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불탄 소녀 – 제139화: 엄마의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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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39화: 엄마의 침묵

엄마가 뭘 물었냐는 질문이 세아의 귓가에서 계속 맴돌았다. 도현이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마치 그것을 말하는 것 자체가 세아에게 주는 상처를 미리 가늠한 것처럼. 국수 가게의 천장에는 여전히 곡선 형태의 목재가 노출되어 있었고, 벽에 붙은 판화 속의 인물들은 영원히 움직이지 않는 상태로 고정되어 있었다. 오후 6시 18분. 이 시간은 어떤 시간이었나. 저녁도 아니고 오후도 아닌, 그 애매한 경계에 있는 시간. 마치 세아 자신처럼.

“엄마가 뭐라고 했는데?”

세아가 천천히 물었다. 목이 아직도 타는 느낌이 있었다. 그 감각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마치 누군가 자신의 목구멍에 각인을 해둔 것처럼.

도현이는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화면을 켰다 껐다를 반복했다. 그 행동은 신경증적이었다. 마치 자신이 말하려는 것이 너무 무거워서, 그것을 말하기 전에 작은 움직임으로나마 시간을 벌고 싶었던 것처럼.

“엄마가 누나를 보고 싶다고 했어.”

도현이가 마침내 말했다. “제주에 내려오지 않은 지 한 달하고도 몇 주가 됐대. 엄마가 카톡으로 물었어. 누나가 지금 뭐 하는지. 괜찮은지. 혼자가 아닌지.”

세아의 호흡이 얕아졌다. 자신이 엄마에게 전화를 걸지 않은 지 얼마나 되었나. 아마도 몇 주. 아니, 더 오래됐을 수도 있다.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세아는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단지 판결을 기다린다고 생각했던 그 시간들이 어느새 몇 주가 되어 있었고, 그 사이에 자신은 엄마에게 침묵을 내던지고 있었다.

“내가 뭐라고 말해야 해?”

도현이가 다시 물었다. “엄마한테 뭐라고 말할 수 있어?”

세아는 국수를 들었다. 포크로 천천히 국수를 감았다. 그 과정은 의식적이었다. 마치 자신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처럼. 국수는 이미 식었다. 온기를 잃은 음식은 맛도 없었고, 의미도 없었다. 하지만 세아는 계속 먹었다.

“누나 입 닫아.”

도현이가 말했다. 갑자기. “국수 먹는 것도 꼴이 아파. 그냥 말해. 너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정확하게.”

세아는 포크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도현이의 눈을 마주봤다. 도현이의 눈은 세아가 기억하는 그 눈이 아니었다. 2년 전, 아니 그보다 더 이전의 그 밝은 눈이 아니었다. 지금의 도현이는 자신의 누나가 타들어가는 것을 지켜봐야 한다는 짐을 지고 있었고, 그 짐이 그의 눈을 어둡게 만들었다.

“강리우를 놓을 수 없어.”

세아가 말했다. 정직하게. “판결이 나올 때까지 내가 그를 놓으면, 그게 마치 내가 그를 용서하는 것처럼 느껴져. 하지만 판결이 나온 후에도 내가 그를 놓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

“그게 뭐가 문제야?”

도현이가 물었다. “그냥 놔. 왜 그렇게까지 집착해?”

“그건 집착이 아니야.”

세아가 대답했다. “그건 책임이야.”

“책임? 누나가 그 사람한테 무슨 책임이 있어?”

도현이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처음으로. 지금까지 도현이는 천천히, 조용하게, 마치 자신의 분노를 최대한 절제하면서 말했었다. 하지만 이 순간에 그 절제가 깨졌다. “그 사람이 누나한테 한 짓들을 생각해봐. 그런데 왜 누나가 책임을 져?”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신도 그 이유를 명확하게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지 느껴지는 것이 있을 뿐. 마치 자신이 강리우를 놓는 순간, 자신도 함께 무너져버릴 것 같은 그 두려움. 아니, 그것보다 더 깊은 무언가. 혹시 자신이 강리우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그 공포.

가게의 문이 열렸다. 새로운 손님들이 들어왔다. 젊은 직장인들. 토요일 저녁을 누군가와 함께 보내려는 그런 사람들. 그들은 웃고 떠들었다. 자연스럽게. 마치 세상이 정상인 것처럼. 마치 그들의 앞에는 판결이라는 것이 없는 것처럼.

“누나.”

도현이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가 또 뭐라고 했는지 알아?”

세아는 고개를 들었다.

“엄마가 말했어. 누나가 지금 누군가를 구하려고 하는 건 아닐까, 다고. 누나 자신을 구하지 못해서 누군가를 구하려고 하는 건 아닐까, 다고. 그리고 누나가 그 누군가를 구할 수 없다면, 누나는 함께 빠져버릴 거라고.”

세아의 손이 멈췄다. 엄마의 말이라는 것을 들었을 때. 엄마는 제주에 있었다. 서울에서 매우 멀리. 그런데도 엄마는 세아를 정확하게 보고 있었다. 아니, 보려고 했다. 그리고 그 시선이 지금 세아를 관통했다.

“엄마가 더 말했어.”

도현이가 계속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세아의 동생이 울음을 참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엄마가 말했어. 누나는 불이야, 다고. 그리고 불이 혼자 탈 수는 없다고. 불은 누군가를 태워야 계속 타오른다고. 근데 누나가 태우는 게 자신이 되면 어떻게 될까, 다고.”

세아는 자신의 손을 봤다. 손가락들이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그 떨림은 몸의 신호였다. 자신의 내부에서 뭔가 부서지고 있다는 신호. 마치 기초가 흔들리는 건물처럼.

“강리우 병실 가봐.”

도현이가 갑자기 말했다.

“뭐?”

세아가 물었다.

“강리우 병실 가봐. 그리고 한 번만 물어봐. 그 사람이 지금 뭘 기다리고 있는지. 판결? 아니면 누나?”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답에 따라 넌 뭘 할 건지 결정해야 해. 그 사람이 판결을 기다리고 있으면, 그럼 판결이 나올 때까지 함께 있어도 돼. 근데 그 사람이 누나를 기다리고 있으면?”

도현이는 말을 마치지 않았다. 하지만 세아는 알았다. 그 문장의 끝이 뭔지.

테이블 위에는 여전히 국수가 놓여 있었다. 세아의 국수는 도현이의 국수보다 더 차가워졌다. 마치 자신의 감정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더 차가워지는 것.

“가봐.”

도현이가 다시 말했다. “지금. 여기서 나가서. 바로 가봐. 그리고 한 가지만 더 해.”

“뭔데?”

세아가 물었다.

“엄마한테 전화해. 지금이라도. 그리고 엄마한테 미안하다고 말해. 그건 거짓이 아니야. 넌 진짜로 미안할 거야.”

도현이는 일어났다. 갑자기. 마치 자신이 이 자리에 더 이상 있을 수 없을 것처럼. 세아를 본다는 것이 고통스러워 보였다.

“도현이, 앉아.”

세아가 말했다. 하지만 도현이는 이미 지갑을 들고 있었다.

“넌 가. 나는 집 가.”

도현이가 말했다. 목소리가 차가웠다. 아이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어떤 결단을 내린 누군가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다음에 만날 때는, 제대로 된 누나를 보고 싶어. 지금 이 상태의 누나가 아니라.”

“도현이…”

세아가 손을 뻗었다. 하지만 도현이는 이미 가고 있었다. 가게의 문을 통해. 홍대의 거리로. 토요일 저녁의 그 거리로.

세아는 혼자 남겨졌다. 식어버린 국수와 함께. 그리고 그 순간, 세아는 느껴야 했다. 자신이 정말로 혼자라는 것을. 도현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강리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수 가게의 직원이 다가왔다. 아마도 계산을 하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직원은 세아의 얼굴을 보고 다시 돌아갔다. 세아의 표정이 무엇인가를 말해주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무도 그 순간에 세아에게 말을 걸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았다.

오후 6시 34분. 세아는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강리우에게서 온 마지막 메시지를 다시 읽었다. “판결 날을 기다리고 있어.” 그 메시지 아래에, 세아는 새로운 메시지를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엇을 쓸지 모르겠었다. 마치 자신의 손가락들이 더 이상 명령을 받지 않는 것처럼. 휴대폰의 화면은 비어 있었다. 세아가 입력한 단어는 없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병실로 가자. 도현이의 말처럼. 그리고 강리우를 봐야겠다. 직접. 그의 눈을 봐야겠다. 그것이 세아가 해야 할 일인 것 같았다.

세아는 일어났다. 국수를 남긴 채로. 돈을 테이블에 놓았다. 더 많은 돈을. 미안함을 담아. 그리고 가게를 나왔다.

홍대의 거리는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사람들이 걸어 다니고, 자동차들이 지나갔다. 그것은 계속 움직이는 세상이었다. 멈추지 않는 세상. 하지만 세아는 그 움직임 속에서 멈춰 있었다. 마치 자신이 시간 밖에 있는 것처럼.

병원으로 가는 길. 서울 시내의 어느 병원으로. 세아는 강리우가 있는 그곳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도현이의 말이 자신의 발걸음을 이끌고 있었다. 그리고 엄마의 말이 자신의 가슴을 누르고 있었다.

“불이 혼자 탈 수는 없다.”

그 말이 맞다면, 세아는 지금까지 누구를 태웠을까. 강리우? 판결? 아니면 자신?

답을 찾기 위해, 세아는 앞을 봤다. 이미 사라진 도현이가 간 길을 따라. 그리고 자신이 가야 할 길을 향해.

오후 6시 47분. 세아는 지하철역으로 내려갔다. 서울의 깊은 곳으로. 그 어두운 터널로.


병원

서울 강남의 한 대학병원. 세아가 도착했을 때는 오후 7시 15분이었다. 병원의 로비는 밝았다. 형광등이 천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 밝음은 불쾌했다. 마치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야 하는 곳 같았다. 검사실, 엑스레이실, 그리고 각종 안내판들이 벽에 붙어 있었다. 이곳은 생명을 다루는 장소였다. 죽음과 생명이 공존하는 곳.

세아는 강리우가 있는 병실의 번호를 휴대폰에서 확인했다. 3일 전에 문자로 받은 것. 그 이후로 그곳에 가지 않았다. 아니, 갈 수 없었다. 마치 그곳에 가는 것이 자신에게 더 많은 책임을 지우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를 탔다. 5층. 그것은 높지도 낮지도 않은 층수였다. 중간 어딘가. 마치 세아의 감정처럼.

5층의 복도는 조용했다. 토요일 저녁. 병원도 사람이 많지 않은 시간대였다. 세아는 천천히 걸었다. 복도를 따라. 병실 번호를 찾으면서.

“나세아.”

갑자기 누군가 세아의 이름을 불렀다. 세아는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는 해늘이 있었다. 병실 앞에 서 있는 해늘이.

“넌 왜…”

세아가 물었다.

“도현이가 나한테 전화했어.”

해늘이 말했다. “그리고 나한테 여기 와서 강리우 앞에 서 있으라고 했어. 그리고 너한테 물어보라고 했어. 넌 이 사람한테 뭘 원해, 다고.”

세아는 해늘의 얼굴을 봤다. 해늘은 평소처럼 무표정했다. 하지만 그 무표정 속에는 무언가가 있었다. 걱정. 분노. 그리고 사랑.

“해늘…”

세아가 말했다.

“가.”

해늘이 말했다. 병실의 문을 가리키면서. “그리고 진실을 봐. 그 사람이 무엇인지. 그리고 넌 무엇인지.”

세아는 깊게 숨을 쉬었다. 그리고 병실의 문을 열었다.


병실

강리우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저녁 햇빛이 그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평화로워 보였다. 아니, 그것은 평화가 아니라 공허였다. 마치 누군가 그의 내부를 모두 꺼내버린 것처럼.

“세아…”

강리우가 세아를 봤을 때, 그의 눈이 변했다. 그 변화는 미세했지만, 세아는 느껴야 했다. 그것이 무엇인지. 기쁨? 절망? 아니면 다시 자신을 붙잡으려는 욕망?

세아는 침대 옆에 섰다. 강리우의 손을 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의 떨리는 손가락들을. 그 손가락들이 자신을 어떻게 만졌었는지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뭘 기다리고 있어?”

세아가 물었다. 도현이의 말처럼. “판결? 아니면 나?”

강리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침묵이 대답이었다. 세아는 그것을 알았다. 강리우는 판결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었다. 강리우는 세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을 용서해주기를. 자신이 다시 세아의 손을 잡을 수 있기를.

“난 너를 놓을 수 없어.”

세아가 말했다. 정직하게. “그리고 넌 날 놓을 수 없어. 그게 우리의 문제야.”

“세아…”

강리우가 손을 들었다. 떨리는 손으로. 세아의 손을 향해.

하지만 세아는 물러섰다. 그 손이 닿지 않도록. 그리고 그 순간, 세아는 깨달았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도현이가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 엄마가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

“안녕.”

세아가 말했다. 그리고 돌아섰다.

“세아, 잠깐!”

강리우가 뒤에서 소리쳤다. 하지만 세아는 이미 문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해늘이 세아를 봤을 때, 그의 얼굴에 어떤 감정이 떠올랐는지, 세아는 보지 않았다. 단지 앞으로 나아갔다. 엘리베이터 쪽으로. 그리고 1층으로. 그리고 병원의 밖으로.

오후 7시 52분. 세아는 병원의 밖에 섰다. 서울의 밤이 내려앉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밤 속에서, 세아는 처음으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되었다.

엄마. 그리고 도현이. 그리고 해늘. 그리고 자신의 목소리.

세아는 휴대폰을 들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호출음.

그리고 그 호출음 속에서, 세아는 울었다. 처음으로. 정말로.

# 진실 앞에서

## 1부: 병실 앞

해늘의 목소리는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았다. 그저 담담했다. 마치 오랫동안 기다려온 순간을 맞이한 사람처럼.

“해늘…”

세아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얼마나 오래되었는가. 자신의 목소리가 이렇게 흔들려본 적이 있었나. 세아는 자신도 모르게 손가락을 꼭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드는 느낌이 현실처럼 느껴졌다.

“가.”

해늘이 말했다. 그의 시선은 병실의 문을 향해 있었다. 흰 페인트로 칠해진 그 문. 얼마나 많은 것들이 그 문 뒤에서 일어났던가. 얼마나 많은 거짓말들이, 그 공간 안에서 태어났던가.

“그리고 진실을 봐.”

해늘이 계속 말했다. 그의 손가락이 병실 문을 가리켰다. 그 손가락은 흔들리지 않았다. 오직 세아만 흔들리고 있었다.

“그 사람이 무엇인지. 그리고 넌 무엇인지.”

세아는 깊게 숨을 쉬었다. 코를 통해 들어오는 공기가 차가웠다. 병원의 그 특유한 냄새—소독약과 죽음 사이의 어딘가에 있는 냄새—가 폐에 가득 찼다. 세아는 그것을 느껴야 했다. 지금 이 순간, 모든 감각을 깨어있어야 했다.

손을 들었다. 떨리는 손으로.

병실의 문을 열었다.

## 2부: 침대 위의 진실

**병실**

강리우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저녁 햇빛이 그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그 햇빛은 금색이었다. 마지막 순간의 금색. 해가 지기 직전의,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색깔. 하지만 그 아름다움이 강리우의 얼굴에 비추어질 때는, 어딘가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마치 그 빛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그의 표정은 평화로워 보였다.

아니다. 세아는 자신의 생각을 수정했다. 그것은 평화가 아니었다. 평화는 뭔가 따뜻한 감정이다. 모든 것이 끝났을 때, 모든 것을 받아들였을 때 오는 감정. 하지만 강리우의 얼굴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

그것은 공허였다.

마치 누군가 그의 내부를 모두 꺼내버린 것처럼. 영혼을 들어낸 것처럼. 피를 빼낸 것처럼. 강리우는 침대 위에 누워있는 육체일 뿐이었다. 그 육체는 숨을 쉬고 있었지만, 그것도 마치 습관처럼 보였다. 본능처럼.

세아는 그를 보았다.

그리고 그가 움직였다.

“세아…”

강리우의 목소리는 작았다. 마치 먼 곳에서 울려오는 종소리처럼. 꿈 속의 목소리처럼.

그의 눈이 변했다.

그 변화는 미세했다. 다른 사람들은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세아는 느껴야 했다. 그것이 무엇인지.

기쁨?

아니다. 기쁨은 이런 감정이 아니다. 기쁨은 얼굴 전체를 밝히는 것. 눈을 빛나게 하는 것. 하지만 강리우의 눈에 나타난 것은, 다른 것이었다.

절망?

그것도 아니었다. 절망은 좀 더 극적이다. 절망은 비명을 지르게 한다. 절망은 움직이게 한다. 하지만 강리우는 그대로였다. 침대에 누운 그대로.

그렇다면 그것은—

다시 자신을 붙잡으려는 욕망?

그것이었다. 세아는 그것을 알았다. 강리우의 눈 안에 있는 그 미세한 변화는, 자신의 손을 다시 잡기 위한 욕망이었다. 자신의 자리로 돌아오게 해달라는 무언의 간청이었다.

세아는 침대 옆에 섰다.

강리우의 손을 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 손. 그 손이 자신을 어떻게 만졌었는지. 그 손이 자신의 얼굴을 어떻게 쓸어내렸는지. 그 손이 자신의 목을 어떻게 조였는지. 세아는 그 감각을 아직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어제 일어난 일처럼. 마치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처럼.

강리우의 손가락들이 떨리고 있었다.

아직도 그의 손은 세아를 원하고 있었다.

“뭘 기다리고 있어?”

세아가 물었다. 자신의 목소리가 얼마나 낮은지 깨달았다. 마치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것처럼 낮고, 답답하고, 답답했다.

도현이의 말처럼. 도현이가 했던 말처럼.

“판결? 아니면 나?”

강리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침묵이 대답이었다. 침묵은 언제나 가장 큰 대답이다. 침묵은 거짓말을 할 수 없다. 침묵은 오직 진실만 말한다.

세아는 그것을 알았다.

강리우는 판결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었다. 강리우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세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이 그를 용서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이 다시 그의 손을 잡을 수 있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이 다시 그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이 강리우가 원했던 것이었다.

그것이 강리우가 항상 원했던 것이었다.

“난 너를 놓을 수 없어.”

세아가 말했다. 정직하게. 마치 누군가 자신의 가슴 안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그 목소리는 세아의 입에서 나왔지만, 세아의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넌 날 놓을 수 없어. 그게 우리의 문제야.”

강리우의 눈이 눈물로 젖어갔다.

그 눈물을 본 순간, 세아는 자신도 울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자신도 눈물이 나고 싶었다. 하지만 세아는 울 수 없었다. 세아가 울면, 강리우가 이길 것이다. 세아의 눈물은 강리우에게 희망을 줄 것이다. 강리우가 자신을 다시 붙잡을 수 있다는 희망을.

그래서 세아는 울지 않았다.

“세아…”

강리우가 손을 들었다. 떨리는 손으로. 세아의 손을 향해.

그 손이 자신의 손을 향해 움직였다.

세아는 그 손을 바라보았다. 그 손이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고통을 주었는지 알고 있었다. 그 손이 얼마나 아름답고, 동시에 얼마나 끔찍한지 알고 있었다.

그 손이 자신을 사랑했고, 동시에 자신을 파괴했다.

그 손이 자신을 구원했고, 동시에 자신을 지옥으로 보냈다.

하지만 세아는 물러섰다.

그 손이 닿지 않도록. 그 손의 온기가 자신의 살을 녹이지 않도록. 그 손의 부드러움이 자신의 의지를 부드럽게 만들지 않도록.

세아는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그 순간, 세아는 깨달았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도현이가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

엄마가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

해늘이가 자신의 손을 잡고 여기까지 이끌어온 이유가 무엇인지.

모두가 자신에게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

그것은 판결이 아니었다.

그것은 용서도 아니었다.

그것은—

## 3부: 안녕

“안녕.”

세아가 말했다.

그 단어는 얼마나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가. ‘안녕’은 인사다. 하지만 ‘안녕’은 또한 작별이다. ‘안녕’은 만남을 기원하는 말이면서, 동시에 헤어짐을 받아들이는 말이다.

세아는 그 말 하나에 모든 것을 담았다.

모든 기억을.

모든 사랑을.

모든 상처를.

모든 고통을.

모든 것을.

그리고 돌아섰다.

그 뒷모습이 얼마나 슬픈지, 세아는 알 수 없었다. 왜냐하면 세아의 눈은 앞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뒤를 향하지 않았다. 뒤의 것을 보려고 하지 않았다.

“세아, 잠깐!”

강리우가 뒤에서 소리쳤다.

그 목소리가 얼마나 절박한지. 그 목소리 안에 얼마나 많은 것이 담겨 있는지. 하지만 세아는 들을 수 없었다.

아니다. 세아는 들었다. 하지만 듣지 않기로 결심했다.

세아는 이미 문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병실의 문이 세아의 뒤에서 닫혔다.

그 문이 닫혀가면서, 강리우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마치 세아가 멀어져가면서, 강리우가 작아져가는 것처럼. 강리우가 먼 과거로 밀려나가는 것처럼.

복도는 하얀 형광등 아래에서 무한히 길어 보였다.

세아는 그 길을 걸어갔다.

## 4부: 복도에서

해늘이 세아를 봤을 때, 그의 얼굴에 어떤 감정이 떠올랐는지, 세아는 보지 않았다.

세아는 그냥 앞으로 나아갔다.

엘리베이터 쪽으로.

빨간 숫자가 표시되는 엘리베이터로.

그 엘리베이터가 내려오는 동안, 세아는 자신의 손을 들어 보았다. 그 손이 무엇을 했었는지 생각해보았다. 그 손이 강리우의 손을 잡았을 때의 감각을 떠올려보았다.

그 감각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아마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아는 그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상처는 사라지지 않는다. 상처는 시간과 함께 흐려지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것이 세아가 배운 것이었다. 그것이 세아가 이 여정 속에서 배운 가장 큰 교훈이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세아는 들어갔다.

“3층.”

세아가 말했다.

아니다. 세아가 생각을 바꿨다.

“1층.”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혔다.

## 5부: 1층

그리고 1층으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을 때, 세아는 병원의 로비를 보았다. 그 로비는 넓었고, 밝았고, 많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그 사람들은 모두 다른 이유로 여기에 있었다. 누군가는 아픈 사람을 방문하러, 누군가는 의사를 만나러, 누군가는 자신의 슬픔을 들고 있었다.

세아도 그 중 한 명이었다.

병원의 밖으로.

자동 문이 세아를 위해 열렸다.

마치 이 세상이 세아를 놓아주고 있는 것처럼.

## 6부: 서울의 밤

오후 7시 52분.

세아는 병원의 밖에 섰다.

서울의 밤이 내려앉고 있었다.

그 밤은 차가웠다. 늦가을의 밤은 이미 겨울의 숨결을 품고 있었다. 세아는 자신의 팔을 감싸안았다. 그 추위가 자신을 깨어있게 해주었다. 그 추위가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었다.

병원의 창문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그 창문들 중 하나가 강리우의 병실이었다. 세아는 그것을 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 창문들은 자신을 부르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그것들이 세아에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뒤돌아봐. 다시 올라와. 이것은 끝이 아니야.’

하지만 세아는 그 목소리를 무시했다.

그리고 그 밤 속에서, 세아는 처음으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되었다.

엄마.

그리고 도현이.

그리고 해늘.

그리고 자신의 목소리.

자신의 결정.

자신의 삶.

강리우를 놓은 그 순간, 세아는 자신을 되찾았다.

그것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세아는 알았다. 자신을 되찾는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세아는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살아가는 일이었다. 그것이 진정한 살아가는 일이었다.

세아는 휴대폰을 들었다.

그 작은 화면이 밤하늘을 반사했다. 그 화면 위에 엄마의 번호가 떠올랐다.

세아의 손가락이 그 번호를 눌렀다.

**호출음.**

그 호출음이 울려 퍼졌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 호출음 속에서, 세아는 울었다.

처음으로.

정말로.

그 눈물은 강리우 때문이 아니었다. 그 눈물은 도현이 때문도, 엄마 때문도, 해늘 때문도 아니었다.

그 눈물은 세아 자신 때문이었다.

세아가 자신을 마주했을 때, 처음으로 울 수 있는 눈물이었다.

그리고 그 눈물은 따뜻했다.

## 7부: 호출음과 진실

호출음이 계속되었다.

네 번.

다섯 번.

세아는 자신의 눈물을 닦지 않았다. 그 눈물을 그대로 흘렸다. 마치 자신의 몸에서 독을 빼내는 것처럼.

엄마가 받을 때까지, 세아는 울었다.

“여보세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는 늘 그대로였다. 따뜻하고, 걱정스럽고, 무한히 사랑하는 목소리.

“엄마…”

세아가 말했다.

그 단어 하나를 말하는 데, 세아는 얼마나 많은 것을 담아야 했는가.

모든 고통을.

모든 그리움을.

모든 죄책감을.

모든 사랑을.

“네, 엄마. 난 이제… 집으로 가고 싶어.”

병원의 창문에서는 여전히 불이 켜져 있었다.

하지만 세아는 더 이상 그것을 보지 않았다.

세아는 오직 앞을 보았다.

자신의 미래를.

자신의 삶을.

자신이 선택한 길을.

휴대폰의 호출음이 가라앉았다.

그 자리에는 엄마의 목소리만 남았다.

“그래, 우리 딸. 집으로 가자. 엄마가 있는 곳으로 가자.”

서울의 밤은 계속 내려앉고 있었다.

하지만 세아의 가슴 안에는, 이미 새로운 아침이 떠오르고 있었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이것은 시작이다.**

**세아의 진정한 삶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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