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불탄 소녀 – 제113화: 법정 앞의 침묵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Prev113 / 250Next

# 제113화: 법정 앞의 침묵

비행기 내려오는 소리는 세아의 심장박동과 일치했다.

가락지역공항에서 서울 김포공항으로 향하는 항공편. 창밖으로 구름이 흩어지고, 그 아래로 서울의 윤곽이 드러났다. 한강. 빌딩들. 도로들. 모두 촘촘하게 박힌 콘크리트와 유리의 미로. 세아는 그것을 보면서 호흡을 멈췄다. 마치 물속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엄마처럼 산소를 세는 것처럼.

옆자리에는 해원이 앉아 있었다.

해원이가 왔다. 어제 저녁 비행기로. 제주의 숙소까지 와서 세아를 데리러. 그리고 함께 이 비행기에 탔다. 손에는 회색 종이 가방을 들고 있었다. 그 안에 뭔가가 있었다. 세아는 물어보지 않았다. 해원이가 말할 때까지. 그것이 그들 사이의 방식이었다. 침묵 속에서 필요한 것만 전달하는.

“무서워?”

해원이가 물었다. 비행기가 활주로에 내려앉으려고 할 때.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무서움이라는 단어가 충분하지 않았다. 무서움은 너무 작은 감정이었다. 이것은 무서움이 아니라 소멸이었다. 자신이 조금씩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 마치 불꽃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처럼.

“너는 살아있어. 기억해. 넌 죽지 않았어. 그리고 죽을 것도 아니야.”

해원이가 말했다. 세아의 손을 잡으면서.

세아는 해원이의 손을 봤다. 손가락들이 길고, 음악가의 손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 손은 따뜻했다. 강리우의 손처럼 차갑지도 않고, 통제하려는 의도도 없었다. 단순히 존재하는 손. 옆에 있다는 것을 말하는 손.

비행기가 착지했다.


법원 건물은 생각보다 낡아 보였다.

서울 중앙지방법원. 그것이 정확한 이름이었다. 세아는 그 건물 앞에 서 있었다. 해원이와 함께. 그리고 변호사와 함께. 변호사는 이름이 뭐였더라. 김 뭔가. 세아는 어제 저녁에 만났지만 이미 그 이름을 잊어버렸다. 사람의 이름은 기억할 수 없는데, 사건 번호는 기억했다. 2024-고-1847. 그 숫자들이 자신의 뇌에 박혔다. 불꽃처럼.

“긴장하지 마. 너는 피해자야. 너는 무고해.”

변호사가 말했다.

세아는 그 말을 믿으려고 했다. 하지만 신체는 믿지 않았다. 신체는 알고 있었다. 법원이라는 것은 무고함이 있는 곳이 아니라, 죄가 정의되는 곳이라는 것을. 그리고 모든 죄는 누군가의 증언에 의해서만 존재한다는 것. 세아가 입을 열지 않으면, 강리우는 죄가 없는 것이다. 그것이 법이었다.

“강리우가 있을 거야?”

세아가 물었다.

“응. 피고인은 참석할 권리가 있어. 그리고 그의 변호사가 너에게 반박질문을 할 수도 있어.”

변호사가 말했다. 마치 날씨를 말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세아의 가슴이 수축했다. 반박질문. 강리우의 변호사가 자신의 말을 깨뜨리려고 할 것이라는 의미였다. 자신의 증언을 의심할 것이라는 의미였다. 자신이 거짓말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할 것이라는 의미였다.

“너는 할 수 있어.”

해원이가 세아의 손을 다시 잡았다.

세아는 해원이를 봤다. 그 얼굴. 그 눈. 그것들이 얼마나 간절한지. 자신을 믿으려는 그 간절함이 세아에게 전달되었다. 따뜻하게. 아프게.

법정으로 들어갔을 때, 모든 것이 회색이었다.

벽도 회색이고, 바닥도 회색이고, 사람들의 얼굴도 회색으로 보였다. 세아는 증인석 쪽으로 걸어갔다. 발이 이 공간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리고 있었다. 마치 물 위를 걷는 것처럼. 떠있으면서 동시에 빠져들 준비를 하면서.

판사는 나이가 많아 보였다. 60대인가 70대인가. 세아는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었다. 나이는 더 이상 중요한 정보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세아를 봤다는 것이었다. 정확하게. 마치 엄마가 물속에서 물고기를 보듯이.

선서를 했다. 손을 들고. “진실만을 말하겠습니다.” 그 말이 자신의 입에서 나왔을 때, 세아는 자신이 정말로 진실만을 말할 수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진실이 뭔지 자신도 모르니까. 강리우를 사랑했는가? 증오했는가? 둘 다였는가? 그 진실들이 모순되면 어떻게 되는가?

검사가 물었다.

“당신의 이름을 말씀해주시겠어요?”

“나세아입니다.”

세아가 대답했다.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것조차 어색했다. 마치 다른 사람의 이름을 말하는 것처럼.

“언제부터 피고인 강리우와 관계가 있었나요?”

“약… 6개월 전부터요.”

그 단어들이 계속 나왔다.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세아는 자신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그것이 정말로 자신의 목소리인지 의문을 품었다. 이렇게 차갑고, 이렇게 거리감 있고, 이렇게 감정이 없는 목소리가 자신의 것일까?

“피고인이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검사가 계속 물었다.

세아는 생각했다. 영향. 그 단어는 너무 약했다. 영향은 바람 같은 것이었다. 가볍고, 지나가고,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 하지만 강리우는 그게 아니었다. 강리우는 태풍이었다. 모든 것을 부수는 태풍. 아니, 태풍이 아니라… 불이었다. 세아 자신이 타오르게 하는 불.

“그는… 날 태웠어요.”

세아가 말했다.

법정이 조용해졌다. 마치 모든 사람이 숨을 쉬는 것을 멈춘 것처럼.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겠어요?”

검사가 물었다.

세아는 말했다. 모든 것을. 한강. 강리우의 팔. 자신의 팔. 그 순간들. 그리고 그 순간들이 어떻게 자신을 태웠는지. 어떻게 자신이 자신 자신을 잃어버렸는지. 어떻게 자신의 목소리가 자신의 것이 아니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때였다.

강리우가 있었다. 법정의 다른 쪽. 보안원들 옆에. 세아가 말하는 동안 그를 바라보지 않으려고 했지만, 결국 눈이 그쪽으로 향했다. 그의 얼굴. 그의 손. 손가락들이 떨리고 있었다. 깁스가 되어 있었다. 세아가 꺾었던 손. 그 손이 지금 떨리고 있었다.

그것을 보자, 뭔가가 세아 안에서 터졌다.

아니, 터지지 않았다. 오히려 세아가 그 순간에 완전하게 닫혔다. 마치 굴이 패주를 닫는 것처럼. 마치 해녀가 물속에서 숨을 참는 것처럼. 세아는 그 순간에 자신의 감정을 완전히 봉인했다.

“계속해도 될까요?”

검사가 물었다.

세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 없이.

그리고 계속했다. 모든 것을. 강리우의 통제. 그의 손. 그의 약속. 그 모든 거짓들. 그것들이 자신을 어떻게 옭아맸는지. 어떻게 자신이 자신의 선택이 아닌 그의 선택을 따라갔는지.

법정은 조용했다. 너무 조용해서, 세아는 자신의 심장박동이 들렸다. 마치 드럼처럼. 마치 누군가가 그녀의 가슴을 두드리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그때였다. 강리우의 변호사가 일어섰다.

“질문이 있습니다.”

변호사가 말했다. 나이가 든 남자였다. 정장을 입고 있었다. 세아는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자신이 산산조각날 것 같았으니까.

“피고인이 당신을 해치려고 의도했다는 증거가 있습니까?”

세아는 그 질문을 들었다. 그리고 그 질문이 정확히 무엇을 요구하는지 알았다. 그것은 강리우의 의도를 묻는 것이었다. 강리우가 자신을 해치고 싶었는가? 아니면 사랑하고 싶었는가? 둘 다였는가?

“그는… 자신이 나를 사랑한다고 생각했어요.”

세아가 대답했다.

“그렇다면 피고인이 당신에게 해를 끼쳤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세아의 가슴이 멈췄다. 그 질문이 너무 정확했다. 너무 칼날처럼 예리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실이었으니까. 강리우가 자신을 해치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강리우는 자신을 사랑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사랑이 통제였고, 그 통제가 해였다. 그 사이의 거리는 무엇인가? 그 경계는 어디인가?

“그는… 통제했어요. 내 선택을 통제했어요. 내 몸을 통제했어요. 내 목소리를 통제했어요. 그리고 그것이 해였어요.”

세아가 말했다.

변호사가 계속 물었다.

“하지만 당신은 자발적으로 그와 함께했습니다. 맞습니까?”

세아는 대답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도 맞았으니까. 자신이 선택했다. 강리우를 선택했다. 그 통제를 선택했다. 왜냐하면 자신이 선택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선택이라는 것이 자신 같은 사람에게는 없다는 것을. 그래서 자신은 통제를 선택했다. 적어도 그것이 뭔지는 알 수 있었으니까.

“네. 처음에는 자발적이었어요. 하지만 나중에는… 그것도 선택이 아니었어요. 그것은 생존이었어요.”

법정이 다시 조용해졌다.

그 순간에, 세아는 자신이 뭔가를 깨달았다. 그것은 강리우를 용서하는 것이 아니었다. 용서는 언어의 영역에 있었다. 하지만 세아가 깨달은 것은 침묵의 영역에 있었다. 그것은 강리우가 자신만큼 깨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자신만큼 불꽃 속에서 타오르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불꽃이 서로를 태웠다는 것.

변호사는 계속 물었다. 세아의 증언을 깨뜨리려고. 모순을 찾으려고. 하지만 세아는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왜냐하면 모순이 있었으니까. 자신 안에. 그리고 그 모순이 자신을 완전하게 만들었으니까. 불완전한 자신이. 깨어진 자신이. 타오르는 자신이.

“당신이 한강에서 피고인을 밀었습니까?”

변호사가 물었다.

“네. 밀었어요.”

“왜요?”

“살기 위해서요.”

법정은 다시 조용해졌다. 그 침묵이 깊었다. 깊은 물처럼. 세아는 그 침묵 속에서 자신의 어머니를 느껴질 수 있었다. 제주의 물 속에서 산소를 세고 있는 엄마. 그리고 물 위로 올라올 때 내는 울음. 숨비소리. 살아있다는 소리.

강리우를 다시 봤다. 그의 얼굴이 흰색이 되어 있었다. 마치 모든 혈색이 빠진 것처럼. 마치 자신이 이미 죽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그 순간에, 세아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았다. 자신이 말해야 할 것이. 자신이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자신이 버려야 할 것이.

“다른 질문이 있습니까?”

판사가 변호사에게 물었다.

변호사는 고개를 저었다.

“증인의 증언을 마치겠습니다.”

세아는 증인석에서 내려왔다. 발이 땅에 닿을 때, 그것이 가장 진실한 순간이었다. 가장 진짜인 순간. 자신이 다시 자신의 몸 속으로 돌아오는 순간.

해원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법정 뒤. 그 얼굴이 젖어 있었다. 눈물이 흘렀다.

“잘했어. 정말 잘했어.”

해원이가 세아를 안았다.

세아는 해원이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 따뜻함에. 그 생명에. 그 존재에. 그리고 그 순간에, 자신이 정말로 살아있다는 것을 느꼈다. 불꽃이 아니라, 호흡으로. 심장박동으로. 손가락의 따뜻함으로.

강리우는 법정에 남아있었다. 변호사와 함께. 보안원들 옆에. 세아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뒤돌아볼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은 이미 그 불꽃에서 빠져나왔으니까. 아직도 타오르고 있지만, 더 이상 자신을 태우지 않는 불꽃에서.

법정을 나갔다.

서울의 햇빛이 세아의 피부를 두드렸다. 따뜻했다. 생각보다 많이.

“이제 뭘 할 거야?”

해원이가 물었다.

세아는 생각했다. 그 질문을. 그리고 자신이 어떤 대답을 주고 싶은지.

“노래할 거야.”

“뭐?”

“내 노래. 처음으로. 내 이름으로. 내 목소리로.”

해원이는 웃지 않았다. 하지만 그 얼굴에 뭔가가 떠올랐다. 희망이라고 부를 수 있을 그런 것.

“그럼 처음부터 시작해야겠네. 너 이제 자유잖아.”

세아는 그 말을 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정말인지 확인하려고 자신의 손을 봤다. 손가락들이 떨리고 있었다. 약간. 하지만 그 떨림은 두려움의 떨림이 아니었다. 그것은 음악의 떨림이었다. 음악이 몸을 빠져나가려고 하는 떨림.

그리고 그것이, 세아가 느낀 가장 진실한 불꽃이었다.

자신을 태우지 않는 불꽃. 오히려 자신을 밝히는 불꽃. 자신을 따뜻하게 하는 불꽃. 자신이 스스로 켜는 불꽃.


다음 권으로의 복선:

법정을 떠나면서, 세아의 휴대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 하지만 그 번호의 지역번호는 제주였다. 엄마가 아니었다. 도현이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누구였을까?

세아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은 자신의 호흡을 듣는 것이 더 중요했다.

하지만 그 전화는 계속 울렸다. 네 번. 다섯 번. 여섯 번.

그 번호는 세아의 과거였다. 그리고 그 과거가 지금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 법정의 증언, 그리고 새로운 시작

## 제1부: 증언의 무게

법정의 공기는 침묵 같은 소리로 가득 찼다. 세아는 증인석에 앉아 있었고, 판사의 눈빛이 자신을 관통했다. 그 눈빛은 차갑지 않았다. 다만 무거웠다. 진실을 재는 저울처럼.

“증인께서는 지난 3년간 강리우와의 관계에 대해 증언했습니다. 혹시 더 덧붙일 말씀이 있으십니까?”

판사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하지만 그 속에는 뭔가가 숨어 있었다. 세아는 그것을 감지했다. 그것은 연민이었을까? 아니면 단순한 직업적 관심일까?

세아의 손이 증인석의 나무 테두리를 꽉 쥐었다. 목재의 질감이 손바닥에 전해졌다. 차갑고, 단단하고, 실재하는 것. 이 순간, 이 진실한 순간에,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무엇을 말하면 안 되는지,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를 깨달았다.

말해야 할 것. 그것은 모든 것이었다. 강리우가 자신을 어떻게 조종했는지, 어떻게 자신의 목소리를 빼앗았는지, 어떻게 자신을 자신이 아닌 사람으로 만들려 했는지. 그 모든 것들. 한 글자도 빠짐없이. 그것이 법정이 원하는 것이었고, 세아가 버텨낸 3년의 무게를 증명하는 방법이었다.

말하면 안 될 것. 그것은 두려움이었다. 강리우를 변호하는 변호사가 자신에게 퍼붓는 질문들 속에서, 자신의 기억이 맞는지 의심하게 만드는 그 교묘한 논리 속에서, 자신이 느끼는 두려움. 그것을 드러내면 안 된다. 드러내면 자신의 증언이 약해진다. 증언이 약해지면 강리우가 이긴다. 강리우가 이기면 세아는 또 다른 감옥에 갇힌다.

버려야 할 것. 그것은 가장 어려웠다. 그것은 자신이 그 상황에서 할 수 있었던 다른 선택들, 다른 길들에 대한 후회였다. 만약 그때 다르게 행동했다면? 만약 그때 도망쳤다면? 만약 그때 누군가에게 말했다면? 그 모든 ‘만약’들. 그것들을 버려야 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과거였고, 세아는 현재를 살아야 했으니까.

“증인께서 답변하시겠습니까?”

판사가 다시 물었다. 세아는 자신의 목소리를 찾았다. 그것은 떨리고 있었지만, 존재했다.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세아는 말했다. 자신의 진실을 말했다. 자신의 고통을 말했다. 자신의 저항을 말했다. 한 시간을 말했고, 두 시간을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떨림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녀는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는 이미 가장 무서운 것을 경험했으니까. 지금 하는 말은 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변호사가 일어섰다. 검은 정장을 입은, 세어진 머리의 남자. 그의 이름은 최준호였다. 강리우를 변호하는 자였다. 그는 미소를 지었다. 세아는 그 미소를 봤다. 그것은 친절한 미소가 아니었다. 그것은 포식자의 미소였다.

“증인께서 많은 것을 말씀해주셨습니다. 하지만 혹시, 당신이 기억하는 것들이 정확한지 확인해본 적이 있으십니까? 예를 들어, 피고인이 당신을 협박했다고 주장하셨는데, 그 협박의 구체적인 증거가 있으십니까?”

세아의 심장이 빨라졌다. 이 질문이 나올 줄 알고 있었지만, 정작 당하니 뭔가가 흔들렸다. 증거. 그것이 법정의 언어였다. 감정은 법정의 언어가 아니었다.

“네, 있습니다. 녹음 파일이 있습니다.”

“녹음 파일요? 당신이 무단으로 녹음한 파일이 아니십니까?”

“네, 하지만 제 안전을 위해서였습니다.”

“안전을 위해서라는 것이, 매우 주관적인 판단 아닙니까? 혹시 당신이 피고인과의 관계를 종료하고 싶어서, 의도적으로 그의 말을 왜곡해서 녹음하지 않으셨을까요?”

그 순간, 세아는 자신의 몸이 증인석에 남겨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마치 자신의 영혼이 몸을 떠나 천장 위에서 이 모든 상황을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 이것이 심리전이었다. 이것이 법정의 게임이었다. 진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그럴듯하게 들리게 하는 것이었다.

세아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 숨이 그녀의 몸을 다시 모으고 있었다. 영혼이 돌아오고 있었다.

“아니습니다. 저는 제 안전을 위해 녹음했습니다. 그리고 그 녹음은 제가 경험한 현실입니다.”

변호사는 웃음을 터뜨렸다. 아, 그것은 웃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시위였다. 자신이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식이었다.

“증인께서 매우 감정적으로 대응하고 계십니다. 혹시 당신이 피고인과의 관계에 대해 어떤 환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예를 들어, 피고인이 당신을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요?”

그 질문이 맞았을 때, 세아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하지만 그것은 분노의 눈물이었다. 슬픔의 눈물이 아니라.

“저는 사랑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저는 존중을 기대했습니다. 그것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대답이, 증인석에서의 세아의 가장 진실한 순간이었다. 그 순간, 그녀는 자신의 주장을 변호하지 않았다. 그녀는 단지 자신이 누구인지를 말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 제2부: 해방의 순간

“다른 질문이 있으십니까?”

판사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다르게 들렸다. 아니면 세아의 귀가 다르게 들었을까?

변호사는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패배가 아니었다. 그것은 전술이었다. 그는 이미 자신의 목표를 달성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증인을 흔들어 놓는 것. 그것이 목표였다.

“증인의 증언을 마치겠습니다.”

그 말이 나왔을 때, 세아는 자신의 몸이 더 이상 이 자리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증인이 아니었다. 그녀는 피해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세아였다. 단지 세아.

증인석에서 내려오는 순간, 세아의 발이 땅에 닿았을 때, 그것이 가장 진실한 순간이었다. 가장 진짜인 순간. 자신이 다시 자신의 몸 속으로 돌아오는 순간. 마치 오래된 집으로 돌아온 것처럼. 그 집이 낡았고, 상처가 있고, 수리가 필요해 보였지만, 그것은 자신의 집이었다.

법정의 공기가 달랐다. 세아는 이제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공기의 온도, 습도, 냄새. 모두가 그녀의 감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해원이가 있었다. 법정 뒤. 그 얼굴이 젖어 있었다. 눈물이 흘렀다. 해원이는 자신의 누나의 증언을 다 들었다. 그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누나가 겪은 고통을 들으면서, 자신이 할 수 있었던 것들, 하지 못한 것들을 생각하면서.

세아가 다가갔을 때, 해원이는 말했다.

“잘했어. 정말 잘했어.”

그 목소리에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리고 안도감이 있었다. 그리고 뭔가 더. 그것은 세아가 자신이 됐다는 것에 대한 기쁨이었다.

해원이가 세아를 안았다. 그 포옹은 단순한 신체 접촉이 아니었다. 그것은 확인이었다. 세아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의 확인. 세아가 아직도 살아있다는 것의 확인.

세아는 해원이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 따뜻함에. 그 생명에. 그 존재에. 그리고 그 순간에, 자신이 정말로 살아있다는 것을 느꼈다. 불꽃이 아니라, 호흡으로. 심장박동으로. 손가락의 따뜻함으로.

해원이의 심장이 뛰고 있었다. 세아는 그것을 들었다. 그것은 자신의 심장과 같은 박자로 뛰고 있었다. 두 개의 심장이 하나의 리듬으로 박동하고 있었다. 그것은 음악이었다. 음악이 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형태였다.

“고마워. 정말 고마워.”

세아가 속삭였다. 그 말은 해원이를 향한 말이면서, 동시에 자신을 향한 말이었다. 자신을 위해 여기까지 왔다는 자신에게 고마운 것이었다.

강리우는 여전히 법정에 남아있었다. 변호사와 함께. 보안원들 옆에. 그의 표정은 어떨까? 세아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뒤돌아볼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은 이미 그 불꽃에서 빠져나왔으니까. 아직도 타오르고 있지만, 더 이상 자신을 태우지 않는 불꽃에서. 그것이 중요했다. 불꽃이 꺼졌는지 아닌지가 아니라, 자신이 그 불꽃의 노예가 아니라는 것이.

## 제3부: 햇빛과 새로운 가능성

법정을 나갔다. 그 순간, 세아는 자신이 오래 갇혀있던 동굴에서 나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눈이 부셨다. 하지만 그것은 좋은 부심이었다.

서울의 햇빛이 세아의 피부를 두드렸다. 따뜻했다. 생각보다 많이. 햇빛은 차별하지 않는다. 그것은 모든 것에 평등하게 내려온다. 죄인이든 피해자든, 아름다운 것이든 추한 것이든.

세아의 피부가 햇빛을 마시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목마른 대지가 빗물을 마시는 것과 같았다. 그녀의 몸이 점점 따뜻해졌다. 그리고 그 따뜻함은 내부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마치 그녀 안에 또 다른 태양이 있는 것처럼.

해원이가 물었다.

“이제 뭘 할 거야?”

그것은 간단한 질문이었지만, 무거운 질문이었다. 그것은 세아의 미래를 묻는 질문이었다. 그것은 세아가 누가 될 것인지를 묻는 질문이었다.

세아는 생각했다. 그 질문을. 그리고 자신이 어떤 대답을 주고 싶은지. 3년 동안, 그녀는 다른 사람이 되려고 애썼다. 강리우가 원하는 사람이. 강리우가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이. 하지만 그녀는 결국 실패했다. 그리고 그 실패가, 가장 큰 성공이었다.

“노래할 거야.”

세아가 말했다.

“뭐?”

해원이가 놀라서 물었다.

“내 노래. 처음으로. 내 이름으로. 내 목소리로.”

그것은 강리우와 만나기 전부터 세아가 꿈꾸던 것이었다. 그것은 세아 자신이 되는 것이었다. 다른 누군가의 이름으로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자신의 이름으로 부르는 노래.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를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

해원이는 웃지 않았다. 하지만 그 얼굴에 뭔가가 떠올랐다. 희망이라고 부를 수 있을 그런 것. 그것은 작은 불씨였다. 하지만 그것은 충분했다. 왜냐하면 모든 불은 작은 불씨에서 시작되니까.

“그럼 처음부터 시작해야겠네. 너 이제 자유잖아.”

그 말을 들었을 때, 세아의 몸이 떨렸다. 자유. 그것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었다. 그것은 구체적인 경험이었다. 그것은 호흡이었다. 깊고, 자유로운 호흡.

자신의 손을 봤다. 손가락들이 떨리고 있었다. 약간. 하지만 그 떨림은 두려움의 떨림이 아니었다. 그것은 음악의 떨림이었다. 음악이 몸을 빠져나가려고 하는 떨림. 음악이 손가락 끝에서 튀어나오려고 하는 떨림. 마치 몸이 더 이상 음악을 담을 수 없을 정도로 꽉 차있는 것처럼.

그리고 그것이, 세아가 느낀 가장 진실한 불꽃이었다. 자신을 태우지 않는 불꽃. 오히려 자신을 밝히는 불꽃. 자신을 따뜻하게 하는 불꽃. 자신이 스스로 켜는 불꽃.

## 제4부: 과거의 부름

법정을 떠나면서, 세아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 소리는 예리했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려는 경고음 같았다.

세아가 휴대폰을 들었다. 화면에는 모르는 번호가 떴다. 그런데 그 번호의 지역번호는 제주였다. 엄마가 아니었다. 도현이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누구였을까?

세아의 심장이 다시 빨라졌다. 제주. 그곳은 세아의 고향이었다. 그곳은 세아가 떠나온 곳이었다. 그곳은 세아가 되기 전의 그 누군가가 살던 곳이었다.

전화는 계속 울렸다. 울음소리가 공기를 가르고 있었다.

세아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은 자신의 호흡을 듣는 것이 더 중요했다. 자신의 심장박동을 듣는 것이 더 중요했다.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신호들을 듣는 것이 더 중요했다.

하지만 그 전화는 계속 울렸다. 네 번. 다섯 번. 여섯 번. 마치 누군가가 자신을 놓아주지 않으려고 하는 것처럼.

그 번호는 세아의 과거였다. 세아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이 떠나온 삶이었다. 그것은 자신이 되고 싶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그것은 강리우 이전의 또 다른 흑암이었다.

그리고 그 과거가 지금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제주에서. 멀리서. 하지만 분명히 자신을 찾아낸 목소리로.

세아의 손이 떨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음악의 떨림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두려움의 떨림이었다. 자신이 이겨낸 것이 하나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고, 느끼는 떨림.

해원이가

113 / 250

Leave a Comment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