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31화: 손가락이 기억하는 것
강리우의 병원 방문은 세아가 계획한 일이 아니었다. 해늘이 제안한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그냥 일어났다. 마치 자신의 몸이 자신의 의지 없이 움직이는 것처럼.
판결이 나오기 사흘 전, 세아는 서울대병원 정신과 병동 4층의 복도에 서 있었다. 손에는 꽃이 들려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꽃을 들고 있었다. 편의점에서 3,800원에 산 국화다섯송이.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다. 단지 자신의 발이 강남역에서 내려서 병원으로 향했고, 손이 편의점 문을 열었고, 눈이 가장 저렴한 꽃을 골랐다. 의식이 따라가지 못한 채로.
병실 번호는 412였다. 간호사가 알려줬다. 간호사는 세아의 얼굴을 봤을 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마치 자신들이 이런 방문을 매일 보고 있다는 것처럼. 사람들이 자신들이 끝내고 싶은 관계를 끝내기 위해, 또는 시작하기 위해 병원에 오는 것을.
문을 열었을 때 강리우는 창밖을 보고 있었다. 서울의 늦가을. 윈도우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유령처럼 반투명했다.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침대 옆 테이블 위에서. 마치 그것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살아있는 별개의 것처럼.
“안녕.”
세아가 말했다. 목소리는 작았지만 명확했다. 법정에서 나온 후 세아의 목소리는 변했다. 더 이상 타인의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것이 되었다. 단, 그것은 여전히 희소했다. 마치 물을 아껴 쓰는 것처럼, 세아는 자신의 말을 아껴 썼다.
강리우가 돌아섰다. 창문에 비친 모습이 사라지고 현실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는 세아를 봤다. 꽃을 봤다. 그리고 세아의 손을 봤다. 여전히 떨리지 않고 있었다.
“너…”
강리우가 시작했다. 그러나 말을 이었지 못했다. 목이 메었거나, 아니면 자신이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몰랐거나. 또는 말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거나.
세아는 꽃을 화병에 꽂았다. 침대 옆 테이블에 있던 빈 화병에. 누군가는 이미 꽃을 깎아냈던 것 같았다. 꽃잎들이 흩어져 있었다. 흰색 꽃잎들. 마치 눈이 녹아내린 것처럼.
“판결 나왔어?”
강리우가 물었다. 목소리는 희박했다. 마치 매일 이렇게 말하다가 목소리를 잃어버린 것처럼.
“아니. 사흘 더 있어.”
세아가 대답했다. 그리고 의자를 당겨 앉았다. 침대에 앉지 않았다. 거리를 유지했다. 강리우와 자신 사이의 그 공간이 중요했다. 그것이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왜 왔어?”
강리우가 물었다. 그것은 비난처럼 들렸지만, 사실은 질문이었다.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를 이해하려는 시도였다.
“모르겠어.”
세아가 대답했다. 그것은 진실이었다. 자신이 왜 이 병실에 들어왔는지, 자신도 몰랐다. 해늘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도현이에게도. 엄마에게도. 자신의 변호사에게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단지 어느 날 아침 일어나서 옷을 입고 밖으로 나왔고, 발이 알아서 이곳을 찾았다.
강리우의 손이 떨렸다. 더 심하게. 마치 세아를 본 후 그것이 악화된 것처럼. 또는 이미 악화되어 있었고, 세아의 존재가 그것을 명확하게 드러낸 것처럼.
“손이 자꾸 떨려.”
강리우가 말했다. 그것은 변명이 아니었다. 단순한 설명이었다. 자신의 몸이 자신을 배신하고 있다는 사실의 설명.
“언제부터?”
세아가 물었다. 그것은 의학적 호기심이 아니었다. 그것은 다른 종류의 질문이었다. 무엇이 자신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언제부터 자신은 자신의 손을 신뢰할 수 없게 되었는가.
“베를린에서.”
강리우가 대답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세아에게 그것이 무엇인지 설명했다. 베를린에서의 그 여름. 음악 경쟁. 그리고 그 경쟁에서 진 친구. 친구가 손목을 그었던 방법.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늦었던 것. 그리고 자신이 그것을 막지 못했던 죄책감.
세아는 들었다. 강리우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것은 자신이 이미 짐작했던 것들이었지만, 입 밖으로 나온 말은 달랐다. 입 밖으로 나온 말은 더 무거웠다. 더 현실적이었다.
“그 친구가 자살했어?”
세아가 물었다. 직설적으로. 마치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을 확인하듯.
“응.”
강리우가 대답했다.
“그리고 너는 자신을 탓했어.”
세아가 말했다. 그것도 질문이 아니라 진술이었다.
“응.”
강리우가 다시 대답했다.
“그리고 나한테 그것을 투영했어.”
세아가 계속했다.
강리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손을 봤다. 떨리는 손. 그 손은 언제 멈출 것인가. 그것은 단순한 육체적 질문이 아니었다.
“너 피아노 못 쳐?”
세아가 물었다.
“응.”
강리우가 대답했다.
“손이 떨려서?”
세아가 물었다.
“그것도 있고… 손가락이 기억하지 않아.”
강리우가 말했다. 그것이 가장 진실에 가까운 말이었다. 떨림은 증상이었고, 기억의 상실은 원인이었다. 자신의 손가락들이 더 이상 그 친구의 죽음 이전의 음악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 친구가 죽은 후, 모든 음악은 오염되었다. 모든 손가락의 움직임은 배신이 되었다.
세아는 생각했다. 손가락이 기억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의 손도 뭔가를 기억하고 있었다. 법정에서 떨리지 않았던 것. 강리우의 손을 잡았던 그 순간들. 그 손이 자신의 목을 졸랐던 것. 그 손이 자신의 얼굴을 쓸어내렸던 것. 그 손이 따뜻했던 것.
“나 판결이 뭐가 될지 알아?”
세아가 물었다.
“모르지.”
강리우가 대답했다.
“너는?”
세아가 물었다.
“유죄. 아마.”
강리우가 말했다. 그것은 체념처럼 들렸지만, 사실은 현실적인 평가였다. 법정의 논리로는, 자신이 한 것들은 명백한 범죄였다. 감시. 통제. 협박. 그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르기는 어려웠다. 적어도 법이 보는 관점에서는.
“맞아. 유죄일 거야.”
세아가 말했다.
“그럼… 넌?”
강리우가 물었다. 그것은 자신의 유죄가 세아의 무죄를 의미하는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자신이 감옥에 가면, 세아는 자유로워질 것인가.
“나도 모르겠어.”
세아가 대답했다. 그것은 진실이었다. 법적으로는 자신이 피해자였다. 법정에서 그렇게 증언했다. 하지만 감정적으로는, 자신도 뭔가를 했다. 또는 하지 않았다. 도현이에게 답장을 하지 않았고, 엄마와 제대로 말하지 않았고, 해늘의 손을 잡고만 있었다.
“미안해.”
강리우가 말했다.
“뭐가?”
세아가 물었다.
“다 뭐가. 널 만난 것도. 너를 사랑한 것도. 너한테서 떨어지지 못한 것도.”
강리우가 말했다.
세아는 듣고만 있었다. 강리우의 사과를 듣고만 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 사과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것이 맞지만, 동시에 자신에게가 아니라 자신에게 하는 것이라는 것. 마치 독백처럼. 마치 자신이 그곳에 없는 것처럼.
“나 가야 해.”
세아가 일어섰다.
“잠깐.”
강리우가 말했다.
세아는 멈췄다. 하지만 돌아서지는 않았다. 강리우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
“다시 올 거야?”
강리우가 물었다.
“모르겠어.”
세아가 대답했다. 그것은 진실이었다. 자신이 이 병실에 온 이유를 모르는데, 다시 올 이유를 알 리 없었다.
“그래도… 와줘서 고마워.”
강리우가 말했다.
세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문을 열고 나갔다. 복도의 형광등 아래로. 다른 병실들의 열린 문 옆으로. 누군가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누군가의 모니터가 ‘삐삐’ 거렸다. 이곳은 사람들이 자신의 최악의 버전을 맞이하는 곳이었다.
엘리베이터에 탔을 때, 세아는 자신의 손을 봤다. 여전히 떨리지 않고 있었다. 강리우의 방을 나올 때도, 엘리베이터에 탈 때도, 1층에 내릴 때도. 자신의 손은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또는 무언가를 확실히 잃어버렸다는 확신으로.
병원 로비는 밝았다. 햇빛이 창을 통해 들어오고 있었다. 늦가을의 햇빛. 따뜻하지만 약한. 곧 사라질 것처럼. 세아는 외부로 향했다. 자동문이 열렸다. 서울의 공기가 들어왔다. 자동차의 소리. 사람들의 말소리. 삶의 소음.
휴대폰을 켰다. 도현이의 메시지가 23개 있었다. 엄마의 메시지가 12개. 해늘의 메시지가 8개. 모두 며칠 전의 것들이었다. 모두 “괜찮아?”라는 질문으로 끝났다.
세아는 답장을 하지 않았다. 대신 해늘에게 전화를 했다.
“뭐 해?”
세아가 물었다.
“타투샵이지. 뭐 또 했어?”
해늘이 대답했다.
“병원 다녀왔어.”
세아가 말했다.
침묵이 있었다. 아주 짧은 침묵이었지만, 그것은 의미가 있었다.
“그래. 그리고?”
해늘이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가봤어.”
세아가 말했다.
“넌 왜 갔어?”
해늘이 물었다.
“모르겠어. 손가락이 기억한다고 했어. 강리우 손가락이.”
세아가 말했다.
“응. 그래서?”
해늘이 물었다.
“나 손가락은 뭘 기억하는 거 같아.”
세아가 말했다.
“뭘?”
해늘이 물었다.
“아직 모르겠어.”
세아가 대답했다.
“그럼 와. 타투샵 와. 다시 해줄게.”
해늘이 말했다.
“뭘?”
세아가 물었다.
“너 손가락이 기억하는 것. 그걸 새겨줄게.”
해늘이 말했다.
세아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걸었다. 강남역 방향으로. 한강 방향으로. 그리고 서서히 북쪽으로. 합정으로. 홍대로. 해늘의 지하실로.
그 사이사이에 밤이 들어오고 있었다. 서울의 늦가을 밤. 가로등들이 하나씩 켜지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세아의 길을 밝혀주고 있는 것처럼.
세아는 걸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정확히 자신의 속도로. 자신의 호흡으로. 자신의 발걸음으로.
강리우의 병실에서 나온 이후, 처음으로 자신의 것이라고 느껴지는 속도로.
# 병원의 기억, 그리고 손가락이 말하는 것
## 1부: 병실을 나가며
‘삐삐’ 거렸다. 그 소리는 마치 시간 자체가 울리는 것처럼 들렸다. 의료기기들의 규칙적인 신음음. 이곳 병원은 그런 곳이었다—사람들이 자신의 최악의 버전을 맞이하는 곳. 죽음의 문 앞에서 몸부림치는 곳. 절망이 하얀 천장 아래 떠다니며 살아있는 모든 것에 부착되는 곳.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 때, 세아는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손가락들이 여전히 떨리지 않고 있었다. 강리우의 병실 문을 나올 때도, 복도의 형광등 아래를 걸어갈 때도, 엘리베이터의 금속 버튼에 손가락을 대었을 때도. 자신의 손은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또는—세아는 그렇게 생각했다—무언가를 확실히 잃어버렸다는 확신으로 가득 찼을지도 모른다.
엘리베이터 안의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창백했다. 며칠 동안 제대로 된 수면을 취하지 않은 사람의 얼굴. 눈 밑의 검은 반달은 밤샜던 모든 시간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눈을 외면했다. 자신의 시선을 직면하기는 너무 많은 것을 요구했다.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며 울렸다. 3층. 2층. 1층.
그 하강하는 동안, 세아는 강리우의 손가락을 다시 생각했다. 그 손가락들이 병상 위에서 펼쳐져 있던 모습을. 주사 바늘이 꽂혀있던 손등.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투명한 튜브들. 그리고 그 손가락이 한때 했던 일들. 만졌던 것들. 쓰고, 그리고, 그리고…
*멈춰.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
1층의 자동문이 열렸다. 병원 로비가 세아를 삼켰다.
## 2부: 병원 로비의 빛
병원 로비는 매우 밝았다. 햇빛이 거대한 창문들을 통해 들어오고 있었고, 그 빛은 흰 타일 바닥에 반사되어 거의 환각적인 수준으로 밝았다. 세아는 한 순간 눈을 감아야 했다. 얼마나 오래 병실 안에만 있었던 것인가?
늦가을의 햇빛이었다. 따뜻하기는 했지만, 그 따뜻함은 약했다. 마치 여름의 기억처럼, 이제 곧 사라질 것만 같은 그런 따뜻함. 세아는 그 빛 속에 서 있으면서 생각했다. 계절도 사람처럼 죽어가는 것인가? 조금씩, 천천히, 필연적으로?
주변 사람들이 그녀를 지나쳤다. 어떤 사람은 휠체어를 밀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의료용 마스크를 벗으며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병원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모두들 자신의 일상을 살고 있었다. 모두들 자신의 고통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세아를 조금 위로했다. 자신만 이렇게 무너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
아니다. 틀렸다. 자신은 무너진 것이 아니다. 자신은 여전히 서 있다. 손도 떨리지 않는다. 그것이 더 무섭다.
로비의 정보 데스크 옆으로 이동했다. 자동문이 그녀의 접근을 감지했다. ‘우웅’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서울의 공기가 들어왔다. 차가운 늦가을 공기. 자동차 배기가스의 냄새. 먼 곳에서 건설 소음. 그리고 그 위로 덮인 도시의 소음—수천 개의 사람들이 각자의 방향으로 가고 있는 소리.
세아는 휴대폰을 켰다. 그동안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응급실에서 응급 수술을 받는 사람이 있을 때 휴대폰을 들고 있을 수는 없었다.
화면이 켜졌다. 알림의 폭주.
도현이의 메시지가 23개. 엄마의 메시지가 12개. 해늘의 메시지가 8개. 그 외에도 몇몇 번호 없는 전화 기록들.
모두 며칠 전의 것들이었다. 시간이 이렇게 빠르게 지나갔나? 아니면 병실 안에서는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것인가?
메시지들을 스크롤했다. 내용은 거의 모두 같았다:
“세아, 괜찮아?”
“뭐 하고 있어? 연락해줄래?”
“병원에 있는 거 맞지? 뭐 필요한 거 있어?”
“응답해. 진짜로. 나 미칠 것 같아.”
마지막 메시지는 도현이의 것이었다. 시간 표시로는 어제 밤 11시 47분.
세아는 답장을 하지 않았다.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 ‘강리우가 깨어났다’? ‘수술은 성공했다’? ‘하지만 뭔가 끝나버렸다’?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자신이 병실에 들어갔을 때 강리우의 눈이 자신을 보지 않았다는 것을. 그 눈이 초점을 잃고 천장의 어딘가를 바라보고만 있었다는 것을. 의사가 “신경 손상이 광범위합니다”라고 말했을 때의 그 톤을.
아니다. 그것들은 말할 수 없다. 말하면 실체가 된다.
대신, 세아는 해늘에게 전화를 했다.
## 3부: 타투샵으로의 전화
‘뚜루루루’ 소리가 두 번 울렸다.
“여보세요?”
해늘의 목소리는 여전히 그 목소리였다.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해늘의 목소리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세아는 그것에 감사했다.
“뭐 해?”
세아가 물었다. 목소리가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들렸다.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이 자신의 목 안에서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타투샵이지. 뭐 또 했어?”
해늘의 목소리에는 웃음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조심스러운 웃음이었다. 마치 얇은 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병원 다녀왔어.”
그 말을 하는 순간, 세아는 자신의 다리가 약간 흔들렸다. 병원 로비의 벤치에 앉았다. 세 명의 노인이 자신 옆에서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 중 한 명은 자신의 손을 다른 사람의 팔에 올려놓고 있었다. 그 손의 떨림. 그 손이 말하는 공포.
침묵이 있었다. 휴대폰 너머에서 들리는 해늘의 숨소리. 그리고 그 뒤에 타투샵의 소음들. 바늘의 윙윙거리는 소리. 배경 음악. 다른 사람의 목소리.
아주 짧은 침묵이었지만, 그것은 의미가 있었다. 해늘이 세아를 이해했다는 의미. 세아가 무엇을 했는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했다는 의미.
“그래. 그리고?”
해늘이 물었다. 그것은 세아가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질문이었다. 판단하지 않는 질문. 단지 다음을 원하는 질문.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가봤어.”
세아가 말했다. 이것은 거짓이 아니었다. 동시에 전부는 아니었다.
“넌 왜 갔어?”
“모르겠어. 손가락이 기억한다고 했어. 강리우 손가락이.”
세아는 자신의 손을 다시 봤다. 여전히 떨리지 않고 있었다.
“응. 그래서?”
“나 손가락은 뭘 기억하는 거 같아.”
이 말을 하면서, 세아는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었다. 자신의 손가락들—특히 왼쪽 손의 약지—은 뭔가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단어로 표현할 수 없었지만, 그것은 손 안에, 근육 안에, 신경 안에 살아있었다.
“뭘?”
“아직 모르겠어.”
침묵이 다시 왔다. 이번에는 더 길었다. 세아는 휴대폰에서 해늘이 뭔가를 하고 있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아마도 바늘을 내려놓고, 고객에게 뭔가를 말하고, 다시 돌아오는 것 같았다.
“그럼 와. 타투샵 와. 다시 해줄게.”
해늘이 말했다. 그 목소리에는 확신이 있었다.
“뭘?”
“너 손가락이 기억하는 것. 그걸 새겨줄게. 피부에. 영구적으로.”
세아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해늘은 이미 알고 있었다. 세아가 올 것을 알고 있었다.
“강남역이지? 나 지금 나간다. 한 20분? 30분?”
“응. 기다릴게.”
세아가 말했다.
전화를 끊었다.
## 4부: 서울의 밤
강남역에서 나왔다. 역 바깥의 거리는 초저녁의 분주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직장을 나가는 사람들. 저녁 약속을 가는 사람들. 학원을 가는 학생들. 모두들 방향이 있었고, 모두들 목적이 있었다.
세아도 목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목적이라기보다는 끌림이었다. 손가락의 끌림. 신체의 기억이 가는 방향.
강남역에서 강북으로 향했다. 한강을 건넜다. 한강 위의 다리 위에서 세아는 잠깐 멈췄다. 한강의 물이 아래를 흘러갔다. 그 물은 어디로 가는가? 그 물은 모든 것을 씻어가는가?
아니다. 물은 단지 흐를 뿐이다. 씻고 흘러간다. 그것이 물의 일이다.
계속 걸었다. 합정으로. 홍대로. 그 지역들의 거리는 더 젊었다. 더 색깔이 많았다. 카페와 바와 작은 상점들이 줄을 지었다. 벽화들이 있었다. 사람들의 외침이 벽에 그려져 있었다. “나도 존재한다.” “나도 중요하다.” “나를 봐.”
세아는 그 외침들을 읽으며 걸었다.
그 사이사이에 밤이 들어오고 있었다. 서울의 늦가을 밤. 해가 떨어지면서 하늘이 보라색으로 변했다. 그 보라색은 사실 슬픔의 색이었다. 아니면 평온함의 색. 세아는 잘 모르겠다. 색이 감정을 가지는가?
가로등들이 하나씩, 차례대로 켜지기 시작했다. 마치 누군가가 세아의 길을 밝혀주고 있는 것처럼. 또는 그 빛 자체가 그녀를 따라가고 있는 것처럼. 세아는 그 생각을 좋아했다.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 무언가가 자신을 따라가고 있다는 생각.
서울의 야경이 켜지기 시작했다. 사무실 건물들의 불빛. 편의점들의 형광등. 식당들의 창문 너머로 보이는 따뜻한 빛들. 모두들이 여기 있다. 모두들이 살아있다. 모두들이 무언가를 하고 있다.
세아는 계속 걸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정확히 자신의 속도로. 자신의 호흡으로. 자신의 발걸음으로.
강리우의 병실에서 나온 이후, 처음으로 자신의 것이라고 느껴지는 속도로.
## 5부: 손가락의 언어
해늘의 타투샵은 홍대의 뒷골목에 있었다. 계단을 내려가는 지하실. 낮은 천장. 좁은 공간. 하지만 그 안은 마치 다른 세계였다.
벽은 포트폴리오로 가득 차 있었다. 작은 타투들. 큰 타투들. 컬러 타투들. 흑백 타투들. 모두 누군가의 피부에 새겨진 기억들이었다. 모두 누군가가 자신의 몸에 영구적으로 기록하기로 결정한 것들.
해늘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검은 장갑을 끼고 있었다.
“왔네.”
해늘이 말했다.
“응.”
세아가 대답했다.
“손 줄래.”
해늘이 말했다.
세아가 손을 내밀었다. 왼쪽 손. 약지. 그 손가락이 기억하는 것이 있는 손.
해늘이 그 손을 잡았다. 세아의 손가락 하나하나를 살펴봤다. 마치 점쟁이처럼. 또는 의사처럼. 아니면 누군가를 정말로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처럼.
“뭔가 보여?”
세아가 물었다.
“응. 여기.”
해늘이 약지를 가리켰다.
“뭐?”
“모르겠어. 하지만 뭔가 있어. 보이지 않지만, 있어.”
해늘이 말했다.
“그게 뭐라고 생각해?”
“생각 말고, 느껴봐. 뭘 느껴?”
해늘이 물었다.
세아는 자신의 손가락에 집중했다. 약지. 그 손가락은 뭘 기억하는가?
그 손가락은…
누군가의 입술을 만났던 기억. 누군가의 얼굴 선을 따라갔던 기억. 누군가의 머리카락을 쓸었던 기억. 누군가를 이렇게 만졌었다. 매우 조심스럽게. 매우 사랑스럽게. 그리고 그 손가락들이 말했었다. “내가 여기 있다. 나도 존재한다. 넌 혼자가 아니다.”
하지만 그 누군가는 이제 누군가가 아니라 강리우가 되어버렸다. 강리우는 더 이상 그렇게 만질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사랑.”
세아가 말했다.
“뭐?”
“나 손가락은 사랑을 기억하는 거 같아.”
해늘이 미소지었다. 그것은 슬픈 미소였다.
“그럼 그걸 새겨줄게. 여기.”
해늘이 약지의 옆쪽을 가리켰다. 작은 공간. 하지만 충분한 공간.
“뭘 그려?”
“너한테 맡길게. 뭘 원해?”
세아는 생각했다. 무엇이 사랑을 나타낼까. 하트? 아니다. 그건 너무 단순하다. 이름? 아니다. 그건 너무 구체적이다.
“손.”
세아가 말했다.
“손?”
“응. 손가락들이 맞닿는 손. 아주 작은. 여기.”
세아가 자신의 약지 옆을 가리켰다.
해늘이 웃었다.
“알겠어. 앉아.”
세아는 의자에 앉았다. 해늘이 도구를 준비했다. 바늘. 잉크. 모두 무서운 도구들. 하지만 세아는 두렵지 않았다. 이것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었다.
바늘이 피부에 닿았을 때, 세아는 느꼈다. 고통. 하지만 그것은 좋은 고통이었다. 자신의 몸에 뭔가를 기록하는 고통. 자신의 피부에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고통.
한 획씩. 해늘의 손이 움직였다. 두 개의 손가락들. 거의 맞닿아 있는. 그 사이에 미세한 공간. 하지만 분명한 연결.
“완성.”
해늘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