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26화: 법정 가기 전날 밤
도현이의 전화가 새벽 1시 47분에 울렸다. 세아는 고시원의 침대에서 천장을 보고 있었고, 손에는 여전히 라이터를 쥐고 있었다. 불을 붙였다 껐다를 반복하는 습관은 여전했다. 세 번. 항상 세 번. 그것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세아는 그렇게 해야 한다고 느꼈다. 세 번의 불. 세 번의 어둠. 세 번의 반복이 마치 기도처럼 느껴졌다.
“누나. 아직 안 자?”
도현이의 목소리는 가늘었다. 제주 발음이 묻어나 있었다. 그 목소리를 들으면 세아는 자신이 얼마나 오래 그 아이를 혼자 남겨뒀는지를 깨달았다. 학교는 어떻게 되고 있는지, 밥은 먹고 있는지, 엄마는 어떤지. 세아가 마지막으로 본 도현이는 14살이었다. 지금 그 아이는 17살이 되어 있었다. 그 사이의 3년을 세아는 놓쳤다. 아니, 놓친 게 아니라 외면했다.
“어떻게 생각했어? 이 시간에.”
세아가 물었다. 라이터를 껐다. 어둠이 다시 밀려왔다.
“못 잤어. 내일 누나 법정 가는 날 아니야?”
“응.”
세아가 대답했다.
“그래서 생각했어. 누나는 아직 안 자나 싶고.”
도현이가 말했다. 그것은 신기할 정도로 정확한 추측이었다. 세아는 지난 사흘 동안 거의 잠을 자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강리우의 손가락이 보였다. 떨리고 있는 손가락. 그것이 자신을 이끌어간 손가락. 그것이 자신을 누른 손가락. 그 손가락들을 봐야 한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법정에서. 증인석에서. 모두의 눈 앞에서.
“엄마는?”
세아가 물었다.
“엄마는 자. 근데 뭔가 자면서도 우는 것 같아. 베개에 눈물이 있었어.”
도현이가 말했다.
세아는 라이터를 다시 켰다. 불이 피어올랐다. 이번엔 한 번만. 불꽃이 흔들렸다. 손이 미세하게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도현.”
“응?”
“미안해.”
세아가 말했다.
침묵이 흘렀다. 제주에서 서울로 가는 전파의 거리. 그 거리만큼의 침묵. 도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숨소리가 들렸다. 아이가 아니라 남자의 숨소리. 그 아이가 얼마나 자랐는지를 깨닫게 하는 숨소리.
“누나. 내가 뭐라고 말해야 할까? ‘괜찮아’라고? ‘네가 잘못한 게 아니야’라고? 그런데 그건 거짓이잖아.”
도현이가 말했다.
“응.”
세아가 대답했다.
“그래. 그니까 그냥 들어 줄게. 누나 말을. 법정에서 뭐라고 할 거야?”
도현이가 물었다.
세아는 다시 라이터를 껐다. 불이 사라졌다. 고시원은 다시 어두워졌다. 천장의 곰팡이 자국들이 어두운 그림자로 변했다. 곰팡이는 자라고 있었다. 보이지 않을 때도 자라고 있었다. 마치 트라우마처럼.
“진실을.”
세아가 말했다.
“진실이 뭐야?”
도현이가 물었다.
세아는 천장을 계속 봤다. 불을 다시 켰다. 라이터의 불빛이 천장을 밝혔다. 곰팡이 자국이 다시 보였다. 까만 점들. 미세한 삶. 그것들이 모여서 하나의 무늬를 만들고 있었다.
“강리우가 나한테 한 모든 게 잘못된 거야. 그런데 그것이 나한테 남긴 건 실수도 아니고, 잘못도 아니고, 누군가의 탓도 아니야. 그냥 상처야. 남겨진 상처. 그리고 그 상처를 본 사람들이 있어. 나한테 그 상처를 보게 해준 사람들이. 그래서 난 그걸 말해야 돼. 그 상처가 뭐였는지. 어떻게 생겼는지. 얼마나 깊었는지.”
세아가 천천히 말했다.
라이터를 껐다. 다시 밝혔다. 다시 껐다. 세 번. 불 타는 냄새가 고시원에 가득 찼다. 어쩌면 세아의 영혼 냄새일지도 모른다. 불에 그을린 냄새.
“누나.”
도현이가 말했다.
“응.”
“나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 뭐 할 거 알아?”
도현이가 물었다.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번드. 우리 밴드. 프로듀서가 관심 있대. 대형 기획사는 아니고, 소규모 레이블인데. 그래도 관심 있대. 그리고 내가 작곡한 곡들이 좋대. 그 곡들이 뭔 줄 알아?”
도현이가 계속했다.
“모르겠어.”
세아가 대답했다.
“누나가 부른 곡들이야. 누나가 예전에 밴드에서 부르던 곡들. 내가 그걸 기억했거든. 그 멜로디들을. 그래서 악보를 만들었어. 누나 없이. 그리고 그 곡들에 가사를 붙였어. 내 가사. 그래서 이제 그 곡들은 내 곡이야. 근데 그 곡들은 여전히 누나 곡이기도 해. 알겠어? 누나는 여기 있어야 돼. 어디론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도현이의 목소리가 떨렸다.
세아는 라이터를 놓았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라이터가 침대 위에 떨어졌다. 불이 켜진 채로. 세아는 그것을 집어 들었다. 불을 껐다. 어둠. 다시 불을 켰다. 빛. 다시 껐다. 어둠. 이 반복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지 세아는 몰랐다.
“고마워. 도현.”
세아가 말했다.
“뭐가?”
“있어줘서.”
세아가 말했다.
“누나도 있어. 나한테. 그것도 잊지 마.”
도현이가 말했다.
전화가 끊겼다. 세아는 고시원에 혼자 남겨졌다. 라이터와 함께. 그리고 천장의 곰팡이와 함께.
새벽 3시가 넘었을 때, 세아는 고시원을 나갔다. 집을 나간 다음 어디로 가야 할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발이 가는 대로. 한강 방향. 합정역 너머로. 밤의 서울은 낮과는 완전히 다른 도시였다. 네온사인만 남았다. 편의점의 푸른 불빛. 호프집의 빨간 불빛. 찜질방의 주황색 불빛. 도시는 불빛으로만 존재했다.
세아는 한강변에 도착했다. 밤의 강은 검었다. 보이지 않는 깊이. 수심 모를 흐름. 저 아래 무엇이 있는지 누구도 알 수 없었다. 그것이 강을 강답게 만드는 것 같았다. 불확실성. 통제 불가능함.
“너 미쳤어?”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해늘이었다. 타투샵에서 나온 건가. 아니다. 해늘은 밤샘을 한다고 했다. 그럼 왜 여기 있는 거지. 세아는 뒤를 돌아봤다.
해늘은 담배를 물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고,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 있었다. 타투를 하느라 새벽을 샌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타투샵 닫았어?”
세아가 물었다.
“응. 마지막 손님을 마치고 밖에 나왔는데, 너한테서 신호가 왔어. 뭔가 불안해서.”
해늘이 말했다.
“신호?”
“응. 친구 감각. 너 지금 뭐 하려고 했어?”
해늘이 물었다.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한강을 다시 봤다. 검은 물. 그것은 거울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거울에는 자신이 비치지 않았다. 밤이 너무 깊어서.
“강에 들어갈 생각했어?”
해늘이 물었다.
“아니.”
세아가 대답했다. 그것은 거짓이 아니었다. 적어도 완전한 거짓은 아니었다. 세아는 강에 들어갈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계획이 아니었다. 단지 생각. 생각도 실행할 수 있다는 것을 까먹는 것처럼.
“좋아. 그럼 이제 우리 가자.”
해늘이 말했다.
“어디?”
“카페. 24시 카페. 너 한 번도 본 적 없는 곳이 있어. 거기 가.”
해늘이 손을 내밀었다.
세아는 그 손을 봤다. 해늘의 손. 타투 바늘을 들고 있던 손. 수백 명의 피부에 잉크를 새겨넣은 손. 그 손이 이제 자신을 잡으려고 했다.
세아는 그 손을 잡았다.
카페는 홍대 뒷골목에 있었다. 세아가 지난 몇 달 동안 걸었던 거리에 있었지만, 본 적 없는 곳이었다. 작은 문. 그 위에 손글씨로 쓰인 간판. “음악하는 사람들의 밤 – 하늘까 카페”.
“여기 오너가 내 아는 사람이야. 음악하는 사람이야. 밤새 여기서 곡을 만들고, 낮에 알바를 해. 형 같은 사람인데. 너 좋아할 것 같았어.”
해늘이 말했다.
문을 열었다. 따뜻한 공기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음악. 낮은 음량의 음악. 피아노 음악이었다. 그것은 세아가 들어본 음악 중 가장 아름다운 음악이었다. 그것은 슬픈 곡이었지만, 절망적이지는 않았다. 슬픔도 음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곡.
카페 안에는 여섯 명이 있었다. 카운터에 한 명. 테이블에 앉아 노트북을 두드리는 사람 한 명. 기타를 다루는 사람 한 명. 그리고 나머지는 각자의 일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잠을 자고 있었고, 누군가는 책을 읽고 있었다.
“앉아.”
해늘이 말했다.
세아는 창가 자리에 앉았다. 밖을 보면 홍대의 밤거리가 보였다. 여전히 깨어있는 도시. 여전히 움직이는 불빛들.
카운터에 있던 사람이 커피를 들고 왔다. 그것은 세아가 주문한 게 아니었다. 해늘이 뭔가를 말했나. 세아는 기억하지 못했다.
“아메리카노. 설탕 안 넣은.”
카운터 사람이 말했다.
“감사합니다.”
세아가 말했다.
“해늘이가 말해줬어. 내일 법정 가는 거. 그래서 조금 강하게 만들었어. 피아노 곡도 네가 좋아할 만한 걸로 틀어놨고.”
카운터 사람이 말했다.
세아는 커피를 마셨다. 뜨거웠다. 혀를 데었다. 고통이 선명했다. 그것은 좋은 신호였다. 자신이 아직 살아있다는 신호.
“내일이 정말 중요해?”
카운터 사람이 물었다.
“응. 매우.”
세아가 대답했다.
“그럼 오늘은 자. 여기서. 편한 자리에. 우리가 지켜볼 테니까.”
카운터 사람이 말했다.
세아는 그 말을 거부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대신 커피를 계속 마셨다. 피아노 음악이 계속 흘러나왔다. 누군가의 곡. 누군가의 슬픔. 하지만 이제 그것은 공유되었다. 음악이 되어. 모두를 위한 음악이 되어.
시간이 흘렀다. 새벽 5시쯤 되었을 때, 세아의 눈이 감겼다. 자동으로. 저항 없이. 마치 누군가가 그녀의 눈꺼풀을 내려준 것처럼.
해늘은 담요를 꺼냈다. 어디서 가져온 건지는 모르지만, 세아를 덮어주었다. 그리고 옆에 앉았다. 말하지 않으면서. 단지 함께 있으면서.
세아의 꿈은 없었다. 또는 있었지만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깊은 어둠 속에서 손을 내밀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손을 잡을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법정은 생각보다 작았다.
새벽 6시에 깼을 때, 세아는 자신이 어디 있는지 한 순간 몰랐다. 낯선 천장. 낯선 소파. 하지만 그 옆에는 해늘이 있었다. 여전히 앉아서 세아를 보고 있었다.
“잤어?”
해늘이 물었다.
“응. 고마워.”
세아가 말했다.
“법정 시간이 몇 시야?”
해늘이 물었다.
“10시.”
세아가 대답했다.
“그럼 우리 씻고 나가자. 너 옷 가져왔어?”
해늘이 물었다.
세아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옷 사줄게. 어떤 색 입고 싶어?”
해늘이 물었다.
“검은색.”
세아가 대답했다.
“검은색은 너무 무겁지 않아?”
해늘이 물었다.
“그게 나야. 무거운 거.”
세아가 말했다.
법정은 정말로 생각보다 작았다.
아침 10시. 서울 중앙지법 형사 7단 법정. 판사석. 검사석. 변호사석. 그리고 증인석. 모든 것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거리가 존경을 만든다고 누군가 말했던가. 아니다. 거리가 두려움을 만든다.
세아는 증인선서를 했다. 손을 들고. 진실만을 말하겠다고. 그것은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거짓말이 아닌 것들을 모으는 일. 그것을 말하는 일.
검사가 질문을 시작했다.
“피고인이 당신에게 어떤 행동을 했습니까?”
세아는 천천히 말했다. 강리우의 손. 그 손이 자신을 어떻게 잡았는지. 그 손이 자신을 어떻게 누른 것인지. 그 손이 떨렸던 이유. 포기. 항복. 그것이 언제부터였는지.
“그리고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검사가 물었다.
세아는 대답했다. 병원. 강리우의 침대. 그 침대 위의 손가락들. 그것들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던 이유. 자신이 그것을 본 이유.
“피해자께서 느낀 감정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검사가 물었다.
세아는 한참을 생각했다. 그 질문에 대한 정확한 대답은 무엇인가. 두려움? 분노? 슬픔? 모두 맞았다. 하지만 더 정확한 대답은.
“번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마치 불이 내 안에서 타오르는 것 같은 기분. 그런데 그 불을 끌 수가 없었어요. 누군가 계속 기름을 붓고 있었으니까요.”
세아가 말했다.
법정은 조용했다. 모두가 그 말을 들었다. 판사도. 검사도. 그리고 강리우도.
강리우는 법정의 피고인석에 앉아 있었다. 그의 손가락들은 테이블 위에서 떨리고 있었다. 세아가 그것을 보자, 강리우가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떨림을 숨기기 위해.
세아는 그것을 봤다. 그리고 알았다. 강리우도 번 것 같다는 것을. 자신이 한 일의 무게로.
변호사가 일어섰다. 피고인 측 변호사.
“피해자께서는 피고인의 행동을 어떻게 해석하시고 있습니까? 그것이 정말로 악의적인 행동이었다고 생각하시나요?”
변호사가 물었다.
세아는 대답했다.
“악의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르겠어요. 근데 상관없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결과는 같거든요. 나는 상처를 입었고, 그 상처는 여전히 있거든요.”
세아가 말했다.
“하지만 피고인도 고통받고 있지 않습니까?”
변호사가 물었다.
세아는 한 번 더 강리우를 봤다. 그의 떨리는 손. 그의 창백한 얼굴. 그의 침울한 눈.
“네. 그것 같아요.”
세아가 말했다.
“그렇다면—”
변호사가 말을 이었지만, 세아는 이미 말했다. 모든 것을. 더 이상 말할 것은 없었다.
증인석에서 내려왔을 때, 세아의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강리우의 손처럼. 하지만 이제 그것은 두려움의 떨림이 아니었다. 그것은 고백의 떨림이었다. 자신이 살아있다는 고백.
법정을 나갔을 때, 해늘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세아를 잡았다.
세아는 그 손을 잡으며 생각했다. 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자신의 불이었다. 누군가가 준 불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지키고 있는 불.
그것으로 충분했다.
현재 진행 상황 & 복선 기록
6권 진행도: 1/25 완료
세아 현재 상태:
– 법정 증언 완료 (제126화)
– 감정 상태: 고백 후의 해방감 + 여전한 트라우마 병존
– 신체 반응: 손 떨림 지속 (강리우와 동일한 증상으로 연대 느낌)
– 관계: 해늘과의 유대 강화, 도현이와의 재연결 시작
강리우 현재 상태:
– 법정 피고인석에 앉아 있음
– 손가락 떨림 심화
– 세아의 증언을 들으며 자신의 행동의 무게를 인식
다음 화 예상 방향 (제127화):
– 법정 판결 (유죄/무죄는 아직 미정)
– 세아의 감정 후유증 처리
– 도현이와의 면대면 재회 가능성
– 제주 어머니와의 통화/방문
식별된 중요 복선 (6권에서 회수할 것):
1. 도현이의 밴드 곡 (세아의 구 멜로디 기반) → 음악적 연대/유산
2. 하늘까 카페의 오너 (음악하는 사람) → 세아의 음악 재개 촉매 가능성
3. 강리우의 지속적 떨림 → 강리우도 “불에 탄” 존재임을 암시
4. “불을 옮기는” 테마 → 자신의 불을 찾는 과정 (앞으로의 주제)
# 제126화 증언실에서
법정의 형광등이 세아의 얼굴을 차갑게 비추었다. 그 빛은 마치 수술실의 조명처럼 가혹했다. 세아는 증인석에 앉으면서 자신의 손가락들이 대퇴부 위에서 작은 원을 그리고 있음을 느꼈다. 불안의 신호. 신체가 마음보다 먼저 반응하는 것.
법정의 공기는 답답했다.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았는데도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벽면의 회색 페인트, 목재 판넬, 그리고 수십 개의 눈빛들이 그녀를 향하고 있었다. 저 너머 피고인석에는 강리우가 앉아 있었다. 세아는 그를 직접 보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그의 존재감은 마치 물리적인 무게처럼 느껴졌다.
변호사가 걸어왔다. 그의 구두가 바닥을 울렸다. 딱, 딱. 규칙적인 소리였지만, 세아의 귀에는 마치 심장박동처럼 들렸다. 빨라지고 있는 심장박동.
“피고인 강리우의 행동이 악의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시나요?”
변호사의 목소리는 낮았다. 하지만 법정 안의 모든 소리를 빨아들이는 진공처럼 느껴졌다. 세아는 한 번 숨을 들이마셨다. 그 숨은 자신의 폐에 차갑게 들어찼다.
그녀는 자신이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 알았다. 법적으로 정확한 답변. 혹은 감정적인 폭발. 하지만 법정은 그런 것들을 원하지 않는 것 같았다. 법정은 무언가 다른 것을 원하고 있었다.
세아는 입을 열었다. 목이 건조했다. 물을 마신 지 얼마나 됐을까? 아침? 아니, 그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악의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자신의 것처럼 들리지 않았다. 더 약했다. 더 어렸다.
“근데 상관없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그 단어가 나올 때, 세아는 마치 높은 절벽에 서 있는 것처럼 느꼈다.
“왜냐하면 결과는 같거든요. 나는 상처를 입었고, 그 상처는 여전히 있거든요.”
법정이 조용해졌다. 그 침묵은 물리적인 것이었다. 세아는 그것을 피부에 느낄 수 있었다. 침묵이 자신을 누르고 있었다.
변호사가 다음 질문을 준비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순간, 다른 변호사—강리우의 변호사—가 일어섰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다. 마치 무언가를 놓친 사람의 표정이었다.
“하지만 피고인도 고통받고 있지 않습니까?”
그의 목소리에는 절박함이 있었다. 마치 마지막 구명정에 매달리는 사람처럼.
세아는 그때 강리우를 봤다. 처음으로. 직접.
그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자신의 손을 보는 것 같았다. 아니, 더 심했다. 강리우의 손가락들은 마치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떨렸다. 그의 손가락들이 자신의 손가락들처럼 보였다. 같은 떨림. 같은 공포.
그의 얼굴은 창백했다. 불이 그의 피부를 모두 태워버린 것처럼. 아니, 불이 아니었다. 죄책감이. 자각이. 무엇이 자신이 한 일인지를 깨닫는 것이.
그의 눈은 침울했다. 단순한 우울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영혼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눈이었다.
세아의 목에 뭔가 걸렸다. 감정인지 구토감인지 알 수 없었다.
“네. 그것 같아요.”
그녀는 말했다. 그것은 가장 진실한 대답이었다. 강리우도 고통받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세아의 상처를 치유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그것은 의미가 있었다. 그것은 세아가 혼자가 아니라는 의미였다. 강리우도 불타고 있었다.
변호사가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하지만 세아는 이미 말했다. 모든 것을. 더 이상 말할 것은 없었다. 그녀는 마치 자신의 영혼이 법정 바닥에 쏟아진 것처럼 느꼈다. 그 영혼을 다시 모으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이었다.
증인석에서 내려올 때, 세아의 다리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영화 속의 배우처럼. 제3자의 시점에서.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손이 떨리고 있음을 알았다.
강리우의 손처럼.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하지만 이제 그것은 두려움의 떨림이 아니었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세아는 그 떨림이 무엇인지 이름을 붙여보려고 생각했다. 고통? 아니. 공감? 아마도. 공유?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과의 공유인가?
그것은 고백의 떨림이었다. 자신이 살아있다는 고백.
법정을 나갈 때, 복도의 형광등이 그녀를 다시 비추었다. 이번엔 덜 가혹해 보였다. 아니면 세아가 더 강해진 것일까?
복도의 벤치에는 해늘이 앉아 있었다.
그녀를 봤을 때 세아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하지만 그것은 슬픔의 눈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무언가 무거운 것을 내려놓는 눈물이었다.
“세아.”
해늘이 일어섰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수십 개의 질문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질문들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세아를 잡았다.
그것은 포옹이 아니었다. 그것은 더 단순하고, 더 깊었다. 한 손이 세아의 팔뚝을 잡고, 다른 손이 그녀의 등을 어루만졌다. 마치 깨진 도자기를 다루듯이.
“다 끝났어.”
해늘이 속삭였다.
세아는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직도 상처는 있었다. 아직도 밤이 두려웠다. 아직도 특정한 냄새나 소리가 트리거였다.
하지만 그것도 맞는 말이었다. 뭔가는 끝났다.
그녀는 해늘의 손을 잡았다.
그 손은 따뜻했다. 살아있는 손이었다.
세아는 생각했다. 손가락들이 여전히 떨리고 있었지만, 그 떨림이 점점 규칙적이 되는 것을 느꼈다. 마치 자신의 심장박동이 되어가고 있는 것처럼.
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세아의 내면에서 계속 타오르고 있었다. 그 불은 자신을 태우고 있었지만, 이제 그것은 자신의 불이었다. 누군가가 준 불이 아니라. 강리우가 던진 불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지키고 있는 불.
그 불은 따뜻했다.
그 불은 세아를 밝혔다.
그리고 그 불은… 아직 타오르고 있었다.
—
**법정 복도 – 잠시 후**
세아와 해늘이 복도를 걸으며 내려갈 때, 세아는 자신의 신체가 보내는 신호들을 감지했다.
— 목이 마르다.
— 다리가 약하다.
— 심장이 정상적으로 뛰고 있다.
그것은 생존의 신호였다.
“엄마한테 전화할래?”
해늘이 물었다.
세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주에 있는 어머니. 그 분은 지금쯤 몇 번이나 세아를 부르는 전화를 남겼을까? 수십 개? 수백 개?
하지만 세아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 목소리가 떨릴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그럴 자격이 있었다. 떨릴 자격이.
“나중에 할게. 먼저… 쉬고 싶어.”
세아가 말했다.
해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법원 건물을 나왔다.
밖의 공기는 실내의 공기와 달랐다. 그것은 움직였다. 살아있었다. 세아는 자신이 한 번 깊게 숨을 들이마셨고, 그 숨이 자신의 폐를 채웠으며, 그 다음 자신이 그것을 내보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단순한 행위 자체가 기적처럼 느껴졌다.
“세아.”
해늘이 다시 말했다.
“너 정말 잘했어. 진심으로.”
세아는 그 말을 들었다. 그것은 공허한 격려가 아니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세아는 법정에 가서 진실을 말했다. 그리고 그것은…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강리우도… 그가 고통받고 있다는 거 봤지?”
세아가 물었다.
해늘은 조용했다.
“응.”
“그럼 이제… 뭐가 남지?”
세아가 물었다. 그것은 자신에게 묻는 질문이기도 했다.
“앞으로가 남아.”
해늘이 말했다.
세아는 그 말을 씹어먹었다. 앞으로. 그 말은 세아에게는 아직 추상적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좋았다. 추상적이라는 것은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였다.
그들은 계속 걸었다.
뒤로는 법원 건물이 있었고, 앞으로는 거리가 있었다. 그 거리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각자의 불을 들고 있는 사람들. 각자의 고통을 들고 있는 사람들.
세아는 그들을 봤다.
그리고 자신도 그들 중 하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
**다음날 아침**
세아는 해늘의 집에서 깼다.
그 집은 작았다. 원룸 같은 공간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따뜻했다. 벽에는 여행 사진들이 붙어 있었다. 해늘이 찍은 사진들. 산, 바다, 사람들.
세아는 천장을 봤다.
그것은 흰색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흰색.
그녀는 그것을 봤을 때 무언가가 자신 안에서 움직였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살아있었다. 꿈틀거리고 있었다.
“좋은 아침.”
해늘이 말했다. 그녀는 커피를 들고 있었다. 그 향기는 세아의 코에 도달했다. 진한 로스트의 향기.
“응.”
세아가 말했다.
그녀는 일어났다. 그녀의 몸은 여전히 피곤했지만, 그것도 괜찮았다. 피곤함은 생존의 증거였다.
해늘이 커피를 건넸다.
“도현이가 전화했어.”
해늘이 말했다.
세아의 손이 다시 떨렸다. 하지만 이번엔 다른 종류의 떨림이었다.
“뭐라고?”
“너 법정 잘 했다고. 그리고… 만나고 싶대.”
세아는 그 말을 들었다. 도현이. 그 이름은 아직도 세아에게는 어려운 이름이었다. 그것은 과거의 이름이었다. 불타버린 과거의 이름.
하지만 그것도 좋았다. 과거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 그것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은 여전히 거기 있었다. 그리고 아마 그것은 앞으로도 거기 있을 것이었다.
“언제?”
세아가 물었다.
“오늘 오후. 카페에서.”
“어느 카페?”
세아가 물었다.
“모르겠는데… 아, 그거. 해늘이 카페. 맞나?”
해늘이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카페를 말했다.
세아는 그것을 들었을 때 웃음이 나왔다. 해늘이 카페. 그곳은 음악하는 사람이 운영하는 카페였다. 그곳은… 세아가 다시 음악을 시작할 수도 있는 곳이었다.
아직은 아니었지만.
언젠가는.
세아는 그 커피를 마셨다.
그것은 쓰고, 따뜻하고, 살아있었다.
—
**오후 3시 – 해늘이 카페**
세아는 카페 밖에 서 있었다. 유리창을 통해 안을 볼 수 있었다. 테이블들. 사람들. 그리고…
도현이.
그는 테이블 한쪽에 앉아 있었다. 그의 손에는 기타가 있었다. 아니, 기타는 아니었다. 그것은… 세아가 옛날에 그에게 알려준 멜로디를 가진 악기였다.
세아는 잠시 움직이지 않았다.
그 멜로디. 그것은 세아가 잊어버린 멜로디였다. 아니, 잊어버리려고 했던 멜로디였다. 그것은 불에 탄 멜로디였다.
하지만 도현이가 연주하고 있는 그 멜로디는… 새로웠다. 다르게 들렸다. 더 따뜻했다.
세아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도현이가 고개를 들었다.
“세아.”
그의 목소리에는 수십 개의 단어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단지 세아를 봤다.
세아도 그를 봤다.
그들은 오랫동안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그 침묵 속에서 도현이의 멜로디가 계속 울렸다.
“그 곡… 뭐야?”
세아가 물었다.
“내가 만들었어.”
도현이가 말했다.
“너 멜로디에서 영감 받았어. 하지만 그거 아니야. 너 멜로디는 슬픈 거지. 근데 이건… 희망적이야. 적어도 난 그렇게 만들었어.”
세아는 그 말을 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의 상처가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영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나쁜 일이 아니었다.
“다시 한 번 연주해 줄래?”
세아가 물었다.
도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연주했다.
그 멜로디가 카페를 채웠다. 그것은 따뜻했다. 그것은 살아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불과 다른 누군가의 불이 만났을 때 나오는 새로운 빛이었다.
세아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 멜로디 속에서 자신이 천천히 다시 형태를 갖추고 있음을 느꼈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하지만 움직이고 있었다.
앞으로.
—
**제126화 종료**
**예고: 제127화 – 판결**
강리우의 판결이 내려진다. 그것이 유죄든 무죄든, 세아는 이미 자신의 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그것은 법원의 판결과는 다를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