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불탄 소녀 – 제106화: 도현이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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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06화: 도현이의 목소리

도현이는 학원에서 돌아오고 있었다.

세아는 엄마의 차에서 내려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낡은 담장. 페인트가 벗겨진 문. 제주 남쪽 집들 특유의 그 초라함. 하지만 세아에게는 그것이 집이었다. 세아가 태어난 곳. 세아가 처음 노래를 부른 곳. 엄마의 손으로 머리를 감겨주던 그 욕실. 도현이가 태어났을 때 밤새 울음을 달래던 그 거실.

엄마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말 없이. 세아에게 뭔가를 시간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세아와 도현이 사이의 시간. 엄마 없이.

도현이가 골목 모퉁이에서 나타났을 때 세아의 가슴이 멈췄다. 정말로. 마치 심장이 더 이상 박동하지 않는 것처럼. 세아는 오래 동안 도현이를 보지 못했다. 사진으로만 본 도현이. 엄마가 보낸 사진들. 하지만 실제 도현이는 사진과 달랐다.

도현이가 더 커져 있었다. 어깨가 넓어져 있었다. 얼굴이 더 남자가 되어 있었다. 마치 세아가 떠난 몇 개월이 도현이에게는 몇 년처럼 흘렀던 것처럼. 마치 세아의 부재가 도현이를 빠르게 성장시킨 것처럼.

도현이가 세아를 봤을 때 멈췄다. 골목 중간에서. 학원 가방을 들고. 얼굴이 창백해졌다.

“누나?”

도현이가 말했다. 그것은 확인이었다. 자신이 무언가를 정확하게 보고 있는지에 대한 확인.

“도현아.”

세아가 말했다. 목소리가 거의 나오지 않았다. 얼마나 오랫동안 도현이를 부르지 않았는지. 얼마나 오랫동안 그 이름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는지. 그 이름은 세아에게 너무 무거웠다. 자신이 저버린 사람의 이름. 자신이 외면한 사람의 이름.

도현이가 천천히 걸어왔다. 마치 세아가 환상이고, 너무 빨리 움직이면 사라질 것 같은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세아를 가까이에서 봤다. 세아의 얼굴을 본다. 세아의 눈. 세아의 입. 마치 세아가 정말로 여기 있는지 확인하려는 것처럼.

“언제부터 있었어?”

도현이가 물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방금. 엄마랑 공항에서.”

세아가 말했다.

도현이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냥 세아를 봤다. 오래도록. 세아는 도현이의 시선을 견딜 수 없었다. 그 시선이 너무 많은 것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쁨. 분노. 상처. 그리고 뭔가 더. 뭔가 세아가 정의할 수 없는 감정.

“미안해.”

세아가 먼저 말했다.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도현이가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처음이었다. 도현이가 세아에게 목소리를 높인 것. 도현이는 항상 조용했다. 항상 참았다. 형이나 누나가 무엇을 하든 항상 침묵으로 수용했다. 하지만 지금 그 침묵이 깨졌다.

“미안하다고 하면 뭐가 달라져? 누나가 없던 이 시간들이 돌아와? 엄마가 우는 것도 내가 봤어. 밤에 엄마가 방에서 우는 거. 누나 전화 안 받는다고. 누나 뭐 하는지 모르겠다고. 그렇게 우는 걸 내가 몇 번을 들었는데?”

도현이가 말했다. 목소리가 계속 떨렸다.

“내가 뭐 할 수도 없었어. 누나 전화번호는 막혀 있고. 카톡도 안 읽음. 엄마는 자꾸 내 어깨 잡고 우시고. 나는 뭐했냐면 그냥… 입시 준비했어. 그냥 공부했어. 누나가 없으니까 내가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내가 엄마 걱정 안 시켜야 한다고. 내가 누나를 대신 잘해야 한다고. 그렇게 생각했어.”

도현이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말의 끝부분이 거의 들리지 않았다.

“도현아…”

세아가 말하려고 했다.

“그런데 누나가 이제 와. 그냥 와. 미안해라고 말하고. 근데 나는 뭐야? 나는 뭐가 되는 거야? 내가 한 게 다 뭐가 되는 거야?”

도현이가 물었다. 그리고 그 질문은 결국 분노가 아니었다. 그것은 절망이었다. 자신이 한 모든 것이 무의미해졌다는 절망. 자신이 버틴 모든 날들이 누군가의 귀환으로 인해 한순간에 부정되어 버린 것 같은 절망.

세아의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정말로. 마치 누군가가 세아의 가슴을 열고 손을 집어넣어서 심장을 움켜쥐는 것 같은 그런 느낌. 세아는 도현이를 보면서 자신이 한 선택이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겼는지를 깨달았다. 그것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깊었다.

“내가 잘못했어. 정말로.”

세아가 말했다. 이번엔 더 깊은 목소리로. 더 진심으로.

“잘못했다는 게 뭐 하는 건데?”

도현이가 물었다.

“나는 너 때문에 공부했어. 너 때문에 입시 준비했어. 누나가 없는 동안 나는 누나를 대신 잘하려고 했어. 그런데 누나가 와서 미안해라고 하면…? 그럼 나는 뭐? 내가 한 노력은 뭐? 내가 참은 것들은 뭐?”

도현이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아주 천천히. 마치 눈물도 무겁다는 것처럼. 마치 눈물 한 방울 한 방울이 도현이에게는 엄청난 에너지를 요구하는 것처럼.

세아는 도현이를 안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도현이가 그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도현이의 몸이 경직되어 있었다. 세아를 밀어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내가 도와줄 거야. 너의 입시 준비. 내가 다 도와줄 거야. 너를 위해서. 정말로.”

세아가 말했다.

“그래. 뭐 그렇게 해. 근데 누나. 나한테 진심인지 확인해 봐. 너가 내 때문에 한 건지, 아니면 또 누가 너한테 뭐라고 해서 하는 건지. 확인해 봐. 나는 더 이상 누나가 누군가를 위해 타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

도현이가 말했다.

그 말이 세아에게 정확하게 꽂혔다. 정확하게 가슴에. 도현이가 본 것이 맞았다. 세아는 항상 누군가를 위해 타고 있었다. 엄마를 위해. 도현이를 위해. 강리우를 위해. 그리고 이제 도현이를 위해 다시 타려고 했다. 하지만 도현이는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도현이가 원하는 것은 세아의 희생이 아니었다. 도현이가 원하는 것은 세아가 자신을 위해 불타는 것이었다.

“내가 누구를 위해 불타는지 모르겠어.”

세아가 말했다. 솔직하게. 처음으로 진짜 솔직하게.

도현이가 그 말을 들었을 때 얼굴이 조금 부드러워졌다. 여전히 상처받아 있었지만, 세아의 진심을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럼 여기서 찾아봐. 제주에서. 누나가 누구를 위해 불타는지. 그게 뭔지. 누나 자신을 위해 불타는 게 뭔지. 찾아봐. 제발.”

도현이가 말했다.

집 문이 열렸다. 엄마가 나왔다. 엄마는 세아와 도현이를 봤다. 둘 다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그 광경을 봤다. 마치 자신의 기도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는 것처럼. 자신의 두 아이가 다시 만나는 것을 보는 것처럼.

“들어와. 밥 먹자.”

엄마가 말했다. 그것이 가장 엄마다운 말이었다. 밥. 엄마가 할 수 있는 가장 구체적인 사랑의 표현. 따뜻한 밥을 차려주는 것. 함께 먹는 것.

세아와 도현이가 집 안으로 들어갔다. 나란히. 하지만 여전히 거리를 유지하며.

집 안은 제주의 해초 냄새와 밥 짓는 냄새가 섞여 있었다. 엄마는 이미 밥을 지어놓았던 것 같았다. 마치 세아가 올 것을 예상하고 있었던 것처럼. 마치 세아가 반드시 돌아올 것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테이블에는 여러 반찬이 놓여 있었다. 시래기 된장국. 생선 구이. 무 절임. 모두 엄마가 만든 것들. 모두 세아가 그리워하던 맛들.

도현이는 밥을 퍼서 먹기 시작했다. 무언말로. 하지만 그것은 용서의 시작이었다. 함께 밥을 먹는 것.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는 것. 그것이 지금 도현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세아도 밥을 먹었다. 손이 떨렸다. 젓가락을 드는 손이 계속 떨렸다. 하지만 세아는 먹었다. 엄마가 만든 밥을 먹었다. 따뜻한 밥을 먹었다.

엄마는 밥을 먹지 않고 세아와 도현이가 먹는 것을 봤다. 마치 자신의 두 아이가 충분히 먹고 있는지 확인하려는 것처럼. 마치 자신은 이 순간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엄마도 먹어요.”

세아가 말했다.

“나는 이미 먹었어.”

엄마가 말했다. 거짓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쁜 거짓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랑의 거짓이었다. 자신의 아이들을 더 먹게 하기 위한 거짓.

밥을 먹는 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단지 밥을 먹었다. 국을 마셨다. 반찬을 집어먹었다.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많은 것이 회복되고 있었다. 시간. 신뢰. 그리고 가족이라는 것의 의미.

밥을 먹은 후에 도현이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학원에서 받은 숙제가 있었을 것이었다. 입시 준비가 있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도현이는 몇 번 뒤돌아봤다. 세아를 확인하려는 것처럼. 세아가 정말로 여기 있는지. 세아가 다시 사라지지는 않을 것인지.

세아는 도현이가 들어간 방을 봤다. 도현이의 방. 세아는 들어가지 않았다. 도현이가 초대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도현이는 아직 세아를 완전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세아는 그것을 이해했다.

엄마는 밥상을 치웠다. 세아가 도와주려고 했지만 엄마는 손을 흔들었다.

“너는 좀 쉬어. 여행 피곤했지?”

엄마가 말했다.

“네. 감사합니다.”

세아가 말했다. 존댓말로. 이제 세아와 엄마 사이에는 그런 거리감이 필요했다. 친밀함이 아니라 존중. 상처를 받은 사이이기 때문에.

세아는 거실 창으로 제주의 저녁 하늘을 봤다. 해가 지고 있었다. 오렌지색에서 보라색으로. 보라색에서 파란색으로. 색이 변하고 있었다. 마치 세아의 마음처럼. 혼탁했던 것이 점차 명확해지고 있었다.

세아는 자신의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그리고 나서 손을 멈췄다. 누구에게 연락할 것인가. 하늘이? 아니면 경찰서? 아니면 다른 누군가?

하지만 세아가 원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세아가 원하는 것은 자신의 손이 떨지 않는 것이었다. 자신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었다. 자신이 누구를 위해 불타는지를 아는 것이었다.

세아는 휴대폰을 내려놨다. 아직은 아니었다. 아직은 누군가에게 연락할 시간이 아니었다. 아직은 자신을 찾을 시간이었다.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제주의 밤. 서울의 밤과는 다른 밤. 더 조용한 밤. 더 깊은 밤. 그 밤 속에서 세아는 조금씩 자신을 되찾고 있었다.

# 용서의 밥상

하지만 그것은 용서의 시작이었다. 함께 밥을 먹는 것.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는 것. 그것이 지금 도현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도현이는 밥그릇을 들었다. 손가락이 밥그릇의 따뜻함을 전달했다. 엄마가 지금 막 지은 밥. 아직도 김이 피어오르는 밥. 그는 젓가락으로 밥을 집어 입에 넣었다. 씹었다. 목을 넘겼다. 그리고 다시 밥을 집었다. 반복되는 동작들. 단순하고, 반복적이고, 그래서 더욱 의미 있는 동작들.

*세아가 정말 돌아온 걸까. 아니면 또 다시 떠날 걸까.*

도현이의 내면에는 여전히 의심이 남아있었다. 여행을 간다더니 갑자기 제주에서 나타났다고 한다. 엄마 아빠는 기뻐했지만, 도현이는 의심했다. 세아는 왜 돌아왔을까. 무엇이 세아를 집으로 이끌었을까. 그리고 그것이 또 세아를 떠나가게 하지는 않을까.

“더 먹어.”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도현이의 밥그릇을 들었다. 밥주걱으로 밥을 더 담았다. 흰 쌀알들이 밥그릇에 소복이 담겼다.

“충분해.”

도현이가 말했다. 하지만 엄마는 이미 밥그릇을 내려놓고 있었다. 엄마의 손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국자를 들었다. 미역국을 떠서 도현이의 밥 위에 얹었다. 국물이 밥에 스며들었다. 밥알들이 부드러워졌다.

도현이는 엄마를 봤다. 엄마의 얼굴을 봤다. 주름이 깊어져 있었다. 눈 밑에 다크서클이 있었다. 언제부터 엄마는 이렇게 늙어 보이게 되었을까. 세아 때문일까. 아니면 자신 때문일까. 아니면 그 둘 다.

“엄마, 고마워.”

도현이가 말했다. 짧은 문장이었지만, 그 문장에는 많은 것이 담겨있었다. 고마움. 미안함. 그리고 앞으로 함께하고 싶다는 바람.

엄마의 눈이 촉촉해졌다. 하지만 엄마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대신 도현이의 머리를 쓸어내렸다. 손가락이 도현이의 머리카락을 통과했다. 따뜻한 손. 모성의 손.

세아도 밥을 먹었다. 손이 떨렸다. 젓가락을 드는 손이 계속 떨렸다. 그 손은 마치 새로 태어난 아기의 손처럼 불안정했다. 통제되지 않는 손.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손.

세아는 젓가락을 더 세게 움켜잡았다. 손가락의 힘으로 떨림을 억누르려고 했다. 하지만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떨림은 손가락의 끝에서부터 시작되어 팔 전체로 퍼져나갔다.

*엄마의 밥이다. 엄마가 만든 밥이다.*

세아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밥을 입에 넣었다. 따뜻한 밥알이 입 안에서 녹았다. 밥의 단맛이 혀 위에 퍼졌다. 미역국의 소금기가 밥의 맛을 더 풍부하게 했다. 그 맛에 세아의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아는 계속 먹었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밥을 먹었다. 한 숟가락씩. 한 젓가락씩. 입으로 들어오는 모든 것을 삼켰다. 마치 그것이 자신을 구원하는 유일한 방법인 것처럼.

“천천히 먹어. 급하게 먹으면 소화가 안 돼.”

엄마가 말했다. 엄마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담겨있었다. 하지만 그 걱정은 추궁이 아니었다. 그것은 순수한 관심이었다.

세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속도를 늦췄다. 더 천천히. 더 꼼꼼히. 각각의 밥알을 맛보며. 각각의 국물을 음미하며.

엄마는 밥을 먹지 않고 세아와 도현이가 먹는 것을 봤다. 엄마의 손은 밥상 위에 놓여있었다. 손가락은 밥숟가락 옆에 놓여있었다. 엄마는 그저 봤다. 마치 자신의 두 아이가 충분히 먹고 있는지 확인하려는 것처럼. 마치 자신은 이 순간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엄마의 눈빛에는 어떤 것도 없었다. 탐욕도 없었다. 불안감도 없었다. 있는 것은 오직 깊은 사랑뿐이었다. 그 사랑은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엄마도 먹어요.”

세아가 말했다. 세아는 국을 떠서 엄마 앞에 놓으려고 했다. 하지만 엄마는 손을 들어 거절했다.

“나는 이미 먹었어.”

엄마가 말했다.

세아는 엄마의 얼굴을 봤다. 엄마의 밥그릇을 봤다. 밥그릇은 여전히 깨끗했다. 밥숟가락도 사용된 흔적이 없었다. 분명 거짓이었다.

하지만 세아는 그 거짓을 지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세아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어떤 종류의 거짓인지를. 그것이 나쁜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그것이 사랑의 거짓이라는 것을.

*엄마는 자신을 더 먹게 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 이런 거짓이라면 차라리 받아들이고 싶었다.*

세아는 다시 밥을 집었다. 그리고 엄마를 보며 밥을 먹었다. 마치 그 밥이 엄마의 사랑이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마치 그 밥을 통해 엄마와 연결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 위해.

밥을 먹는 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단지 밥을 먹었다. 국을 마셨다. 반찬을 집어먹었다.

도현이는 밥을 먹으면서도 자신의 심장을 느끼고 있었다. 심장이 고동치는 소리. 그 고동침이 마치 세아가 정말로 여기 있다는 것을 확인해주는 신호 같았다.

세아는 밥의 온기를 느끼고 있었다. 따뜻한 밥. 따뜻한 국. 따뜻한 엄마의 손길. 그 모든 따뜻함이 자신의 차가워진 심장을 데우고 있었다.

엄마는 두 아이를 봤다. 도현이의 진지한 얼굴. 세아의 눈물로 흐르는 얼굴.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엄마는 많은 것이 회복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시간. 신뢰. 그리고 가족이라는 것의 의미.

침묵은 때로 말보다 더 큰 힘을 가진다. 그 침묵 속에서 세 사람은 서로를 봤다. 정면으로 봤다. 회피하지 않고 봤다. 그리고 그 시선의 교환 속에서 상처들이 천천히 아물기 시작했다.

밥을 먹은 후에 도현이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학원에서 받은 숙제가 있었을 것이었다. 입시 준비가 있었을 것이었다. 책상 위에는 여전히 모의고사 문제지들이 쌓여있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도현이는 몇 번 뒤돌아봤다.

세아를 확인하려는 것처럼.

세아가 정말로 여기 있는지.

세아가 다시 사라지지는 않을 것인지.

도현이의 발걸음은 느렸다. 한 걸음 나가고, 한 걸음 멈추고, 다시 뒤를 돌아보고. 그의 심장은 불안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세아가 또 떠나간다면 어떻게 할까.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도현이는 자신의 방 문 앞에 섰다. 손을 들어 문을 밀었다. 하지만 완전히 밀지는 않았다. 문은 살짝 열려있었다. 마치 여전히 거실을 바라볼 수 있도록. 마치 여전히 세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세아는 도현이가 들어간 방을 봤다. 도현이의 방. 반쯤 닫힌 문 사이로 도현이의 책상이 보였다. 책상 위의 스탠드. 스탠드 아래의 책들. 도현이의 삶이 그 방 안에 있었다.

세아는 일어서서 도현이의 방으로 가려고 했다. 하지만 다시 앉았다. 도현이가 초대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도현이는 아직 세아를 완전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세아는 그것을 이해했다.

*오빠는 여전히 나를 믿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내 잘못이다. 내가 먼저 떠났으니까. 내가 먼저 이 가족을 버렸으니까.*

세아의 가슴이 철렁했다. 하지만 그것은 이전의 그 무거운 감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책임감이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인식하는 감정이었다.

엄마는 밥상을 치웠다. 엄마의 움직임은 능숙했다. 밥그릇을 들었다. 국그릇을 들었다. 반찬 그릇들을 모았다. 엄마의 손가락들이 딱딱 튀어나왔다 들어갔다. 마치 수십 년을 밥상을 차리고 치워온 손처럼.

세아가 일어서서 도와주려고 했다. 엄마에게 다가갔다. 밥그릇을 받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엄마는 손을 흔들었다. 부드럽지만 단호한 손짓이었다.

“너는 좀 쉬어. 여행 피곤했지?”

엄마가 말했다. 엄마의 목소리에는 의문문의 물음표가 붙어있었지만, 그것은 물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실의 확인이었다. 그리고 배려였다.

세아는 손을 내렸다. 그리고 엄마를 봤다. 엄마의 뒷모습을 봤다. 부엌으로 향하는 엄마의 뒷모습을 봤다.

엄마의 어깨가 구부러져 있었다. 언제부터 엄마의 어깨는 이렇게 구부러졌을까. 자신 때문일까.

“네. 감사합니다.”

세아가 말했다. 존댓말로.

엄마는 부엌에서 나왔다. 엄마는 세아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 존댓말을 들었다.

엄마는 잠깐 멈추었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세아와 엄마 사이에는 그런 거리감이 필요했다. 친밀함이 아니라 존중. 상처를 받은 사이이기 때문에. 상처가 아물기 전에는 너무 가까워질 수 없었다.*

세아는 거실 창으로 나갔다. 창문 너머로 제주의 저녁 하늘을 봤다.

해가 지고 있었다.

빠르게. 거의 물처럼 흘러내리는 속도로.

오렌지색이 하늘을 물들고 있었다. 밝고 따뜻한 오렌지색. 그리고 그 아래로는 핑크색이 깔려있었다. 거의 살짝 보일 정도의 연한 핑크색.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오렌지색이 물러나고 보라색이 나타났다. 깊은 보라색. 신비로운 보라색. 그리고 그 보라색도 곧 파란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하늘의 색이 변하고 있었다. 마치 세아의 마음처럼.

*혼탁했던 것이 점차 명확해지고 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누가 누군지. 무엇이 진짜인지.*

세아는 창문에 손을 댔다. 유리는 차가웠다. 하지만 그 차가움이 세아를 깨우는 느낌이 들었다.

세아는 자신의 가방을 봤다. 가방은 거실 소파 옆에 놓여있었다. 아직도 짐을 풀지 않은 가방. 그 가방 안에는 휴대폰이 있었다.

세아는 가방으로 다가갔다. 손을 넣었다. 그리고 휴대폰을 꺼냈다.

휴대폰의 화면이 켜졌다. 100개가 넘는 미수신 전화. 200개가 넘는 미확인 문자메시지. 그리고 수십 개의 카톡 메시지들.

하늘이로부터의 메시지들이 대부분이었다.

“세아야, 제발 연락해. 너 어디야?”

“나 진짜 미쳤어. 너 어디 있어?”

“경찰에 신고할 거야. 너를 찾을 거야.”

“세아. 제발. 제발 살아있어.”

그리고 가장 최근의 메시지.

“난 계속 찾을 거야. 언제까지든. 지쳐도 계속할 거야.”

세아는 화면을 끄려고 했다. 하지만 손이 멈췄다.

*누구에게 연락할 것인가. 하늘이? 아니면 경찰서? 아니면 다른 누군가?*

세아는 생각했다. 오랫동안 생각했다.

하지만 세아가 원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세아가 원하는 것은 자신의 손이 떨지 않는 것이었다.

자신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었다.

자신이 누구를 위해 불타는지를 아는 것이었다.

“그게 뭐라고 생각하니?”

도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세아는 뒤를 돌아봤다. 도현이가 자신의 방 문 앞에 서 있었다. 이제는 완전히 열린 문 앞에.

“뭐가?”

세아가 물었다.

“그거. 휴대폰.”

도현이가 가리켰다.

“아. 미안해. 연락 안 했어. 걱정 많이 했지?”

세아가 말했다.

도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세아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세아의 옆에 섰다. 함께 창문을 봤다.

“저기 봐. 하늘.”

도현이가 말했다.

세아는 하늘을 봤다.

이제 하늘은 짙은 파란색이었다. 거의 남색에 가까운 파란색. 그리고 그 파란색 위에는 첫 번째 별이 떠올랐다.

별 하나. 그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별이 예쁘네.”

세아가 말했다.

“응. 서울에서는 못 봤잖아. 이렇게 크게.”

도현이가 말했다.

침묵이 흘렀다. 편한 침묵. 형과 누나 사이의 침묵. 또 다시 찾아온 침묵.

“미안해. 오빠.”

세아가 말했다.

도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세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가볍게. 하지만 확실하게.

“응. 알아.”

도현이가 말했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장황한 설명도 필요 없었다. 과도한 용서의 말도 필요 없었다. 그저 그 손길과 그 대답. 그것으로 충분했다.

세아는 휴대폰을 내려놨다. 아직은 아니었다. 아직은 누군가에게 연락할 시간이 아니었다.

*아직은 자신을 찾을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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