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20화: 손가락이 기억하는 것들
강리우의 손이 움직였다. 깁스로 감싼 오른팔이 침대 위에서 작은 움직임을 보였다. 마치 무언가를 집으려는 시도. 하지만 손가락들은 제대로 펴지지 않았다. 의학적 이유 때문이 아니라, 아마도 다른 이유 때문일 것이다. 강리우의 손가락들은 오래전부터 떨려왔다. 베를린에서부터. 세아는 그것을 안다. 그 손가락들이 피아노 건반을 누르려 할 때, 그 손가락들이 누군가를 붙잡으려 할 때, 그 손가락들이 자신의 얼굴을 지나갈 때. 항상 떨렸다.
“왜 왔어?”
강리우가 물었다. 이번에는 목소리에 조금의 감정이 들어 있었다. 놀람. 아니면 절망. 세아는 구분하지 않으려고 했다. 구분하는 순간, 자신의 감정도 함께 동요할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변호사가 물은 것에 대답하려고.”
세아가 말했다.
“법정에서?”
강리우가 물었다.
“여기서.”
세아가 대답했다.
세아는 병실의 의자에 앉지 않았다. 대신 창문 옆에 서 있었다. 햇빛이 창문을 통해 들어왔고, 그 햇빛은 병실의 모든 것을 선명하게 만들었다. 강리우의 얼굴의 상처. 침대 밑에 굴러다니는 병원 팔찌. 그리고 강리우의 손. 그 떨리는 손.
“내가 너를 신고하기 전에 너를 만났어. 병원에서. 너는 깨어 있었어. 그리고 나는… 너를 봤어.”
세아가 말했다. 천천히. 마치 자신이 처음으로 이 말을 하고 있다는 것처럼. 왜냐하면 실제로, 그 때 이후로 이 말을 누구에게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억 안 나.”
강리우가 말했다.
“거짓말이야.”
세아가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비난이 아니었다. 단순한 진술이었다. 마치 “오늘 날씨가 맑아”라고 말하는 것처럼.
강리우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몇 초 동안 그 눈을 떼지 않았다. 마치 눈을 감은 상태로 다른 세계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그 세계에서 강리우는 아마도 자신의 거짓을 직면하고 있을 것이다.
“알아. 기억해.”
강리우가 마침내 말했다.
세아는 창밖을 봤다. 강남의 빌딩들이 햇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그 반사는 마치 신호 같았다. 저기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신호. 하지만 그 신호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왜냐하면 신호를 보내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모두 갇혀 있기 때문이다.
“그 때… 뭐라고 했어?”
세아가 물었다.
“’다시 살아줄래?’”
강리우가 말했다.
세아의 손이 창문의 틀을 움켜잡았다. 창문은 차갑고 딱딱했다. 현실적이었다. 세아는 그 차가움에 몸을 맡겼다. 왜냐하면 자신이 울기 시작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울 수 없었다. 울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야 했고, 세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뭐라고 했어?”
세아가 물었다.
강리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오른팔. 깁스로 감싼 그 팔. 그것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움직여서 가슴 위에 올려졌다. 마치 자신의 심장을 잡으려고 하는 것처럼.
“넌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어.”
강리우가 말했다.
“맞아.”
세아가 대답했다.
그리고 그것이 진실이었다. 병원에서 강리우를 만났을 때, 세아는 말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손을 봤다. 그 손가락들이 떨리는 것을 봤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말은 필요 없었다. 왜냐하면 손가락들이 모든 것을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절망. 후회. 그리고 어떤 형태의 진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명확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존재했다.
“그럼 왜 신고했어?”
강리우가 물었다.
세아는 창문을 떠나 강리우를 다시 봤다. 침대에 누워 있는 그 모습. 그것은 세아가 지난 몇 개월 동안 상상했던 것과는 달랐다. 세아가 상상했던 강리우는 더 크고, 더 강하고, 더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지금 여기에 있는 강리우는 다른 사람이었다. 또는 같은 사람의 다른 버전이었다. 상처 입은 버전. 침대에 누워 있는 버전.
“왜냐하면…”
세아가 천천히 말했다.
그리고 그 순간, 세아는 자신이 그 질문의 답을 정확히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변호사 앞에서는 말할 수 있었다. 법정에서는 설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 강리우 앞에서, 그리고 그의 떨리는 손을 보면서, 그 이유는 간단하지 않았다. 그것은 단순한 정의감이 아니었다. 또는 자기 보호가 아니었다. 또는 그런 것들이 전부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너는 내 손을 잡고 싶었어.”
세아가 말했다.
“뭐?”
강리우가 물었다.
“내 손을. 잡고 싶었어. 그게 다야.”
세아가 말했다.
“그게… 뭐가 나빠?”
강리우가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이제 정말 약했다. 거의 들릴 수 없을 정도로.
“그게 사랑이 아니라는 거야.”
세아가 대답했다.
그리고 그 순간, 세아는 자신이 마침내 무언가를 이해했다는 것을 느낀다. 강리우를 이해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이해한 것이다. 자신이 강리우의 손을 잡고 있었을 때, 그것이 사랑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것은 생존이었다. 또는 구원이었다. 또는 그 둘 다였다. 하지만 사랑은 아니었다.
병실이 다시 침묵으로 채워졌다. 하지만 이번 침묵은 이전의 침묵과 달랐다. 이전의 침묵은 무언가를 감추기 위한 침묵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침묵은 진실이 드러난 후의 침묵이었다. 그것은 더 가볍고, 그리고 동시에 더 무거웠다.
“그 변호사. 뭐라고 할 거야?”
강리우가 물었다.
“뭐?”
세아가 물었다.
“법정에서. 그 변호사한테.”
강리우가 말했다.
세아는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이 알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확히 뭐라고 말할지. 변호사가 던진 그 질문에 대해서. “당신이 신고하기 전에 강리우 피고인과 만났다”는 그 질문에 대해서.
“만났다고 할 거야. 병원에서 만났다고.”
세아가 말했다.
“그리고?”
강리우가 물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너를 이해했다고 할 거야. 너의 절망을 이해했다고. 너의 두려움을 이해했다고.”
세아가 말했다.
“그게 도움이 될까?”
강리우가 물었다.
“아니.”
세아가 대답했다.
“그럼 왜?”
강리우가 물었다.
세아는 창문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햇빛은 여전히 강했다. 그것은 무언가를 드러내고 있었다. 강남의 빌딩들. 그 사이의 한강. 그리고 그 모든 것 위에 떠 있는 구름들. 그 구름들도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햇빛과 그림자. 둘 다 현실이었다.
“왜냐하면 너도 이해받을 자격이 있으니까.”
세아가 말했다.
그 말이 나오는 순간, 세아는 자신이 방금 뭔가 중요한 것을 말했다는 것을 알았다. 변호사가 원했던 것이 아니라, 법정이 원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정말로 믿는 것을. 그것은 위험한 말이었다. 왜냐하면 그 말은 강리우를 보호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진실이었다. 강리우도 이해받을 자격이 있다는 진실. 그리고 그 진실은 그의 행동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그것은 단순히, 모든 인간이 이해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 뿐이다.
“난 너를 이해하지 못해.”
강리우가 말했다.
“그럼 배워.”
세아가 대답했다.
강리우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 눈을 다시 열지 않았다. 마치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마지막 행동인 것처럼. 눈을 감는 것.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무언가를 찾으려고 하는 것.
“내가 어떻게 배워?”
강리우가 물었다. 눈을 감은 상태로.
“시간을 가지고.”
세아가 말했다.
“시간은 나한테 없어.”
강리우가 말했다.
“있어. 법정에 있어. 3주 동안.”
세아가 말했다.
“그 다음에는?”
강리우가 물었다.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다음에 무엇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법정의 판사도, 변호사도, 그리고 강리우 자신도 모른다. 세아만이, 아마도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3주였다. 그 3주 동안 강리우가 무엇을 할 것인가. 그것은 그의 선택이었다.
세아는 병실을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강리우가 목소리를 냈다.
“세아.”
강리우가 말했다.
세아는 멈췄다. 강리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드물었다. 그는 보통 “너”, “당신” 같은 대명사를 사용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그 이름은 마치 기도처럼 들렸다.
“응?”
세아가 돌아섰다.
강리우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내가 정말 나빠?”
강리우가 물었다.
세아는 몇 초 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그것은 어려운 질문이었다. 왜냐하면 그 답은 복잡했기 때문이다. 강리우는 나빴다. 하지만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또는 나쁨과 좋음이 섞여 있었다. 그것이 인간이었다. 특히 고통받는 인간이었다.
“너는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다가 실패했어.”
세아가 말했다.
“그게 뭐가 다른데?”
강리우가 물었다.
“모든 게.”
세아가 대답했다.
그리고 그것이 진실이었다. 강리우가 단순히 나쁜 사람이었다면, 세아는 지금 이 병실에 있지 않았을 것이다. 변호사 앞에서 그를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강리우는 좋으려고 했다. 그것이 그를 더 복잡하게 만들었고, 더 위험하게 만들었고, 그리고 동시에 더 인간적으로 만들었다.
“법정에서 뭐라고 할 거야? 정확히?”
강리우가 다시 물었다.
“네가 나를 사랑했지만, 그것이 학대였다고 할 거야. 그리고 나는 너를 신고했다. 왜냐하면 나는 내 생명을 원했으니까.”
세아가 말했다.
강리우는 눈을 떴다. 그리고 세아를 봤다. 처음으로, 정말로 봤다. 마치 그제야 세아가 누구인지를 이해한 것처럼.
“그럼… 끝이야?”
강리우가 물었다.
“응.”
세아가 대답했다.
그리고 그것이 진실이었다. 그들의 관계는 끝났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법정이 있었고, 판결이 있을 것이고, 그 다음에는 또 다른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세아의 몫이 아니었다. 그것은 법정의 몫이었다. 그리고 강리우의 몫이었다. 세아는 이미 자신의 몫을 했다.
세아는 병실을 나갔다. 문을 닫으면서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왜냐하면 뒤를 돌아보면 자신이 다시 들어가고 싶어질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강리우를 다시 안고 싶어질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세아는 이미 자신을 태우고 있었고, 그 불꽃은 더 이상 타인을 위한 불꽃이 아니어야 했기 때문이다.
복도에는 해늘이 기다리고 있었다. 여전히 흰 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것은 증거물의 셔츠였다. 증인의 셔츠였다. 그리고 이제는 친구의 셔츠였다.
“괜찮아?”
해늘이 물었다.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해늘의 팔을 잡았다. 그리고 함께 엘리베이터로 걸어갔다. 그들은 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미 모든 것이 말해졌기 때문이다. 손가락으로. 침묵으로.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남겨진 것들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를 때, 세아의 손은 여전히 떨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두려움의 떨림이 아니었다. 그것은 다른 종류의 떨림이었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손을 통해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그 신호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그것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병원을 나가면서 세아는 창밖을 봤다. 서울의 봄이 있었다. 강남의 봄이었다. 그것은 아름다웠고, 그리고 동시에 냉정했다. 마치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것처럼. “계속 살아. 계속 움직여. 그것이 넌 할 수 있는 것이 전부야.”
세아는 그 말을 들었다. 그리고 받아들였다.
# 모든 것
## 1부: 병실의 진실
“모든 게.”
세아가 대답했다.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무언가가 흐르고 있었다. 마치 깊은 호수의 수면 아래 어떤 흐름이 존재하듯이. 강리우의 질문—“내가 너한테 뭘 해줬어?”—에 대한 대답이었다.
강리우는 침대 위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약물의 영향과 신체의 피로가 그를 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깨어 있었다. 파란 천장을 바라보는 눈. 병원 천장의 그 인공적인 밝기 속에서 뭔가를 찾으려는 눈.
병실의 공기는 무거웠다. 소독약의 냄새와 누군가의 고통이 섞여 있는 그런 냄새. 창밖으로는 한낮의 햇빛이 들어왔지만, 그 빛도 이 방 안에서는 뭔가 차갑게 굳어 보였다. 세아는 의자에 앉아 있었고, 강리우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변호사는 한 시간 전에 나갔다. 이제 둘은 혼자였다.
“모든 게?”
강리우가 다시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의문이 있었고, 동시에 어떤 깨달음도 있었다. 마치 자신이 이미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다시 한 번 그것을 들으려고 하는 사람의 목소리.
세아는 강리우를 바라봤다. 그가 누운 모습이. 검은 머리가 흰 베개 위에 펼쳐진 모습이. 병원 복의 소매에서 튀어나온 창백한 팔뚝. 그리고 그 팔에 박힌 주사 바늘. 이 모든 것을 본 세아의 마음은 복잡했다.
*만약 강리우가 단순히 나쁜 사람이었다면.*
세아는 내심으로 생각했다.
*만약 그가 그냥 악의만으로 가득 찬 사람이었다면, 나는 지금 이 병실에 있지 않았을 것이다. 변호사 앞에서 그를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니, 법정에서 그를 죽일 듯이 고발했을 것이다.*
그러나 강리우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것이 문제였다.
“네 질문에 대답할 거야.”
세아가 말했다. 목소리가 더 선명해졌다. 마치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 속에서 더욱 또렷하게 떠오르는 것처럼.
“강리우가… 넌 좋으려고 했어. 정말로 좋으려고 했어.”
강리우의 눈이 천장에서 벗어났다. 그는 세아를 보려고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움직임이 느렸다. 고통스러웠다.
“넌 나한테 꽃을 사줬고, 밥을 챙겨줬고, 내가 힘들 때 옆에 있어줬어. 그리고 나는… 나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했어.”
세아의 목소리는 떨렸다. 그녀가 이 말을 준비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변호사와 함께 몇 번이고 연습했다. 하지만 현재 강리우 앞에서 이 말을 하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이것은 배우가 무대에서 대사를 하는 것과는 달랐다. 이것은 실제였다.
“하지만 사랑이 모든 것을 정당화하지는 않아. 너는 내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게 했어. 너는 내 가족과 통화하지 못하게 했어. 너는 내가 가는 곳을 모두 확인했어. 너는 내 핸드폰을 봤어.”
세아는 손을 펼쳤다. 그 손은 떨리고 있었다. 아직도 떨리고 있었다.
“너는 내가 무엇을 입는지 결정했어. 어디로 가는지 결정했어. 누구를 만나는지 결정했어. 그리고 내가 그것에 반항할 때마다 넌…”
세아는 말을 멈췄다. 그 부분을 말할 필요는 없었다. 강리우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것이 그를 이 침대에 누이게 한 이유였으니까.
“그것이 사랑이 아니었어. 그것은 통제였어. 그것은 소유였어.”
강리우의 얼굴이 변했다. 얼굴의 근육이 움직였다. 마치 누군가가 내부에서 그를 흔드는 것처럼. 하지만 그는 울지 않았다. 그저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천장을 바라봤다.
“네 질문으로 돌아가자면,”
세아가 계속 말했다. 이제 그녀의 목소리는 더 강했다. 마치 자신의 말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과정 속에서 더욱 강해지는 것처럼.
“넌 나한테 모든 걸 했어. 좋은 것도, 나쁜 것도, 그 둘이 섞인 것도. 하지만 그중에 뭐가 가장 중요한지 알아? 넌 나한테 선택을 빼앗았어. 그것이 가장 큰 죄야.”
병실이 더 조용해졌다. 아까보다도 더. 창밖의 서울 소리가 들렸다. 자동차 소음, 사람들의 목소리, 그 도시의 무한한 움직임. 하지만 이 병실 안에서는 그 모든 것이 멀게 느껴졌다.
## 2부: 법정에서의 진실
“법정에서 뭐라고 할 거야?”
강리우가 다시 물었다. 이번에는 목소리가 더 낮았다. 마치 자신이 묻고 있는 것의 무게를 이해한 사람의 목소리.
“정확히?”
세아는 한 숨을 쉬었다. 공기가 폐에 들어왔다. 병원의 소독된 공기였다. 그 공기는 차갑고, 무균적이고, 어떤 따뜻함도 없었다.
“나는 말할 거야… 넌 나를 사랑했다고. 그것은 사실이야. 하지만 그 사랑은 학대였어. 그리고 나는 너를 신고했어. 왜냐하면 나는 내 생명을 원했으니까.”
세아가 말했다. 이 말은 변호사와 연습한 말이 아니었다. 아니, 연습한 말이지만 지금 이 순간에 더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강리우의 눈이 펼쳐졌다. 마치 누군가가 내부에서 그의 눈을 열어주는 것처럼. 그리고 그는 세아를 봤다. 처음으로. 정말로. 마치 그제야 세아가 누구인지를 이해한 것처럼.
세아는 그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거기서 뭔가를 봤다. 후회. 그리고 동시에 어떤 깨달음. 강리우가 이 모든 것을 이해한 순간. 자신이 뭘 잃었는지를 이해한 순간.
“그럼… 끝이야?”
강리우가 물었다. 이 질문에는 여러 의미가 있었다.
*우리가 끝이야? 우리의 관계가 끝이야? 나의 모든 것이 끝이야?*
세아는 한 박자의 침묵을 가졌다.
“응.”
그녀가 대답했다. 단호하게. 그것은 하나의 문장이었지만, 한 인간의 전체 삶의 방향을 바꾸는 문장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진실이었다.
그들의 관계는 정말로 끝났다. 3년간 계속되었던 그 관계. 처음에는 아름다웠던 그 관계. 그리고 나중에는 질식하는 것 같았던 그 관계. 그것이 끝났다.
하지만 이것이 *모든 것의* 끝은 아니었다.
세아의 마음 속에서 이 생각이 떠올랐다.
*법정이 있다. 판결이 있을 것이다. 그 다음에는 또 다른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강리우의 형기. 나의 회복. 이 일이 남길 흉터. 이 일이 남길 기억. 이 일이 나한테 가르쳐줄 것들.*
*하지만 그것들은 내 몫이 아니다. 아니, 일부는 내 몫이지. 하지만 법정의 몫도 있다. 강리우의 몫도 있다.*
*나는 이미 내 몫을 했다.*
세아는 일어섰다. 의자에서. 그 움직임은 느렸지만 확정적이었다. 마치 누군가가 마지막 한 번의 노력을 다해 일어서는 것처럼.
## 3부: 병실을 떠나며
세아는 병실의 문 앞에 섰다. 그 문은 흰색이었다. 병원의 모든 문이 그렇듯이. 그녀의 손이 손잡이를 잡았다. 손잡이는 차갑고 금속적이었다.
*뒤를 돌아보지 말아야 한다.*
세아는 자신에게 말했다.
*뒤를 돌아보면 자신이 다시 들어가고 싶어질 것이다. 강리우를 다시 안고 싶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위험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든 것을 무의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세아는 문을 열었다. 그리고 나갔다.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는 자신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얼마나 약한지를. 그리고 얼마나 강한지도.
복도는 길었다. 병원의 복도는 항상 길었다. 마치 누군가가 회복으로 향하는 길을 의도적으로 길게 만든 것처럼. 그 복도 끝에서 해늘이 기다리고 있었다.
여전히 흰 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것은 증거물의 셔츠였다. 강리우의 폭력의 증거가 묻어 있던 셔츠. 혈액의 흔적. 투쟁의 흔적. 그 셔츠가 법정에서 증거로 제출될 것이었다.
그것은 증인의 셔츠였다. 해늘은 그 날 밤 그 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밤 세아가 무슨 일을 당했는지를 목격했다.
그리고 이제는 친구의 셔츠였다. 친구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입었던 셔츠. 친구가 자신의 손을 잡으려고 했을 때 입었던 셔츠.
“괜찮아?”
해늘이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하지만 그 안에는 강함도 있었다. 마치 철을 벨벳으로 감싼 것처럼.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대신 해늘의 팔을 잡았다. 그리고 그 팔을 통해 자신의 모든 감정을 전달했다.
그들은 함께 복도를 걸었다. 엘리베이터로 향하면서. 그들은 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미 모든 것이 말해졌기 때문이었다.
*손가락으로. 그 손가락이 다른 손가락을 잡는 그 감각으로.*
*침묵으로. 그 침묵이 가지고 있는 무게로.*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남겨진 것들로. 말해지지 않은 말들로. 느껴지지만 표현되지 않은 감정들로.*
엘리베이터 앞에 섰을 때, 세아의 손은 여전히 떨렸다.
그녀는 그것을 느꼈다. 자신의 손가락이 떨리는 것을. 신경이 아직도 자신의 신체를 완전히 통제하지 못하는 것. 아직도 그 밤의 충격이 신체 깊숙이 박혀 있는 것.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종류의 떨림이었다.
*이것은 두려움의 떨림이 아니다.*
세아는 깨달았다.
*이것은… 다른 종류의 떨림이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손을 통해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처럼. 그것이 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것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것은 생명의 신호다. 아직도 살아 있다는 신호. 아직도 느끼고 있다는 신호. 아직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신호.*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를 때, 해늘이 세아의 손을 더 꽉 잡았다.
“나가자,”
해늘이 말했다.
“응.”
세아가 대답했다.
## 4부: 봄의 서울
병원을 나갈 때, 세아는 창밖을 봤다.
서울의 봄이 있었다.
강남의 봄이었다. 건설 중인 빌딩들. 고급 카페의 간판. 명품 브랜드의 윈도우. 그리고 그 모든 것 위에 떨어지는 벚꽃. 아직도 몇 송이가 공중에 떠 있었다. 4월의 중순이었다. 봄이 가고 있었다.
그 봄은 아름다웠다. 세아는 그것을 인정했다.
하지만 동시에 냉정했다.
마치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것처럼.
“계속 살아. 계속 움직여. 멈추지 말아. 왜냐하면 멈추면 죽기 때문이다. 그리고 넌 죽지 않았으니까. 넌 살아 있으니까. 그것이 넌 할 수 있는 것이 전부야.”
세아는 그 말을 들었다.
그리고 받아들였다.
해늘과 함께 거리로 나갔을 때, 햇빛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었다. 그 햇빛은 따뜻했다. 겨울의 햇빛과는 다른 따뜻함. 봄의 햇빛. 새로운 시작을 약속하는 햇빛.
세아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 따뜻함을 느꼈다.
*강리우는 감옥에 갈 것이다.*
*그것이 정의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이 필요한 일인 것은 안다.*
*그리고 나는 살아야 한다.*
*이것이 정의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이 필요한 일인 것은 안다.*
*계속 살아. 계속 움직여. 계속 숨을 쉬어. 계속 느껴. 계속 생각해. 계속 성장해.*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이고, 동시에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세아는 눈을 떴다. 그리고 해늘을 봤다.
해늘이 웃고 있었다. 약한 미소. 하지만 진실한 미소.
“진짜 괜찮아?”
해늘이 다시 물었다.
세아는 이번에 대답했다.
“아직은 아니야. 하지만 괜찮아질 거야. 시간이 지나면.”
“응. 시간이 필요해.”
해늘이 말했다.
“그리고 나도 옆에 있을 거야.”
“알아.”
세아가 대답했다.
그들은 함께 거리를 걸었다. 봄의 서울에서. 아직도 떨어지고 있는 벚꽃 아래에서. 그리고 세아는 생각했다.
*강리우는 남을 것이다. 내 기억 속에. 내 몸 속에. 내 꿈 속에. 하지만 그는 더 이상 나를 통제할 수 없다. 그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모든 것이 변한 증거다.*
*그것이 내가 이겼다는 증거다.*
거리의 사람들이 세아를 지나쳤다. 그들은 그녀를 모르고 있었다. 그녀가 누구인지, 그녀가 뭘 겪었는지를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좋았다.
세아는 거리의 일부가 될 수 있었다. 단순한 인간.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니라. 더 이상 강리우의 여자가 아니라. 단순한 세아. 살아 있는 세아.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
**에필로그: 법정**
3개월 후, 서울 중앙지법.
세아는 증인석에 앉아 있었다. 검사가 질문했다. 그녀는 대답했다. 그녀의 목소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