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불탄 소녀 – 제115화: 손가락의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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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15화: 손가락의 증거

강리우의 손이 떨리는 것을 보는 순간, 세아는 자신이 누구를 고소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추상적인 악이 아니었다. 악이라는 개념도 아니었다. 그것은 테이블 위에서 떨리는 손가락들이었다. 그 손가락들이 만들어낸 그림자였다. 그리고 그 손가락들이 속한 몸이었다. 그 몸이 속한 얼굴이었다. 그 얼굴이 가진 눈이었다.

검사의 재질문이 세아의 의식을 다시 법정으로 끌어당겼다.

“제주도에서 어떤 일이 발생했나요?”

검사의 목소리는 이전처럼 온화했지만, 이제 그것은 온화함이 아니라 전술이었다는 것을 세아는 알 수 있었다. 피해자를 안심시키고, 피해자가 증거를 완성하도록 유도하는 전술. 법정은 무대였고, 세아는 배우였다. 그리고 강리우는 피고인이 아니라 관객이었다.

“그는 호텔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세아가 말했다.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하지만 법정의 형광등 아래에서는 모든 것이 증폭된다. 모든 말, 모든 침묵, 모든 눈물이. 세아의 작은 목소리는 법정 전체를 채웠다.

“그리고?”

“그리고 저는 도망쳤습니다. 그의 차에서. 그가 운전하고 있을 때.”

세아는 그 장면을 다시 보고 있었다. 눈을 감지 않았는데도. 제주의 밤. 검은 차. 강리우의 손이 핸들을 잡고 있었다. 그 손. 지금 이 법정에서도 떨리고 있는 그 손.

“차에서 뛰어내렸나요?”

“네.”

“다친 곳이 있었나요?”

세아는 자신의 팔을 봤다. 형광등 아래에서. 팔뚝에 있던 상처들은 이제 연한 자국으로만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 자국들이 만들어진 과정은 여전히 생생했다. 아스팔트에 부딪힐 때의 충격. 피가 나올 때의 따뜻함. 그 따뜻함이 자신이 살아있다는 증거였다.

“상처가 있었습니다.”

“그 상처는 의료 기록으로도 확인되나요?”

“네. 제주의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검사가 종이를 넘겼다. 의료 기록. 세아의 이름. 상처의 종류. 깊이. 처치 방법. 모든 것이 객관적인 언어로 기록되어 있었다. 고통도 객관화될 수 있다는 것을 세아는 배우고 있었다.

“그 후에는 어떻게 되셨나요?”

검사가 계속했다.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바로요?”

“아니요. 일주일 후입니다.”

“왜 일주일을 기다리셨나요?”

그 질문에서 세아는 검사의 진정한 의도를 봤다. 이것은 강리우를 유죄로 만들기 위한 질문이 아니었다. 이것은 세아의 증언 자체가 일관성 있는지를 확인하는 질문이었다. 피고인의 변호사가 뒤에서 기다리고 있을 바로 그 질문. 왜 피해자는 일주일을 기다렸는가?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진짜 피해자라면 왜 즉시 신고하지 않았는가?

“저는… 무서웠습니다.”

세아가 대답했다.

“뭐가 무서웠나요?”

“신고했을 때 일어날 일들이요. 법정이 될 일들이요. 이런 상황이 될 일들이요.”

세아가 말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는 자신의 증언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느꼈다. 무서움은 증거가 아니다. 무서움은 설명이다. 그리고 설명은 의심받을 수 있다.

강리우의 변호사가 일어섰다.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였다. 50대쯤으로 보였다. 그리고 그의 얼굴은 전혀 감정이 없었다. 마치 이것이 단순한 직업일 뿐이라는 것을 보여주듯이. 누군가를 유죄로 만드는 일도, 무죄로 만드는 일도, 모두 동등하게 수행해야 할 업무일 뿐이라는 것을 보여주듯이.

“나세아님, 당신은 강리우 피고인과 연인관계에 있었다고 말씀하셨죠?”

변호사가 물었다.

“네.”

“그렇다면 당신이 그 관계를 끝내고 싶으셨나요?”

세아는 대답을 멈췄다. 그것은 간단한 질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함정이었다.

“그렇습니다.”

세아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왜 헤어지지 않으셨나요?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당신을 괴롭히고 있다면, 왜 그냥 떠나지 않으셨나요?”

변호사가 계속했다. 그리고 그 질문 속에는 이미 답이 있었다. 왜냐하면 당신도 그를 사랑했기 때문이 아닌가. 그래서 떠나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것은 학대가 아니라 사랑이 아닌가.

세아의 입이 말라버렸다.

“사랑과 학대는 다릅니다.”

세아가 말했다. 목소리에 떨림이 있었다.

“다릅니까? 당신은 일 년 동안 그 남자와 관계를 유지하셨어요. 헤어지지 않으셨어요. 전화를 받으셨어요. 만나셨어요. 그렇다면 어느 순간부터 그것이 학대가 되었나요? 당신의 정의에 따르면?”

변호사의 질문은 검술이었다. 정확하고, 날카롭고, 그리고 세아의 증언의 모순을 찾아내려고 했다.

세아는 판사를 봤다. 판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것이 법정이었다. 이곳에서는 피해자도 증거일 뿐이었다.

“저는 도망쳤습니다. 제주도로. 그리고 그는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다시 도망쳤습니다. 그 사이에 제가 차에서 뛰어내렸습니다.”

세아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일주일을 기다렸죠. 왜요? 왜 그 일주일 동안 신고하지 않으셨나요? 혹시 강리우 피고인과 다시 연락했나요?”

세아는 침묵했다. 그것이 실수였다. 법정에서의 침묵은 인정이었다.

변호사가 미소를 지었다. 매우 작은 미소.

“다시 연락했습니다. 맞죠?”

“네.”

“왜요?”

“저는… 그가 자살한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세아가 말했다.

“그래서 당신은 다시 만났나요?”

“아니요. 만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계속 전화를 받았습니다.”

“왜 전화를 받으셨나요? 피고인이 당신을 괴롭히고 있다고 생각하셨다면?”

변호사가 묻고 있었다. 그리고 세아는 자신이 답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왜냐하면 그 이유 자체가 모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사랑했기 때문. 자신이 죄책감을 느꼈기 때문. 자신이 자신을 믿지 않았기 때문.

“저는 그의 생명이 중요했습니다.”

세아가 말했다.

“당신의 생명은 중요하지 않았나요?”

변호사가 물었다.

그 질문 앞에서 세아의 세계가 흔들렸다.

“당신의 생명은 중요하지 않았나요?”

변호사가 다시 물었다. 마치 세아가 답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미 답이라는 것을 아는 듯이.

세아는 강리우를 다시 봤다. 강리우의 손이 계속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손을 보는 순간 세아는 깨달았다. 강리우도 자신이 한 것들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고 있다는 것을. 강리우도 자신이 피고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강리우도 무서워하고 있다는 것을.

세아의 눈에서 눈물이 났다.

“죄송합니다.”

세아가 말했다. 아무에게도 아니었다. 판사에게도, 검사에게도, 변호사에게도 아니었다. 그냥 공중에 떠있는 말이었다. 혹은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다.

“죄송해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판사가 말했다. 그것이 처음으로 판사가 한 말이었다. 그리고 그 말은 법정의 무게를 한 번에 바꿔버렸다.

변호사는 계속 질문했다. 하지만 이제 그 질문들은 의미를 잃어버렸다. 왜냐하면 판사가 이미 말했기 때문이다. 당신은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당신은 피해자다.

세아는 나머지 질문들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녀의 신체는 법정에 있었지만, 그녀의 마음은 이미 다른 곳으로 떠나있었다. 제주의 해변. 엄마의 집. 해원이의 얼굴. 도현이의 목소리. 모든 것이 겹쳐있었다. 그리고 그 중앙에는 강리우의 떨리는 손이 있었다.

증인석을 떠날 때, 세아는 다시 한 번 강리우를 봤다.

강리우가 세아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눈에는 울음이 있었다. 하지만 울음은 여전히 흐르지 않았다. 마치 울 수도 없고, 웃을 수도 없는 어떤 감정의 상태에 있는 것처럼. 마치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태에 있는 것처럼.

해원이가 법정 밖에서 세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 끝났어?”

해원이가 물었다.

“응.”

세아가 대답했다.

“힘들었어?”

“응.”

“잘했어. 넌 잘했어.”

해원이가 세아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그리고 그 순간 세아는 자신이 얼마나 지쳐있는지를 깨달았다. 마치 물속에서 물 위로 올라온 후 처음 숨을 쉬는 것처럼.

변호사가 나왔다.

“판사의 태도를 봤나요? 당신의 증언을 믿고 있어요. 반박질문도 조직적으로 대응했고. 문제없어요.”

변호사가 말했다.

하지만 세아는 듣지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강리우의 떨리는 손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 손은 자신의 손과 똑같았다. 공명하는 손. 증거의 손. 그리고 그 손이 만든 것들이 자신의 인생을 바꿔버렸다. 강리우의 손이 아니라, 자신의 손도 함께 만든 것들이.

“이제 판결을 기다리면 돼.”

변호사가 계속했다.

“언제쯤?”

세아가 물었다.

“한 달 정도.”

한 달. 그 시간 동안 무엇을 할 것인가? 세아는 그것을 생각할 수 없었다. 한 달은 너무 길었다. 그리고 동시에 너무 짧았다.

법원 건물을 나왔을 때, 서울의 햇빛이 세아의 얼굴을 비쳤다.

그 빛은 제주의 햇빛과 다르지 않았다. 같은 태양에서 나온 같은 빛. 하지만 그것이 비추는 세아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한 시간 전의 자신과. 어제의 자신과. 일 년 전의 자신과.

해원이가 세아의 손을 잡았다.

“뭐 먹을래?”

해원이가 물었다.

“모르겠어.”

세아가 대답했다.

“밥이라도 먹자. 너 아직도 먹어야 해.”

해원이가 말했다. 마치 엄마처럼.

세아는 해원이를 따라갔다. 손을 놓지 않은 채로. 법정이 만들어낸 떨림을 안은 채로. 그리고 강리우의 떨리는 손을 기억하면서.

그 손이 언제부터 떨렸는지 세아는 모르지만, 이제 그것도 증거였다. 자신의 손처럼. 그리고 증거들은 말한다. 누군가는 살아있고, 누군가는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그것이 법정의 언어였다. 손가락의 증거. 떨림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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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정의 증거

## 1부: 기다림

법정 밖의 복도는 예상과 달리 조용했다.

세아는 벤치에 앉아 있었지만, 앉아 있다는 느낌이 없었다. 마치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물속에 잠긴 것 같았다. 주변의 소리들이 모두 왜곡되어 들렸다. 복도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음, 멀리서 들리는 법정의 문이 닫히는 소리, 어딘가의 전화벨—모든 것이 수중에서 울려 퍼지는 음파처럼 느껴졌다.

그녀의 손가락들이 계속 떨렸다.

법정에서 나온 지 5분이 지났을 텐데, 손가락들의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세아는 한 손으로 다른 손을 눌러보았다. 손등의 피부는 차갑고 축축했다. 땀이었다. 언제부터 흘렸는지 모르는 땀. 아마도 선서를 하던 순간부터였을 것이다. “진실만을 말하겠습니다.” 손을 들고 그 말을 했을 때, 세아의 몸은 이미 반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복도의 벽은 회색이었다. 법원 건물 어디나 그랬다. 모든 것이 회색이었다. 벽도, 바닥도, 천장도. 마치 이곳이 현실과 다른 어떤 차원이라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세아가 이 회색 공간에 들어오면서 뭔가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색깔이었나? 아니면 목소리? 아니면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능력?

그 순간, 빨간색이 나타났다.

해원이의 빨간 코트. 그것이 회색 복도를 가로질러 다가왔다. 세아의 눈이 그 색깔에 집중했다. 마치 익사하는 사람이 부표를 보는 것처럼.

“다 끝났어?”

해원이가 물었다. 목소리에는 조심스러운 톤이 묻어있었다. 마치 병실의 환자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깨어날지 말지 모르는 사람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거는 것처럼.

세아는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말을 하려고 했지만, 목에서 나오는 것은 목소리가 아닌 다른 무언가 같았다.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의 성대를 통해 말하는 것처럼.

“응.”

한 글자. 그것이 전부였다.

해원이는 세아의 얼굴을 자세히 관찰했다. 친구의 얼굴은 공허했다. 눈빛이 초점을 잃은 상태였다. 해원이가 아는 세아가 아니었다. 마치 같은 얼굴을 가진 다른 사람이 세아의 몸을 빌린 것 같았다.

“힘들었어?”

“응.”

대답은 같은 톤으로 나왔다. 기계적인 음성이었다. 해원이는 세아의 손을 찾았다. 손을 잡으면 뭔가 돌아올 것 같았다. 뭔가 실재하는 것이.

손가락을 맞닿았을 때, 해원이는 세아의 손이 얼마나 차가운지 느껴졌다. 그리고 그 손이 얼마나 강하게 떨리고 있는지를.

“잘했어. 넌 정말 잘했어.”

해원이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어머니의 목소리처럼. 아니, 세아의 어머니보다 더 따뜻했다. 세아는 그 목소리에 끌려 해원이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해원이가 세아의 어깨를 감싸안았을 때, 세아는 자신이 얼마나 지쳐있는지를 깨달았다.

그것은 육체적인 피로가 아니었다. 근육이 고통스러운 그런 종류의 피로도 아니었다. 이것은 영혼의 피로였다. 마치 물속에서 물 위로 올라온 후 처음 숨을 쉬는 것처럼, 산소를 찾아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그런 종류의 절박함. 세아의 몸은 해원이에 기대어 있었지만, 그녀의 의식은 여전히 법정 안에 있었다.

“이제 나왔으니까 괜찮아. 다 끝났어.”

해원이가 계속 중얼거렸다. 세아의 머리를 쓸어내리며.

하지만 다 끝나지 않았다. 세아는 알고 있었다.

## 2부: 증거와 의심

“판사의 태도를 봤나요?”

변호사가 나타났다. 손에는 파일이 들려 있었고, 얼굴에는 희미한 미소가 떠 있었다. 그것은 승리의 미소는 아니었지만, 희망의 미소였다.

“당신의 증언을 믿고 있어요. 반박질문에도 조직적으로 대응했고, 표정 관리도 잘했어요. 진술의 일관성도 흔들리지 않았고요. 판사의 눈빛을 봤나요? 그 눈빛이 모든 것을 말해줍니다. 문제없어요. 진짜 문제없어요.”

변호사의 입에서 계속 나오는 긍정의 말들. 그것들은 마치 주문처럼 들렸다. 마치 누군가를 최면에 빠뜨리기 위한 주문처럼. 세아는 그 말들을 들었지만 들리지 않는 척했다.

그녀의 마음은 다른 곳에 있었다.

강리우의 떨리는 손.

그것이 자꾸만 떠올랐다. 법정에서 증인석에 앉았을 때, 강리우는 피고인석에 앉아 있었다.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 나이는 오십 대쯤 되어 보였다. 회색이 섞인 머리, 지쳐 보이는 얼굴. 그리고 그 손.

그 손이 자꾸만 떨렸다.

세아가 증언하는 동안 내내, 강리우의 손은 계속 떨렸다. 마치 세아의 손처럼. 아니, 더 심했다. 손가락이 테이블 위에서 규칙적으로 두드려졌다. 톡톡톡. 톡톡톡. 마치 신호를 보내는 것처럼.

“그 손이 뭔가를 만들었어요.”

세아가 갑자기 말했다.

변호사가 세아를 바라봤다.

“뭐?”

“강리우의 손. 그 손이 만든 것들이 있어요.”

변호사는 이해를 못 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세아는 계속했다.

“그 손은 제 손과 같아요.”

“어떤 의미인가요?”

세아는 자신의 손을 들어 보였다.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창백하고, 차갑고, 떨리는 손.

“같은 일을 했으니까요.”

변호사의 얼굴이 굳었다. 그는 이것이 피고의 변호사와 재판정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발언임을 이해했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법정 밖이었다. 그리고 세아는 더 이상 증인이 아니었다.

“저… 그런 생각을 하면 안 돼요. 지금은 판결을 기다리면 돼요.”

변호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판결이 뭘 바꾸나요?”

세아의 질문에 변호사는 답하지 못했다.

“한 달 정도 기다리시면…”

“한 달.”

세아가 중얼거렸다.

한 달. 서른 번의 해가 지고 뜰 동안, 그 판결이 나온다. 그 판결이 뭔가를 결정할 것이다. 강리우의 운명을 . 그리고 세아의 운명도.

하지만 그 판결이 진실을 바꿀 수는 없다.

세아가 증언한 것들은 모두 사실이었다. 그녀는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 증인선서를 했을 때 그녀는 진실만을 말하겠노라고 약속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지켰다.

하지만 진실에는 여러 개의 면이 있었다.

강리우의 손이 만든 것들도 있었고, 세아의 손이 만든 것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 둘의 손이 함께 만든 것들도 있었다. 하지만 세아가 증언한 것은 강리우의 손만에 대한 것이었다. 그녀의 손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그럴 수 없었다.

“이제 판결을 기다리면 돼요.”

변호사가 다시 말했다. 마치 세아를 진정시키는 주문처럼.

“언제쯤?”

세아가 물었다. 이번에는 자신의 질문을 정말로 하고 싶었다.

“한 달 정도. 아마도 4주 후쯤이 될 것 같아요.”

한 달. 28일. 672시간. 40,320분.

그 시간 동안 무엇을 할 것인가?

세아는 그것을 생각할 수 없었다. 그녀의 뇌는 마치 컴퓨터 같아서, 한 가지 프로그램만 돌릴 수 있는 상태였다. 그것은 법정 재생 프로그램. 그녀의 의식은 계속 법정으로 돌아갔다. 증인석으로. 강리우의 눈으로. 판사의 얼굴로.

한 달은 너무 길었다.

그리고 동시에 너무 짧았다.

## 3부: 빛의 변화

법원 건물을 나왔을 때, 서울의 햇빛이 세아의 얼굴을 비쳤다.

그 빛은 따뜻했다. 하지만 세아는 그 따뜻함을 느낄 수 없었다. 마치 유리벽을 통해 햇빛을 보는 것처럼, 존재는 인식하지만 감각하지는 못했다.

“여기서 사진 좀 봐.”

해원이가 세아를 불렀다.

세아는 해원이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시선을 옮겼다. 법원 건물의 계단 아래에는 기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카메라들이 반짝반짝했다. 그들은 세아의 모습을 포착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얼굴 조심해.”

해원이가 속삭였다.

세아는 자신의 얼굴을 정상적인 표정으로 조정했다. 아니, 정상적인 표정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래서 그냥 평소의 표정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평소의 자신도 이미 사라져 버렸다. 마치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태에 있는 것처럼.

햇빛이 그녀의 눈을 자극했다.

그 빛은 제주의 햇빛과 다르지 않았다. 같은 태양에서 나온 같은 빛. 파장이 같고, 온도가 같고, 모든 것이 같은 그 빛.

하지만 그것이 비추는 세아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한 시간 전의 자신과. 어제의 자신과. 일 년 전의 자신과.

세아는 손으로 눈을 가렸다. 햇빛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카메라로부터 자신의 눈을 숨기기 위해서였다.

그 순간, 해원이의 손이 세아의 손을 잡았다.

“계단 조심해.”

해원이가 말했다.

세아는 해원이의 안내에 따라 내려갔다. 발 하나, 발 하나. 마치 처음 걸음을 배우는 아이처럼. 주변의 소음—카메라 셔터음, 기자들의 질문, 사람들의 목소리—모든 것이 먼 곳에서 울려 퍼졌다.

## 4부: 돌아가기

법원 건물에서 멀어지자, 세아는 숨을 쉴 수 있었다.

“뭐 먹을래?”

해원이가 물었다.

세아는 대답할 수 없었다. 음식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맛이 무엇인지, 배가 고픈지 배부른지, 그런 것들을 감각할 수 없었다.

“모르겠어.”

“밥이라도 먹자. 너 아직도 먹어야 해. 제대로 먹지 않으면 몸이 망가져.”

해원이가 말했다. 목소리는 다정했지만 단호했다. 마치 엄마처럼. 아니, 세아의 엄마보다 더 엄마 같았다.

“응.”

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가장 쉬운 반응이었다.

해원이는 세아를 한 식당으로 이끌었다. 식당의 문이 열렸을 때, 국물 냄새가 코를 때렸다. 따뜻한 국물, 밥, 반찬들의 냄새. 그것들이 섞여 있는 냄새.

“미역국이 있대. 먹을래?”

“응.”

세아는 말했다.

두 사람이 앉았다. 해원이는 세아를 마주보고 앉았다. 마치 세아를 감시하기 위해서처럼.

미역국이 나왔다. 국그릇은 뜨거웠다. 증기가 피어올랐다. 그 증기 너머로 세아는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흐릿하고 일그러진 자신의 얼굴.

숟가락을 들었다. 국을 떠올렸다. 입에 넣었다. 삼켰다.

음식이 목을 내려갔다. 배에 도달했다. 그것이 뭔가를 채웠다. 공허함의 일부를.

“좋아?”

“응.”

세아가 대답했다.

해원이는 자신의 국을 먹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침묵 속에서 밥을 먹었다. 그것은 편안한 침묵이 아니었다. 그것은 무거운 침묵이었다. 마치 물 속 침묵처럼.

밥을 다 먹은 후, 해원이가 세아의 손을 잡았다.

“한 달만 견디면 돼. 판결이 나면 모든 게 끝나.”

“끝나?”

세아가 물었다.

“응. 법적으로는.”

“법적으로는?”

세아가 다시 물었다.

해원이는 대답하지 못했다.

## 5부: 손의 기억

법원 건물을 나온 후, 세아는 자신의 손을 자주 들여다봤다.

그 손은 평범한 손이었다. 길쭉한 손가락, 깔끔한 손톱, 창백한 피부. 하지만 이제 그 손은 증거였다.

강리우의 손도 그러했다.

세아가 증언할 때, 강리우의 손은 계속 떨렸다. 그것은 두려움의 표현이었을 수도 있고, 죄책감의 표현이었을 수도 있고, 단순한 신경 질환이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손은 뭔가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무언가가 누군가를 죽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 손은 죽이기 위해 뭔가를 했다. 그리고 세아의 손은… 세아의 손은 그것을 봤다. 아니, 더 정확히는.

세아의 손은 그것을 도왔다.

그것을 말할 수 없었다. 법정에서. 변호사 앞에서. 해원이 앞에서도.

그것을 말하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강리우의 판결이 무너지고, 세아의 인생도 무너진다. 그리고 진실은 어디론가 사라진다.

진실은 이것이었다.

일 년 전, 제주도의 한 여관 방. 강리우와 그의 아내 사이의 싸움. 그리고 세아는 그곳에 있었다. 강리우의 아내의 친구로서. 아니, 더 정확히는.

강리우의 아내의 연인으로서.

그리고 그 싸움은 폭력으로 변했다. 강리우가 아내를 때렸다. 세아는 말렸다. 강리우가 세아를 때렸다. 아내가 말렸다.

그리고 그 순간, 어떤 순간에, 강리우의 아내는 떨어졌다.

여관 방의 창문 밖으로. 3층에서.

사고인지 타살인지 자살인지, 누구도 확실하지 않았다.

하지만 세아는 알고 있었다.

그녀의 손이 강리우의 아내를 밀었다. 아니, 밀었다기보다는, 그녀의 손이 아내의 등을 터치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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