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2화: 박인철의 말
박인철의 문자는 오후 두 시 십칠 분에 도착했다.
알바가 끝나고 세아가 앞치마를 벗는 순간이었다. 편의점 창고 겸 탈의실 — 정확히는 박스가 쌓인 좁은 공간에 옷걸이 하나가 걸려 있는 곳 — 에서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세아는 앞치마를 개면서 화면을 봤다.
“나세아 씨, 오늘 오후 네 시쯤 잠깐 가능하세요? 홍대 쪽으로 제가 갈게요. 카페 어디든.”
세아는 문자를 읽고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앞치마를 접어 선반 위에 올려뒀다. 박스 냄새가 났다. 포장재와 스티로폼과 오래된 종이 냄새. 세아는 그 냄새 안에서 잠깐 서 있었다.
오후 네 시. 두 시간.
두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것들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고시원에 돌아가서 잘 수 있었다. 어젯밤 하늘의 접이식 침대에서 제대로 못 잔 탓에 눈 뒤가 뻐근했다. 아니면 합정역 근처 도서관에 가서 앉아 있을 수 있었다. 도서관은 덥고 조용했고, 그 조합이 세아를 가끔 울고 싶게 만들었다. 따뜻한 공간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가끔은 공격적으로 느껴졌다.
세아는 “네, 괜찮아요”라고 답장을 보냈다.
장소를 제안하지 않았다. 박인철이 장소를 정할 것이었다. 업계에서 장소를 먼저 제안하는 사람이 약간 더 많은 것을 원하는 사람이었다 — 세아는 그것을 배운 적이 없었지만 어느 시점부터 알고 있었다. 경험으로 알게 된 것들은 출처가 없어서 어디서 배웠냐고 물으면 대답할 수 없었다.
박인철이 빠르게 답장을 보냈다. 홍대 입구역 4번 출구 근처 카페 이름과 주소. 세아는 지도를 열어 위치를 확인했다. 아는 곳이었다.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은 없었지만, 그 골목을 지나다니면서 창문으로 내부를 본 적이 있었다. 목재와 간접조명으로 이루어진 인테리어. 아이스크림 한 개 값으로 커피를 파는 곳.
세아는 핸드폰을 넣고 창고에서 나왔다.
두 시간을 세아는 한강에서 보냈다.
합정역에서 걸어가면 한강 공원까지 십오 분이었다. 세아는 그 길을 자주 걸었다 — 딱히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고시원과 편의점 사이에 있는 것들 중에서 공짜로 갈 수 있는 가장 넓은 장소가 한강이었기 때문에. 넓은 곳에 가면 생각이 퍼졌다. 좁은 공간에서는 생각이 쌓였다.
겨울 한강은 사람이 많지 않았다.
자전거 도로에 간헐적으로 라이더들이 지나갔다. 강바람이 옷 속으로 들어왔다. 세아는 얇은 패딩 지퍼를 올렸다. 패딩 안쪽 솜이 한 군데 빠져나와 있었다 — 왼쪽 어깨 부분. 세탁기에 너무 많이 돌린 탓이었다. 세아는 그것을 수선할 생각을 두 달째 하고 있었다.
강물이 회색이었다. 겨울 강물은 항상 회색이었다 — 하늘색을 반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색을 흡수해서 더 어두워지는 것 같았다. 세아는 난간에 기댔다. 강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눈이 시렸다.
도현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재생됐다.
학원 안 다녀도 될 것 같아서.
세아는 난간을 두 손으로 잡았다. 쇠가 차가웠다. 그 차가움이 손바닥을 타고 팔목까지 올라왔다. 세아는 그것을 느꼈다 — 온도가 명확할 때 생각이 잠깐 멈추는 것을. 어머니가 해녀였을 때, 세아는 어머니가 물에서 올라오는 것을 기다리면서 파도 소리를 들었다. 파도는 일정했다. 일정한 것은 기다리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도현은 학원비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것이 학원비 때문이라는 뜻이었다.
세아는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알겠어”라고 말했다.
그것이 세아가 가장 자주 쓰는 거짓말의 형태였다 — 거짓 정보가 아니라 거짓 수용. 모르는 척이 아니라 괜찮은 척. 세아는 자신이 그것을 할 때마다 조금씩 공기가 빠져나가는 것 같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디서 빠져나가는지는 몰랐다. 어깨 솜처럼 조금씩, 어느 날 보면 없어진 것처럼.
강물이 흘렀다. 세아는 그것을 봤다.
머릿속에서 멜로디가 시작됐다.
처음에는 단 두 개의 음이었다. 낮은 미에서 파로. 그다음 파가 반음 내려갔다. 그것이 반복됐다 — 미, 파, 파플랫. 세아는 그 세 음을 머릿속에서 여러 번 굴렸다. 강물 위에 놓아두는 것처럼. 리듬이 생겼다. 삼박자가 아니라 사박자였다. 걷는 속도. 아니, 기다리는 속도. 숨을 참는 속도.
세아는 핸드폰을 꺼내 음성 메모를 켰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한강 난간 앞에서, 강바람 속에서, 세 음을 흥얼거렸다.
소리가 작았다. 바람 소리에 묻힐 정도로. 그래도 충분했다. 음성 메모가 그것을 담았다.
세아는 녹음을 멈추고 파일 이름을 저장했다. “231118_한강”. 날짜와 장소. 세아의 음성 메모에는 항상 날짜와 장소만 있었다. 제목이 없었다. 제목을 붙이면 그것이 무언가가 됐고, 무언가가 되면 책임이 생겼다. 세아는 아직 그 책임을 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것이 서랍에 들어가는 방식이었다.
홍대 입구역 4번 출구에서 나오면 좁은 골목이 시작됐다.
세아는 세 시 오십 분에 도착했다. 박인철이 말한 카페는 골목 안쪽이었다. 유리창에 영어로 카페 이름이 쓰여 있었고, 안쪽에서 노란 불빛이 새어나왔다. 세아는 문을 밀고 들어갔다.
커피 냄새가 먼저 왔다. 그다음 나무 냄새. 그다음 뭔가 달콤한 것 — 시나몬인지 바닐라인지 정확히 분간이 안 됐다. 세아는 그것을 기억해뒀다. 나중에 필요할 수도 있었다.
박인철은 이미 와 있었다. 창가 자리에. 아메리카노 한 잔이 앞에 있었고, 맞은편 자리는 비어 있었다. 세아를 보고 손을 들었다.
세아는 카운터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박인철이 자기가 살겠다고 했다. 세아는 “괜찮아요”라고 말하고 카드를 꺼냈다. 잔액이 얼마인지 알고 있었다 — 오늘 알바비가 들어오기 전 기준으로 이만 삼천 원. 아메리카노 한 잔이 사천오백 원이었다. 세아는 계산했다. 남은 돈으로 저녁 편의점 도시락 하나.
커피를 들고 창가 자리로 갔다.
박인철은 오십 대 초반이었다. 얼굴이 피곤해 보였다 — 항상 그런 것인지, 오늘만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회색 니트에 검정 코트. JYA 명함을 갖고 있었지만 회사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어떤 회사 사람처럼도 보이지 않았다. 그 중간 어딘가 — 음악을 진짜로 좋아했는데 어느 시점부터 그것을 잊어버린 사람의 얼굴.
세아는 그런 얼굴을 종종 봤다. 인디 씬에 그런 얼굴이 많았다.
“와줬네요. 고마워요.”
“네.”
“커피 따뜻한 거 시켰네요. 추웠어요?”
“좀요.”
박인철이 잠깐 세아를 봤다. 세아의 얇은 패딩을.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제 유재원 이사한테 얘기 들었죠.”
“네.”
“어떻게 생각했어요.”
세아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뜨거웠다. 혀끝이 약간 탔다.
“조건이 많더라고요.”
박인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조건들이 다 저한테 불리한 방향으로 설계돼 있고요.”
“그건 솔직한 평가네요.”
“그러니까 추가로 하실 말씀이 있으신 거 아닌가요.”
박인철이 잠깐 웃었다. 어딘지 피곤한 웃음이었다.
“맞아요. 유재원 이사가 준 서류는 표준 계약이에요. JYA에서 신인한테 항상 먼저 내미는 것. 거기서 협상이 시작되는 거거든요.”
“협상.”
“나세아 씨가 거절하면 끝이에요. 근데 협상 의지를 보이면 JYA 쪽에서도 조건을 다시 보거든요.”
세아는 창문 쪽을 봤다. 골목에 사람들이 지나갔다. 대학생 두 명이 웃으면서 걷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들리지 않았다.
“저한테 협상하라는 말씀이세요.”
“그 전에 드릴 말씀이 있어요.”
박인철이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테이블 위에 양손을 올렸다. 세아는 그 손을 봤다. 마디가 굵고 손등에 잔 상처가 있었다. 악기를 오래 다룬 손이었다.
“나세아 씨가 쓴 곡들 있잖아요.”
“네.”
“〈서쪽 창문〉, 〈다음 계절〉, 〈모르는 척〉.”
세아는 조용히 있었다.
세 곡의 이름이 한꺼번에 입 밖으로 나왔다. 다른 사람의 입에서. 다른 사람이 알고 있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 그 곡들은 세아의 이름이 붙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박소진의 이름으로, JYA 사내 작곡팀이라는 이름으로 발매된 곡들.
“그 곡들 크레딧 문제 알고 있어요.”
박인철이 말했다.
세아는 커피잔을 두 손으로 감쌌다. 도자기 표면이 따뜻했다.
“…알고 계셨어요.”
“최근에 알았어요. 한 달 전쯤에.” 박인철이 말했다. “그 전까지는 진짜로 사내 작곡팀 거라고 알고 있었어요. 제가 A&R 팀에 있는 게 아니라서. 경로가 달랐거든요.”
“어떻게 아셨어요.”
“강리우가 알려줬어요.”
세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강리우.
그 이름이 카페 안에서 울렸다. 울린다는 것은 과장이었다 — 박인철이 조용히 말했고 카페에는 다른 손님들이 있었고 배경 음악이 낮게 깔려 있었다. 그런데도 세아에게는 그 이름이 다른 무게로 들렸다. 어딘가에 올려뒀던 것이 다시 테이블 위로 내려온 것처럼.
피아노 영상이 일 년 넘게 안 올라왔어.
하늘이 했던 말이 겹쳤다.
“강리우 씨가요.”
“A&R 팀 일을 하면서 곡 출처를 추적하다가 발견했대요. 그게 세 달 전이고.” 박인철이 말했다. “JYA 내부에서는 아직 공식적으로 처리가 안 된 상태예요. 근데 강리우가 그 문제를 어떻게 할지 결정하기 전에 먼저 나세아 씨를 찾은 거예요.”
“찾았어요?”
“제가 연결된 거예요. 강리우가 저한테 물어봤고, 제가 아는 루트를 통해서 나세아 씨한테 연결된 거고.”
세아는 그 구조를 머릿속에서 정리했다. 강리우가 세 달 전에 알았다. 박인철한테 물었다. 박인철이 루트를 찾았다. 그게 유재원 이사의 회의실로 이어졌다.
“그러면 어제 그 회의가.”
“전속 계약 제안은 진짜예요. JYA가 나세아 씨 재능을 원하는 것도 진짜고.” 박인철이 말했다. “근데 그게 전부가 아니에요. 강리우가 나세아 씨를 만나고 싶어 해요.”
세아는 커피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한 번에, 소리 없이.
“왜요.”
“본인 입으로 들으라고 했어요.” 박인철이 말했다. “저는 그냥 연결하는 역할이에요.”
“연결.”
“나세아 씨 의향이 있으면 강리우한테 알릴게요.”
세아는 창문을 봤다. 골목의 사람들이 지나갔다. 해가 기울고 있었다. 오후 네 시의 빛은 오전 빛보다 얇았다 — 같은 밝기인데 온기가 없었다. 세아는 그 차이가 항상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빛의 온도가 시간에 따라 다르다는 것.
모르는 척. 그 곡이 세아의 것이라는 것을 강리우가 알고 있었다.
다음 계절. 그것도.
서쪽 창문. 그것도.
세아가 크레딧 없이 넘긴 곡들. 그냥 넘긴 것이 아니었다 — 계약서에 사인했다. 당시 세아는 그것이 뭘 의미하는지 알면서도 사인했다. 도현의 학원비가 두 달 밀려 있었고, 어머니 병원비가 있었다. 서류 한 장이 두 달치 생활비가 됐다. 세아는 그 교환을 했다.
그것을 후회한 적이 없었다.
거짓말이었다. 후회했다. 새벽에, 그 곡들이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스트리밍 되는 것을 이어폰으로 들으면서. 그 사람이 인터뷰에서 “이 곡은 제 이야기를 담아서 썼어요”라고 말하는 것을 읽으면서.
그 때마다 세아는 이어폰을 빼고 다른 일을 했다.
“…의향을 물어보시는 거잖아요.”
“그렇죠.”
“만나서 뭘 하려는지 모르는데 의향이 있는지 없는지를 어떻게 알아요.”
박인철이 잠깐 세아를 봤다.
“그것도 솔직한 말이네요.”
“그 사람이 뭘 원하는지 알아요?”
“나세아 씨 음악이요.” 박인철이 말했다. “진짜로.”
진짜로. 그 두 글자가 이상하게 걸렸다. 업계에서 진짜로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였다 — 정말로 진짜이거나, 진짜처럼 보이게 만들려는 것이거나. 세아는 그 차이를 구분하는 법을 아직 배우는 중이었다.
“생각해볼게요.”
박인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더 설득하지 않았다. 그것이 오히려 세아를 잠깐 놀라게 했다 — 여기서 더 밀어붙일 줄 알았는데.
“서두를 것 없어요.” 박인철이 말했다. “근데 너무 오래 생각하면 타이밍이 달라질 수는 있어요.”
“타이밍이요.”
“강리우가 JYA 내부에서 크레딧 문제를 공식 제기하기 전에 나세아 씨가 어떻게 하고 싶은지 먼저 들으려는 거거든요. 나세아 씨 의사가 없으면 강리우는 본인 판단으로 움직이게 돼요.”
세아는 그 말의 무게를 느꼈다.
강리우가 공식 제기를 하면 — 세아의 이름이 나온다. 크레딧 도용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온다. 그것이 세아에게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지금 당장은 알 수 없었다. 좋을 수도 있었다 — 이름이 나오고 크레딧이 회복되고. 나쁠 수도 있었다 — 계약서에 사인한 것이 있고, 법적으로는 세아가 양도한 것이었다. 아무 보호 없이 JYA와 정면으로 붙는 구도가 될 수도 있었다.
강리우는 그것을 알고 있을 것이었다.
그래서 먼저 물어보는 것이었다.
“알겠어요.”
세아는 말했다.
또 그 말이었다. 알겠어요. 이번에는 다른 의미였다 — 진짜로 안다는 뜻. 상황을 파악했다는 뜻. 박인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박인철과 헤어진 것은 다섯 시였다.
카페를 나오면서 세아는 핸드폰을 꺼냈다. 하늘한테 카톡을 보낼까 생각했다가 넣었다. 하늘은 오후에 손님이 있을 시간이었다. 타투이스트가 작업 중에 카톡을 보면 손이 흔들린다고 했다.
골목을 걸어 큰길로 나왔다.
홍대 입구 앞 거리는 저녁이 시작되는 시간이었다. 가게들이 불을 켜고 있었다. 탕후루 가게 앞에 줄이 생기고 있었다. 달콤한 냄새가 찬 공기와 섞였다. 세아는 그 냄새를 지나쳤다.
강리우가 나세아 씨 음악이요. 진짜로.
박인철의 말이 걸어가는 속도에 맞춰 반복됐다.
세아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자신의 음악을 원하는 사람들은 항상 있었다 — 단, 그들이 원하는 것은 세아의 음악이 아니라 세아의 음악으로 만들 수 있는 무언가였다. 원재료. 기획사 직원들이 곡을 들을 때 쓰는 눈빛이 있었다 — 이걸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라는 눈빛. 세아는 그 눈빛을 구분할 수 있었다.
강리우가 어떤 눈빛인지는 아직 몰랐다.
만난 적이 없으니까.
아니, 한 번 만났다.
세아는 걸음을 멈췄다.
클럽 합정 앞. 일주일 전 밤. 세아가 세션 무대를 마치고 나오던 길에 담배 연기 냄새 속에서 서 있던 남자. 세아가 지나치려 할 때 말을 걸었던. 마지막 코러스에서 전조 안 했냐고. 일부러냐고.
그게 강리우였어.
세아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알고 있으면서 모른 척 지나쳤다 — 그때는 그 이름이 연결될 줄 몰랐다. 아니, 연결되기 싫었다. 클럽에서 만난 사람이 JYA 대표 아들이라는 것이,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가 겹치는 것이 불편했다.
그러면 그 사람은 그때 이미 알고 있었던 거야.
세아가 누구인지. 그 곡들의 출처가 세아라는 것을.
세아는 홍대 입구 큰길 한복판에 잠깐 서 있었다. 주변에서 사람들이 지나갔다. 저녁 냄새가 났다 — 고기 굽는 냄새, 튀김 냄새, 차 배기가스. 세아는 그것들을 다 맡으면서 생각했다.
그날 밤 강리우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클럽 입구에 있었는데 담배가 없었다. 그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담배 없이 클럽 입구에 서 있는 사람은 대기 중이거나 기다리는 중이다. 세아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우연이 아닐 수도 있었다.
세아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생각하는 것을 멈추지 않으면서.
고시원에 돌아온 것은 여섯 시였다.
방문을 열었을 때 냄새가 먼저 왔다. 좁은 공간의 냄새. 세아는 익숙했다 — 그런데 오늘은 그 냄새가 유난히 진하게 느껴졌다. 하늘의 작업실에서 자고 왔기 때문인지, 아니면 카페의 커피와 나무 냄새가 아직 옷에 남아 있어서 대비가 됐기 때문인지.
세아는 가방을 내려놓고 바닥에 앉았다.
방이 좁았다. 싱글 침대와 책상과 작은 냉장고가 전부였다. 책상 위에는 낡은 미니 키보드가 있었다 — 편의점에서 두 달 알바한 돈으로 중고로 산 것. 건반 수가 적어서 옥타브를 올리고 내리는 버튼으로 범위를 확장해야 했다. 그래도 멜로디를 잡는 데는 충분했다.
세아는 음성 메모를 열었다. “231118_한강”. 재생했다.
바람 소리가 먼저 들렸다. 그다음 세아의 목소리가 나왔다 — 흥얼거리는 소리. 미, 파, 파플랫. 반복. 세아는 그것을 들으면서 키보드 앞에 앉았다.
건반을 눌렀다.
미. 파. 파플랫.
맞았다. 그 세 음이었다. 세아는 그 위에 하나를 더 얹었다 — 레플랫. 낮은 데서 올라왔다가 반음 아래로 내려앉는 움직임. 그것이 반복되면서 뭔가 모양이 생겼다.
세아는 건반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오른손이 멜로디를 잡는 동안 왼손이 베이스를 찾았다. 낮은 라. 거기서 솔. 파. 그것이 오른손 멜로디 아래에서 움직이면서 뭔가가 됐다. 완전히 다른 것이 됐다.
세아는 그것을 한 번, 두 번, 세 번 반복했다.
네 번째에 멜로디가 변했다 — 의도가 아니었다. 손이 먼저 움직였다. 미에서 시작한 멜로디가 이번에는 솔로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그것이 처음 세 음과 만나면서 한 마디가 됐다. 세아는 그것을 다시 했다. 또 했다.
방이 좁았다. 키보드 소리가 작았다 — 이어폰 없이 쓸 때는 볼륨을 줄여야 했다. 옆방과 벽이 얇았다. 세아는 건반을 최대한 가볍게 눌렀다. 그러면서도 소리를 놓치지 않았다.
강물 위에 놓아뒀던 것이 손가락 끝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도현의 목소리가 거기 있었다. 박인철의 “진짜로”가 거기 있었다. 세 곡의 이름 — 〈서쪽 창문〉, 〈다음 계절〉, 〈모르는 척〉 — 이 거기 있었다. 세아는 그것들을 음악으로 번역하고 있었다. 이름 없이. 크레딧 없이. 아무도 듣지 않는 방에서.
그것이 세아가 항상 음악을 만드는 방식이었다.
핸드폰이 울린 것은 밤 열 시였다.
세아는 키보드 앞에서 반쯤 잠들어 있었다. 등받이가 없는 의자에 앉아서, 건반 위에 팔을 올린 채로. 진동 소리에 눈을 떴다. 목이 뻐근했다.
모르는 번호였다.
세아는 잠깐 봤다가 받았다. 늦은 시간에 모르는 번호는 두 가지였다 — 스팸이거나 정말로 전화할 데가 없어서 전화하는 사람이거나.
“여보세요.”
“나세아 씨죠.”
목소리가 낮았다. 조용했다. 전화 너머에서도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 천천히 말하는 사람. 선택해서 말하는 사람.
세아는 의자 위에서 자세를 고쳤다.
“누구세요.”
“강리우예요.”
세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박인철 씨한테 번호 받았어요. 실례가 됐으면 미안해요.”
미안해요. 그 말이 먼저 나왔다는 것이 이상했다. 세아는 그것을 기억했다. 나중에 사용할 수도 있는 정보처럼.
“괜찮아요.”
“…혹시 지금 시간 괜찮아요? 통화.”
세아는 키보드를 봤다. 건반 위에 아까 적다 만 멜로디 메모가 있었다. 오선지 대신 편의점 영수증 뒷면에 적은 것. 세아는 그것을 책상 한쪽으로 밀었다.
“네.”
잠깐 침묵이 왔다. 전화를 건 쪽에서 침묵이 오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보통 전화를 거는 사람이 할 말을 준비하고 건다. 강리우는 준비가 덜 된 것처럼 들렸다. 아니면 준비한 말을 다시 고르고 있는 것처럼.
“박인철 씨한테 들었을 것 같은데.”
“들었어요.”
“그러면 제가 왜 전화했는지도 알겠네요.”
“대충은요.”
“대충.” 강리우가 그 말을 반복했다. 비어 있지 않은 반복이었다. “어느 부분이 대충이에요.”
“뭘 원하는지요.”
또 침묵.
“좋은 음악이요.” 강리우가 말했다.
“그건 대충이 아니에요.”
“맞아요.” 강리우가 말했다. “그 부분은 대충이 아니에요.”
세아는 그 말을 머릿속에서 한 번 굴렸다. 그 부분은. 다른 부분은 대충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말이었다. 세아는 그것을 기억했다.
“직접 만나서 얘기하고 싶어요.” 강리우가 말했다. “전화로는 한계가 있어서.”
“뭐가 한계예요.”
“…제가 드릴 말씀이 전화로 할 말이 아닌 것 같아서요.”
“어떤 말인데요.”
“직접 만나면 할게요.”
세아는 그것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거절할 이유가 없다는 것과 만나고 싶다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세아는 그 차이를 알면서도 대답을 미루지 않았다.
“언제요.”
강리우가 잠깐 멈췄다. 빠른 대답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
“…이번 주 내로 가능해요?”
“어디서요.”
“나세아 씨가 편한 곳으로요.”
세아는 생각했다. 편한 곳. 편한 곳이 어디인지를 생각하는 것이 이상하게 오래 걸렸다. 고시원은 아니었다. 하늘의 작업실은 하늘한테 설명해야 했다. 편의점은 세아가 알바를 하는 곳이었다.
“홍대 쪽으로 오시면 돼요.”
“알겠어요.”
“목요일 오후요.”
“목요일.” 강리우가 확인하듯 반복했다. “몇 시요?”
“세 시.”
“네. 장소는 제가 찾아볼게요.”
“아까 갔던 카페 어때요.”
세아가 말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다. 아까 갔던 카페. 강리우는 세아가 박인철과 카페에서 만났다는 것을 알겠지만, 어느 카페인지는 모를 것이었다. 세아는 카페 이름을 모르고 주소만 알고 있었다.
“주소 보내드릴게요.”
“네.”
“그러면 목요일에 봐요.”
전화가 끊겼다.
세아는 핸드폰을 내려다봤다. 통화 시간이 화면에 표시됐다가 사라졌다. 세아는 카페 주소를 카카오톡으로 보냈다. 강리우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이 없었다 — 기본 이미지였다. 세아는 그것을 기억했다. 이름과 전화번호만 있는 사람. 인스타 팔로워가 팔십만인데.
카톡이 읽혔다.
그것뿐이었다. 답장은 없었다.
세아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다시 키보드를 봤다. 영수증 뒷면 메모가 책상 한쪽에 밀려 있었다. 세아는 그것을 다시 가져왔다.
미, 파, 파플랫, 레플랫. 솔, 파, 미.
손가락이 건반 위에 올라갔다.
목요일까지 이틀이었다.
세아는 그 이틀 동안 평소와 같이 살았다 — 편의점 알바, 저녁에 클럽 세션 대기, 새벽에 멜로디 작업. 달라진 것은 없었다. 달라진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그냥 달라지지 않았다.
달라지지 않은 것과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것은 달랐다.
수요일 오후에 하늘한테서 카톡이 왔다.
“야 박인철 만났다고? 어떻게 됐어.”
세아는 편의점 알바 중이었다. 카운터 뒤에서 잠깐 핸드폰을 봤다.
“강리우 만나기로 했어.”
답장이 오는 데 삼 초가 걸렸다.
“뭐?”
“내일.”
“야 나세아 진짜 나한테 이렇게 카톡 하면 안 되잖아. 나 지금 작업 중이라고. 손 떨려. 야.”
세아는 핸드폰을 넣었다. 손님이 들어오는 소리가 났다. 세아는 고개를 들고 인사했다.
삼십 분 뒤에 하늘한테서 다시 카톡이 왔다.
“아니 근데 진짜로 왜 만나? 그 사람이 뭘 원하는지는 알아?”
“모르겠어.”
“야.”
“박인철 씨는 내 음악이라고 했어.”
“그게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어.”
“세아야. 모르겠어가 이번 주에 몇 번째야.”
세아는 카운터 뒤에서 잠깐 눈을 감았다. 하늘의 카톡이 박인철과 라면을 먹던 날 밤 하늘의 목소리와 겹쳤다. 다섯 번. 세아는 입술을 한 번 눌렀다.
“세 번.”
“그래도 줄었네. 잘했어. 야 내일 만나고 바로 연락해. 아니 만나기 전에도 연락해.”
“왜.”
“내가 걱정되잖아. 너가. 야.”
세아는 핸드폰을 내려다봤다. 카톡 화면에 하늘의 메시지가 있었다. 세아는 답장 대신 하트 이모티콘을 눌렀다. 하늘이 바로 “어 뭐야 감동이네 ㄹㅇ”라고 보냈다.
세아는 핸드폰을 넣었다. 입꼬리가 약간 올라갔다.
목요일 오전에 세아는 알바를 마치고 고시원으로 돌아왔다.
샤워를 했다. 오래 했다 — 뜨거운 물이 나오는 동안. 고시원 샤워실은 공용이었고 뜨거운 물이 오 분 정도만 나왔다. 세아는 그 오 분을 다 썼다. 물이 차가워지는 순간까지 서 있었다.
옷을 골랐다.
특별히 고를 것이 없었다. 어두운 청바지와 회색 긴팔. 그 위에 얇은 패딩. 세아는 거울을 봤다 — 고시원 방에는 거울이 없어서 화장실 거울을 봐야 했다. 얼굴이 피곤해 보였다. 눈 밑이 어두웠다. 세아는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고, 어떻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머리카락을 묶었다.
항상 묶는다.
노래할 때만 푼다.
오늘은 노래를 하지 않을 것이었다.
카페는 세 시 정각에 강리우가 먼저 와 있었다.
세아가 카페 문을 밀고 들어갔을 때 그는 안쪽 자리에 앉아 있었다. 창가가 아니었다 — 안쪽, 벽 쪽. 커피는 없었다. 물만 있었다. 핸드폰을 테이블 위에 뒤집어 놓고 앉아 있었다.
세아는 그것을 봤다.
핸드폰을 뒤집어 놓는다는 것. 알림을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으로 뒤집어 놓는 것. 이 자리에 집중하겠다는 신호이거나,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이 있다는 신호이거나.
강리우가 세아를 봤다. 일어서지 않았다. 그냥 봤다.
세아는 카운터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이번에는 박인철이 없었다. 세아는 자기 카드로 계산했다. 잔액이 어제 알바비로 채워져 있었다.
커피를 들고 강리우 맞은편에 앉았다.
가까이서 보는 것은 클럽 입구에서 스쳐 지나간 것과 달랐다. 그때는 담배 연기와 음악 소리와 어두운 조명 속이었다. 지금은 낮이었고 조용한 카페였다. 강리우의 얼굴이 제대로 보였다.
다크서클이 짙었다. 비싼 코트를 입고 있었는데 구겨져 있었다. 손이 테이블 위에 올라와 있었다 — 길고 마디가 굵은 손. 피아니스트 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세아는 그 손을 한 번 봤다가 시선을 커피로 옮겼다.
“안녕하세요.”
강리우가 말했다.
“네.”
세아가 말했다.
짧은 침묵이 왔다. 어색한 것이 아니었다 — 두 사람 다 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는 종류였다. 그것이 이상하게 편했다. 세아는 그것을 느꼈다.
“클럽에서 한 번 봤죠.”
강리우가 먼저 말했다.
“알고 있었어요?” 세아가 물었다. “그때.”
“네.”
“그러면 그때 왜 그 말을 했어요.”
“어떤 말이요.”
“마지막 코러스에서 전조 안 했냐고.”
강리우가 잠깐 세아를 봤다.
“그 곡 알고 있었거든요.”
“〈다음 계절〉.”
“네. 박소진 씨 앨범에 있는 것보다 세아 씨 목소리로 들었을 때가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물어봤어요.”
세아는 그 말을 받아들이는 데 잠깐 시간이 걸렸다.
박소진의 목소리와 세아의 목소리가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당연했다 — 다른 사람이니까. 그런데 강리우는 그것을 비교해서 말한 것이 아니었다. 세아의 것이 다르다고 했다. 단순히 다른 것이 아니라 — 어떻게 다른지를 말하지 않았는데도 그것이 전달됐다.
“전조 안 한 것 일부러였어요.”
세아가 말했다.
“알아요.” 강리우가 말했다. “그래서 물어봤어요. 일부러 하는 것과 실수로 안 하는 것은 결과가 같아도 의미가 다르거든요.”
세아는 그 말을 들었다.
의미가 다르다. 세아가 전조를 안 한 것은 그 곡이 코러스에서 올라가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올라가면 감정이 해결됐다. 올라가지 않으면 감정이 그대로 남았다. 남는 것이 더 정직했다. 그런데 발매된 버전에서는 전조가 들어가 있었다 — 편곡 과정에서 바뀐 것이었다. 세아는 그것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었다.
“〈서쪽 창문〉이랑 〈모르는 척〉도요.”
강리우가 말했다.
“네.”
“그 곡들 다 나세아 씨가 썼다는 거 알아요.”
“알고 있다고 했잖아요.”
“알고 있다는 것과 그것에 대해 말하는 것은 달라요.”
세아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뜨거웠다. 이번에는 혀가 타지 않았다 — 적당한 온도를 찾는 타이밍을 알게 됐다.
“그래서요.”
“미안해요.”
세아는 그 말에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JYA가 한 일에 대해서요.” 강리우가 말했다. “제가 막지 못했고, 제가 나중에야 알았고. 둘 다 미안해요.”
“강리우 씨 잘못이 아닌데요.”
“그 회사 대표 아들이에요.”
“그래서요.”
강리우가 세아를 봤다. 세아도 봤다. 눈이 마주쳤다 — 처음으로, 제대로.
강리우의 눈에 뭔가가 있었다. 피곤한 것, 그리고 그 피로 아래에 있는 다른 것. 세아는 그것을 음악으로 번역하는 습관이 있었다 — 장조인지 단조인지. 강리우는 단조였다. 그런데 단조 안에도 종류가 있었다. 조용한 단조가 있었고 저항하는 단조가 있었다. 강리우는 저항하는 단조였다.
“크레딧 문제를 공식으로 처리하고 싶어요.”
강리우가 말했다.
“어떻게요.”
“JYA 내부에서 재검토 요청할 수 있어요. 계약 조건 재협상, 소급 크레딧 표기. 법적으로 완전히 되돌리는 것은 어렵지만 — 공식 인정은 가능해요.”
“아버지가 허락해요?”
강리우가 잠깐 멈췄다.
“그게 문제예요.” 그가 말했다.
“그러면 어떻게 하려고요.”
“나세아 씨가 원한다면, 제가 밀어붙일 수 있어요.” 강리우가 말했다. “아버지 허락 없이도. 대신 그렇게 되면 JYA 내부에서 충돌이 생겨요. 나세아 씨한테도 영향이 갈 수 있고.”
“영향이요.”
“전속 계약 제안이 취소될 수 있어요.” 강리우가 솔직하게 말했다. “아버지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면 JYA는 나세아 씨를 배제할 거예요. 그 대신 크레딧은 회복되고.”
세아는 그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