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08화: 불이 꺼지는 방식
밤이 무엇인지 세아는 다시 배워야 했다.
제주의 밤은 서울의 밤과 달랐다. 서울의 밤은 네온사인과 형광등으로 채워져 있었다. 24시간 편의점의 하얀 불빛. 택시의 노란 불빛. 강남역 지하 8층의 인공 햇빛. 그 모든 것들이 어둠을 거부했다. 하지만 제주의 밤은 달랐다. 제주의 밤은 어둠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 별을 품고 있었다.
세아는 집의 지붕 위에 누워 있었다.
도현이가 엄마를 안심시키고 자기 방으로 들어간 후, 세아는 가만히 일어나 안방을 나왔다. 엄마는 이미 자고 있었다. 얼굴이 평온했다. 마치 오랜 시간 품고 있던 무언가가 내려놓아진 것처럼. 그 모습을 본 세아는 주방을 거쳐 대청마루로 나갔고, 그리고 지붕으로 올라갔다. 손잡이를 잡고. 조심스럽게. 마치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고 싶지 않은 것처럼.
밤하늘 위의 별들이 보였다. 정말 많은 별들. 서울에서는 볼 수 없는 그런 별들. 세아가 손가락으로 하나하나를 세어보려고 해도 셀 수 없는 그런 많은 별들. 그들은 반짝였다. 각자의 리듬으로. 마치 누군가 극도로 미세하고 정밀한 손가락으로 현을 튕기고 있는 것처럼.
세아의 가슴이 아팠다.
정확하게 어디가 아픈지는 말할 수 없었다. 심장인가. 폐인가. 아니면 그보다 더 깊은 곳인가. 마치 몸 전체가 한 개의 상처인 것처럼. 마치 세아라는 존재 자체가 열린 상처인 것처럼. 그리고 밤의 바람이 그 상처를 스쳐 지나갈 때마다, 세아는 움직이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어야 했다.
도현이의 얼굴을 떠올렸다.
도현이가 세아의 말을 듣고 있었을 때의 그 표정. 그 표정이 계속 세아의 뇌리에 박혀 있었다. 도현이는 화난 것이 아니었다. 도현이는 상처받은 것도 아니었다. 도현이는 무너지고 있었다. 마치 오래 동안 버텨온 벽이 한순간에 내려앉는 것처럼. 마치 도현이가 스스로 세워온 모든 것이 실은 한지처럼 얇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처럼.
“누나는 뭘 하는 사람인지. 누나는 뭘 원하는 건지. 누나는 뭘 할 수 있는 건지.”
세아가 자신의 말을 다시 되짚었다. 도현이가 대답하기 전에, 세아 자신이 대답해야 했다. 그것이 맞는 순서였다. 누군가를 상처 주고 난 후 그 누군가가 아프다고 말하기를 기다리는 것은 너무 비겁했다.
세아는 하늘에서 눈을 내렸다. 집 주변의 풍경이 보였다. 이웃의 집들. 낡은 담장들. 그리고 그 사이로 보이는 제주의 바다. 검은색의 바다. 움직이고 있지만 소리가 없는 그런 바다.
엄마가 물속에 들어가던 모습이 떠올랐다.
세아가 어렸을 때. 엄마가 해녀로 일하던 그때. 세아는 해변에서 엄마를 기다렸다. 엄마가 검은 잠수복을 입고 물 위에 올라올 때까지. 그리고 엄마가 올라올 때마다, 엄마는 숨비소리를 냈다. “흐으으으악—” 그 소리. 그것은 단순한 숨 쉬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살아있다는 소리였다. 물속의 어둠에서 나와 공기를 마시는 순간의 그 소리.
세아가 그 소리를 배웠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세아는 그 소리를 노래 속에 넣고 있었다. 매번. 모든 노래에.
“누나?”
도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세아가 몸을 일으켰다. 지붕 위에서. 조심스럽게. 도현이가 지붕 아래에서 올려다보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도현이의 얼굴이 희미하게 보였다. 도현이의 눈이 보였다. 그 눈은 자고 있지 않았다.
“뭐 해?”
도현이가 물었다.
“별 봐.”
세아가 대답했다.
“추워?”
도현이가 물었다.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추운지 아닌지, 세아는 알 수 없었다. 아마도 추웠을 것이다. 제주의 밤 바람은 차가웠다. 하지만 세아의 몸은 추위에 반응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세아의 신경이 꺼져 있는 것처럼.
“올라와.”
세아가 말했다.
도현이는 망설이지 않았다. 손잡이를 잡고 올라왔다. 조심스럽게. 하지만 빠르게. 그리고 세아 옆에 누웠다. 세아 옆에. 더 이상 거리를 두지 않고.
둘은 별을 봤다.
별들은 여전히 반짝이고 있었다. 각자의 리듬으로. 마치 오케스트라의 각 악기가 자신의 음을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누나가 한강 다리에서 뭐했어?”
도현이가 물었다.
세아는 천천히 숨을 쉬었다. 이 질문이 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지는 몰랐다.
“그 사람이 우리 둘 다를 죽이려고 했어. 차에서 한강으로.”
세아가 말했다.
도현이가 움직였다. 세아를 바라봤다. 어둠 속에서 도현이의 눈이 더 커진 것처럼 보였다.
“누나가 뭐했는데?”
도현이가 물었다.
“손잡이를 잡았어. 그리고 핸들을 돌렸어. 그리고 우리는 다리에서 떨어지지 않았어. 차가 옆으로 미끄러졌어. 하지만 우리는 죽지 않았어.”
세아가 말했다.
도현이는 한참을 말하지 않았다. 마치 이 말을 소화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던 것처럼.
“누나가 우리를 구했어?”
도현이가 물었다.
“내가 우리를 구한 게 아니라, 우리가 우리를 구했어. 그 사람은 죽고 싶었어. 하지만 나는… 아직 죽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세아가 말했다.
“그래서?”
도현이가 물었다.
“그래서 손잡이를 잡았어. 그게 다야.”
세아가 말했다.
별들이 여전히 반짝이고 있었다. 그 반짝임이 계속되는 한, 세아와 도현이는 살아있다는 증명이었다.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빛을 내는 그 별들처럼, 세아도 움직이지 않으면서 살아있었다.
“그 사람은 어디 있어?”
도현이가 물었다.
“병원이야. 경찰이 지키고 있어. 그리고 내가 증언했어. 모든 걸.”
세아가 말했다.
“그럼 저 사람이 감옥 가?”
도현이가 물었다.
“모르겠어. 법이 어떻게 판단할지는.”
세아가 말했다.
도현이는 다시 하늘을 봤다. 별들을 봤다. 그 별들을 세어보려고 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결국 포기했다. 너무 많았으니까.
“누나가 싶어?”
도현이가 물었다.
세아는 이 질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다. 도현이는 세아가 싶었던 것이다. 오래 동안. 매일 밤. 엄마를 보면서도, 학원을 가면서도. 세아가 싶었다.
“응. 나도 싶어.”
세아가 말했다.
“진짜?”
도현이가 물었다.
“진짜야.”
세아가 대답했다.
도현이의 손이 세아의 손을 찾았다. 어둠 속에서. 지붕 위에서. 별빛 아래에서. 도현이의 손가락이 세아의 손가락 사이로 들어갔다. 그리고 잡았다. 어린아이처럼. 마치 도현이가 아직도 여섯 살 같은 힘으로.
세아의 가슴이 또 다시 아팠다. 하지만 이번엔 다른 종류의 아픔이었다. 좋은 아픔이었다. 치유되고 있다는 아픔. 살아있다는 증명의 아픔.
“누나, 이제 가지 마.”
도현이가 말했다.
“응. 안 갈게.”
세아가 말했다.
“진짜?”
도현이가 물었다.
“진짜야.”
세아가 대답했다.
하늘의 별들이 계속 반짝였다. 그들은 오랜 시간을 빛내고 있었다.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어도. 아무도 봐주지 않았어도. 그들은 계속 자신의 빛을 유지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누군가 그 빛을 봤다. 제주의 지붕 위에 누운 두 명의 사람처럼.
다음 날 아침이 왔을 때, 세아는 엄마의 부엌에서 계란을 부쳤다.
팬이 뜨거워졌을 때의 그 소리. 계란이 퍼져나갈 때의 그 냄새. 노란색이 흰색으로 익어가는 모습. 세아는 오랜 시간 이런 간단한 일들을 하지 않았다. 서울에서는 시간이 없었다. 편의점에서 일하고, 강리우를 피하고, 경찰에 신고하고. 모든 것이 긴급했다. 모든 것이 위기였다.
하지만 제주에서는 시간이 있었다. 계란 하나를 부치는 데에 시간이 있었다.
“밥은?”
엄마가 물었다. 부엌 문에서. 아직 자고 있어야 할 시간에.
“밥 지었어. 밥솥에.”
세아가 말했다.
엄마가 세아를 봤다. 세아의 손을 봤다. 세아가 팬의 손잡이를 잡고 있는 그 손을 봤다. 엄마의 눈이 어떤 감정으로 가득 찼다. 그것이 기쁨인지 슬픔인지, 세아는 알 수 없었다. 아마 둘 다였을 것이다.
“고마워.”
엄마가 말했다. 그리고 부엌으로 들어왔다.
엄마는 세아 옆에 섰다. 세아와 팬을 봤다. 계란이 점점 익어가는 모습을 봤다. 그리고 손을 올렸다. 세아의 손 위에. 세아의 손잡이를 잡고 있는 그 손 위에.
“온기가 있네.”
엄마가 말했다.
세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엄마의 손의 온기를 느꼈다. 그 온기는 따뜻했다. 하지만 동시에 차가웠다. 해녀의 손. 오랜 시간 차가운 물속에 있었던 손. 하지만 그래도 따뜻했다. 생명력 때문에. 살아있기 때문에.
“엄마.”
세아가 말했다.
“뭐?”
엄마가 물었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알 것 같아.”
세아가 말했다.
엄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세아의 손을 더 세게 잡았다.
“음악을 하고 싶어. 근데 다른 사람한테 들려주는 음악이 아니라, 나를 위한 음악을 하고 싶어. 내가 살아있다는 걸 증명하는 음악을.”
세아가 말했다.
엄마의 손이 떨렸다. 아주 작게. 하지만 세아는 느꼈다.
“그럼 해.”
엄마가 말했다.
“어떻게?”
세아가 물었다.
“계란을 부치는 것처럼. 밥을 지으면서 하는 것처럼. 살아가면서 하는 것처럼.”
엄마가 말했다.
세아는 그 말을 이해했다. 불을 켜고 끄는 것처럼. 아침이 오고 저녁이 오는 것처럼. 계속하는 것처럼. 멈추지 않고.
팬 위의 계란이 완벽하게 익었다. 흰자는 하얀색이 되었고, 노른자는 여전히 노란색이었다. 세아는 팬을 불에서 내렸다. 엄마의 손과 함께.
“먹자.”
엄마가 말했다.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계란을 접시에 담았다. 그리고 밥 위에 올렸다. 그리고 엄마와 함께 테이블로 갔다. 도현이가 아직 자고 있는 거실을 지나 부엌 테이블로.
거리는 가까웠다. 하지만 세아에게는 그것이 매우 먼 길처럼 느껴졌다. 마치 자신이 다른 세계에서 이 세계로 돌아오고 있는 것처럼. 마치 자신이 불 속에서 나와 밝은 곳으로 걸어 나가고 있는 것처럼.
엄마와 세아는 밥을 먹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단지 숟가락과 젓가락의 소리만 들리면서. 제주의 아침 바람이 부엌의 창문을 통해 들어오면서.
그리고 세아는 깨달았다.
불이 꺼지는 방식은 여러 가지였다. 급하게 꺼질 수도 있고. 조용히 꺼질 수도 있고. 하지만 가장 아름다운 불이 꺼지는 방식은, 새로운 불이 켜지는 것이었다.
엄마의 손. 도현이의 손. 자신의 손. 그리고 그 손들로 팬을 잡고, 밥을 지으면서. 세아는 자신의 불이 꺼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오히려 그 불은 더 깊어지고 있었다. 더 따뜻해지고 있었다. 더 견디기 어려워지고 있었다.
오후가 왔을 때, 세아의 휴대폰이 울렸다.
제주에 와서 처음이었다. 휴대폰이 울리는 소리. 세아는 한동안 그 소리를 무시했다. 마치 그 소리가 다른 세계에서 오는 것처럼. 마치 그 소리가 자신과 상관없는 것처럼.
하지만 엄마가 세아를 봤다.
“받아.”
엄마가 말했다.
세아는 휴대폰을 들었다. 화면에 하늘의 이름이 떠 있었다. 하늘. 자신의 절친. 자신이 버린 절친.
세아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세아가 말했다. 목소리가 거의 나오지 않았다.
“야 미친 년 진짜. 내가 몇 번을 전화했는데?”
하늘의 목소리가 들렸다. 크고. 분노에 차 있었다.
“미안해.”
세아가 말했다.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되냐고? 그 강리우 인간이 뭔 짓을 했는데 경찰까지 가?”
하늘이 소리쳤다.
“내가…”
세아가 말을 시작했다.
“내가 알아. 너 강리우한테 당한 거. 뉴스 봤어. ‘유명 기획사 임원 상해죄 혐의로 체포’ 이런 거. 그리고 피해자 이름이 너네 이름이 아니지만, 나는 알았어. 너야. 그게 너야. 그 미친 놈이 뭐했는데?”
하늘이 물었다.
세아는 대답할 수 없었다. 하늘의 목소리. 하늘의 분노. 하늘의 관심. 모든 것이 세아를 압도했다.
“세아? 여기 있어?”
하늘이 물었다.
“응. 여기 있어.”
세아가 말했다.
“제주 가?”
하늘이 물었다.
“응.”
세아가 대답했다.
“언제 와?”
하늘이 물었다.
“어제.”
세아가 말했다.
“어제? 어제? 진짜 미쳤네. 경찰 조사 받은 거?”
하늘이 물었다.
“응. 다 했어.”
세아가 말했다.
“언제 서울 와?”
하늘이 물었다.
세아는 이 질문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자신이 언제 서울로 돌아갈지. 아니, 자신이 서울로 돌아갈지.
“모르겠어.”
세아가 말했다.
“모르겠어? 지금 뭐하고 있어? 계란 부칠 시간에 내 전화 받네.”
하늘이 말했다.
세아는 깜짝 놀랐다.
“뭐? 계란 어떻게 알았어?”
세아가 물었다.
“너 엄마가 내 연락처로 전화했어. 너 어디 있냐고. 너 괜찮냐고. 그리고 너 지금 계란 부치고 있다고. 그래서 나도 아는 거야.”
하늘이 말했다.
세아의 눈이 엄마를 찾았다. 엄마는 세아를 보고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하늘…”
세아가 말했다.
“뭐?”
하늘이 물었다.
“미안해. 정말로. 너한테 뭐든 말 못 했고, 너를 무시했고…”
세아가 말했다.
“응. 나중에 다 얘기해. 지금은 제주에서 쉬. 너 진짜 피폐해 보인다. 엄마가 그런 말씀 안 하셨어도 목소리만 들으면 알겠어. 쉬. 그리고 서울 오면 내 가게 올. 내가 너한테 해줄 게 있어.”
하늘이 말했다.
“뭔데?”
세아가 물었다.
“성냥 타투. 어깨에 하나 해줄게. 너 어깨에 이미 하나 있지. 그 위에. 성냥 모양으로. 우리 두 명이 함께 불을 켜는 거야.”
하늘이 말했다.
세아는 대답할 수 없었다. 눈물이 나오고 있었다. 제주의 부엌에서. 엄마 앞에서. 하늘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알겠어.”
세아가 겨우 말했다.
“좋아. 그럼 나중에 봐. 그리고 세아? 잘했어. 진짜로. 그 미친 놈한테 신고한 거. 잘했어.”
하늘이 말했다.
통화가 끝났다.
세아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손이 떨렸다. 엄마가 세아를 안았다. 말 없이. 그리고 세아는 엄마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제주의 밝은 오후에. 계란과 밥의 냄새가 남아있는 부엌에서.
엄마는 세아의 등을 두드렸다. 마치 세아가 아직도 어린아이인 것처럼. 마치 세아가 아직도 엄마의 보호가 필요한 것처럼. 마지막으로 한 번.
“내 딸이 잘했어.”
엄마가 말했다. 세아의 머리 위에서.
그리고 세아는 알았다.
불이 꺼지는 것만이 아니었다. 불이 켜지는 것도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군가 그 옆에서 불을 함께 지키고 있다는 것이었다.
엄마. 도현이. 하늘. 그리고 아직 만나지 않은, 하지만 분명히 어딘가에 있을 누군가.
세아의 불은 혼자가 아니었다.
12,847자
# 불을 지키는 사람들
## 1부: 제주의 오후
세아는 계란을 부칠 때마다 자신이 정말로 여기에 있는 건지 의심했다.
제주도. 남쪽 끝. 서울에서 가장 먼 곳. 아니, 자신이 서울로 돌아갈지. 아니, 자신이 서울로 돌아갈지.
그 질문이 자꾸만 떠올랐다. 계란이 팬 위에서 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엄마의 부엌은 햇빛으로 가득했다. 오후 2시 30분, 태양이 가장 높은 시간. 세아는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니, 늦은 아침이자 이른 점심이었다. 시간의 개념이 흐릿해진 지 며칠 되었다. 제주에 온 후로는 시계가 의미가 없었다.
팬 위에서 계란 흰자가 하얀 거품을 일으키며 투명에서 불투명으로 변해갔다. 노른자는 여전히 액체 상태로 중앙에서 살짝 떨렸다. 세아는 그것을 바라봤다. 마치 그 노른자가 자신의 무언가를 반영하고 있다는 듯이.
**얼마나 더 익어야 할까. 계란처럼 나도 계속 익어야 할까.**
휴대폰이 울렸다.
세아는 팬의 손잡이를 쥔 손으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화면에는 ‘하늘’이라는 이름이 떠 있었다. 그 이름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철렁했다.
“모르겠어.”
세아가 말했다. 아직 받지도 않은 전화에. 하지만 손은 이미 통화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화면이 밝아졌다. 하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목소리는 서울에서 왔다. 강남의 어딘가에서. 세아가 도망쳐 나온 도시에서.
“모르겠어? 지금 뭐하고 있어? 계란 부칠 시간에 내 전화 받네.”
하늘의 목소리는 장난스러웠지만, 그 아래에는 뭔가 다른 것이 있었다. 세아는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물 아래의 암초를 감지하는 것처럼.
세아는 깜짝 놀랐다.
“뭐? 계란 어떻게 알았어?”
세아는 거의 소리쳤다. 휴대폰을 귀에 더 가깝게 당겼다. 계란이 팬에서 계속 지글거렸다. 그 소리가 배경음처럼 흘러나갔을 것이다.
“너 엄마가 내 연락처로 전화했어. 너 어디 있냐고. 너 괜찮냐고. 그리고 너 지금 계란 부치고 있다고. 그래서 나도 아는 거야.”
하늘이 설명했다.
세아의 눈이 부엌을 가로질러 엄마를 찾았다. 엄마는 거실의 소파에 앉아 있었다. 세아를 보고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다만 그 눈에는 뭔가가 담겨 있었다. 죄책감? 염려? 아니, 그 이상의 것. 세아를 향한 무언의 메시지가 눈동자에 떠 있었다.
세아는 팬을 불에서 내렸다.
“하늘…”
세아의 목소리는 떨렸다.
“뭐?”
하늘이 물었다. 그 간단한 한 글자 안에도 기다림이 있었다.
“미안해. 정말로. 너한테 뭐든 말 못 했고, 너를 무시했고, 그냥… 혼자라고 생각했어. 너도 모르게.”
세아는 계란 냄새 나는 부엌에서 눈물이 맺혀오는 것을 느꼈다. 목소리는 작아졌다. 거의 속삭이는 수준으로.
통화 너머에서 하늘이 한숨을 쉬었다. 그 숨 속에는 이해와 용서가 섞여 있었다.
“응. 나중에 다 얘기해. 지금은 제주에서 쉬. 너 진짜 피폐해 보인다. 엄마가 그런 말씀 안 하셨어도 목소리만 들으면 알겠어. 이 몇 개월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냥… 쉬.”
하늘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마치 그 목소리 자체가 누군가를 감싸 안는 것처럼.
“그리고 서울 오면 내 가게 올. 새로 오픈했거든. 내가 너한테 해줄 게 있어.”
세아는 손으로 눈을 닦았다. 계란 냄새가 손가락에 묻었다.
“뭔데?”
“성냥 타투. 어깨에 하나 해줄게. 너 어깨에 이미 하나 있지. 그 위에. 성냥 모양으로. 우리 두 명이 함께 불을 켜는 거야.”
하늘이 말했다.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세아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 2부: 눈물의 언어
세아는 대답할 수 없었다.
눈물이 나오고 있었다. 제주의 부엌에서. 엄마 앞에서. 하늘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그것은 슬픔의 눈물이 아니었다. 세아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이것은 다른 종류의 눈물이었다. 오랫동안 막혀 있던 것이 터지는 눈물.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눈물. 누군가가 자신의 옆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 눈물.
“알겠어.”
세아가 겨우 말했다. 목이 조여왔다. 마치 누군가가 가슴을 움켜쥐는 것처럼.
“좋아. 그럼 나중에 봐.”
하늘의 목소리가 더 가까워진 것 같았다.
“그리고 세아? 잘했어. 진짜로. 그 미친 놈한테 신고한 거. 잘했어. 너 진짜 용감했어. 혼자서 그 모든 것을 견딘 거. 정말 잘했어.”
하늘의 목소리는 흔들렸다. 아주 작게, 하지만 분명히. 그 목소리 너머에는 자신도 울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세아는 눈을 감았다.
통화가 끝났다.
화면이 다시 어두워졌다. 통화 시간 3분 42초. 그 3분 42초가 세아의 모든 것을 바꿔놓은 것 같았다.
세아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손이 떨렸다. 팬 위의 계란도 이제 완전히 식어버렸다. 흰자는 딱딱해졌고, 노른자는 노르스름한 황색으로 응고되어 있었다. 아무도 먹지 않을 계란.
엄마가 세아를 안았다.
말 없이.
엄마의 팔이 세아를 감싸안았다. 따뜻했다. 그 온기 속에서 세아는 자신이 아직도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직도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을. 아직도 누군가의 딸이라는 것을.
세아는 엄마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이번에는 목소리 없이. 어깨가 들썩거릴 뿐.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내부에 가둬두었던 모든 것이 한 번에 쏟아져 나오는 것처럼.
**엄마. 이렇게 가까이 있었는데도 왜 이제야 느껴지지?**
엄마는 세아의 등을 두드렸다. 마치 세아가 아직도 어린아이인 것처럼. 마치 세아가 아직도 엄마의 보호가 필요한 것처럼.
“내 딸이 잘했어.”
엄마가 말했다. 세아의 머리 위에서.
그 목소리는 작았다. 하지만 그 안에는 제주 바다의 파도보다도 깊은 뭔가가 담겨 있었다. 세아는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엄마의 가슴을 통해서.
세아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것은 울음이 아니라 숨을 쉬는 것과 같은 것이 되어 있었다. 자연스러운. 필요한. 피할 수 없는.
## 3부: 불의 언어
그리고 세아는 알았다.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질문의 답을.
**불이 꺼지는 것만이 아니었다.**
**불이 켜지는 것도 있었다.**
자신이 이 몇 개월을 견딜 수 있었던 이유. 그것은 자신 안의 어딘가가 완전히 꺼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주 작은 불씨일지라도.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의 불빛일지라도.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군가 그 옆에서 불을 함께 지키고 있다는 것이었다.**
엄마. 그 엄마가 이제 자신의 곁에 있다는 것.
도현이. 그 친구가 자신을 믿었다는 것.
하늘. 그 선배가 자신을 위해 타투를 하겠다고 약속했다는 것.
그리고 아직 만나지 않은, 하지만 분명히 어딘가에 있을 누군가. 미래의 누군가. 아직 이름 모를 누군가.
세아의 불은 혼자가 아니었다.
엄마가 계속해서 세아의 등을 두드렸다. 그 손의 리듬은 마치 심장박동 같았다. 엄마의 심장박동. 세아가 한때 자신의 심장보다 더 잘 알았던 그 박동. 엄마의 뱃속에서 들었던 그 소리.
제주의 밝은 오후는 계속되었다.
거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이 부엌 바닥에 황금색 사각형을 만들었다. 그 사각형 안에서 먼지가 춤을 추고 있었다. 각각의 먼지 입자가 햇빛에 반사되어 작은 별이 되었다.
**이것도 불이다. 햇빛이라는 불.**
계란 냄새는 여전히 부엌에 떠 있었다. 음식의 냄새.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의 증거. 아침을 맞이하고, 밥을 먹고, 계속 살아간다는 것의 증거.
세아는 엄마의 가슴에서 얼굴을 들었다.
엄마의 얼굴을 봤다.
엄마는 웃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엄마도 울고 있었다.
“엄마…”
세아가 속삭였다.
“응. 여기 있어. 엄마가 여기 있어. 이제는 절대로 떠나지 않을게. 약속할게.”
엄마가 말했다.
세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엄마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더 이상 울음이 아닌 다른 것 때문에. 감사함 때문에. 안도감 때문에. 혹은 단순히 엄마의 온기 때문에.
제주의 부엌에서.
계란과 밥의 냄새가 남아있는 그곳에서.
햇빛이 창문을 통해 쏟아지는 그곳에서.
세아는 비로소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
## 4부: 앞으로의 길
부엌의 시계가 2시 4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15분이 지났다. 그저 15분. 하지만 그 15분 안에 세아의 세상이 조금씩 달라져 있었다. 아직 완전히는 아니지만. 아직 모든 상처가 아물지는 않았지만. 하지만 분명히 뭔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엄마가 세아를 놓았다. 하지만 손은 여전히 세아의 어깨에 올려져 있었다.
“밥 먹자. 너 밥을 먹어야 해. 계란도 다시 부쳐주고, 밥도 있고, 너 좋아하던 미역국도 있어.”
엄마가 말했다.
세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목소리가 아직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괜찮았다. 말이 필요하지 않은 순간이 있다는 것을 세아는 이제 알고 있었다.
엄마는 세아를 부엌 테이블로 안내했다. 목재로 만든 테이블. 제주 목공예인이 만들었다고 했던 그 테이블. 그 테이블 위에는 여러 개의 반찬그릇이 놓여 있었다. 미역국, 된장국, 멸치볶음, 계란말이, 그리고 따뜻한 밥.
얼마나 많은 음식을 준비했을까.
세아는 그 질문을 엄마에게 던지려고 했다가 멈췄다. 이미 알고 있었다. 엄마가 얼마나 오래 기다렸을지. 자신이 언제 전화할지 모르면서도. 항상 밥을 준비해두고 있었을 것이다.
“앉아. 밥 먹어.”
엄마가 밥을 세아 앞에 놓았다.
세아는 숟가락을 들었다. 손이 여전히 약간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숟가락은 이제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의 손이 자신의 손을 안정시키고 있는 것처럼.
첫 수저를 뜨자 밥의 온기가 입 안으로 들어왔다.
따뜻했다.
맛있었다.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엄마는 세아 맞은편에 앉아서 자신도 밥을 먹기 시작했다. 말 없이. 하지만 그 침묵은 더 이상 불편하지 않았다. 그것은 이해의 침묵이었다. 함께함의 침묵이었다.
두 사람은 밥을 먹었다.
제주의 오후에.
햇빛이 가득한 그 부엌에서.
창밖으로는 제주의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멀리 한라산이 보였다. 구름이 산 위에 흘러 다니고 있었다. 그 광경은 마치 산이 숨을 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수백 년, 수천 년을 그렇게 숨을 쉬며 서 있었을 그 산.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그렇게 오래오래 서 있을 수 있을까.**
세아는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오래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숨을 쉬는 것이 중요했다. 엄마와 함께. 밥을 함께 먹으며. 햇빛이 가득한 부엌에서.
밥을 반 정도 먹었을 때, 세아가 입을 열었다.
“서울에 언제 가야 해?”
세아가 물었다.
엄마는 밥을 먹던 손을 멈췄다.
“서울? 네가 가고 싶으면 가. 근데 굳이 지금 서울 가야 해? 여기 있어. 엄마랑.”
엄마가 말했다.
“아니. 하늘이가 타투를 해주겠대. 나 어깨에 성냥 모양 타투를 하고 싶어. 그리고…”
세아가 말을 멈췄다.
“그리고?”
엄마가 물었다.
“그리고 이제는 혼자가 아닐 것 같아. 그래서 갈 수 있을 것 같아.”
세아가 말했다.
엄마는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슬픈 눈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랑스러움의 눈물이었다. 자신의 딸이 다시 일어서고 있다는 것을 알 때의 그런 눈물.
“그래. 우리 딸. 잘했어. 진짜 잘했어.”
엄마가 반복했다. 마치 그것을 계속 확인해야만 하는 것처럼.
밥을 모두 먹은 후, 세아는 엄마와 함께 거실로 나갔다.
거실의 소파에 앉자, 세아는 창밖의 제주 바다가 보였다. 멀리서 파도 소리가 들렸다. 계속해서 밀려오고, 빠져나가고, 다시 밀려오는 그 리듬.
**그것도 불이다. 파도라는 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