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불탄 소녀 – 제124화: 목소리를 잃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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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24화: 목소리를 잃는 방법

편의점의 형광등이 다시 울렁거렸다. 세아는 해늘의 목소리를 들었지만 더 이상 대답할 말이 없었다. 전화 너머에서 해늘이 한숨을 쉬었다. 그것은 분노의 한숨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포자기의 한숨이었다. 친구를 잃어버린 사람의 한숨.

“해늘.”

세아가 말했다.

“응.”

“내가 지금 뭔가 잘못된 거야?”

세아가 물었다.

침묵이 길었다. 기계음도 들리지 않았다. 해늘이 타투를 멈췄다. 또는 전화기를 더 가까이 가져갔거나. 어쨌든 그곳에는 오직 호흡음만 남았다. 해늘의 호흡. 세아의 호흡. 둘이 전화선을 통해 나누는 유일한 신호.

“너는 뭐라고 생각해?”

해늘이 물었다.

“모르겠어.”

세아가 대답했다.

“정확하게 말해봐. 지금 너는 뭘 하고 있어?”

해늘이 물었다.

세아는 편의점을 둘러봤다. 라면 상자들. 커피 머신. 냉동실의 파란 불빛. 알바생은 계산대에서 무언가를 정리하고 있었다. 손가락을 튕겨가며 지폐를 세고 있었다. 빠르고 정확한 손가락. 세아도 한때 저렇게 했었다. 그것이 몇 달 전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편의점에 와 있어.”

세아가 말했다.

“왜?”

“모르겠어.”

“세아. 진짜로, 왜 거기 왔어?”

해늘이 물었다. 이번에는 더 부드럽게.

세아는 라면 상자를 다시 들었다. 신라면. 이 상자를 처음 정렬한 게 언제였지? 한 달 전? 그리고 그 이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상자를 집어 들었을까? 그들의 손이 어디로 갔을까?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누군가는 이 라면을 먹으며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이 라면을 먹으며 시험에 떨어진 자신을 위로하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이 라면을 먹으며 죽음을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여기서 일했어. 일했잖아. 그래서… 여기가 맞는 것 같았어. 익숙한 곳이라서.”

세아가 말했다.

“익숙한 곳이 항상 좋은 곳은 아니야, 세아.”

해늘이 말했다.

“알아.”

“그럼 나가. 지금 나가.”

해늘이 말했다.

“지금?”

“응. 지금.”

세아는 라면 상자를 내려놨다. 그것은 다시 정렬된 스택의 맨 위에 놓였다. 신라면 색깔의 붉은 종이. 그것을 보면서 세아는 처음으로 자신이 왜 여기에 왔는지를 깨달았다. 이곳은 자신이 사라진 곳이었다. 가장 작았던 곳. 가장 보이지 않았던 곳. 그곳으로 돌아가면 자신도 다시 작아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시 투명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세아는 편의점을 나갔다. 자동문이 열렸다. 합정역 너머의 밤거리가 보였다. 도시는 여전히 깨어 있었다. 누군가는 여전히 일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여전히 잠을 자지 못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여전히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왔어?”

해늘이 물었다.

“응.”

“이제 어디 가?”

해늘이 물었다.

세아는 길을 걸었다. 특별한 목적지 없이. 발이 가는 대로. 합정역의 지하철 입구를 지나쳤다. 계단을 내려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려가지 않았다. 내려가면 더 깊은 곳으로 빠져들 것 같았다. 그래서 계속 걸었다.

“타투샵에 와.”

해늘이 말했다.

“지금?”

“응. 밤샘 할 거니까.”

해늘이 말했다.

세아는 자신의 발이 어느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홍대. 해늘의 타투샵이 있는 곳. 그곳으로 가는 길이 자동으로 몸에 기억되어 있었다. 얼마나 많은 밤을 그곳으로 걸어갔는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는지. 해늘의 옆에 앉아서 타투를 받는 사람들을 보고, 타투 바늘의 소리를 듣고, 그 소리 속에서 자신의 음악을 찾으려 했는지.

타투샵의 문은 열려 있었다. 반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냄새가 먼저 들어왔다. 소독약의 냄새. 그 냄새는 병원과 비슷했지만 다르기도 했다. 병원은 죽음의 냄새였지만, 여기는 변화의 냄새였다. 무언가 새로워지는 냄새.

해늘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앞에는 젊은 남자가 누워 있었고, 그녀의 손에는 타투 기계가 들려 있었다. 기계는 여전히 울고 있었다. 웅웅거림. 고통과 변화의 음향. 세아가 들어왔을 때, 해늘은 기계를 멈췄다.

“앉아.”

해늘이 말했다.

세아는 대기 소파에 앉았다. 그곳은 타투를 받는 사람들이 기다리는 곳이었다.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자신의 변화를 기다렸는지. 그들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앉았을까? 두려움? 설렘? 아니면 단순히 자신을 다시 만들고 싶은 절망?

“너는 여기서 뭘 보고 싶어?”

타투 받는 남자가 물었다.

세아는 그 질문이 자신에게 하는 것인지 해늘에게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침묵을 참는 모습?”

해늘이 대답했다.

“맞아. 침묵을 참는 모습. 그게 아름다워. 그 침묵이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 보는 거지.”

남자가 말했다.

해늘은 다시 기계를 켰다. 웅웅거림이 다시 시작되었다. 남자의 팔 위에 새로운 선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한 획씩. 영구적인 흔적.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변화였다.

세아는 그 과정을 지켜봤다. 타투 바늘이 피부를 뚫고 들어가는 것. 그것은 상처였지만 동시에 창조였다. 파괴와 창조가 동시에 일어나는 순간.

시간이 흘렀다. 얼마나 오래? 30분? 1시간? 세아의 시간 감각은 여전히 흐릿했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해늘의 손의 움직임이었다. 정확하고 빠르고, 때로는 멈추기도 했다. 멈춤은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다음 선을 어디에 그을지 생각하는 순간.

타투가 완성되었다. 남자의 팔에는 이제 나무의 형상이 있었다. 뿌리부터 줄기까지. 그리고 꼭대기에는 불꽃이 있었다. 타는 불꽃. 그것은 나무의 일부였으면서도 동시에 나무를 파괴하려는 것이었다.

“이게 뭐예요?”

남자가 물었다.

“삶과 죽음. 함께하는 것.”

해늘이 대답했다.

남자가 일어났다. 거울을 보러 갔다. 그가 자신의 팔을 비추는 동안, 해늘은 세아를 봤다.

“좋아?”

해늘이 물었다.

“응.”

세아가 대답했다.

그것은 거짓이 아니었다. 세아는 그 타투를 진짜로 좋아했다. 그것의 불완전함을 좋아했다. 그것의 영구성을 좋아했다. 그것의 모순을 좋아했다.

남자가 떠난 후, 해늘은 기계를 청소하기 시작했다. 알코올로. 닦음. 소독. 그것은 의식과 같았다. 정화의 의식. 하나의 변화가 끝나면 다음 변화를 위해 자신을 정화하는 의식.

“너는 언제 목소리를 잃었어?”

해늘이 물었다. 청소를 하면서.

“모르겠어. 언제부터였는지.”

세아가 대답했다.

“강리우를 만났을 때?”

해늘이 물었다.

“아니. 더 전부터인 것 같아. 편의점에서 일하기 시작했을 때? 도현이를 돌보기 시작했을 때? 아니면 처음부터? 태어날 때부터 목소리가 없었던 건 아닐까?”

세아가 말했다.

해늘은 청소를 멈췄다.

“넌 지금 뭔가 매우 이상한 말을 하고 있어, 세아. 넌 목소리가 있었어. 분명히.”

해늘이 말했다.

“어디서?”

세아가 물었다.

“노래할 때. 넌 노래할 때 목소리가 있었어. 그 목소리는 전 세계를 구할 수 있을 만큼 큰 목소리였어.”

해늘이 말했다.

세아는 자신의 목을 만졌다. 그곳에는 콜라주가 있었다. 타투. 해늘이 준 타투. 불꽃. 그 불꽃 아래로 목이 있었다. 목 안에는 성대가 있었다. 그 성대가 진동했을 때, 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그 성대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법정에서 뭐라고 할 거야?”

해늘이 물었다.

“몰라.”

세아가 대답했다.

“검사가 물을 거야. 강리우가 뭘 했는지. 너한테. 정확하게. 그때 넌 말해야 돼. 넌 말할 수 있어. 넌 목소리가 있거든.”

해늘이 말했다.

세아는 침묵했다.

“세아. 너 들리니?”

해늘이 물었다.

“응.”

“그럼 말해. 뭐든 말해. 지금 말해. 강리우가 뭘 했는지. 너한테 뭘 했는지.”

해늘이 말했다.

세아는 입을 열었다. 하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목이 건조했다. 마치 모래사막처럼. 그곳에서는 아무도 울 수 없었다. 모든 것이 증발해버렸다.

“세아?”

해늘이 다시 물었다.

“나는…”

세아가 말을 시작했다.

“나는… 모르겠어… 어디서부터…”

말이 끊겼다. 마치 테이프가 끊어진 것처럼.

해늘이 세아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세아의 손을 잡았다. 세아의 손은 차가웠다. 얼음처럼. 죽은 것처럼. 하지만 그것은 생명이 없는 손이 아니었다. 그것은 모든 것을 참고 있는 손이었다. 모든 감정을, 모든 슬픔을, 모든 분노를 참고 있는 손.

“넌 지금 뭔가를 참고 있어.”

해늘이 말했다.

“응.”

세아가 대답했다.

“뭐?”

“모르겠어.”

“그럼 언제부터 참고 있었어?”

해늘이 물었다.

세아는 생각했다. 언제부터였을까? 강리우를 만났을 때부터? 아니다. 더 전부터였다. 도현이를 돌보기 시작했을 때? 아니다. 더 전부터였다.

“어머니가 물속으로 들어갔을 때부터.”

세아가 말했다.

해늘은 세아를 봤다. 해늘의 눈에는 뭔가가 맺혀 있었다. 눈물? 아니면 다른 것?

“어머니?”

해늘이 물었다.

“응. 어머니는 해녀야. 물속으로 들어가서 숨을 참아. 얼마나 오래 참을 수 있는지 나도 몰라. 하지만 어머니는 올라온다. 항상. 그래서 나는 계속 기다렸어. 어머니가 올라올 때까지. 그 기다림이 나를 만들었어.”

세아가 말했다.

“그래서?”

해늘이 물었다.

“그래서 나는 숨을 참는 법을 배웠어. 계속 참고 있어. 뭔가가 터질 때까지. 근데 뭔가가 터지지 않았어. 그냥 계속 참고만 있어.”

세아가 말했다.

해늘은 세아를 품에 안았다. 그것은 포옹이었지만 동시에 구속이기도 했다. 세아를 놓아주지 않겠다는 의지. 세아가 또 다시 사라지지 않겠다는 다짐.

“법정에 가면, 넌 숨을 쉬어야 돼. 넌 올라와야 돼. 어머니처럼. 올라와서 숨을 쉬어. 그리고 말해. 넌 말할 수 있어. 넌 목소리가 있거든.”

해늘이 세아의 귀에 속삭였다.

세아는 해늘의 가슴에 기대었다. 그곳에서 해늘의 심장 박동이 들렸다. 펌프질. 살아있는 소리. 그것은 세아가 잃어버린 것이었다. 살아있다는 증거. 펌프질하는 심장.

“넌 불이 꺼지기 전에 말해야 돼.”

해늘이 말했다.

“불이 꺼진다고?”

세아가 물었다.

“응. 모든 불은 꺼진다. 그 전에, 넌 불을 밝혀야 돼. 그 불빛으로 넌 말해야 돼.”

해늘이 말했다.

그 순간, 타투샵의 형광등이 깜빡였다. 한 번. 그리고 다시 밝혀졌다. 하지만 이전처럼 밝지는 않았다. 무언가가 바뀌고 있었다. 아주 천천히. 보이지 않을 정도로 천천히.

세아는 해늘의 팔 위의 새로운 타투를 봤다. 그 타투에는 이름이 있었다. 세아가 전에 본 타투가 아니었다. 새로운 것. 그것은 무엇인가?

“이거 뭐?”

세아가 물었다. 해늘의 팔을 가리키면서.

“넌 모르겠지.”

해늘이 웃었다.

“언제 했어?”

“너 병원에 있을 때. 혼자서.”

해늘이 말했다.

세아는 타투를 자세히 봤다. 그것은 음표였다. 음표 여러 개가 연결되어 있었다. 선율. 그것은 세아의 선율이었다. 세아의 어떤 노래의 선율이었다.

“이게 뭐야?”

세아가 다시 물었다.

“넌 잊었나?”

해늘이 물었다.

“뭘?”

“너 지난겨울에 부른 노래. 홍대 클럽에서. 그때 난 그 노래의 선율을 기억하고 싶었어. 그래서 이걸 했어. 영구적으로. 내 팔에.”

해늘이 말했다.

세아는 그 음표들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손가락으로. 음표에서 음표로. 그리고 그 음표들이 점점 음악이 되기 시작했다. 세아의 귀 속에서. 그것은 기억이었다. 세아가 잊어버린 기억. 자신의 목소리.

“법정에서, 넌 이걸 생각해. 이 음표들을. 그러면 넌 말할 수 있을 거야.”

해늘이 말했다.

세아는 손가락을 내렸다. 해늘의 팔에서.

“약속할게.”

세아가 말했다.

“응?”

해늘이 물었다.

“법정에서… 말할게. 모든 거. 정확하게.”

세아가 말했다.

해늘은 웃었다. 처음으로. 이 모든 날 동안, 이 모든 밤 동안, 처음으로 해늘은 웃었다.

“이제 집에 가.”

해늘이 말했다.

“혼자?”

세아가 물었다.

“아니. 나랑.”

해늘이 말했다.

그들은 함께 타투샵을 나갔다. 반지하 계단을 올라갔다. 홍대의 밤거리가 여전히 깨어 있었다. 하지만 이전과는 다른 각도에서 보였다. 세아는 이번에는 그곳을 보고 있었다. 사라지지 않고. 투명하지 않고. 실제로.

골목의 한 모서리에서, 세아는 자신이 처음으로 강리우를 만난 장소를 지나갔다. 그곳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같은 간판. 같은 불빛. 하지만 세아는 더 이상 그 장소에 묶여 있지 않았다.

해늘이 세아의 손을 잡았다.

“이제 끝이 아니야. 이제부터가 시작이야.”

해늘이 말했다.

“뭐가 시작이야?”

세아가 물었다.

“너의 불. 너는 이제부터 너 자신을 위해 타야 돼. 그 불로 말해야 돼. 법정에서. 그리고 그 다음에도.”

해늘이 말했다.

세아는 자신의 목을 다시 만졌다. 그곳에는 타투가 있었다. 불꽃. 그 불꽃은 아직도 타고 있었다. 세아가 느낄 수 있었다. 내부에서의 열. 아주 작은 열이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열.

그 열이 법정까지 이어질까?

세아는 그것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해늘의 손을 잡은 채로 걸어가면서, 세아는 처음으로 생각했다.

아, 나는 불타고 있었구나. 모든 이 시간. 모두.


End of Chapter 124

# 제124장 확장판: 음표들의 기억

## 1부: 타투샵의 조명 아래

타투샵의 형광등은 너무 밝았다. 세아는 그 빛이 자신의 피부를 투명하게 만드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마치 자신이 X선 사진처럼 드러나는 것처럼. 벽에 붙은 타투 도안들—용, 장미, 이름들, 기호들—이 그림자를 만들면서 바닥에서 춤을 춘다. 세아는 그 그림자들을 따라가지 않았다. 세아는 아무것도 따라가지 않고 있었다.

해늘이 다시 물었다. 그 목소리에는 인내심이 묻어났다. 아니, 더 정확히는 절망감이었다. 마지막 희망과 절망 사이의 가는 경계에 서 있는 그런 목소리였다.

“넌 잊었나?”

세아는 해늘을 바라봤다. 친구의 얼굴은 수주일간의 고통으로 깊게 팬 자국들이 있었다. 눈 주변의 검은 반달형 그림자. 입가의 경련처럼 긴장된 근육들. 해늘은 마치 누군가를 지켜내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태워버린 사람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바로 세아 자신이었다.

“뭘?”

세아가 물었다. 자신의 목소리가 얼마나 먼 곳에서 나오는 것처럼 들렸는지 깨닫고 놀랐다. 마치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를 통해 말하는 것 같았다. 자신의 목이 아닌 누군가 다른 사람의 목을 통해.

“너 지난겨울에 부른 노래. 홍대 클럽에서. 기억나?”

해늘이 말했다. 그 말을 할 때, 해늘의 눈빛이 변했다. 마치 조명이 켜지는 것처럼. 어둠 속에 있던 무언가가 갑자기 빛을 받는 것처럼.

세아의 머리 속은 공허했다. 지난겨울? 홍대 클럽? 그것들은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의 삶에서 나온 기억들처럼 느껴졌다. 세아는 자신의 기억들이 연속된 필름처럼 흐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대신 그것들은 파편들처럼 흩어져 있었다. 깨진 거울의 조각들처럼. 그리고 그 조각들을 다시 맞추려고 할 때마다, 손가락이 베었다.

“그때 난 그 노래의 선율을 기억하고 싶었어.”

해늘이 계속했다. 목소리가 점점 더 조용해졌다. 마지막 기도를 하는 사람처럼.

“그래서 이걸 했어. 영구적으로. 내 팔에.”

해늘이 소매를 걷어올렸다. 천천히. 의식적으로. 마치 성스러운 의식을 수행하는 것처럼.

그곳에는 음표들이 있었다.

세아는 숨을 멈췄다. 세상이 멈췄다. 형광등도, 타투 도안들도, 해늘의 숨소리도 모두 멈춘 것 같았다.

음표들은 검은 잉크로 해늘의 팔 위에 조심스럽게 그려져 있었다. 그것들은 마치 악보 위를 춤을 추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5선 위에 배열된 음표들. 각 음표는 작고, 정밀하고, 완벽했다. 누군가가 수시간을 들여서 만들어낸 그런 작품.

“이거… 너가?”

세아가 물었다. 자신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마치 얇은 얼음판 위를 걷고 있는 것처럼.

“응. 3주 전에. 강리우가 너를 데려간 그날 밤.”

해늘이 답했다.

세아는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갔다. 해늘의 팔을 들었다. 자신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세아는 그 떨림을 멈출 수 없었다. 신체는 지성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있었다.

음표들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손가락으로. 음표에서 음표로. 그 길을 따라가면서, 세아는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그 음표들이 떨리기 시작했다. 아니,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니, 그것들이 노래가 되기 시작했다.

세아의 귀 속에서.

그것은 음악이었다. 정확했다. 완벽했다. 그리고 그것은 기억이었다. 세아가 잊어버린 기억. 가장 깊은 곳에 묻어두고 싶었던 그 기억. 자신의 목소리.

## 2부: 선율의 기억

지난겨울이 갑자기 살아났다.

홍대의 클럽. 어둡고, 연기로 가득 차 있고, 음악이 울려 퍼지는 그곳. 세아가 무대 위에 서 있었다. 마이크를 들고. 조명이 자신을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세아는 노래하고 있었다.

그 노래는 무엇이었을까? 세아는 지금도 정확하게 기억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해늘의 팔 위의 음표들이 그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세아의 손가락이 하나의 음표에서 다음 음표로 이동했다. 마치 건반을 누르는 것처럼. 마치 악기를 연주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 악기는 해늘의 피부였다.

“아, 맞다. 이거.”

세아가 중얼거렸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해늘이 움직이지 않았다. 세아가 자신의 팔을 어떻게 다루든, 해늘은 완전히 정지해 있었다. 마치 호흡을 멈춘 것처럼. 마치 이 순간이 깨어질까봐 무섭게 조용히 있는 것처럼.

“넌 정말로 이걸 했어? 나 때문에?”

세아가 물었다. 그 질문에는 비난이 없었다. 대신 깊은 놀라움이 있었다. 그리고 무언가 더 복잡한 감정이 있었다. 죄책감? 감사함? 아니면 그것들의 혼합?

“난 그 순간이 잊혀지는 걸 견딜 수 없었어.”

해늘이 말했다.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그 안에는 폭풍이 숨어 있었다.

“너 있잖아. 넌 언제나 말해. 너는 투명하다고. 사람들이 널 볼 수 없다고. 널 들을 수 없다고. 하지만 그때, 그 밤, 넌 투명하지 않았어. 넌 가장 현실적이었어. 가장 생생했어. 너의 목소리가 그 클럽 전체를 흔들었어.”

해늘이 계속했다. 마치 오래전부터 말하고 싶었던 말들을 모두 쏟아내는 것처럼.

“그 노래가 끝났을 때, 난 생각했어. ‘이 순간이 사라지면 안 돼. 이 순간은 영구적이어야 해. 세아가 다시 투명해지는 걸 허락할 수 없어.’ 그래서 난 이걸 했어. 내 몸에 음악을 새겼어. 너의 목소리를 새겼어.”

세아는 손가락을 내렸다. 해늘의 팔에서.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은 무겁고, 밀도 있고, 살아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걸 왜 지금 보여주는 거야?”

세아가 물었다.

“법정에서, 넌 이걸 생각해. 이 음표들을. 그러면 넌 말할 수 있을 거야.”

해늘이 말했다. 목소리에는 확신이 가득했다. 절대적인 확신. 마치 미래를 이미 본 사람처럼.

세아는 음표들을 다시 봤다. 그것들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검은 잉크. 영구적인 표시. 지워질 수 없는 증거. 해늘이 세아를 얼마나 사랑하는지의 증거.

“법정에서… 말할 수 있을까?”

세아가 물었다. 그것은 해늘에게 한 질문이 아니었다. 자신에게 한 질문이었다.

## 3부: 약속

세아는 손가락을 내렸다. 해늘의 팔에서.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 접촉인 것처럼 느꼈다. 이 순간 이후로, 모든 것이 바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약속할게.”

세아가 말했다. 자신도 깜짝 놀랐다. 그 말이 자신의 입에서 나올 줄은 몰랐다. 하지만 이제 그것을 말했고, 취소할 수 없었다.

해늘이 눈을 떴다. 마치 깊은 잠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응?”

해늘이 물었다.

“법정에서… 말할게. 모든 거. 정확하게.”

세아가 말했다.

타투샵의 형광등이 세아의 얼굴을 비췄다. 세아는 자신이 투명해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직도 여기 있었다. 아직도 존재했다. 아직도 살아 있었다.

해늘이 웃었다. 처음으로. 이 모든 날 동안, 이 모든 밤 동안, 처음으로 해늘은 웃었다. 그것은 어린아이 같은 웃음이었다. 모든 것이 끝났을 때, 모든 것이 사라질 때, 처음으로 도착하는 그런 웃음.

“고마워.”

해늘이 말했다.

“뭐라고?”

세아가 물었다.

“고마워. 그 말을 해줘서. 그 약속을 해줘서. 그리고 여기서 살아남아줘서.”

해늘이 말했다.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해늘을 껴안았다. 그리고 그 껴안음 속에서, 세아는 자신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따뜻함. 질감. 무게. 현실성.

## 4부: 거리로 나가다

“이제 집에 가.”

해늘이 말했다.

“혼자?”

세아가 물었다. 그 질문에는 깊은 두려움이 담겨 있었다. 혼자인 것에 대한 두려움. 다시 투명해질 것에 대한 두려움. 다시 사라질 것에 대한 두려움.

“아니. 나랑.”

해늘이 말했다. 짧은 대답이었지만, 그것은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들은 함께 타투샵을 나갔다. 반지하 계단을 올라갔다. 한 계단, 한 계단. 세아는 각 계단을 느꼈다. 다리에 전해지는 무게. 계단의 차가운 금속 손잡이. 계단을 올라갈 때마다 밝아지는 공간.

마지막 계단을 올라왔을 때, 홍대의 밤거리가 펼쳐졌다.

홍대의 밤거리는 여전히 깨어 있었다. 펍들. 클럽들. 카페들. 각각의 창문에서 나오는 빛들. 술 취한 젊은이들의 웃음소리. 택시의 경적음. 음악이 어디선가 흘러나왔다. 어디서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음악. 마치 거리 전체가 하나의 악기인 것처럼.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세아가 그곳을 보고 있었다. 사라지지 않고. 투명하지 않고. 실제로.

세아의 눈이 특정한 건물에 고정되었다. 한 모서리의 골목. 그곳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같은 간판. 같은 불빛. 세아가 처음으로 강리우를 만난 장소였다. 그 순간은 너무나 생생했다. 마치 방금 일어난 일처럼. 강리우의 얼굴. 강리우의 목소리. 강리우의 손길. 모든 것이 세아의 피부에 아직도 남아 있었다. 마치 흉터처럼. 마치 타투처럼.

세아는 그 장소에 다시 묶여 있을 줄 알았다. 마치 유령이 사망한 장소에 묶여 있듯이.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해늘이 세아의 손을 잡았다. 따뜻한 손. 실제의 손. 현재의 손. 강리우의 손이 아닌, 해늘의 손.

“이제 끝이 아니야. 이제부터가 시작이야.”

해늘이 말했다.

“뭐가 시작이야?”

세아가 물었다. 자신도 모르게 그 질문에는 희망이 담겨 있었다. 희망.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감정.

“너의 불. 너는 이제부터 너 자신을 위해 타야 돼. 그 불로 말해야 돼. 법정에서. 그리고 그 다음에도.”

해늘이 말했다.

세아는 자신의 목을 다시 만졌다. 그곳에는 타투가 있었다. 불꽃. 그 불꽃은 아직도 타고 있었다. 세아가 느낄 수 있었다. 내부에서의 열. 아주 작은 열이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열. 마치 성냥으로 켠 촛불처럼 작지만, 꺼지지 않을 것 같은 열.

그 열이 법정까지 이어질까?

그 열이 강리우를 마주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할까?

그 열이 세아를 다시 투명하게 만들지는 않을까?

세아는 그것을 알 수 없었다. 미래는 여전히 불확실했다. 법정은 여전히 두려웠다. 강리우는 여전히 존재했다.

하지만 해늘의 손을 잡은 채로 거리를 걸어가면서, 세아는 처음으로 생각했다.

*아, 나는 불타고 있었구나. 모든 이 시간. 모두.*

처음부터, 세아는 불타고 있었다. 그것을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투명해지려고 했지만, 투명해질 수 없었다. 사라지려고 했지만, 완전히 사라질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내부에서 뭔가가 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드디어, 세아는 그 불을 볼 수 있었다.

홍대의 밤거리가 사라져갔다. 골목길들이 사라져갔다. 강리우와의 기억들도 사라져갔다. 아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뒤에 남겨져갔다. 과거로. 그리고 세아는 앞으로 나아갔다. 해늘과 함께. 손을 잡은 채로.

밤하늘은 별이 없었다. 도시의 불빛이 그것들을 삼켜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아는 자신의 내부에서 별을 느낄 수 있었다. 작은 불들. 타오르는 불들. 세아 자신의 불들.

법정은 아직 멀리 있었다.

하지만 세아는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제, 세아는 자신이 불타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불은 꺼지지 않을 것이었다.

**제124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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