의 정적 속에서 그것은 마치 폭발음처럼 들렸다. 천장의 형광등 아래, 하얀 천이 깔린 침대 위에서 그녀는 몸을 움찔했다.
화면을 보기 전에 이미 알고 있었다. 강리우였다. 그것은 마치 육감 같은 것이었다. 아니, 그보다는 더 직관적인 것이었다. 그녀의 심장이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이다. 심박수가 올라가고, 손가락 끝이 따끔거리고, 목구멍이 좁혀오는 그 감각. 그것이 강리우를 알리는 신호였다.
휴대폰을 집어 들었을 때, 손이 살짝 떨렸다. 화면의 밝기가 어두운 병실에서 눈부셨다. 메시지 알림 창이 떴다:
**강리우: “언제 올 거야?”**
단순한 문장이었다. 기호도, 마침표도 없었다. 마치 재촉하는 음성처럼, 마치 다그치는 음성처럼 들렸다. 세아는 그 글자들을 바라봤다. 한 글자 한 글자가 마치 바늘처럼 느껴졌다. 흰 화면 위의 검은 글자들이 자신의 가슴을 찔러오는 것 같았다.
그녀는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대답할 수 없었다.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까? 진실을 말할 수는 없었다. ‘나는 너를 피하고 있어’라고? ‘너와 만나는 것이 무섭야’라고? 아니면 ‘나는 이미 누군가 다른 사람 품에 안겨 있어’라고?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맴돌았다. 하지만 아무 글자도 입력되지 않았다. 대신 세아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침대 옆의 작은 테이블 위에. 마치 뜨거운 쇠를 만진 것처럼, 마치 자신이 화상을 입을 것 같아서.
휴대폰은 여전히 화면을 켜고 있었다. 강리우의 메시지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낙인처럼, 마치 저주처럼 그곳에 남아있었다.
세아는 천장을 바라봤다. 병실의 천장은 시골의 낡은 집처럼 보였다. 또는 무덤처럼. 하얀 색이지만 마치 회색으로 느껴지는 그런 천장. 그 위의 형광등은 계속 밝았다. 녹색을 띤 하얀 빛이 병실 전체를 비추고 있었다. 그 빛 속에서 세아는 마치 수족관의 물고기처럼 느껴졌다. 투명한 유리 안에 갇혀있고, 밖의 세상은 볼 수 없으며, 오직 음식이 떨어질 때만 입을 벌리는.
침대의 옆에는 엄마가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엄마의 몸이 있었다. 엄마는 이미 오래전에 잠들어 있었다. 아니, 아마도 잠들어 있는 척하고 있었을 것이다. 어머니의 얼굴은 평온해 보였다. 하지만 그 평온함 아래에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근심. 아니, 그보다는 결정. 마침내 어떤 결정을 한 사람의 얼굴처럼 보였다.
병실의 문이 갑자기 열렸다.
세아의 심장이 또 한 번 높이 뛰었다. 강리우가 온 것일까? 그 순간의 공포는 마치 전기 충격 같았다. 온 몸의 근육이 경직되었고, 호흡이 얕아졌다. 하지만 들어온 사람은 강리우가 아니었다.
그것은 하늘이였다.
타투 가게의 하늘이. 그 남자는 병실의 문턱에서 멈춰섰다. 그의 얼굴에는 깊은 걱정이 가득했다. 마치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의 표정처럼. 아니, 마치 누군가를 구하려고 필사적으로 애쓰는 사람의 표정처럼.
“세아.”
그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다. 마치 아픈 동물을 다루는 수의사의 목소리처럼. 조심스럽고, 조심스럽고, 또 조심스러웠다.
“너 괜찮아?”
세아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할까? 괜찮다고? 그러면 거짓이었다. 괜찮지 않다고? 그렇다면 무엇이 괜찮지 않은가를 설명해야 했다. 그리고 그 설명은 모든 것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자신이 강리우와 어떤 관계에 있었는지, 그 관계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그 관계가 자신의 심장을 짓누르고 있다는 것을.
대신 세아는 한 번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 숨은 그녀의 폐에서 나왔지만, 마치 다른 어디서 온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물속에서 공기를 마시려고 하는 사람처럼, 마치 질식하는 사람처럼.
“하늘아.”
그녀가 간신히 말했다. 그 두 글자를 내뱉기 위해 모든 힘을 사용해야 했다.
“내가 뭘 잘못한 거야?”
하늘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발소리는 병실의 타일 바닥에서 무음처럼 들렸다. 마치 그 남자 전체가 무음이었던 것처럼. 그리고 그는 세아를 안았다.
그것은 갑작스러웠지만 동시에 자연스러웠다. 그의 팔이 세아의 등을 감싸고, 그의 가슴이 그녀의 머리를 받쳐주었다. 그의 신체에서는 담배와 잉크의 냄새가 났다. 그것은 강리우의 냄새가 아니었다. 강리우는 비싼 향수를 사용했고, 그의 손에는 항상 로션의 윤기가 있었다. 하지만 하늘이의 냄새는 다했다. 그것은 마치 흙의 냄새 같았고, 마치 비 온 뒤의 공기 같았다.
그 품 안에서 세아는 느꼈다. 처음으로 느꼈다.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하늘이의 팔은 따뜻했다. 그의 심장의 박동이 세아의 귀에 전해졌다. 그것은 규칙적이었고, 그것은 안정적이었고, 그것은 마치 생명 그 자체처럼 느껴졌다.
병실의 형광등이 그들을 비추고 있었다. 엄마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도현이(아, 도현이가 있었나? 아니면 그것은 세아의 상상인가?)의 환상적인 모습도 어딘가에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이 순간에 함께 존재했다. 하늘이의 품, 강리우의 메시지, 엄마의 평온한 얼굴, 그리고 세아의 무너지는 마음.
하지만 그 감정도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세아의 휴대폰은 계속 울렸기 때문이었다.
진동음이 테이블 위에서 울렸다. 그리고 또 울렸다. 그리고 또 울렸다. 마치 누군가가 계속 누르고 있는 초인종처럼. 마치 누군가가 계속 두드리고 있는 문처럼.
화면이 밝혀졌다.
**강리우: “언제 올 거야?”**
그리고 그 다음.
**강리우: “답장을 해.”**
그리고 그 다음.
**강리우: “너 어디야?”**
그리고 그 다음.
**강리우: “내가 너 찾아갈까?”**
메시지들이 계속 들어왔다. 마치 파도처럼. 마치 밀려오는 제주 바다의 파도처럼. 세아는 그 파도를 본 적이 있었다. 한 번 강리우와 함께. 그 파도는 아름다웠지만 무서웠다. 그것은 마치 생명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마치 무언가를 집어삼킬 준비가 되어 있는 것처럼.
지금 그 파도가 다시 밀려오는 것 같았다.
하늘이가 세아를 놓았다. 그의 눈이 휴대폰의 화면을 봤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표정이 변했다. 마치 무언가를 깨달은 사람의 표정처럼.
세아는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손이 떨렸다. 마치 자신의 손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손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타이핑을 시작했다.
하지만 무엇을 쓸지 몰랐다.
“가지 않겠다”? 하지만 그럼 강리우는 자신을 찾아올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선언의 시작처럼 느껴졌다. 선전포고.
“끝내자”? 하지만 언제 끝났는가? 어떻게 끝내는가? 강리우와의 관계는 마치 수렁처럼 느껴졌다. 들어갈 때는 쉬웠지만 나갈 때는 더 깊어지기만 했다.
아니면 다시 “미안해”? 하지만 무엇이 미안한가? 자신의 존재인가? 자신의 선택인가? 아니면 자신이 강리우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손가락이 공중을 맴돌았다. 키보드 위에서. 하지만 아무 글자도 입력되지 않았다.
결국 세아는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휴대폰을 들었다. 그리고 전원 버튼을 눌렀다. 길게. 화면이 서서히 어두워졌다. 알림들이 사라졌다. 메시지들이 사라졌다. 강리우의 모든 것이 사라졌다.
검은 화면. 마치 죽음처럼. 마치 무언가의 끝처럼.
하지만 그것도 해결책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강리우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아가 어디에 있는지. 병원에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는 올 것이었다.
세아는 그것을 알았다. 마치 자신의 심장 박동을 아는 것처럼. 마치 내일 해가 뜰 것을 아는 것처럼. 마치 자신이 죽을 것을 아는 것처럼.
## 2부: 깜빡임
병실의 형광등이 깜빡였다.
1초.
그 1초 동안, 세아는 어둠 속에 있었다. 그 어둠은 마치 물속처럼 느껴졌다. 아무도 들을 수 없는 깊은 물속.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깊은 곳.
2초.
형광등이 다시 켜졌다. 병실이 다시 밝혀졌다. 세아는 다시 보였다. 엄마가 다시 보였다. 하늘이가 다시 보였다. 모든 것이 다시 보였다.
3초.
그리고 또 깜빡였다. 다시 어둠. 다시 그 감각. 다시 그 공포.
이 반복. 이 무한한 반복.
세아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마치 관념처럼. 이것이 세아의 삶이라는 생각. 불이 꺼졌다가 다시 켜지는. 죽음과 삶 사이의 어떤 곳에서. 한 발은 강리우 쪽으로, 한 발은 다른 곳으로.
불타고 있으면서도 타지 않는.
떨리고 있으면서도 말을 할 수 없는.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면서도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세아는 엄마를 봤다. 엄마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또는 자고 있었다. 또는 자인척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호흡은 깊고 규칙적이었다. 마치 의식적으로 조절하고 있는 것처럼. 마치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호흡처럼.
하지만 어머니의 얼굴에는 무언가가 있었다.
결정. 마침내 어떤 결정을 한 사람의 얼굴.
세아는 그 얼굴을 들여다봤다. 어머니의 피부는 주름으로 가득했다. 세월의 흔적. 고통의 흔적. 그리고 사랑의 흔적. 아니, 그것은 사랑이 남긴 상처였다.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보여주는 그런 주름들.
세아는 그 얼굴을 본다. 그리고 갑자기 알았다.
엄마도 이런 적이 있었을 것이다.
엄마도 누군가를 사랑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이 자신을 파괴할 것 같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언가를 결정했을 것이다.
마침내 세아도 무언가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 결정이 무엇이어야 할지, 그녀는 아직도 몰랐다.
## 3부: 선택 앞에서
하늘이가 의자에 앉았다. 병실의 구석에 있는 회색 의자에. 그는 세아를 바라봤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자신이 말할 권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세아는 침대에 누워있었다.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형광등은 더 이상 깜빡이지 않았다. 계속 켜져 있었다. 마치 자신을 감시하는 눈처럼.
휴대폰은 꺼져 있었다. 그 작은 검은 직사각형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그것은 마치 폭탄처럼 느껴졌다.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폭탄.
시간이 지났다.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또는 시간이 역행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세아는 어딘가로 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자신이 강리우를 만나기 전으로. 자신이 이 모든 것을 시작하기 전으로.
하지만 그렇게 될 수는 없었다. 시간은 되돌려질 수 없다. 그리고 선택도 취소될 수 없다.
세아는 입을 열었다.
“하늘아.”
“응.”
하늘이가 대답했다.
“내가 언제부터 이랬을까?”
하늘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담배를 꺼내고 싶은 욕구를 참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손가락이 움찔거렸다.
“모르겠어.”
마침내 그가 말했다.
“그런데 넌 변했어. 지난 몇 달 동안.”
“어떻게 변했어?”
“넌… 마치 누군가의 것이 된 것 같아.”
세아는 그 말을 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을 인정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은 자신이 약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은 자신의 삶을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나는… 나는 그를 사랑해.”
세아가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자신도 몰랐다.
“내가 알아.”
하늘이가 대답했다.
“그리고 그것이 문제야.”
그 말이 공중에 떠있었다. 마치 형광등의 불빛처럼. 마치 병실의 흰 벽처럼.
세아는 침묵 속에 있었다.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그녀는 무언가를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