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불탄 소녀 – 제112화: 밥그릇의 무게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Prev112 / 250Next

# 제112화: 밥그릇의 무게

밥을 먹는 것은 세아가 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행동이었다.

스푼을 집었을 때 손가락들이 흔들렸다. 미역국의 국물이 금속 위에서 흔들렸다. 마치 세아의 신경이 국물에 직접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입으로 가져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혀가 뜨거움을 감지했고, 그 감지 자체가 신체의 생존 신호였다. 살아있다는 증거. 아직도.

엄마는 여전히 창밖을 보고 있었다.

제주의 아침 햇빛이 집 벽을 타고 내려가고 있었다. 그 빛이 만드는 그림자의 경계는 명확했다. 이쪽과 저쪽. 밝음과 어둠. 살아있음과 그렇지 않음. 세아는 그 경계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고 싶었다. 자신이 어느 쪽에 서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경찰은 뭐라고 했어?”

세아가 물었다. 국을 한 숟가락 더 마신 후에.

“조사가 완료됐다고. 너는 피해자고, 강리우는 피의자라고. 그의 변호사들이 뭔가를 할 거라고 했지만, 경찰은 증거가 충분하다고 했어.”

엄마가 대답했다. 여전히 창밖을 보면서.

“증거가?”

“너의 증언. 그리고 병원 기록. 그리고…”

엄마가 쉬었다.

“해원이가 녹음한 것. 너의 목소리. 그것들이 다 증거야.”

세아의 손이 멈췄다. 해원이. 그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철렁했다. 서울의 친구. 자신을 구해낸 사람. 아니, 자신이 자신을 구해낼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

“해원이는?”

“전화했어. 어제 저녁에. 경찰에서 녹음 파일을 받았다고. 그리고 너한테 뭔가를 전달하고 싶다고.”

엄마가 드디어 창밖에서 눈을 거두고 세아를 봤다. 그 눈빛은 여전히 평탄했지만, 그 안에는 무언가가 흐르고 있었다. 오래된 강. 깊은 물. 세아는 그 눈 속에서 자신을 봤다. 어린 시절의 자신. 물속에서 엄마를 기다리던 자신. 그리고 지금의 자신. 모두 겹쳐있었다.

“뭐?”

세아가 물었다.

“내일 서울로 가야 한다고. 법원에 가야 한다고. 정식으로 조사 받기 위해.”

세아의 가슴이 또 철렁했다. 법원. 그 단어는 무겁고 차갑고 돌리 같았다. 재판. 증인석. 강리우의 얼굴. 그것들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언제?”

“모레. 아침 비행기.”

엄마가 말했다.

세아는 밥그릇을 내려놨다. 아직도 반 정도 남아있었지만, 입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식도가 거절했다. 혹은 뱃속이 거절했다. 혹은 세아 전체가 거절했다. 모레라는 단어를. 서울이라는 단어를. 법원이라는 단어를.

“내가 말해야 하는 거야? 법원에서?”

세아가 물었다.

“그래. 너의 증언이 필요해. 너의 목소리로. 직접.”

엄마가 대답했다.

“강리우가 있을 때?”

“아마도.”

엄마가 말했다.

세아는 일어났다. 의자를 뒤로 밀면서. 그 소리가 크게 났다. 마루를 긁는 소리. 도현이가 자고 있는 방 쪽으로 향했을 소리. 하지만 도현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여전히 자고 있었다. 혹은 일어났지만 나오지 않았다. 이 대화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하면서.

세아는 부엌의 싱크대 앞으로 갔다. 밥그릇을 들었다. 아직도 따뜻했다. 밥 냄새가 손가락에 붙었다. 그 냄새가 자신을 토하게 만들까봐 두려웠다. 아니, 토할 수 있다면 오히려 나을 것 같았다. 뭔가를 내보내는 것. 그것도 일종의 정화였으니까.

“세아야.”

엄마가 말했다. 그것이 세아의 이름을 부르는 방식이었다. 조용하고, 확실하고, 더 이상 질문이 아닌 선언처럼.

세아는 돌아섰다.

엄마가 일어나고 있었다. 천천히. 해녀의 몸이 무게를 지탱하면서. 그녀는 세아 쪽으로 걸어왔다. 몇 걸음이 아니라, 몇 발자국이 필요했다. 그 사이의 공간이 있었고, 그 공간을 건너는 것 자체가 뭔가의 결단처럼 느껴졌다.

엄마는 세아의 손에서 밥그릇을 집어 들었다.

“먹고 싶지 않으면 먹지 마.”

엄마가 말했다.

“하지만 너는 살아야 해. 법원에 가기 전에. 그리고 법원에서. 그리고 법원 후에. 그 모든 순간에. 너는 음식을 먹어야 하고, 물을 마셔야 하고, 숨을 쉬어야 해. 왜냐하면 넌 살아있으니까. 그리고 그것이 강리우에 대한 너의 최고의 대답이야.”

세아의 눈에서 눈물이 났다. 갑자기. 경고도 없이. 마치 댐이 무너진 것처럼. 아니, 댐이 아니라 제방. 제주의 오래된 제방이 폭우 속에서 무너지는 것처럼.

엄마는 세아를 안았다.

강한 팔로. 해녀의 팔로. 수십 년 동안 차가운 물에서 자신의 몸을 지탱해온 팔로. 그 팔이 세아를 감싸면서 세아는 어린 시절처럼 느껴졌다. 물속에서 나온 엄마를 기다리던 그때처럼. 엄마가 다시 올 거라고 확신했던 그때처럼.

“울어. 많이 울어.”

엄마가 세아의 귀에 가까이 말했다. 제주 사투리로.

“그리고 내일 밤에 다시 밥을 먹어. 그 다음날도. 그리고 법원에 가서 너의 목소리로 말해. 강리우가 뭘 했는지. 그게 전부야. 그게 전부면 돼.”

세아는 엄마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그 어깨는 예상과 달리 부드러웠다. 뼈가 느껴질 정도로. 마치 엄마도 타고 있었던 것처럼.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둘은 부엌에 서 있었다. 식어가고 있는 밥그릇 옆에서. 햇빛이 창문을 통과해 그들의 등을 비추고 있었다. 그 그림자는 하나처럼 보였다. 두 개의 신체지만 하나의 그림자.

밖에서는 제주의 아침이 계속되고 있었다. 새들이 울고, 바람이 불고, 돌담 위의 이끼가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모든 것이 계속 움직였다. 세아의 눈물과 무관하게. 엄마의 팔과 무관하게. 세계는 계속 회전했다.

“도현이는?”

세아가 물었다. 엄마의 어깨에서 얼굴을 들면서.

“아직 자고 있어. 근데 곧 깰 거야. 그리고 넌 그 애한테 뭐라고 말할 거야?”

엄마가 물었다.

“뭐라고 말할까?”

세아가 반문했다.

“그건 너만 알아. 너만이 할 수 있는 말이 있을 거야. 너의 목소리로만 할 수 있는 말.”

엄마가 말했다.

세아는 부엌을 둘러봤다. 밥그릇. 국그릇. 반찬. 엄마의 손이 만든 것들. 자신이 먹지 못한 것들. 그것들이 여기 있었다. 그리고 자신도 여기 있었다. 살아있으면서.

모레 아침 비행기.

그 말이 자신의 뇌에 박혔다. 모레. 그 단어의 무게. 내일은 아니고, 바로 내일도 아니고, 그 다음날. 하루를 더 버텨야 한다는 뜻. 하루를 더 밥을 먹으면서. 하루를 더 도현이를 보면서. 하루를 더 엄마와 함께하면서.

그리고 그 다음날, 자신은 법원에 가야 한다.

강리우의 앞에서. 판사 앞에서.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사용해서. 자신이 당한 것들을 말해야 한다.

세아는 밥그릇을 다시 들었다.

엄마가 손을 놓으면서. 그릇이 세아의 손에 무겁게 남았다. 마치 그 무게가 전부를 말하고 있는 것처럼. 살아있음의 무게. 음식의 무게. 내일의 무게. 모레의 무게.

부엌의 탁자에 다시 앉았다. 밥을 집었다. 작은 스푼으로. 입으로 가져갔다. 씹었다. 미역국과 함께. 소금기와 함께.

그것이 세아가 할 수 있는 가장 용감한 행동이었다.


몇 시간 후, 도현이가 나왔다.

침대에서 일어나는 소리는 들렸지만, 한참 후에야 부엌에 모습을 드러냈다. 얼굴이 부어있었다. 잠을 깊이 잔 사람의 얼굴. 혹은 울다가 잔 사람의 얼굴. 세아는 어느 쪽인지 묻지 않았다.

“밥 먹어.”

엄마가 말했다. 어제와 같은 톤으로.

도현이는 앉았다. 세아의 맞은편에. 엄마는 부엌의 의자에 앉았다. 어제와 같은 거리에서. 함께하되 강요하지 않는 그 거리.

도현이가 밥을 먹기 시작했다. 세아처럼 조심스럽게. 마치 밥이 깨질 수 있는 것처럼. 혹은 자신이 깨질 수 있다는 걸 아는 것처럼.

“형사가 전화했어.”

도현이가 갑자기 말했다. 입에 밥을 넣은 채로.

“뭐라고?”

세아가 물었다.

“모레 아침에 서울로 가야 한다고. 너와 함께.”

도현이가 말했다.

“넌 학교가 있잖아.”

세아가 말했다.

“알아. 근데 엄마가 학교에 전화했대. 일이 있다고. 가족 문제가 있다고. 그래서 나도 가도 된대.”

도현이가 국을 마셨다.

“넌 왜 가야 돼?”

세아가 물었다.

“왜냐하면 넌 혼자가 아니니까.”

도현이가 대답했다. 단순하게. 마치 그것이 자명한 진리인 것처럼.

세아의 가슴이 또 철렁했다. 다른 이유로 이번엔. 도현이의 그 말 때문에. 17살의 남자아이가 한 그 말 때문에.

“고마워.”

세아가 말했다.

“응. 그리고 누나?”

“응?”

“법원에서 뭐라고 말할 거야? 강리우가 있을 때?”

도현이가 물었다. 정확하게. 세아가 엄마에게 물었던 같은 질문을.

세아는 생각했다. 그것은 좋은 질문이었다. 정답이 있는 질문이 아닌, 가장 중요한 질문. 자신이 법원에서 뭐라고 말할 것인가. 강리우를 보면서. 판사를 보면서. 모르는 사람들을 보면서.

진실을 말할 것이다. 자신의 목소리로. 거기에 이상 아무것도 없었다. 강리우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했던 방식. 그것이 사랑이 아니었다. 구원이 아니었다. 통제였다. 그리고 세아는 그것에서 벗어났다. 자신의 팔로.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의 선택으로.

“그냥… 진실을 말할 거야.”

세아가 말했다.

“어떤 진실?”

도현이가 물었다.

“나는 살아있다는 진실. 그리고 내가 그것을 선택했다는 진실. 내가 나를 선택했다는 진실.”

세아가 말했다.

도현이는 웃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눈이 맑아졌다. 마치 무언가가 제자리로 돌아온 것처럼.

엄마는 여전히 창밖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른 뭔가가 그 침묵 속에 있었다. 승인. 아니, 그것보다 더 깊은 것. 이해. 수십 년 동안 물속에서 배운 그 이해.


그날 오후, 세아는 혼자 바닷가로 나갔다.

제주의 바다. 그곳은 엄마의 장소였다. 해녀들이 물속으로 내려가던 곳. 세아는 그곳에 앉았다. 돌 위에. 신발을 벗고. 발가락이 차가운 돌을 느끼도록.

파도가 밀려왔다가 나갔다. 그 리듬. 그것이 음악이라면, 가장 오래된 음악일 것이었다. 인간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던 음악. 그리고 인간이 사라진 후에도 계속될 음악.

세아는 그 음악을 듣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음악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찾고 있었다.

모레, 그 목소리가 법원에서 울려 퍼질 것이다. 판사의 귀에. 강리우의 귀에. 모르는 모든 사람들의 귀에. 자신의 경험을 말하면서. 자신의 선택을 말하면서. 자신의 생존을 말하면서.

그것이 무섭고, 동시에 필요했다.

세아는 손가락을 펼쳤다. 바다를 향해. 하늘을 향해.

다섯 개의 손가락. 다섯 개의 결정. 다섯 개의 이유.

하나는 도현이를 위한 것. 하나는 엄마를 위한 것. 하나는 해원이를 위한 것. 하나는 자신을 위한 것.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마지막 하나는 강리우를 위한 것이었다.

그가 알아야 하는 것. 자신이 한 일의 무게. 그것이 사랑이 아니었다는 것. 그리고 세아가 그것으로부터 벗어났다는 것.

파도가 다시 밀려왔다.

세아는 손가락을 오므렸다. 천천히. 주먹이 되면서. 하지만 완전히 닫지 않았다. 조금의 틈을 남겼다.

그 틈은 호흡이었다. 그 틈은 가능성이었다. 그 틈은 살아있음이었다.

제주의 해는 중천에 있었다. 밝고 따뜻했다. 그것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여기 있었다. 세아를 비추고 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저녁이 되자, 해원이의 전화가 왔다.

세아는 부엌에서 엄마와 함께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파전을 부치고 있었다. 야채를 자르고. 달걀을 푸는 중에. 핸드폰이 울렸다. 서울 번호.

해원이.

세아는 손을 닦고 전화를 받았다.

“안녕?”

해원이의 목소리가 화면을 통해 흘러왔다. 그것은 여전히 따뜻했다. 마치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것처럼.

“안녕.”

세아가 대답했다.

“모레 와?”

“응. 아침 비행기.”

세아가 말했다.

“알았어. 내가 공항에서 데려갈게. 그리고 법원에도 함께 갈게. 알지?”

해원이가 말했다.

“응.”

세아가 대답했다.

그 이상의 말은 필요 없었다. 그들은 이미 충분히 말했다. 세아의 목소리가 녹음으로 증거가 되는 정도까지. 그것으로 족했다.

“세아야?”

해원이가 다시 말했다.

“응?”

“넌 잘할 거야. 법원에서. 너는 이미 가장 어려운 것을 했거든. 너는 이미 살아나왔거든.”

해원이가 말했다.

세아의 눈에 또 눈물이 났다. 이미 여러 번 울었는데, 마치 눈물이 무한정 있는 것처럼.

“고마워.”

세아가 말했다.

“모레 봐.”

해원이가 말했다.

전화가 끊어졌다.

세아는 핸드폰을 내려놨다. 부엌으로 돌아갔다. 파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팬 위에서. 노릇노릇하게 부쳐져가고 있었다. 달걀과 야채가 섞여서. 새로운 것이 되어.

세아는 파전을 뒤집었다. 또 다른 쪽이 부쳐지도록. 이쪽과 저쪽. 한쪽이 끝나면 다른 쪽이 시작되는 그 리듬.

“너 누구랑 얘기했어?”

엄마가 물었다. 배추를 자르면서.

“해원이. 서울에서.”

세아가 대답했다.

“좋은 친구네.”

엄마가 말했다.

“응. 좋은 친구야.”

세아가 동의했다.

그들은 저녁을 준비했다. 말 없이. 하지만 함께. 엄마와 세아. 야채를 자르고, 파전을 부치고, 밥을 담고. 도현이가 나와서 반찬을 놓았다. 그들은 함께 테이블에 앉았다.

밥과 국과 파전과 반찬들. 엄마의 손으로 만들어진 모든 것들.

세아는 먹었다. 이번엔 거부하지 않고. 이번엔 두려움 없이. 마치 이것이 당연한 일인 것처럼.

왜냐하면 그것이 당연했으니까.

살아있는 것은 당연했다.

먹는 것은 당연했다.

내일을 향해 가는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모레, 자신의 목소리로 진실을 말하는 것도 당연할 것이었다.

파전의 맛이 혀에 남았다. 기름진 맛과 야채의 신선함과 계란의 부드러움. 모든 것이 섞여있었다. 마치 세아의 삶처럼. 고통과 희망이 섞여있는 그 맛.

그것도 괜찮았다.

그것도 먹을 수 있었다.

그것도 살아낼 수 있었다.

제주의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창밖의 별들이 하나둘 나타나고 있었다. 어제의 지붕 위 별들처럼. 하지만 더 많았다. 혹은 세아가 더 잘 볼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밥그릇의 무게는 줄어들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 증거와 함께, 내일로

## 첫 번째 부분: 전화

핸드폰의 화면이 밝혀졌을 때, 세아의 심장은 이미 불규칙하게 뛰고 있었다. 해원이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서울에서. 그곳에서 자신을 지켜주려던 사람. 통화 버튼을 누르기 전에 세아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폐 깊숙이. 마치 그 숨이 자신을 지탱해줄 것처럼.

“여보세요?”

해원이의 목소리가 먼저 들렸다. 그것은 낮고, 조심스럽고, 동시에 확고했다. 서울의 어딘가에서—아마도 사무실이거나 집이거나—해원이는 전화를 들고 있었다. 세아는 해원이의 얼굴을 떠올렸다. 짙은 눈썹, 진지한 표정, 그러나 눈빛에 담긴 온기. 변호사 해원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 번도 판단하지 않던 사람.

“응. 나야.”

세아의 목소리는 작았다. 하지만 해원이는 그 목소리 속의 떨림을 알아챘을 것이다. 세아는 확신했다. 해원이는 그런 사람이었다. 말 사이의 침묵을 읽는 사람.

“법원 출석 준비는 됐어?”

해원이가 물었다. 그것은 단순한 질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네가 할 수 있을까?’라는 염려였고, 동시에 ‘넌 할 수 있어’라는 확신이었다. 두 가지가 한 문장에 담겨있었다.

세아는 창밖을 바라봤다. 제주의 밤이 검게 내려앉아 있었다. 멀리 바다의 소리가 들려왔다. 파도가 자갈을 밀어내고, 자갈이 파도에 깎이는 소리. 그것은 마치 자신의 마음과 같았다. 밀려오는 두려움, 밀어내는 결연함, 그 둘이 부딪히며 내는 소리.

“응. 됐어.”

세아가 대답했다.

“문제는… 혼자는 안 될 것 같아.”

이 말을 꺼내는 데는 용기가 필요했다. 자신의 약함을 드러내는 것. 그러나 해원이 앞에서는 그럴 수 있었다. 해원이는 강함을 강요하지 않는 사람이었으니까.

“당연하지.”

해원이의 목소리에는 미소가 있었다. 세아는 그 미소를 들을 수 있었다.

“알았어. 내가 공항에서 데려갈게. 그리고 법원에도 함께 갈게. 알지?”

이 말이 나올 때, 세아의 눈에는 이미 눈물이 맺혀있었다. 그것은 슬픔의 눈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고마움의 눈물이었다. 누군가가 자신의 손을 잡아주겠다는 약속의 무게를 느끼는 눈물.

“응.”

세아의 대답은 한 글자였다. 그 한 글자가 모든 것을 말했다.

침묵이 흘렀다. 그러나 그것은 불편한 침묵이 아니었다. 그것은 필요한 침묵이었다. 두 사람이 이미 해야 할 말들을 모두 했다는 침묵. 녹음된 음성 메시지들. 작성된 보고서들. 수집된 증거들. 모든 것이 이미 말해졌다. 그것들이 법원에서 세아의 목소리가 되어줄 것이다.

“세아야?”

해원이가 다시 말했다.

“응?”

“넌 잘할 거야. 법원에서. 너는 이미 가장 어려운 것을 했거든. 너는 이미 살아나왔거든.”

이 말이 떨어졌을 때, 세아의 눈에서는 눈물이 또 흘러내렸다. 이미 여러 번 울었다. 그 많은 밤들. 베개에 얼굴을 묻고 울던 밤들. 샤워기 소리에 묻혀 울던 날들. 마치 눈물이 무한정 있는 것처럼, 계속 나왔다. 그러나 이 눈물은 달았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울음과는 다른, 어딘가 위로받는 듯한 눈물.

“고마워.”

세아가 겨우 말할 수 있었던 것이 이것이었다.

“모레 봐.”

해원이가 말했다.

“응. 모레 봐.”

전화가 끊어졌다.

## 두 번째 부분: 저녁

세아는 핸드폰을 천천히 내려놨다. 화면이 꺼졌다. 해원이의 목소리도 사라졌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여전히 귀에 맴돌고 있었다. ‘넌 잘할 거야.’

부엌으로 돌아갔다.

파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팬 위에서. 노릇노릇하게 부쳐져가고 있었다. 가열된 기름에서 나는 풍미로운 냄새. 달걀이 익어가며 나는 고소한 향기. 그리고 그 아래 파와 야채의 신선한 향. 모든 냄새가 섞여, 부엌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세아는 파전을 뒤집었다. 주걱으로 조심스럽게 들어올렸다. 한쪽은 이미 황금색으로 변해있었다. 마치 자신의 피부처럼, 햇빛에 의해 서서히 변하는 색. 그 아래쪽, 아직 익지 않은 쪽이 팬과 닿도록 다시 내려놨다.

이쪽이 끝나면 저쪽이 시작되는 그 리듬. 한쪽이 완성되면 다른 쪽이 준비되는 그 순환. 세아는 그것을 보며 생각했다. 자신의 삶도 이와 같을 것이라고. 한쪽이 상처받으면 다른 쪽을 보호하고, 한쪽이 치유되면 다른 쪽도 따라오는 그런 식으로.

“너 누구랑 얘기했어?”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배추를 자르는 칼소리와 함께. 톡, 톡, 톡. 규칙적인 소리. 그것도 하나의 리듬이었다. 일상의 리듬. 정상의 리듬.

“해원이. 서울에서.”

세아가 대답했다.

엄마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세아는 엄마의 등이 조금 펴진 것을 봤다.

“좋은 친구네.”

엄마가 말했다. 그 말 속에는 고마움이 있었다. 자신의 딸을 지켜주는 친구에 대한 고마움.

“응. 정말 좋은 친구야.”

세아가 동의했다.

그들은 저녁을 준비했다. 말 없이. 하지만 함께. 엄마와 딸. 야채를 자르고, 파전을 부치고, 밥을 담고. 도현이—남동생—가 나와서 반찬들을 테이블에 놓았다. 그의 움직임은 자연스러웠다. 마치 이것이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실제로 그런 것이었을지도 몰랐다. 세아가 못 본 많은 밤들이 있었을 것이다. 엄마와 도현이가 함께 밥상을 차리던 밤들.

그들은 테이블에 앉았다.

밥과 국과 파전과 반찬들. 엄마의 손으로 만들어진 모든 것들. 엄마의 손. 세아는 그 손을 바라봤다. 나이든 손. 주름이 많은 손. 그러나 여전히 따뜻한 손. 자신을 만들어낸 손. 자신을 다시 키워내려고 하는 손.

## 세 번째 부분: 음식

세아는 숟가락을 들었다.

국을 떠서 입에 넣었다. 따뜻했다. 혀에 닿는 순간, 온기가 몸 전체로 퍼져나갔다. 미역국. 엄마가 자주 끓이는 국. 세아는 이 국의 맛을 알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다. 그것은 집의 맛이었다.

파전을 집었다. 한 입 베어물었다.

기름진 맛과 야채의 신선함과 계란의 부드러움. 모든 것이 섞여있었다. 마치 세아의 삶처럼. 고통과 희망이 섞여있는 그 맛. 쓴맛과 단맛이 함께하는 맛.

이번엔 거부하지 않았다. 이번엔 두려움 없이. 마치 이것이 당연한 일인 것처럼.

왜냐하면 그것이 당연했으니까.

살아있는 것은 당연했다. 호흡하고, 심장이 뛰고, 눈을 깜빡이는 것. 그 모든 것이 당연했다.

먹는 것은 당연했다. 배고픔을 느끼고, 음식을 맛보고, 영양을 섭취하는 것. 그것도 당연했다.

내일을 향해 가는 것은 당연했다. 오늘이 끝나고 내일이 오는 것. 그 과정 속에서 살아가는 것.

그리고 모레, 자신의 목소리로 진실을 말하는 것도 당연할 것이었다.

엄마는 밥을 먹고 있었다. 천천히. 세아를 자주 바라봤다. 세아가 밥을 먹는지 확인하듯이. 여전히 엄마였다. 그것은 변하지 않았다.

“파전 더 먹을래?”

엄마가 물었다.

“응. 좋아.”

세아가 대답했다.

엄마가 파전을 더 덜어줬다. 세아의 밥그릇에. 따뜻함이 계속 이어졌다. 음식으로서의 따뜻함. 그리고 그것을 담은 엄마의 손으로서의 따뜻함.

도현이가 국을 마시고 있었다. 젊은 남자의 왕성한 식욕으로. 세아는 오빠… 아니, 동생을 봤다. 그는 이 모든 것을 견디며 살아왔다.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엄마의 슬픔을 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밥상에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그도 살아내고 있었다.

## 네 번째 부분: 밤

밥그릇이 비워졌다. 국그릇도. 파전도.

세아가 밥그릇의 무게를 느꼈다. 이제는 가벼운 그릇. 비워진 그릇. 그것이 시작이었다.

창밖의 제주의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어둠이 더욱 진해졌다. 그러나 그 어둠 속에서 별들이 하나둘 나타나고 있었다.

어제의 지붕 위 별들처럼. 세아는 기억했다. 그때 지붕에 올라가 본 별들. 그때는 그 별들을 보며 절망했었다. 자신이 저 별들처럼 멀리 가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고.

그러나 지금 보는 별들은 달랐다. 더 많았다. 혹은 세아가 더 잘 볼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눈이 적응되었을 수도 있고, 마음이 열렸을 수도 있고.

아무튼, 별들은 더 선명했다.

세아는 부엌으로 돌아가 밥그릇을 씻기로 결정했다. 뜨거운 물을 틀었다. 증기가 올라왔다. 손을 그 증기 속에 담갔다. 따뜻했다. 그리고 조금 아팠다. 그러나 그 아픔도 필요했다. 자신이 살아있다는 증거.

그릇을 닦았다. 거품을 내며. 세제의 향기. 레몬 향. 무언가 신선한 것.

물로 헹굴 때, 거품들이 흘러내렸다. 마치 그것이 모든 것을 씻어내는 것 같았다. 모든 오염을. 모든 상처를.

물론 그렇지는 않았다. 상처는 물로 씻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시간으로 아물고, 말로 치유되고, 행동으로 극복된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뜨거운 물 속에서 그렇게 믿을 수 있었다.

밤이 더 깊어졌다.

엄마와 도현이는 이미 자리에 들었다. 세아는 창가에 앉았다. 밤의 제주를 바라보며.

모레다. 법원에 가는 날은 모레다.

그곳에서 자신의 목소리로 진실을 말해야 한다. 그것이 가장 어려운 것일 수도, 가장 쉬운 것일 수도 있다. 이미 가장 어려운 것을 했으니까. 이미 살아나왔으니까.

해원이의 말이 맞았다.

세아는 손을 펼쳤다. 그 손을 바라봤다. 엄마의 손과는 다른, 젊은 손. 그러나 마찬가지로 따뜻한 손. 자신을 지탱할 수 있는 손. 자신을 도울 수 있는 손.

별빛이 창을 통해 들어왔다. 그것이 세아의 손을 비췄다.

## 다섯 번째 부분: 결정

밤 11시. 세아는 여전히 창가에 앉아있었다.

생각하고 있었다. 법원에서의 자신을 상상해보며. 증인석에 앉은 자신. 손을 들고 맹세하는 자신. ‘진실만을 말하겠습니다’라고 다짐하는 자신.

그리고 그 말을 이어가는 자신. 모든 것을 말하는 자신.

그것이 가능할까?

그렇다. 이미 증명되었다. 녹음을 통해. 보고서를 통해. 그리고 매일 밤 자신의 마음속에서 반복되는 그 말들을 통해.

세아는 일어났다.

핸드폰을 들었다. 해원이에게 메시지를 보내기로 했다. 아직 자고 있을 수도 있지만.

‘고마워. 정말.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아. 모레 봐.’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침대로 향했다. 엄마의 옆에. 도현이의 옆에.

그 밤, 세아는 꿈을 꾸지 않았다. 아니, 꿈을 꾸었지만 깨어나지 않았다. 그것은 그만큼 깊은 잠이었다. 평온한 잠이었다.

처음으로 그런 잠이었다.

아침이 왔을 때, 햇빛이 창을 통해 들어왔을 때, 세아는 눈을 떴다. 그리고 미소 지었다.

작은 미소. 그러나 확실한 미소.

그것이 시작이었다.

그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파전의 맛이 혀에 남았다. 기름진 맛과 야채의 신선함과 계란의 부드러움. 모든 것이 섞여있었다. 마치 세아의 삶처럼. 고통과 희망이 섞여있는 그 맛.

그것도 괜찮았다.

그것도 먹을 수 있었다.

그것도 살아낼 수 있었다.

제주의 새로운 밤이 내려앉고 있었다. 창밖의 별들이 여전히 반짝이고 있었다. 어제의 지붕 위 별들처럼. 하지만 더 많았다. 혹은 세아가 더 잘 볼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모레가 올 것이다.

그리고 세아는 준비되어 있을 것이다.

**끝**

112 / 250

Leave a Comment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