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17화: 변호사의 칼날
법정의 침묵이 물리적인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누군가가 법정의 공기를 모두 빨아낸 것처럼. 세아의 마지막 말—’제 손을 잡으면서 나만이 너를 멈춰줄 수 있어’—이 증발하지 않고 그대로 공중에 떠 있었다.
판사는 안경을 벗었다. 그리고 그 작은 행동만으로도 법정의 무게가 바뀌었다. 이전까지는 절차였다. 이제는 판단이 될 것이다.
강리우의 변호사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움직임이 이전보다 더 날카로웠다. 마치 사냥감이 첫 피를 흘리는 순간을 감지한 사냥꾼처럼. 세아는 그 움직임을 봤다. 그리고 자신이 무언가 치명적인 말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증언인, 당신이 방금 말씀하신 내용은 매우 심각합니다만, 그것이 녹음되었거나 목격자가 있었나요?”
변호사가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이전의 부드러움을 완전히 벗어던졌다. 이제는 순수한 도구였다. 자신의 의뢰인을 지키기 위한 예리한 도구.
“아니요.”
세아가 대답했다.
“혼자 있을 때의 일이군요.”
“네.”
“그렇다면 당신의 증언은, 본질적으로 피고인의 행동에 대한 당신의 해석일 뿐이지 않나요?”
변호사가 말했다. 그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선언이었다.
세아의 가슴이 철렁했다. 그 순간 그녀는 자신이 얼마나 약한 위치에 있는지를 깨달았다. 증거 없는 증언. 목격자 없는 고백. 그녀의 말 대 그의 침묵.
“당신은 강리우 피고인과 연인관계에 있었고, 그것이 복잡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했다가 두려워했다고요.”
변호사가 계속했다.
“그렇다면 당신이 그의 행동을 의도적으로 왜곡했을 가능성은 없을까요?”
“아니요.”
세아가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은 약했다.
“당신이 헤어지고 싶었는데, 그가 붙잡으려고 했다면, 당신의 입장에서는 그의 모든 행동이 위협으로 보일 수 있지 않을까요? 심지어 그를 사랑했기 때문에 그 위협이 더욱 크게 느껴졌을 수 있지 않을까요?”
변호사가 물었다.
세아는 입을 다물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거짓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부분적으로 맞기 때문이었다. 강리우의 행동이 모두 다 악의로만 가득 찬 것은 아니었다. 그 안에는 절망도 있었고, 필사적인 애정도 있었고,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뒤섞여서 만들어진 것이 학대였다. 하지만 변호사는 그 복잡성을 단순한 ‘해석의 차이’로 만들고 있었다.
“당신은 제주도에서 도망쳤다고 말씀하셨죠?”
변호사가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당신은 그곳에서 어디로 갔나요?”
“엄마를 찾았습니다.”
세아가 대답했다.
“당신의 어머니는 당신을 도와주셨나요?”
“네.”
“그렇다면 경찰에 신고하는 것도 당신의 어머니와 함께 했나요?”
변호사가 물었다.
세아는 침묵했다.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법정의 공기가 다시 흔들렸다.
“신고는 혼자 하셨나요? 아니면 누군가가 도와주셨나요?”
변호사가 계속했다.
“친구가 도와줬습니다.”
세아가 말했다.
“친구? 누구요?”
“해늘이라고 불리는 사람입니다.”
변호사는 메모를 했다. 그것은 무고한 메모처럼 보였지만, 세아는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다음 공격의 준비였다. 증언자의 신뢰성을 깎기 위한.
“해늘이라는 분은 당신과 어떤 관계죠?”
“친구입니다. 오랫동안의.”
“당신을 지지하는 친구라는 뜻이군요.”
변호사가 말했다.
“그렇다면 그 친구는 당신이 강리우 피고인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갖도록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은 없을까요?”
“없습니다.”
세아가 말했다. 하지만 그것도 완전히 거짓은 아니었다. 해늘은 세아를 지지했고, 그 지지가 세아를 강리우로부터 떨어져 나오게 한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해늘의 영향 때문은 아니었다. 그것은 세아 자신의 생존 본능이었다.
“당신은 강리우 피고인에게 가해자라고 이름 붙였습니다만, 정작 당신이 그 관계에서 취한 행동은 어떻게 되나요?”
변호사가 질문을 바꿨다.
“당신도 그를 거짓말로 속인 적이 있나요?”
세아의 호흡이 멈췄다.
“당신은 제주도에 간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도망쳤지 않나요?”
변호사가 말했다.
“당신은 그에게 당신의 위치를 속인 것 아닌가요?”
“그것은…”
세아가 말을 시작했다.
“당신이 경찰에 신고하기 전에, 강리우 피고인과 만났다는 진술도 있습니다. 그 만남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나요?”
변호사가 끼어들었다.
“당신은 그를 용서했다고 말하지 않으셨나요?”
“네, 만났습니다만…”
세아가 대답했다.
“용서했나요, 안 했나요?”
변호사의 목소리가 더 높아졌다.
“용서와 신고는 모순되는 것이 아닙니다.”
세아가 말했다. 그 순간 그녀의 목소리는 변했다. 이전의 떨림이 아니라 어떤 단단한 것이 되어 있었다.
“정말요? 그렇다면 당신이 정말로 두려워했던 것은 뭐죠? 강리우 피고인인가요, 아니면 당신 자신인가요?”
변호사가 물었다.
법정이 완전히 움직였다. 검사가 일어섰다.
“이의 있습니다! 증언인을 모욕하는 질문입니다!”
검사가 외쳤다.
“이의 인정합니다.”
판사가 말했다.
“변호사님, 질문을 다시 형성해주세요.”
강리우의 변호사는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 절이 진정한 사과는 아니었다. 그것은 계산이었다. 그는 이미 충분히 했다. 세아의 증언이 일관성이 없고, 혼자만의 증거이며, 친구의 영향을 받았으며, 심지어 강리우를 용서했던 여자라는 것을 법정에 심었다.
“증언인, 당신이 강리우 피고인과 마지막으로 만난 것이 언제였나요?”
변호사가 다시 물었다. 이번 질문은 전보다 훨씬 부드러웠다.
“경찰에 신고한 이후입니다.”
세아가 대답했다.
“그 만남을 왜 가지셨나요?”
“그에게 제 마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어떤 마음을요?”
“미안하다는 마음입니다.”
법정이 다시 흔들렸다.
세아는 자신이 무엇을 말했는지를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큰 실수인지를 깨달았다. 미안하다는 것은 자신이 무언가 잘못했다는 뜻이었다. 미안하다는 것은 자신이 강리우를 고소한 것이 아마도 과했을지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미안하셨다는 거군요.”
변호사가 확인하듯 말했다.
“그렇다면 당신은 강리우 피고인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건가요?”
“아니요. 나쁜 사람입니다.”
세아가 말했다.
“하지만 미안하셨다고요?”
변호사가 말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법정의 모든 사람들이 그 모순을 봤다.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미안해하는 여자. 자신을 괴롭혔던 남자에게 미안해하는 여자.
세아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하지만 그것은 이전의 눈물이 아니었다. 이것은 분노의 눈물이었다.
“제가 미안해한 것은…”
세아가 말했다.
“결론을 지을 것 같습니다.”
변호사가 말했다.
“증언인에 대한 질문은 이상입니다.”
변호사가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그 순간 세아는 완전히 이해했다. 강리우가 무죄가 될 것이라는 것을. 적어도 이 법정에서는. 그가 증명해야 할 것이 무엇이었는지, 그것을 얼마나 잘했는지를. 그것은 강리우가 무죄라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세아가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법은 확실하지 않은 것을 유죄로 만들지 않는다.
“증언을 마치셨으니 퇴정하실 수 있습니다.”
판사가 말했다.
세아는 증인석에서 일어섰다. 다리가 떨렸다. 손가락도. 전신이. 마치 그녀 전체가 강리우의 손에 의해 멈춰져 있었다가 이제 다시 풀려난 것처럼. 그 떨림이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녀가 법정을 나가려고 걸어가는 길에, 강리우의 눈과 만났다.
강리우의 눈은 이전과 달랐다. 더 이상 눈물 없는 눈이 아니었다. 이제 그 눈은 명확하게 울고 있었다.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눈물 속에 세아는 무엇을 봤는가.
죄책감이 아니었다. 미안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승리였다.
강리우가 울고 있는 것은 세아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이 이겨냈다는 기쁨이었다. 자신의 변호사가 세아를 이겨냈다는 기쁨이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이 세아의 가슴을 철저히 짓눌렀다.
법정을 나간 후, 세아는 복도에서 멈췄다. 벽에 기대었다. 형광등이 자신을 비추고 있었다. 차갑고, 무자비하게.
“세아!”
해늘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달려왔다. 하지만 해늘의 목소리조차 세아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세아는 자신의 손을 봤다. 여전히 떨리고 있는 그 손들. 그리고 그 순간 그녀는 무언가를 깨달았다.
그 손이 언제 떨리기 시작했는지. 강리우 때문인지, 아니면 이전부터였는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중요한 것은 그 손이 더 이상 누구의 소유물도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세아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기로 결정했다.
어머니였다.
전화를 누르는 손가락도 떨렸다. 하지만 세아는 그것을 멈추지 않았다.
통화음이 울렸다. 그리고 그 울림 속에서 세아는 제주의 파도 소리를 들었다.
제118화 예고
강리우의 변호사는 법정에서 세아의 증언을 산산조각 낸다. 세아가 전화를 건 어머니는 어떤 말을 건넬 것인가. 그리고 법정 밖에서, 강리우는 무엇을 계획하고 있을까.
# 제117화 – 분노의 눈물
## 제1부: 법정의 무게
물이 맺혔다.
세아는 자신의 눈가를 느낄 수 있었다. 따뜻함이 서서히 퍼져나가는 그 감각, 마치 누군가가 그녀의 뺨에 손가락을 댄 것처럼. 하지만 그것은 이전의 눈물이 아니었다. 그 눈물들은 두려움과 불안감, 그리고 억눌린 감정들의 결과였다. 이것은 달랐다.
이것은 분노의 눈물이었다.
세아의 턱이 떨렸다. 법정의 형광등 아래에서 그녀의 얼굴은 창백해 보였다. 증인석에 앉아있는 자신의 모습을 마치 제3자의 입장에서 보는 것 같았다. 저 창백한 얼굴, 저 떨리는 입술, 저 무너지는 눈빛—그것이 정말 자신일까?
변호사가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졌다. 이번엔 더욱 날카로운 톤으로. 마치 칼로 자르듯이 단어 하나하나를 내팽개쳤다. 그리고 세아는 대답했다. 자신이 확실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 말했다. 기억이 가물가물한 부분들에 대해 입을 열었다.
“제가 미안해한 것은…”
세아가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마치 물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그 목소리도 흔들거렸다.
변호사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마치 사냥개가 獲物을 발견했을 때의 그런 표정이었다. 세아는 그 표정을 본 순간, 자신이 함정에 빠졌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결론을 지을 것 같습니다.”
변호사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차갑고 계산적이었다. 마치 체스판 위의 마지막 수를 두는 기사처럼. 그는 세아를 보지 않았다. 대신 법관들을 바라봤다. 세아는 그 시선의 방향을 따라가며, 자신이 얼마나 초라해 보이는지 깨달았다.
“증언인에 대한 질문은 이상입니다.”
다른 변호사가 이의를 제기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이미 약했다. 이미 진 것 같은 목소리였다.
변호사가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그 순간, 세아는 완전히 이해했다.
강리우가 무죄가 될 것이라는 것을. 적어도 이 법정에서는. 그의 변호사가 증명해야 할 것이 무엇이었는지, 그것을 얼마나 잘했는지를. 그것은 강리우가 실제로 무죄라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세아가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법은 확실하지 않은 것을 유죄로 만들지 않는다.
법은 정의를 추구하지 않는다.
법은 의심을 추구한다.
세아는 그 깨달음이 마치 얼음물처럼 자신의 척추를 타고 내려가는 것을 느꼈다. 차갑고, 무자비하고, 거부할 수 없는 그 감각. 호흡이 얕아졌다. 가슴이 철렁했다.
“증언을 마치셨으니 퇴정하실 수 있습니다.”
판사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감정이 없었다. 그것이 가장 무서웠다. 감정이 없다는 것. 마치 세아의 증언이 처음부터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단지 법정의 절차 중 하나일 뿐. 기계적인 움직임의 일부일 뿐.
세아는 증인석에서 일어섰다.
다리가 떨렸다.
손가락도 떨렸다.
전신이 떨렸다. 마치 그녀 전체가 강리우의 손에 의해 멈춰져 있었다가 이제 다시 풀려난 것처럼. 하지만 그 풀려남이 자유가 아니라 더욱 깊은 감옥 같았다.
그 떨림이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녀의 두려움, 그녀의 불안감, 그녀의 확신 부족. 모든 것이 그 떨리는 손과 다리에 적혀있었다. 마치 투명한 옷을 입은 것처럼 그 모든 것이 노출되었다.
세아는 천천히 증인석을 내려왔다. 한 발 한 발이 무거웠다. 마치 물 속을 걷는 것처럼. 공기가 자신을 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 제2부: 눈과 눈이 만날 때
그녀가 법정을 나가려고 걸어가는 길에, 강리우의 눈과 만났다.
세아의 발걸음이 멈췄다. 아니, 멈춘 것이 아니라 자동으로 멈춰버렸다. 마치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반응한 것처럼. 그의 눈을 피할 수 없었다.
강리우의 눈은 이전과 달랐다.
지난 몇 주일 동안 세아가 봐왔던 그 눈들—죄책감으로 가득 찬 눈, 두려움에 젖은 눈, 때로는 후회처럼 보이는 눈들—이 모두 사라졌다.
더 이상 눈물 없는 눈이 아니었다.
이제 그 눈은 명확하게 울고 있었다.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뺨을 타고 내려오는 그 눈물들. 하지만 그것은 세아가 기대했던 눈물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눈물 속에 세아는 무엇을 봤는가.
죄책감이 아니었다.
미안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승리였다.
세아의 호흡이 멈췄다. 마치 누군가가 그녀의 목을 졸라 메는 것처럼. 강리우가 울고 있는 것은 세아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이 이겨냈다는 기쁨이었다. 자신의 변호사가 세아를 이겨냈다는 기쁨이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이 세아의 가슴을 철저히 짓눌렀다.
강리우의 입가에 떠오른 그 미소.
그것이 세아를 가장 절망시켰다.
그의 눈은 말하고 있었다. “고마워. 넌 날 도와줬어. 넌 이 법정에서 내 가장 좋은 변호사였어.” 그리고 그 메시지는 세아의 가슴을 찢었다. 아니, 더 정확히는 세아 자신이 이미 찢어놓은 상처에 소금을 뿌린 것 같았다.
세아는 더 이상 그의 눈을 보지 못했다.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그 눈빛은 여전히 그녀의 뇌리에 박혀있었다. 심장의 깊은 곳에 박혀있었다.
## 제3부: 복도의 고독
법정을 나간 후, 세아는 복도에서 멈췄다.
벽에 기대었다. 차가운 콘크리트 벽. 그 차가움이 세아의 등을 통해 척추까지 전달되었다. 마치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것 같았다. 고통 속에서야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낀다.
형광등이 자신을 비추고 있었다. 차갑고, 무자비하게. 세아는 자신의 그림자를 바닥에서 봤다. 그 그림자는 자신보다 더 길어 보였다. 마치 자신의 어두운 부분이 확대된 것처럼.
“세아!”
해늘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달려왔다. 급하게 걷는 발걸음 소리. 헐레벌떡대는 호흡. 친구가 자신을 찾으러 온 것이었다.
하지만 해늘이의 목소리조차 세아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세아의 귀는 이미 다른 곳을 듣고 있었다. 강리우의 눈물 소리. 아니, 눈물은 소리가 없지만, 그 침묵의 소리를 세아는 들을 수 있었다. 그 침묵이 가장 크게 울리고 있었다.
“세아, 괜찮아? 뭐… 뭐가 됐어?”
해늘이가 세아의 어깨를 잡았다. 따뜻한 손. 하지만 그 따뜻함도 세아의 얼어붙은 심장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다.
세아는 자신의 손을 봤다.
여전히 떨리고 있는 그 손들. 증인석에 앉아있을 때의 그 떨림이 아직도 가시지 않았다.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시체처럼 그 손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였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는 무언가를 깨달았다.
그 손이 언제 떨리기 시작했는지. 강리우 때문인지, 아니면 그 훨씬 이전부터였는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중요한 것은 다른 곳에 있었다.
중요한 것은 그 손이 더 이상 누구의 소유물도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강리우의 손이 아니라. 두려움의 손이 아니라. 법정의 손이 아니라. 단지 자신의 손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세아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세아, 뭐 해?”
해늘이가 물었다.
하지만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세아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기로 결정했다.
어머니였다.
수신자 목록을 스크롤했다. 부모님 항목 앞에는 여전히 “엄마”라고만 표기되어 있었다. 언제부터 그리 멀어진 건지, 언제부터 그리 말이 없어진 건지, 세아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 거리가 무언가를 치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치유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전화를 누르는 손가락도 떨렸다.
하지만 세아는 그것을 멈추지 않았다.
더 이상 아무것도 멈추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해늘이, 나 따라가지 마.”
세아가 말했다. 목소리는 작았지만 단호했다.
“뭐… 뭐라고?”
해늘이가 물었다.
“혼자 있을게. 엄마한테 전화해야 해.”
세아가 해늘이의 손을 살짝 밀어냈다. 미안함이 올라왔다. 하지만 이건 필요한 것이었다. 이것도 필요한 미안함이었다.
세아는 복도의 다른 쪽으로 걸어갔다. 해늘이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지만, 세아는 돌아보지 않았다.
## 제4부: 통화의 울림
세아는 계단을 내려갔다.
법원 건물의 지하, 거의 아무도 없는 곳. 벽은 더욱 차갑고 회색이었다. 마치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반영한 것 같았다. 세아는 창문 가까이 가서 섰다. 밖으로는 주차장이 보였다. 자동차들. 사람들. 모두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세아는 휴대폰의 전화 버튼을 눌렀다.
통화음이 울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각 울림마다 세아의 심장도 함께 울렸다. 어머니가 받을까? 받지 않을까? 그 불확실함이 세아를 더욱 떨게 만들었다.
네 번째 울림이 울렸을 때.
전화가 연결되었다.
“여보세요?”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세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목이 메었다. 마치 누군가가 그녀의 목을 졸라 메는 것처럼.
“세아? 너니?”
어머니가 다시 물었다.
그리고 그 목소리 속에서, 세아는 제주의 파도 소리를 들었다.
바닷바람의 소리. 파도가 모래사장에 부딪히는 소리. 그 속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마치 어머니가 지금 제주 해변에 서있는 것처럼.
“엄마… 나…”
세아가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내가… 내가 실패했어.”
그 말이 나오는 순간, 세아의 눈에서 다시 눈물이 맺혔다. 하지만 이번 눈물은 분노의 눈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해방의 눈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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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18화 예고
강리우의 변호사는 법정에서 세아의 증언을 산산조각 낸다. 모든 것이 그의 전략이었다. 세아가 전화를 건 어머니는 어떤 말을 건넬 것인가. 그리고 법정 밖에서, 강리우는 무엇을 계획하고 있을까.
세아가 눈물을 흘리는 사이, 강리우는 변호사와 함께 법원 건물을 빠져나간다. 사진기자들의 플래시가 터진다. 무죄 판결이 확정되면, 그 다음은 무엇일까.
누군가는 법정에서 패배하고, 누군가는 승리한다. 하지만 이 승리가 모든 것을 끝낼까. 아니면 이것이 새로운 시작일까.
다음 화에서, 세아는 어머니의 목소리 속에서 무엇을 찾을 것인가. 그리고 강리우의 진정한 계획은 무엇인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