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불탄 소녀 – 제138화: 웃음의 끝자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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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38화: 웃음의 끝자락

도현이의 웃음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국수 가게의 천장을 향한 그 웃음은 3초쯤 이어지다가, 마치 누군가 음성을 끄듯 멈춰버렸다. 그리고 그 침묵이 내려앉았을 때, 세아는 자신의 동생이 얼마나 피곤한지를 알 수 있었다. 피로는 얼굴에 나타나지 않았다. 도현이의 얼굴은 여전히 젊었고, 피부는 맑았고, 눈은 밝았다. 하지만 몸 전체에서 풍기는 무언가, 그것이 피로였다. 마치 누군가 손가락으로 그의 등뼈를 따라 내려가면서 하나하나 꺼버린 것처럼.

“내가 엄마한테 뭐라고 할까?”

도현이가 천천히 물었다. 휴대폰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면서.

“뭐라고 하고 싶은데?”

“누나가 잘 지내고 있다고? 누나가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고? 누나가 괜찮다고?”

세아의 목에서 뭔가 타는 느낌이 났다. 마치 누군가 자신의 목구멍 안에 성냥을 켜는 것처럼. 그것은 아프지 않았다. 단지 뜨거웠다. 그리고 그 열이 자신의 몸 전체로 퍼져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도현이.”

세아가 말했다. 목이 쉬어 있었다. 며칠 전부터. 아마도 강리우의 병실에 들어갔을 때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곳에서 자신이 뭔가 말했을 때, 그것이 자신의 목소리를 앗아갔다. “나는…”

“뭐?”

“나는 뭔가를 기다리고 있지 않아.”

세아가 이어서 말했다. 마치 자신도 처음 깨닫는 것처럼. “그냥… 멈춰 있어. 그걸 기다린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나는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고 있어. 나는 그냥… 여기 있어. 여기 있으면서 뭔가 일이 일어날 때까지 숨을 참고 있는 거야.”

포크가 테이블 위에서 소리를 냈다. 도현이가 내려놓으면서. 그 작은 금속음이 가게 전체에 울렸다. 왜냐하면 이 시간에 가게에는 거의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직원 한 명이 주방에서 나와 세아와 도현이를 봤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냥 다시 사라졌다.

“그럼 넌 뭘 원해?”

도현이가 물었다.

“모르겠어.”

세아가 대답했다. 그것은 거짓이 아니었다. 거짓도 참도 아닌, 그저 사실이었다. 세아는 자신이 뭘 원하는지 모르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자신이 원할 자격이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었다.

“너 지금 강리우한테 도움을 받고 있잖아.”

도현이가 말했다. 천천히. 마치 이것도 오래전부터 준비된 말인 것처럼. “변호사비. 병원비. 그 모든 것들.”

“응.”

“그리고 그 대가로 넌 뭘 주고 있어?”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네 시간이야. 네 감정이야. 네 앞날이야. 네가 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도현이가 계속했다. “그리고 그 사람은 그것들을 받으면서 자신이 너를 ‘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근데 누나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어. 왜?”

“내가…”

세아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다시 닫았다.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니까? 내가 그 사람한테 빚이 있으니까? 내가 그 사람을 도와야 하니까?”

도현이가 대신 말했다. “다 거짓이야. 넌 그 사람이 없어도 돼. 근데 그 사람은 넌 자신이 필요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리고 넌 그것을 믿고 있어.”

세아의 손이 떨렸다. 도현이가 예언했던 대로. 3초마다. 정확하게. 마치 기계처럼.

“내가 뭘 할 수 있어?”

도현이가 다시 물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톤이었다. 화난 것도, 절망한 것도 아닌. 단지 피곤한 것. “내가 누나한테 뭐라고 말할 수 있어? 누나는 이미 자신의 모든 것을 다른 누군가에게 줘버렸잖아. 그리고 그 누군가가 너를 돌려받길 원할 때까지 나는 그냥 기다려야 해. 이게 공정해?”

“아니.”

세아가 작게 말했다.

“그럼?”

도현이가 물었다. 하지만 세아는 대답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 질문의 대답이 세아 자신을 파괴해버릴 것이기 때문이었다.

국수 가게의 시계를 봤다. 오후 6시 15분. 이 시간에 서울의 모든 사람들은 뭔가를 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술을 마시고 있었고, 누군가는 영화를 보고 있었고, 누군가는 집에 가는 길에 있었다. 하지만 세아와 도현이는 여기 있었다. 국수 앞에서. 식어버린 국수 앞에서. 그리고 아무도 먹지 않은 채로.

“엄마가 물었어.”

도현이가 말했다. 갑자기. 마치 다른 주제로 넘어가야 한다는 신호인 것처럼. “너 제주 오냐고.”

세아의 몸이 굳어버렸다.

“뭐라고 했어?”

“아직 몰라도 된다고 했어. 근데 엄마가 웃으면서 물었어. ‘도현이 누나가 이제 음악을 할 준비가 됐냐’고.”

세아의 눈이 도현이를 바라봤다.

“엄마가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너 판결이 나면 음악을 할 거라고. 근데 내가 봤을 땐…”

도현이가 국수 그릇을 밀어냈다. “넌 음악을 할 준비가 아니라, 사라질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아. 천천히. 하나하나. 너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면서.”

세아의 손이 포크를 집으려고 했다. 하지만 멈췄다. 왜냐하면 그 손이 자신의 손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이 자신의 팔을 조종하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그 조종자는 강리우였다. 또는 자신이었다. 구분이 되지 않았다.

“내가 뭘 해줄 수 있을까?”

도현이가 다시 물었다. 이번에는 다른 목소리로. 마치 자신도 포기하고 있는 것처럼. “내가 뭘 해줄 수 있어? 누나를 살리기 위해 내가 뭘 할 수 있어?”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대답이 자신을 파괴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도현이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침묵했다.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세아는 자신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해치고 있는지를 깨달았다. 도현이를 해치고, 해늘을 해치고, 어머니를 해치고, 그리고 자신 자신을 해치고 있었다.

“판결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 내가 말하는 거 아니고, 네가 나한테 말한 거야.”

도현이가 국수 가게를 나가면서 말했다. 오후 6시 32분. “그럼 판결이 나오고 나면? 그 다음엔?”

세아는 따라갔다. 가게를 나가면서. 홍대의 거리로. 토요일 저녁의 그 거리는 이제 더 붐비고 있었다. 학생들, 직장인들, 그리고 나이를 알 수 없는 사람들. 모두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 하지만 세아와 도현이는 그 사이에서 멈춰 있었다. 마치 두 개의 돌처럼.

“너 아까 뭐라고 했어?”

도현이가 거리 위에서 물었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뒤섞여 있었다. “너 판결을 기다리지 않고 있다고.”

“응.”

“그럼 넌 뭘 기다리고 있어?”

세아는 홍대 거리를 봤다. 아래로는 강이 있었다. 한강. 그 강은 항상 거기 있었다. 낮이든 밤이든, 여름이든 겨울이든. 그것은 변하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위의 다리는 계속 움직였다. 차들이 지나가고, 사람들이 건너고,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세아가 입을 열었다. “나는 내가 사라질 준비를 하고 있어.”

도현이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강리우가 나한테 뭔가를 주고 있는 거 같아. 돈도, 변호사도. 근데 그걸 받는 대가로 나는 내 자신을 주고 있어. 천천히. 한 번에 조금씩. 그리고 어느 순간엔 내가 완전히 없어질 것 같아. 그리고 그때쯤이면 판결도 나있을 거야. 근데 판결이 뭐하든 상관없을 거야. 왜냐하면 나는 이미 없을 테니까.”

세아가 말을 마쳤다. 그리고 그 말이 세상에 내뱉어지는 순간, 세아는 자신이 뭔가를 깨닫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아니, 깨달은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말로 꺼냈을 때 비로소 그것이 현실이 되었다는 것을.

도현이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대신 세아의 팔을 집었다. 손가락으로. 매우 강하게. 마치 자신이 세아를 잡지 않으면 세아가 어딘가로 떠내려갈 것 같은 표정으로. 그리고 그 순간, 세아는 깨달았다. 도현이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그리고 자신이 그 사랑을 얼마나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었는지를.

“나 뭘 해야 해?”

도현이가 다시 물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세아가 아니라, 자신에게 물었다. 마치 자신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물어보는 것처럼. “내가 내 누나를 어떻게 구할 수 있어?”

세아는 도현이의 손을 봤다. 자신의 팔을 잡고 있는 그 손. 그것은 떨리고 있지 않았다. 도현이의 손은 강했다. 일정했다. 하지만 그것이 더 무거웠다. 왜냐하면 그것은 누군가를 붙들기 위한 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세아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자신이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나 혼자 할 수 있어.”

세아가 말했다. 거짓말을 하면서. “판결 나올 때까지. 나 혼자.”

“넌 혼자가 아니야.”

도현이가 말했다. 매우 단호하게. “절대로.”

하지만 그 말도 거짓이었다. 왜냐하면 세아는 이미 혼자였기 때문이었다. 아니, 혼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매일. 매시간. 매분.

홍대 입구역 광장은 점점 더 붐비고 있었다. 오후 7시. 토요일 저녁. 서울의 모든 젊은이들이 여기로 모이고 있었다. 하지만 세아와 도현이는 그 속에서 떨어져 있었다. 마치 다른 시간에 살고 있는 것처럼.

“내일은?”

도현이가 물었다. 홍대를 떠나가면서. “내일은 뭐할 거야?”

“모르겠어.”

세아가 대답했다. 그것은 진실이었다. 내일이 무엇인지, 내일에 자신이 뭘 할 수 있는지, 내일에 자신이 존재할 수 있는지. 세아는 모르고 있었다.

“나 다시 제주로 가야 하는데, 엄마한테 뭐라고 말할까?”

도현이가 역 입구에서 멈춰 섰다. “너 잘 지낸다고? 너 괜찮다고?”

“응.”

세아가 말했다. 자동으로. 마치 프로그래밍된 로봇처럼.

“거짓이야.”

도현이가 말했다. “너 지금 거짓이야. 넌 지금 누군가를 흉내내고 있어. 누가?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 엄마? 아니면 아빠? 아빠가 죽기 전에 뭐라고 했어? 기억해?”

세아는 기억했다. 아버지가 죽기 전에 한 말. 그것은 매우 짧았다. “잘 살아.”

“그게 전부였어?”

도현이가 물었다.

“응.”

“근데 넌 그 말을 정확히 반대로 이해한 거 같아. 넌 그걸 ‘남은 사람들을 위해 살아’라고 들었어. 근데 아빠는 ‘넌 너 자신을 위해 살아’라고 했던 거야. 그게 다야.”

세아의 눈에서 뭔가가 흘렀다. 눈물이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언제 울고 있었는지도 모르는 사이에.

“나 가야 해.”

도현이가 말했다. “역으로. 다시 제주로 가야 해. 엄마가 기다리고 있어. 그리고 넌?”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넌 어디로 갈 거야? 고시원? 병원? 아니면 강리우한테?”

도현이의 질문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그리고 세아는 답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어디로 갈 것인지를.

“강리우한테 갈 거야?”

도현이가 다시 물었다.

세아는 침묵했다.

“그래. 넌 그리로 갈 거겠지. 왜냐하면 넌 거기가 편하니까. 거기가 아프지만, 거기가 안전하니까. 거기가 잘못되었지만, 거기가 유일한 곳이니까. 그치?”

세아는 여전히 침묵했다.

“안녕.”

도현이가 말했다. 그리고 역으로 들어갔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그리고 세아는 그것을 봤다. 자신의 동생이 점점 작아지는 것을. 지하로 내려가는 것을. 그리고 결국 사라지는 것을.

세아는 한강 방향으로 걸었다. 무의식적으로. 마치 자신의 다리가 자신의 뇌를 따르지 않는 것처럼. 한강 공원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오후 7시 47분이었다. 강 위에는 불이 떨어지고 있었다. 강 건너편의 건물들의 불이. 마치 누군가 한 줄씩 꺼버리는 것처럼. 또는 켜버리는 것처럼.

세아는 벤치에 앉았다. 강을 바라봤다. 그리고 휴대폰을 들었다.

강리우에게 메시지를 썼다.

“내일 뵐 수 있을까요?”

답장이 왔다. 즉시. 마치 강리우가 그 메시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응. 아침 10시. 우리 만나던 카페.”

세아는 메시지를 봤다. 그리고 한강을 봤다. 그리고 자신의 손을 봤다.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3초마다. 정확하게. 마치 카운트다운처럼.

# 강변의 거짓말

## 1부: 자동응답

“잘 살아.”

세아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지만, 그 목소리는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들렸다.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이 그녀의 성대를 통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자동으로. 프로그래밍된 로봇처럼. 말을 하는 순간, 세아는 자신이 뭔가 거대한 거짓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마치 이미 누군가에 의해 녹음되어 재생되고 있는 음성처럼, 그 말은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잘 살아.”

또 한 번. 더 크게. 더 확신에 찼게.

도현이는 세아를 바라봤다. 그의 눈은 예리했다. 거의 상처를 낼 정도로 날카로웠다. 공항의 밝은 형광등 아래에서, 도현이의 얼굴은 더욱 창백해 보였다. 아직도 제주의 햇빛이 남아 있을 법한데, 그의 피부는 마치 오랫동안 햇빛을 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하얀색을 띠고 있었다. 아마도 엄마를 돌보느라 실내에만 있었을 것이다. 세아는 그 생각을 하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거짓이야.”

도현이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아닌, 오히려 안타까움이 담겨 있었다. 더 나쁜 감정이었다. 분노는 최소한 상대방을 여전히 인간으로 보는 것이었으니까.

“너 지금 거짓이야. 넌 지금 누군가를 흉내내고 있어.”

도현이가 한 발 가까워졌다. 세아는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누가?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 엄마? 아니면 아빠?”

세아의 목구멍이 조였다. 아버지. 그 단어만으로도 눈이 따끔거렸다.

“아빠가 죽기 전에 뭐라고 했어? 기억해?”

세아는 기억했다. 너무나 명확하게 기억했다. 그것은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했다. 아버지가 병원 침대에 누워 있던 모습. 산소 마스크가 그의 입을 덮고 있었고, 눈은 이미 반쯤 감겨 있었다. 간호사들은 모두 나가 있었고, 세아 혼자만 그의 손을 잡고 있었다. 아버지의 손은 이미 차가워지고 있었다. 마치 그의 몸 전체가 천천히 얼어가고 있는 것처럼.

그때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매우 약한 목소리로. 마치 바람이 새어 나가는 것처럼.

“잘 살아.”

그게 전부였다. 세 글자. 몇 초 만에 끝나는 문장. 그리고 그 후로 아버지는 다시 입을 열지 않았다. 12시간 후에 심전도 모니터의 직선이 나타났다.

“응.”

세아가 답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거의 속삭임처럼 작았다.

“근데 넌 그 말을 정확히 반대로 이해한 거 같아.”

도현이가 계속했다. 그의 말 하나하나가 세아의 가슴을 뚫고 지나갔다.

“넌 그걸 ‘남은 사람들을 위해 살아’라고 들었어. 엄마를 위해. 내를 위해. 누군가를 위해. 그렇지? 자신을 희생해서. 자신을 지워서. 그렇게 이해했어.”

세아는 입을 열려다 다시 다물었다. 그는 맞았다. 완벽하게 맞았다.

“근데 아빠는 ‘넌 너 자신을 위해 살아’라고 했던 거야. 그게 다야. 너 자신을 위해. 너의 행복을 위해. 너의 미래를 위해. 그게 아빠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어.”

세아의 눈이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누군가 그녀의 눈에 모래를 집어넣는 것처럼. 하지만 모래는 아니었다. 눈물이었다. 뜨거운 눈물이 그녀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언제 울고 있었는지도 모르는 사이에.

세아는 자신의 얼굴을 손으로 가렸다. 공항의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젊은 여자가 공항에서 울고 있다. 그것은 드라마 같은 장면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아는 상관하지 않았다. 더 이상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쓸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았다.

도현이는 세아에게 티슈를 건넸다. 그의 손 역시 떨리고 있었다.

## 2부: 분기점

“나 가야 해.”

도현이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더 이상 날카롭지 않았다. 오히려 피곤해 보였다.

“역으로. 다시 제주로 가야 해. 엄마가 기다리고 있어.”

세아는 고개를 들었다. 도현이의 얼굴을 정면으로 봤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동생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의 얼굴은 낯설어졌다. 마치 다른 사람의 얼굴을 보고 있는 것처럼.

“엄마는 어때?”

세아가 물었다.

“더 안 좋아졌어. 의사는 6개월이라고 했어. 아마 그보다 빨을 수도 있대. 그래서 내가 내려가 있는 거야. 너도… 너도 내려와야 해. 이제.”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제주. 그 단어는 그녀에게 무게가 있었다. 마치 거대한 돌덩어리처럼.

“그리고 넌?”

도현이가 물었다. “넌 어디로 갈 거야?”

세아는 침묵했다.

“고시원? 고시 준비를 계속할 거야? 아니면 병원? 아니면…”

도현이가 잠깐 멈췄다. 마치 그 다음 말을 하기 전에 용기를 내고 있는 것처럼.

“…강리우한테?”

그 이름이 나오자, 공항의 소음이 모두 사라진 것처럼 느껴졌다. 비행기의 엔진음도. 사람들의 발걸음도. 짐끌이는 소리도. 모두가 사라지고, 오직 도현이의 목소리만 세아의 귀에 들어왔다.

“내가 알아. 넌 지난달에 만났어. 그리고 그 이후로 계속 만나고 있어. 엄마도 알아. 나도 알아. 그리고 아마 넌… 아마 넌 자신도 알고 있을 거야. 그게 얼마나 위험한지.”

세아의 심장이 광란적으로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바라봤다. 도현이의 얼굴을. 그 얼굴에는 분노가 아닌, 절망이 담겨 있었다.

“강리우는… 그는 좋은 사람이 아니야. 넌 그걸 알아. 그가 뭘 했는지, 뭘 하고 있는지 넌 알아.”

“그게…”

세아가 입을 열었다.

“…그게 뭔데?”

그녀는 자신의 질문에 스스로 놀랐다.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세아는 강리우가 무엇을 했는지 알고 있었다. 마약. 폭력. 그리고 더 많은 것들. 하지만 그것이 중요하지 않았다. 아니, 중요했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그것이 뭔지는 자신도 모르겠지만.

“넌 정말 모르는 거야?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 거야?”

도현이가 물었다.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녀는 도현이를 바라봤다. 그리고 생각했다. 도현이는 엄마를 돌보고 있다. 매일. 24시간. 끝없이.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면서. 대학교도 자퇴했다. 꿈도 포기했다. 모든 것을 엄마를 위해 포기했다.

그리고 세아는?

세아는 자신의 인생을 위해 싸우고 있다고 생각했다. 고시 준비를 하면서. 강리우를 만나면서. 자신의 미래를 위해 싸우고 있다고.

하지만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았다.

세아는 싸우고 있지 않았다. 세아는 도망치고 있었다.

“그래. 넌 강리우한테 갈 거겠지.”

도현이가 계속했다. 마치 세아의 침묵 자체가 대답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왜냐하면 넌 거기가 편하니까. 거기가 아프지만, 거기가 안전하니까.”

“그게 무슨…”

“거기가 잘못되었지만, 거기가 유일한 곳이니까. 그치? 너는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아도 돼.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아도 돼. 그냥 흐르면 돼. 흘러가면 돼. 그게 편하지. 그게 안전하지.”

세아의 입술이 떨렸다.

“그게 아니야. 넌 모르고 있어.”

“그럼 설명해 봐. 나에게 설명해 봐. 강리우가 넌 뭔데?”

도현이가 한 발 더 가까워졌다.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포기하는 것도 거짓이고,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도 거짓일 수 있어. 진실은… 진실은 균형이야. 자신을 돌보면서 다른 사람도 돌보는 거. 그게 진짜 살아가는 거야. 그게 아빠가 말한 거야. 그리고 넌…”

도현이의 목소리가 가늘어졌다.

“…넌 그 양쪽 모두를 버렸어. 자신도 버렸고, 가족도 버렸어. 그리고 강리우 옆에 있으면서 넌 아무도 아니가 되려고 해. 그게 뭐야? 그게 진정한 자유야?”

세아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은 울뿐이었다. 이미 흘린 눈물을 계속해서 흘리는 것.

## 3부: 그리움

“안녕.”

도현이가 말했다.

“기다려. 가지 마.”

세아가 손을 뻗었다. 하지만 도현이의 손은 이미 자신의 손 바깥에 있었다.

“엄마를 돌봐 줄 거야? 내가 내려가서?”

“응. 그래. 제발.”

도현이가 말했다.

그리고 그는 돌아섰다. 역 방향으로. 에스컬레이터 쪽으로. 그의 뒷모습이 점점 작아졌다. 세아는 그것을 봤다. 자신의 동생이 점점 작아지는 것을. 지하로 내려가는 것을. 지하철 플랫폼으로 내려가는 것을. 그리고 결국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을.

세아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오랫동안. 도현이가 사라진 그곳을 바라보면서. 마치 그가 다시 나타날 것을 기대하는 것처럼. 하지만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공항의 사람들이 계속 움직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지나쳤다. 누군가는 세아의 옆을 스쳐 지나갔고, 누군가는 세아를 피해 돌아갔다. 하지만 아무도 멈추지 않았다. 아무도 세아가 누구인지, 왜 서 있는지 묻지 않았다. 세아는 공항의 수많은 사람 중 한 명이었을 뿐이었다.

세아는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현이와는 반대 방향으로. 공항의 출구 쪽으로. 지표면으로. 한강 쪽으로.

## 4부: 강변의 저녁

세아는 무의식적으로 걸었다. 마치 자신의 다리가 자신의 뇌를 따르지 않는 것처럼. 혹은 그 반대로. 자신의 뇌가 더 이상 자신의 다리를 통제하지 못하는 것처럼. 강남역에서 나가서 한강 공원 방향으로. 자신이 그곳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 없이.

한강 공원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오후 7시 47분이었다. 세아는 휴대폰을 들어 확인했다. 정확하게 7시 47분. 마치 그 시간이 중요한 의미를 가진 것처럼.

강 위에는 불이 떨어지고 있었다. 강 건너편의 건물들의 불이. 사무실의 불, 아파트의 불. 마치 누군가 한 줄씩 꺼버리는 것처럼. 또는 켜버리는 것처럼. 일정한 패턴으로. 마치 누군가가 이미 계획해 둔 것처럼.

강 자체도 반짝였다. 건물의 불이 강의 표면에 반사되었다. 마치 강이 거울인 것처럼. 세아는 그 거울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거울은 너무 흔들렸다. 바람 때문에. 계절은 이제 가을이었고, 저녁바람은 제법 차가웠다.

세아는 한 벤치에 앉았다. 강을 바라봤다. 강은 계속 흘러갔다. 멈추지 않고. 쉬지 않고. 강은 자신의 목적지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세아는 강이 부러웠다. 강은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안다. 하지만 세아는?

세아는 휴대폰을 들었다.

카톡 앱을 열었다. 대화 목록에서 강리우의 이름을 찾았다. 그의 이름 옆에는 마지막 메시지가 보였다. 3일 전에 보낸 메시지였다.

“언제 봐?”

세아는 그 메시지 아래에 새로운 메시지를 썼다. 손가락이 떨렸다. 화면에 정확하게 타이핑하기 어려웠다.

“내일 뵐 수 있을까요?”

그렇게 물었다. ‘요’를 붙여서. 자신도 모르게.

답장이 왔다. 즉시. 마치 강리우가 그 메시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핸드폰을 손에 들고 대기하고 있었던 것처럼.

“응. 아침 10시. 우리 만나던 카페.”

세아는 메시지를 읽었다. 그리고 다시 읽었다. 그리고 또 읽었다.

“아침 10시.”

세아가 중얼거렸다.

내일 아침 10시. 그 카페. 세아와 강리우가 처음 만났던 그 카페. 강남역 근처의 작고 어두운 카페. 항상 사람이 많았고, 항상 담배 냄새가 났다. 하지만 그곳에서 그들은 많은 시간을 보냈다. 강리우의 손을 잡으면서. 강리우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강리우의 거짓말을 믿으면서.

세아는 한강을 봤다. 그리고 자신의 손을 봤다.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3초마다. 정확하게. 마치 카운트다운처럼.

카운트다운이었다. 세아는 깨달았다.

자신의 손의 떨림은 카운트다운이었다. 뭔가가 시작되려고 했다. 아니,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그리고 더 이상 멈출 수 없었다.

## 5부: 결정의 무게

세아는 강을 계속 바라봤다. 건너편의 불들이 점점 더 밝아지고 있었다. 저녁이 깊어지고 있었다. 세아의 휴대폰은 손에 들려 있었다. 강리우의 메시지가 화면에 그대로 떠 있었다.

“아침 10시. 우리 만나던 카페.”

그 문장을 보면서, 세아는 자신이 그곳에 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핸드폰을 끄고. 번호를 차단하고. 그 카페로 가지 않는 것.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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