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11화: 엄마의 침묵
아침은 한국식으로 찾아왔다. 밥 냄새로.
세아가 눈을 떴을 때 부엌에서 국 끓이는 소리가 들렸다. 냄비가 팔팔 끓고, 숟가락이 그것을 저으면서 나는 금속음. 그리고 그 아래로 제주의 아침 새소리. 세아는 침대에 누운 채로 그 소리들을 듣고 있었다. 고막 너머로 그것들이 스며들었다. 마치 음악처럼.
어제 밤은 끝났다. 지붕 위의 별들과 도현이의 손가락과 세아의 마지막 진실들. 그 모든 것이 이제 과거였다. 하지만 과거는 현재를 만든다. 세아가 침대에서 일어나며 깨달은 것은 그것이었다. 어제의 선택이 오늘의 신체를 결정한다는 것. 어제의 말들이 오늘의 공기를 만든다는 것.
세아는 옷을 입었다. 제주에서 가져온 회색 니트. 손이 소매를 통과할 때 약간의 저항이 있었다. 마치 옷이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는 것처럼. 아니면 세아 자신이 옷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거부하고 있는 것처럼.
부엌으로 나갔다.
엄마가 있었다. 검은 머리에 흰 줄이 섞여 있는 그 머리. 주름이 깊게 팬 얼굴. 하지만 손은 여전히 강했다. 해녀의 손. 물속에서 산소를 빼앗기고도 살아남은 손. 그 손들이 국을 끓이고 있었다.
“밥 먹어.”
엄마가 말했다. 제주 사투리로. 세아의 귀에 가장 자연스러운 언어로.
“응.”
세아가 대답했다.
테이블에 밥과 국과 반찬들이 놓였다. 미역국. 무염 젓갈. 제주 보리밥. 엄마의 손이 닿은 것들. 세아는 앉았다. 도현이는 아직 자고 있었다. 일어나지 않았다. 아마도 어제 밤의 감정이 피곤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것은 정상이었다. 감정이 에너지를 소모한다는 것은 과학이다.
엄마는 세아의 맞은편에 앉지 않았다. 부엌의 의자에 앉았다. 세아와 거리를 두고. 하지만 같은 공간에서. 그것이 엄마의 방식이었다. 함께하되 강요하지 않는 것. 존재하되 침입하지 않는 것.
“경찰이 전화했어.”
엄마가 말했다.
“어제 저녁에.”
세아의 손이 숟가락을 멈췄다.
“뭐라고?”
세아가 물었다.
“너한테 더 필요한 게 없다고. 조사가 끝났다고. 너는 자유라고.”
엄마가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평탄했다. 마치 날씨를 말하는 것처럼. 마치 이것이 단순한 정보 전달일 뿐이라는 것처럼.
“강리우는?”
세아가 물었다.
“병원에 있어. 손이 부러졌대. 의식은 있지만, 말을 잘 안 한대. 담당 경찰이 그렇게 말했어.”
세아는 국을 마셨다. 미역국. 짠맛이 혀를 휩쓸었다. 생각보다 짙었다. 혹은 세아의 혀가 이미 너무 많은 것을 맛본 후라 모든 것이 과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엄마가… 뭐라고 생각해?”
세아가 물었다.
엄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창밖을 봤다. 제주의 아침. 햇빛이 집 주변의 돌담 위에 떨어지고 있었다. 그 빛이 가장 오래된 것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냈다. 돌의 갈라진 곳들. 이끼가 자란 부분들. 시간의 흔적들.
“내가 해녀였을 때.”
엄마가 말했다.
“물속에서는 시간이 없었어. 산소가 떨어지는 그 시간만 있었어. 다른 건 없었어. 어제나 내일은 없고. 지금 이 순간의 산소만 있고. 그래서 물에서 나올 때, 나는 살아있다는 걸 알았어.”
세아는 엄마를 봤다.
“그래서…?”
세아가 물었다.
“그래서 넌 살았어. 너는 물에서 나왔어. 강리우라는 물에서. 그리고 이제 넌 숨을 쉬고 있어. 그게 전부야. 그게 중요한 거야.”
엄마의 목소리는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세아는 그 목소리 아래에 있는 것을 들었다. 수십 년의 침묵. 수십 년의 이해. 딸이 무엇을 겪었는지 묻지 않아도 아는 엄마의 감각. 물속에서 배운 그것. 말 없이 이해하는 방식.
“난 죽으려고 했어.”
세아가 말했다.
엄마는 움직이지 않았다.
“한강에서. 강리우랑 함께.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했어. 근데… 그 순간에 뭔가가 바뀌었어. 그의 손이 떨렸어. 그리고 난 그 떨림을 느꼈어. 그리고 그 떨림이 나한테 물었어. ‘넌 정말 이걸 원해?’”
세아가 계속했다.
“그리고 난 아니라고 했어. 내 몸이 아니라고 했어. 내 팔이 아니라고 했어. 내가 강리우의 팔을 꺾었을 때, 그건 거절이었어. 거절이 폭력으로 나온 거고.”
“그래. 그게 맞아.”
엄마가 말했다.
“그게… 맞아?”
세아가 반복했다. 마치 자신이 제대로 들은 건지 확인하려는 것처럼.
“너는 살기로 선택했어. 그게 맞는 거야.”
엄마가 말했다.
그리고 그것이 전부였다. 엄마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침묵 속에 모든 것이 있었다. 용서. 이해.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수용. 엄마는 세아의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질문 없이. 판단 없이. 단지 딸이 살았다는 사실만으로.
세아는 밥을 먹었다. 한 숟가락. 그리고 또 한 숟가락. 기계적으로. 하지만 처음으로 맛이 느껴졌다. 보리의 거친 식감. 밥알 하나하나의 온기. 이것이 살아있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호흡이었다.
“엄마.”
세아가 말했다.
“응?”
“내가 왜 이렇게 됐을까. 왜 나는 계속 누군가를 위해서만 사는 걸까. 왜 내 목소리를 내 것으로 못 쓰는 걸까.”
엄마는 한참 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창밖을 봤다. 제주의 아침이 더 밝아지고 있었다. 햇빛이 더 따뜻해지고 있었다.
“그건…”
엄마가 마침내 말했다.
“우리 엄마가 그랬어. 그리고 그 엄마도 그랬어. 그리고…”
엄마가 멈췄다.
“그리고 난 넌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어.”
세아의 눈에 무언가가 맺혔다. 눈물이 아니었다. 혹은 눈물이었지만, 그것은 슬픔의 눈물이 아니었다. 깨달음의 눈물이었다. 자신이 누군가의 역사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달은 눈물이었다. 그리고 그 역사를 끊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눈물이었다.
“엄마는 어떻게 했어?”
세아가 물었다.
“물었어. 그냥… 살았어. 하루하루. 숨비소리를 냈어. 그게 내 목소리였어.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어.”
엄마가 말했다.
“근데 넌 달라. 넌 글을 쓸 수 있어. 음악을 쓸 수 있어. 그게 더 크고 더 멀리 간다는 거 아니냐. 그러니까… 써. 자기 이름으로. 자기 목소리로.”
부엌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식기 소리도 없었다. 공기가 정지했다. 마치 이 순간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우주가 알고 있는 것처럼.
세아는 밥을 먹었다. 계속 먹었다. 한 그릇을 다 마칠 때까지. 엄마는 그것을 봤다. 딸이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모습을. 딸이 처음으로 자신의 몸을 신뢰하는 모습을.
“도현이는?”
엄마가 물었다.
“지붕에서 얘기했어. 모든 걸.”
세아가 말했다.
“그리고?”
“그리고 도현이는… 날 자랑스러워하데.”
엄마의 얼굴에 뭔가가 지나갔다. 빠르게. 마치 구름이 햇빛을 가리는 것처럼. 그것이 감정이었다. 어머니의 감정이었다. 자신의 자식이 자신의 자식을 자랑스러워한다는 것을 들었을 때의 그 감정.
“그래. 그럼 됐어.”
엄마가 말했다.
식탁에는 이제 고요함만 남았다. 아침의 고요함. 그것은 결코 무섭지 않았다. 그것은 새로운 것의 시작이었다. 세아가 처음으로 자신을 위한 침묵이었다.
도현이가 나타났다. 머리를 헝클어뜨린 채로. 눈이 부은 상태로. 어제 밤의 울음이 아침에도 남아 있었다.
“밥 먹어.”
엄마가 도현이에게도 말했다.
도현이는 테이블에 앉았다. 세아 옆에. 가까운 거리에서. 그들은 함께 먹었다. 엄마의 밥을. 엄마의 국을. 엄마의 반찬을. 그것은 매우 평범한 장면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중요한 장면이었다. 평범함이 돌아온다는 것. 일상이 재개된다는 것. 그것이 살아남은 사람들의 축제였다.
“누나.”
도현이가 입을 열었다.
“응?”
“내일 뭐 해?”
세아는 생각했다. 내일이 뭐냐는 질문. 그것은 매우 구체적인 질문이었다. 앞으로 뭘 할 거냐는 게 아니라, 내일은 뭐 할 거냐는 질문. 하루하루를 묻는 질문. 엄마처럼. 숨비소리처럼. 다음 호흡을 묻는 질문.
“모르겠어. 근데… 제주에 있을 것 같아. 좀 더.”
세아가 말했다.
“얼마나?”
“모르겠어. 필요할 때까지. 필요한 만큼.”
도현이는 밥을 먹었다. 그리고 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그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대답이라는 것처럼.
“그럼 나도 있을게.”
도현이가 말했다.
“학교는?”
“휴학할 거야. 엄마한테 얘기 안 했지만, 휴학할 거야. 그리고 여기서 좀 있다가 가. 누나가 필요할 때까지.”
세아는 도현이를 봤다. 이 17살의 남자아이를 봤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가 이제 더 이상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그가 선택을 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선택이 세아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고마워.”
세아가 말했다.
“나도.”
그들은 계속 먹었다. 말 없이. 하지만 말 없이도 이해하는 방식으로. 엄마는 계속 부엌에서 움직였다. 세아의 밥이 없어지면 더 담아주고. 도현이의 국이 식으면 다시 덥혀 주고. 그것이 사랑이었다. 행동으로 표현되는 사랑.
식사가 끝났다. 세아와 도현이는 그릇을 정리했다. 함께. 엄마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정상이었다. 가족이 함께하는 것이 정상이었다.
세아는 안방에 들어갔다. 그리고 침대에 누웠다. 아직 아침인데. 아직 해는 높은데. 하지만 피로가 있었다. 깊은 피로. 몸의 피로가 아니라 영혼의 피로. 그것은 자고 있어야 했다. 치료되어야 했다.
눈을 감았다.
그 순간, 휴대전화가 울렸다.
세아는 눈을 떴다. 휴대전화를 들었다. 서울 번호였다. 하지만 알려지지 않은 번호였다. 세아는 한 번 받지 않았다. 그리고 울음이 멈췄다.
그리고 문자가 왔다.
“이건 서울 경찰서입니다. 피해자 나세아님께 안내입니다. 강리우 피의자의 정신 진단 결과가 나왔습니다. 정신 질환 진단 등급 B. 감형 가능성이 있습니다. 추가 증거나 증언이 필요하신 경우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세아는 그 문자를 읽었다. 한 번. 그리고 또 한 번. 감형 가능성. 그 단어가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 강리우가 정신 질환이 있다고? 그것이 그가 한 것들을 정당화하는가? 그것이 자신의 고통을 덜어주는가?
세아의 손이 떨렸다. 처음으로. 강리우의 손처럼. 아니, 그보다 더 심했다. 마치 자신의 몸이 거부하고 있는 것처럼.
도현이가 들어왔다.
“누나?”
“응?”
“누나 괜찮아?”
세아는 휴대전화를 도현이에게 보였다. 도현이는 그것을 읽었다. 그리고 얼굴이 변했다.
“이게…”
도현이가 말했다.
“응. 감형 가능성이 있대. 정신 질환 때문에.”
“그게…”
도현이는 말을 끝내지 못했다. 대신 세아 옆에 앉았다. 그리고 손을 잡았다. 세아의 손을.
“너는 뭐 할 거야?”
도현이가 물었다.
세아는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여전히 열려 있는 질문이기 때문이었다. 이 순간, 이 정보 속에서, 세아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무엇을 원하는가?
“모르겠어.”
세아가 말했다.
“근데…”
도현이가 말했다.
“근데?”
“근데 이제 넌 혼자가 아니야. 이제 넌 이 결정을 혼자 안 해도 돼.”
세아는 도현이를 봤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그것이 도움이라는 것이었다. 그것이 가족이라는 것이었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창밖에서 제주의 햇빛이 계속 내려왔다. 그것은 무관하게 내려왔다. 누군가의 고통과 관계없이. 누군가의 선택과 관계없이. 그저 내려왔다. 매일 아침처럼. 매일 밤처럼.
그것이 자연이었다. 그리고 세아는 이제 깨달았다. 자신도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자신도 계속 변한다는 것을. 자신도 계속 흐른다는 것을.
“엄마한테 가자.”
세아가 말했다.
“응?”
“엄마한테 이 얘기 하자. 함께. 가족이 함께.”
도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일어났다. 그리고 부엌으로 갔다. 엄마가 있는 곳으로. 그곳이 지금 세아의 집이었다. 그곳이 지금 세아의 안전이었다.
햇빛이 주방을 밝히고 있었다. 아침의 햇빛. 모든 것을 드러내는 빛. 그리고 세아는 그 빛 속에서 걸어갔다. 도현이와 함께. 엄마를 향해. 미래를 향해.
이것이 다음이었다. 이것이 내일이었다. 이것이 살아남은 자들의 삶이었다.
제111화 끝
# 제111화: 균열
## 1부 – 흔들림
화면이 밝아졌다 꺼졌다 다시 밝아졌다.
세아의 눈이 같은 속도로 반복했다. 한 번. 그리고 또 한 번. 마치 누군가가 손가락으로 스위치를 누르고 있는 것처럼. 하지만 손가락은 없었다. 있는 것은 오직 글자들뿐이었다.
화면 위의 글자들.
**감형 가능성.**
그 단어가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 마치 화면이 그 부분을 더 크게 표시하고 있는 것처럼. 아니, 그게 아니었다. 세아의 눈이 그곳으로 자꾸만 돌아가는 것이었다. 자석에 끌리듯이. 혐오감에 끌리듯이.
*감형 가능성.*
그 뒤에 붙은 이유. 강리우의 정신 질환. 몇 년 전 진단받은 조울증. 복용 중인 약물. 심리 평가 보고서. 전문가의 의견.
세아는 손가락으로 화면을 내렸다. 더 많은 글자들. 더 많은 이유들. 더 많은 변명들.
아니다. 변명이 아니라 ‘사유’다. 법적 사유. 정당한 사유.
그 생각이 그녀의 가슴을 찢어버릴 것 같았다.
강리우가 정신 질환이 있다고? 그것이 그가 한 것들을 정당화하는가? 그것이 자신의 고통을 덜어주는가? 그것이 엄마가 입은 상처를 녹아내리게 하는가? 그것이 자신이 매일 밤 꾸는 악몽을 없애주는가?
세아는 휴대전화를 내려놨다. 하지만 화면은 여전히 밝혀있었다. 여전히 그 글자들을 반사하고 있었다. 마치 그것들이 휴대전화의 일부가 되어버린 것처럼. 마치 그 글자들이 영구적으로 새겨져있는 것처럼.
손이 떨렸다.
세아는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마치 그것이 다른 누군가의 손인 것처럼. 손가락들이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마치 전기가 흐르고 있는 것처럼. 아니, 마치 그녀의 몸이 거부하고 있는 것처럼. 거부하고 있었다. 이 정보를. 이 뉴스를. 이 현실을.
*강리우의 손도 이렇게 떨렸을까?*
그 생각이 들자 손이 더 심하게 떨렸다.
세아는 손을 주먹으로 쥐었다. 하지만 그것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주먹 안에서 손가락들이 계속 떨렸다. 마치 자신의 의지를 거역하고 있는 것처럼.
문이 열렸다.
“누나?”
도현이의 목소리였다. 세아는 고개를 들었다. 동생이 방문간에 서있었다. 얼굴에는 걱정이 떠있었다. 이미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표정.
“응?”
세아의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목소리인 것 같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가 그녀의 성대를 통해 말하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
“누나 괜찮아?”
도현이가 다가왔다. 고등학생인 그의 얼굴에는 아직도 어린티가 남아있었다. 18살의 얼굴이지만, 이 순간에는 훨씬 더 어려 보였다. 아니면 세아가 훨씬 더 늙어 보이는 것인지도.
세아는 말 대신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화면을 향하게 해서. 글자들을 향하게 해서.
도현이는 화면을 읽기 시작했다. 세아는 그의 얼굴 변화를 관찰했다.
먼저 눈이 커졌다.
그 다음 눈썹이 내려갔다.
그 다음 입이 벌어졌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그의 얼굴이 무너져내렸다. 마치 누군가가 얼굴 안에서 구조물을 제거한 것처럼.
“이게…”
도현이가 말했다. 하지만 문장을 완성하지 못했다.
“응. 감형 가능성이 있대. 정신 질환 때문에.”
세아가 대신 말했다. 마치 그 문장을 여러 번 연습했던 것처럼. 마치 그 문장이 자신의 입에 맞춰져있는 것처럼.
“그게…”
도현이가 다시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역시 문장을 완성하지 못했다. 아마도 말할 수 있는 말이 없었던 것 같다. 이 상황에서. 이 순간에.
대신 도현이는 세아 옆에 앉았다. 침대가 삐걱거렸다. 그리고 그가 손을 내밀었다. 세아의 손을.
손가락이 손가락 위에 놓였다. 따뜻한 손이 떨리는 손을 감쌌다.
“너는 뭐 할 거야?”
도현이가 물었다.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하지만 그 아래에는 진동이 있었다. 분노의 진동. 아니면 슬픔의 진동. 아마도 둘 다.
세아는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여전히 열려 있는 질문이기 때문이었다. 이 순간, 이 정보 속에서, 세아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무엇을 원하는가?
그 세 가지가 모두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할 수 있는 것: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수용한다. 받아들인다. 살아간다.
해야 하는 것: 이의를 제기한다. 법정에 선다. 싸운다. 저항한다.
원하는 것: 시간을 돌린다. 강리우가 존재하지 않던 시간으로. 엄마가 다치지 않던 시간으로. 자신이 이렇게 되지 않던 시간으로.
“모르겠어.”
세아가 말했다. 그리고 그것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침묵이 흘렀다. 침대 위의 침묵. 방 안의 침묵. 그리고 그 침묵 아래에는 제주 바다의 소리가 있었다. 먼 곳에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 끊임없이 밀려오고 빠져나가는 소리.
“근데…”
도현이가 말했다.
“근데?”
“근데 이제 넌 혼자가 아니야. 이제 넌 이 결정을 혼자 안 해도 돼.”
세아는 도현이를 봤다. 정면으로. 그의 눈을 마주쳤다. 그 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봤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그것이 도움이라는 것을. 그것이 가족이라는 것을.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겠어.”
세아가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이 처음으로 진정성 있게 들렸다.
## 2부 – 빛
창밖을 보니 제주의 햇빛이 내려오고 있었다.
정오의 햇빛. 날카롭고 명확한 빛. 그림자를 최소화하는 빛. 모든 것을 드러내는 빛.
세아는 그 빛을 바라봤다. 오래 바라봤다.
햇빛은 무관했다. 누군가의 고통과 관계없이 내려왔다. 누군가의 선택과 관계없이 내려왔다. 누군가의 울음과 관계없이 내려왔다. 그저 내려왔다. 매일 아침처럼. 매일 밤처럼.
그것이 자연이었다.
그리고 세아는 이제 깨달았다.
자신도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자신도 계속 변한다는 것을. 자신도 계속 흐른다는 것을. 자신도 멈출 수 없다는 것을.
마치 강리우도 자신의 질환 속에서 계속 흐르고 있는 것처럼.
그 생각이 들자 다시 손이 떨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이번에는 도현이의 손이 그것을 감싸고 있었다.
“엄마한테 가자.”
세아가 말했다.
“응?”
“엄마한테 이 얘기 하자. 함께. 가족이 함께.”
도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 없이. 하지만 명확하게.
그들은 일어났다. 침대에서 일어났다. 세아의 방에서 나갔다. 복도를 걸어갔다. 그 복도에는 사진들이 붙어있었다. 예전 사진들. 엄마가 웃고 있던 시절의 사진들. 아직 사건이 일어나기 전의 사진들.
세아는 그 사진들을 지나갔다. 보지 않으면서도 느꼈다. 그 사진들 속의 엄마의 눈을.
## 3부 – 함께
부엌에 도착했을 때 엄마는 밥을 하고 있었다.
무릎에 목발을 기대고 서있었다. 여전히 불편했다. 여전히 아팠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밥을 하고 있었다. 매일처럼.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아니다. 마치 그 모든 일을 받아들이고도 계속 밥을 하고 있는 것처럼.
“엄마.”
세아가 말했다.
엄마가 돌아봤다. 냄비를 들고 있던 손을 멈추고.
“응, 뭐야?”
엄마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힘이 있었다. 그 목소리가 세아를 다시 안정시켰다. 조금. 조금만.
“이거… 우리 함께 얘기해야 할 거 있어.”
세아가 휴대전화를 들었다. 엄마에게 보였다. 화면을 향하게 해서.
엄마는 읽었다.
세아는 엄마의 얼굴을 봤다. 엄마의 얼굴이 변했다. 하지만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았다. 마치 그 순간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것처럼.
“알았어.”
엄마가 말했다.
그리고 냄비를 내려놨다. 불을 껐다. 그리고 세아와 도현이 옆에 앉았다.
“함께 결정하자.”
엄마가 말했다.
“우리 가족이.”
그 말이 나오자 세아의 눈에서 물이 흘렀다. 눈물이 아니었다. 아니면 눈물이었다.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그것이 흐르고 있었고, 세아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햇빛이 주방을 밝히고 있었다. 정오의 햇빛. 모든 것을 드러내는 빛.
그 빛 속에서 세아는 앉아있었다. 엄마와 도현이 사이에서. 가족 사이에서.
그리고 계속 흐르고 있었다. 강처럼. 멈출 수 없게. 하지만 혼자가 아니게.
이것이 다음이었다.
이것이 내일이었다.
이것이 살아남은 자들의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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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1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