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불탄 소녀 – 제151화: 병실 밖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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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51화: 병실 밖의 시간

엄마가 눈을 떴을 때 세아는 화장실에 있었다.

도현이가 와서 세아의 어깨를 두드렸다. “누나. 엄마 깨었어.” 그 목소리에는 기쁨도 있었고, 뭔가를 견딘 후의 피로도 있었다. 세아는 화장실의 차가운 거울 앞에서 자신의 얼굴을 마주했다. 하얀 타일, 형광등,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소리. 모든 것이 너무 크게 들렸다. 마치 자신의 귀가 너무 오래 침묵 속에 있었던 나머지, 이제 모든 소리가 비명처럼 들렸다.

손을 씻었다. 비누를 거품내고, 물로 헹굴 때 거울 속의 자신을 다시 봤다. 그 얼굴은 자신의 것이 맞는가. 이 얼굴이 정말로 나세아의 얼굴인가. 아니면 누군가가 자신의 피부를 뒤집어 씌운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들이 계속 들었다. 요즘 들어. 자신의 몸과 자신의 영혼이 완전히 떨어져 있는 것 같은 느낌. 마치 영혼이 천장 어딘가에 붕 떠 있고, 이 몸은 그저 기계처럼 움직이고 있는 그런 느낌.

병실로 돌아갔다. 도현이는 이미 엄마 옆에 앉아 있었다. 엄마의 손을 잡고 있었다. 엄마의 눈은 아직 완전히 초점이 맞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마약성 진정제의 효과가 아직 남아 있는 것처럼. 하지만 자신의 아들과 딸을 보는 순간, 엄마의 눈이 천천히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세아.”

엄마의 목소리는 매우 약했다. 마치 먼 곳에서 날아오는 목소리처럼. 세아는 다른 쪽 침대 옆에 앉았다. 엄마의 손이 닿을 수 없는 거리에. 그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가까워질 수 없었다. 너무 가까워질 수 없었다.

“응. 여기 있어.”

세아의 목소리도 약했다. 두 사람의 목소리가 만나서 뭔가를 이루지 못하고 공중에서 흩어져버렸다. 마치 연기처럼. 마치 불이 꺼질 때 나오는 연기처럼.

엄마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왜 왔는지, 어디에 있었는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대신 그냥 세아의 얼굴을 봤다. 오랫동안. 마치 자신이 잊고 있던 뭔가를 다시 기억하려는 것처럼.

“미안해.”

세아가 먼저 말했다.

엄마는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다시 세아를 봤다. 그 눈에는 뭔가가 있었다. 분노? 아니다. 실망? 그것도 아니었다. 그냥 깊은 슬픔. 자신의 딸을 보면서 느끼는 깊은 슬픔. 그리고 그 슬픔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오래된 것이었다. 아주 오래된 것이었다.

“엄마가 미안해야 해.”

엄마가 말했다. 그 문장은 세아의 예상 밖이었다.

“뭐?”

“네가 왜 이렇게 됐는지… 엄마가 알아야 했어. 근데 엄마는 계속 모르는 척했어. 네가 타고 있다는 걸. 누군가를 위해 타고 있다는 걸.”

엄마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IV 튜브 때문에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움직였다. 세아 쪽으로. 마치 자신의 딸을 건드리고 싶은데 거리가 막혔다는 것을 깨달은 것처럼.

“엄마가 잘못했어.”

“엄마는 뭘 잘못했어?”

세아가 물었다. 자신의 목소리가 무너지고 있었다.

“너를… 보기를.”

엄마는 숨을 쉬기 위해 말을 멈췄다. 심장 모니터에서 규칙적인 소리가 났다. 비프, 비프, 비프. 엄마의 심장이 뛰고 있다는 증거. 살아 있다는 증거. 그리고 세아는 자신의 심장이 뛰고 있는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자신은 살아 있는가. 정말로.

“내가…”

엄마가 다시 말했다.

“네가 뭘 필요로 하는지 봐야 했어. 뭘 원하는지 봐야 했어. 근데 엄마는 너를 보지 않았어. 넌 그냥… 누군가를 돌보는 딸이었고, 돈을 버는 도구였고, 그런 것들일 뿐이었어. 너라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

그 말이 세아의 가슴에 박혔다. 마치 화살처럼. 아니, 화살이 아니라 뭔가 더 무거운 것처럼. 돌덩어리처럼. 깨진 유리처럼. 자신도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을 누군가가 말해줄 때 느껴지는 그런 종류의 고통. 이미 자신이 받은 상처를 다시 누군가가 짚어줄 때 느껐던 그런 종류의 통증.

도현이가 엄마의 손을 더 세게 잡았다. 마치 엄마가 어딘가로 떠내려가는 것을 막으려는 것처럼.

“엄마 진정해. 의사가 흥분하지 말라고 했잖아.”

“내가… 제주에서도… 알았어. 너한테 그렇게 말하지 못했어. 근데 알았어. 그 남자. 강리우가… 너한테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거.”

엄마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것이 흘러내렸다. 세아는 자신도 모르게 일어섰다. 침대 가장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엄마의 얼굴 가까이로. 그리고 엄마의 뺨을 닦았다. 자신의 손으로.

“엄마, 이제 그 얘기는 하지 말아. 다 끝났어.”

“끝나지 않았어.”

엄마가 말했다.

“뭐가?”

“너의… 불이.”

세아는 움직이지 않았다. 엄마의 말을 들었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아니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불. 자신이 계속 타고 있는 그것. 자신을 천천히 먹어가고 있는 그것.

“엄마가… 제주에 있을 때… 너한테 불을 끄라고 했잖아. 기억해?”

“기억해.”

세아가 대답했다.

“그건 잘못된 말이었어. 엄마가 잘못 말했어.”

엄마의 손이 다시 움직였다. 이번에는 세아의 손을 찾아 잡았다. IV 튜브가 그들의 손을 방해하려 했지만, 그들은 손을 잡았다. 가늘고 약한 두 손이 만났다.

“불을 끄지 말고… 다른 곳에 불을 켜.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너 자신을 위해서. 너 자신의 따뜻함을 위해서.”

그 말에 세아의 목이 메었다. 자신이 이렇게까지 갈망했던 말. 자신의 엄마가 이렇게 말해주기를 기다렸던 그 말. 하지만 이제 와서 그 말을 들으니,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 같았다. 자신이 이미 너무 많이 탔다는 것. 자신이 이미 너무 많이 줬다는 것. 자신의 불이 이제 자신을 살리는 데 쓸 연료가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것.

“엄마, 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세아가 처음으로 진실을 말했다.

“일단… 여기 있어. 엄마 옆에. 그리고 천천히 생각해. 너가 뭘 원하는지. 너를 위해서 뭘 해줄 수 있을지.”

도현이가 침대 반대편에서 세아의 다른 손을 잡았다. 그렇게 세아는 자신의 엄마 양쪽에 잡혀 있었다. 도현이의 손과 엄마의 손으로. 살아 있는 손들로. 따뜻한 손들로.

병실의 창문 밖으로 서울의 오후가 흐르고 있었다. 11월의 햇빛은 약하지만 계속 내려쬐고 있었다. 그 빛이 병실의 흰 벽에 떨어졌다. 떨어진 빛이 회색의 그림자를 만들었다. 밝음과 어둠이 공존하는 그런 공간. 세아는 그 공간 속에 앉아 있었다. 자신의 엄마의 손을 잡으면서.

“강하늘이… 몇 번 왔었어.”

엄마가 말했다.

“응?”

“너 일 때문에. 너가 뭐 하고 있는지 묻고 가고… 그래. 그 언니는 정말… 너를 보는 사람이었어.”

하늘이. 세아는 하늘이를 생각했다. 얼마나 오래됐는가. 하늘이와 제대로 대화한 게. 아, 맞다. 제대로 대화하지 않았다. 자신이 연락을 끊었다. 자신이 피했다. 자신이 도망쳤다.

“엄마, 나 하늘이한테 뭐라고 할 거 같아.”

“뭐?”

“미안하다고.”

엄마는 미소를 지었다. 약한 미소였지만, 그것은 미소였다. 자신의 딸이 이제 조금이라도 자신의 발목에서 벗어나려 하는 것을 보면서 느끼는 미소였을 것이다.

의사가 다시 들어왔다. 검진을 했다. 엄마의 상태가 안정적이라고 말했다. 하루 밤을 더 관찰해야 하고, 내일쯤이면 일반병실로 옮길 수 있을 거라고. 세아는 그 말을 들었지만, 자신의 주의력은 엄마의 손에 있었다. 그 손은 여전히 자신의 손을 잡고 있었다. 조금씩 힘을 더해가면서.

저녁이 되자, 도현이가 학교 과제를 했다. 병실의 한 구석에 앉아서. 세아는 엄마 옆에 앉아서 창문 밖을 봤다. 한강. 아주 멀리 보였다. 하지만 그것이 한강이라는 것은 알았다. 그 물이 자신을 어떻게 유혹했는지도 알았다. 그 물이 자신을 얼마나 부르짖었는지도.

하지만 지금 자신은 여기 있었다. 병실에서. 자신의 엄마 옆에서. 자신의 손이 누군가의 손을 잡으면서.

밤 10시가 되자, 간호사가 들어와서 엄마를 위한 수면제를 놓았다. 엄마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하지만 손은 여전히 세아의 손을 잡고 있었다. 자는 중에도.

“누나, 너 여기서 자?”

도현이가 물었다.

“응. 여기서 잘게.”

세아가 대답했다.

“엄마 옆에?”

“응.”

도현이는 아무것도 더 묻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가방에서 담요를 꺼냈다. 자신의 것이었다. 세아에게 던져주었다.

“쌀쌀할 거 같아.”

세아는 그 담요를 받았다. 도현이의 담요. 자신의 남동생의 따뜻함. 그것을 자신의 몸에 감쌌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를 엄마의 침대 옆에 놨다. 그렇게 자신은 자신의 엄마의 손을 잡으면서 잠이 들었다.

밤이 깊어갔다. 병실의 심장 모니터는 계속 비프, 비프, 비프 하는 소리를 냈다. 그것이 자신의 엄마의 심장이 뛰고 있다는 증거. 살아 있다는 증거. 그리고 세아도 그 소리에 맞춰 숨을 쉬기 시작했다. 마치 자신도 그 모니터의 일부가 되는 것처럼. 자신의 몸이 자신의 엄마의 생명 신호와 동기화되는 것처럼.

한 시간이 지났다. 두 시간이 지났다. 밤은 계속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세아는 깨어 있었다. 자신의 엄마의 손을 잡으면서. 도현이의 담요 속에서. 자신의 몸이 아직도 따뜻하다는 것을 천천히 깨닫으면서.

새벽 3시경, 엄마가 움직였다. 악몽을 꾸는 것처럼. 세아는 즉시 일어났다.

“엄마?”

엄마는 눈을 뜨지 않았지만, 손가락을 움직였다. 세아의 손을 더 세게 잡았다.

“여기 있어. 엄마.”

세아가 말했다.

“응…”

엄마가 중얼거렸다. 그리고 다시 깊은 잠으로 빠져들었다.

세아는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계속 깨어 있었다. 자신의 엄마의 손을 잡으면서. 밤이 끝날 때까지. 그리고 새로운 아침이 올 때까지.

밤이 가장 깊을 때, 세아는 자신의 휴대폰을 들었다. 아직 꺼져 있었다. 혹은 배터리가 다 떨어져 있었다. 자신은 얼마나 오래 휴대폰을 확인하지 않았을까. 하늘이에게서는 몇 개의 메시지가 있을 것이다. 도현이에게는 이미 들었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서는? 강리우에게서는?

자신은 그것을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은 이미 그를 충분히 생각했다. 자신은 이미 그를 위해 충분히 탔다. 자신은 이제 자신을 위해 타야 했다. 자신의 따뜻함을 위해.

하지만 자신은 아직도 모르고 있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밤새 세아는 자신의 엄마의 손을 잡으면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천천히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세아. 어떤 누군가의 딸. 어떤 누군가의 누나.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 자신이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자신은 얼마나 더 오래 걸려야 할까.

병실의 창문 밖으로 새로운 하루가 천천히 밝아오고 있었다.

# 밤샘 병실

## 1부: 침침한 저녁

병실의 형광등은 차갑고 무정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 빛 아래서 세아는 엄마의 침대 옆에 앉아 있었다. 의자는 딱딱했고, 등받이는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몸이 점점 굳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엄마의 손을 놓을 수 없었다.

엄마의 손은 생각보다 작았다. 언제부터일까? 항상 크고 따뜻했던 그 손이 이렇게 작아져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 손가락에는 링이 아직도 끼워져 있었다. 아빠가 선물한 것. 몇십 년 전의 그 약속의 증표가.

세아는 엄마의 손을 자신의 두 손으로 감싸 안았다. 최대한 천천히, 최대한 조심스럽게. 마치 그 손이 유리처럼 깨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손가락 끝에서 엄마의 맥박을 느낄 수 있었다. 약하지만 분명하게 뛰고 있는 심장.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것만으로도 세아는 숨을 쉴 수 있었다.

“누나, 너 여기서 자?”

도현이의 목소리가 병실 문을 통해 들려왔다. 17살의 남동생. 고등학교 1학년. 어제 오후에 학교에서 달려왔다고 했다. 버스를 놓치고 택시를 탔다고. 평소처럼 자존심 센 도현이가 눈물을 흘렸다.

세아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도현이는 운동화 채로 병실에 들어와 있었다. 원칙상 안 되는 일이었지만, 아무도 제지하지 않았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응. 여기서 잘게.”

세아가 대답했다. 목소리가 잠겨 있었다. 이틀을 거의 말하지 않은 탓이었다.

“엄마 옆에?”

도현이가 다시 물었다. 그의 눈은 엄마의 창백한 얼굴을 지나 세아의 얼굴로 향했다. 누나의 눈이 빨갛다는 것을 본 것이다.

“응.”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하지 않았다. 도현이는 아무것도 더 묻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운동 가방에서 손을 뻗었다. 그리고 담요를 꺼냈다. 자신의 담요였다. 학교 기숙사에서 가져온 것. 파란색 담요에는 도현이의 이름이 검은 매직으로 쓰여 있었다.

“쌀쌀할 거 같아.”

도현이가 말했다. 그것은 단순한 배려가 아니었다. 그것은 형과 누나를 둔 남동생만이 할 수 있는 종류의 사랑이었다. 거칠지만 따뜻한. 어색하지만 진실한.

세아는 그 담요를 받았다. 손가락이 떨렸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도현이의 담요. 자신의 남동생의 따뜻함. 그것은 단순한 섬유가 아니었다. 그것은 도현이가 기숙사에서 자신을 감싼 것이었다. 밤새 그를 따뜻하게 해주던 것이었다.

세아는 그것을 자신의 몸에 감쌌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담요의 냄새가 났다. 세제의 냄새, 그리고 도현이의 냄새. 낯설지 않은 냄새였다. 집에서 나는 냄새였다.

그리고 세아는 자신의 머리를 엄마의 침대 옆에 놨다. 목이 불편했지만, 상관없었다. 한 손으로는 계속 엄마의 손을 잡고 있었다. 다른 한 손으로는 도현이의 담요를 움켜쥐고 있었다.

“고마워, 도현아.”

“뭐하는 소리야.”

도현이는 돌아서며 말했다.

병실의 문이 닫혔다. 세아는 혼자였다. 아니, 혼자가 아니었다. 엄마가 있었다. 도현이의 담요가 있었다. 그리고 밤이 천천히 깊어가고 있었다.

## 2부: 밤이 깊어갈 때

시간이 흘렀다. 병실의 시계는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저녁 9시. 너무 이른 시간이 아닐까? 아니면 너무 늦은 시간일까? 세아는 시간 감각을 잃고 있었다.

병실의 심장 모니터가 계속 소리를 냈다.

*비프, 비프, 비프.*

규칙적인 리듬. 마치 메트로놈처럼. 그것은 엄마의 심장이 뛰고 있다는 증거였다.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그 소리 없이는 세아는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았다.

세아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리듬에 맞춰 숨을 쉬기 시작했다. 들숨, 날숨. 들숨, 날숨. 마치 자신도 그 모니터의 일부가 되는 것처럼. 자신의 몸이 자신의 엄마의 생명 신호와 동기화되는 것처럼.

이것이 사랑일까? 세아는 생각했다. 자신의 생명이 다른 사람의 생명에 종속되는 것. 자신의 호흡이 다른 사람의 심장박동에 맞춰지는 것.

세아는 엄마의 손을 더 강하게 잡았다. 엄마의 손은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괜찮았다. 반응이 없다는 것 자체가 생명의 증거였으니까.

한 시간이 지났다. 병실 시계는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두 시간이 지났다. 밤은 계속 흐르고 있었다. 병실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 24시간 내내 밝혀야 하는 곳이 병실이었다. 어둠이 올 수 없는 곳. 죽음이 와도 그것을 숨겨야 하는 곳.

세아는 깨어 있었다. 자신의 엄마의 손을 잡으면서. 도현이의 담요 속에서. 자신의 몸이 아직도 따뜻하다는 것을 천천히 깨닫으면서.

따뜻함이란 무엇일까? 세아는 생각했다. 온도인가? 감정인가? 아니면 누군가의 존재인가?

도현이의 담요가 따뜻했다. 그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더 따뜻한 것은 그 담요가 가져온 의미였다. 도현이가 자신을 생각했다는 것. 도현이가 자신을 걱정했다는 것. 도현이가 자신을 위해 자신의 것을 내려놨다는 것.

세아는 고개를 들어 엄마의 얼굴을 바라봤다. 엄마는 자고 있었다. 혹은 의식이 없었다. 그 둘의 차이를 세아는 이제 알고 있었다. 의식이 없는 사람도 때로는 엄마였다. 의식이 없어도 사랑할 수 있었다.

“엄마.”

세아가 속삭였다. 아무도 들을 수 없는 목소리로. 자신도 제대로 들을 수 없는 목소리로.

“나 여기 있어. 엄마가 혼자가 아니야.”

엄마는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세아는 계속 말했다.

“도현이도 와 있어. 아빠도 내일 아침에 올 거야. 우리 다 여기 있어.”

거짓말이었을 수도 있었다. 아빠는 출장 때문에 내일 아침에 올 수 없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거짓말도 필요했다. 거짓말도 사랑의 한 형태였다.

## 3부: 새벽의 악몽

시간이 더 흘렀다. 병실 시계는 새벽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세아는 반쯤 깨어 있었다. 반쯤 자고 있었다. 그 모호한 상태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것이 자신의 운명인가? 자신은 영원히 이 상태에서 살아갈 것인가?

그때였다.

엄마가 움직였다.

작은 움직임이었지만, 세아는 즉시 깨어났다. 마치 엄마의 생명과 직접 연결된 신경이 있는 것처럼.

“엄마?”

세아가 물었다.

엄마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마치 악몽을 꾸는 것처럼. 눈꺼풀이 떨렸다. 손가락이 움직였다. 세아의 손을 더 세게 잡았다.

세아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엄마가 아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신체적으로, 혹은 정신적으로.

“여기 있어. 엄마.”

세아가 말했다. 자신의 목소리가 엄마의 손에 전달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여기 있어. 내가 여기 있어.”

엄마의 눈이 떴다. 하지만 초점이 없었다. 눈동자가 이리저리 움직였다. 마치 어둠 속에서 누군가를 찾고 있는 것처럼.

“엄마, 나야. 세아야.”

세아가 다시 말했다.

“응…”

엄마가 중얼거렸다. 목소리가 약했다. 마치 바다 밑에서 올라오는 목소리처럼.

“응… 세아…”

엄마의 입술이 움직였다. 딸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여기 있어. 엄마. 여기 있어.”

세아는 자신의 얼굴을 엄마에게 더 가까이 가져갔다. 엄마가 자신을 볼 수 있도록. 엄마가 자신을 느낄 수 있도록.

엄마의 눈이 천천히 세아에게 초점을 맞췄다. 인식이 돌아오고 있었다. 엄마가 돌아오고 있었다.

“엄마.”

세아의 목소리에는 눈물이 묻어 있었다.

“응… 세아… 너 여기 있니?”

엄마가 물었다. 목소리가 약했지만, 그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엄마의 목소리였다.

“응. 여기 있어. 계속 여기 있을 거야.”

세아가 말했다.

엄마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리고 엄마는 다시 깊은 잠으로 빠져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악몽 없이. 이번에는 편하게.

세아는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계속 깨어 있었다. 자신의 엄마의 손을 잡으면서. 밤이 끝날 때까지. 그리고 새로운 아침이 올 때까지.

## 4부: 밤의 한가운데

밤이 가장 깊을 때가 왔다. 새벽 4시. 하루 중 가장 어두운 시간. 가장 쓸쓸한 시간. 가장 많은 사람들이 죽는 시간이라고 했다.

세아는 그 시간을 두려워했다.

그 시간에 세아는 자신의 휴대폰을 들었다. 화면이 검게 비어 있었다. 배터리가 다 떨어져 있었다. 혹은 꺼져 있었다.

자신은 얼마나 오래 휴대폰을 확인하지 않았을까?

며칠? 일주일? 시간 감각이 없었다. 병실 안의 시간은 바깥 세상의 시간과 다르게 흘렀다.

하늘이에게서는 분명 메시지가 있을 것이다. 절친인 하늘이. 고등학교 이래 같이 다닌 친구. 아마 열 개? 스무 개?

도현이에게는 이미 들었다. 도현이는 자신에게 전화를 했다고 했다. 여러 번.

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서는?

강리우.

그 이름을 생각하는 것 자체가 가슴을 아프게 했다.

강리우에게서는 몇 개의 메시지가 있을 것이다. 아마 많은 메시지가. 아마 “왜 전화 받지 않니?” 아마 “뭐하고 있니?” 아마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세아는 그 메시지들을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은 이미 그를 충분히 생각했다. 자신은 이미 그를 위해 충분히 탔다. 자신은 이제 자신을 위해 타야 했다. 자신의 따뜻함을 위해. 자신의 엄마를 위해.

하지만 자신은 아직도 모르고 있었다.

강리우가 자신을 사랑했는지. 자신이 강리우를 사랑했는지. 그것이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

세아는 휴대폰을 다시 내려놨다. 충전하지 않았다. 켜지 않았다. 그냥 침대 옆 탁자에 내려놨다. 죽은 물건처럼.

“네가 필요 없어.”

세아가 속삭였다.

“나 혼자도 괜찮아. 엄마가 있으면.”

거짓말이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거짓말이 진실이 될 수 있었다.

## 5부: 밤새 배우기

밤새 세아는 자신의 엄마의 손을 잡으면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천천히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세아.

그것이 자신의 이름이었다.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누나. 누군가의 친구. 누군가의 연인.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 자신이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자신은 얼마나 더 오래 걸려야 할까?

세아는 엄마의 손을 바라봤다. 노인의 손. 삶을 많이 살아온 손. 그 손이 자신을 낳았다. 그 손이 자신을 키웠다. 그 손이 자신을 안아줬다.

그리고 이제 자신이 그 손을 잡고 있었다.

역할이 바뀌었다. 자녀가 부모를 돌보는 역할. 그것은 자연스러운 순환이었다. 삶의 순환. 세대의 순환.

세아는 엄마의 손에 자신의 뺨을 기댔다. 따뜻함을 느끼면서. 엄마의 손이 아직도 자신을 위해 따뜻하다는 것을 느끼면서.

“엄마, 고마워.”

세아가 속삭였다.

“나를 낳아줘서. 나를 키워줘서. 나를 사랑해줘서.”

엄마는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세아는 알고 있었다. 엄마가 듣고 있다는 것을. 엄마의 영혼이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는 것을.

병실의 모니터가 계속 울었다.

*비프, 비프, 비프.*

세아는 그 리듬에 맞춰 숨을 쉬었다. 자신의 생명과 엄마의 생명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언제까지일까? 이 밤이 언제까지 계속될까?

하지만 세아는 그것을 묻지 않았다.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이었다. 지금 이 손이었다. 지금 이 숨이었다.

## 6부: 새벽이 오다

병실의 창문 밖으로 천천히 밝아오고 있었다.

새로운 하루가.

병실의 형광등은 여전히 밝혀 있었다. 하지만 창 밖의 빛이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밤이 물러나고 있었다. 어둠이 사라지고 있었다.

세아는 여전히 깨어 있었다. 엄마의 손을 잡으면서.

도현이의 담요는 세아의 몸에서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세아는 그것을 올리지 않았다. 그대로 두었다. 마치 도현이가 밤새 자신을 따뜻하게 해주고 떠나간 것처럼.

하지만 도현이는 떠나가지 않았다. 도현이는 병실 밖의 대기실에서 자고 있을 것이다. 불편한 소파에서. 하지만 자신의 누나를 생각하면서.

세아는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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