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불탄 소녀 – 제102화: 염분과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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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02화: 염분과 침묵

비행기가 활주로를 떠난 지 정확히 3분이 지났을 때, 세아는 자신이 땅에서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창밖으로 서울이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한강이 은색 띠처럼 흐르고 있었다. 남산이 침바늘처럼 솟아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이 이제 자신 아래에 있었다. 자신은 위에 있었다. 구름 위. 어딘가 다른 세계.

기내 승무원이 지나갔다. 수레를 밀며. 음료수를 따르는 소리. 캔을 따는 소리. 그 소리들이 아주 멀리서 들려왔다. 마치 다른 누군가의 삶에서 나는 소리처럼. 세아는 음료수를 거절했다. 손가락을 흔들어서. 말로 하지 않고. 아직 말하는 것이 낯설었다.

옆자리에는 할머니가 앉아 있었다. 여든 중반쯤 되어 보였다. 회색 머리. 손등에는 나이 반점이 많았다. 할머니는 잡지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페이지를 넘기지 않았다. 그냥 같은 페이지를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그 페이지에 뭔가 중요한 답이 적혀 있는 것처럼.

“제주 가세요?”

할머니가 갑자기 물었다.

세아는 할머니를 봤다. 할머니의 눈이 자신을 향해 있었다. 호기심 있는 눈. 오래된 눈. 많은 것을 본 눈.

“네.”

세아가 대답했다.

“고향?”

할머니가 물었다.

“네.”

세아가 다시 대답했다.

할머니는 그 답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자신이 뭔가를 확인한 것처럼. 마치 그것으로 충분했던 것처럼.

“오래 안 갔어요?”

할머니가 물었다.

“네. 몇 달.”

세아가 말했다. 거짓이었다. 몇 달이 아니었다. 훨씬 더 오래였다. 하지만 정확한 시간을 말하는 건 너무 무거웠다.

“그럼 많이 그리웠겠네요.”

할머니가 말했다. 그리고 다시 잡지를 봤다. 같은 페이지를.

세아는 할머니의 말이 자신의 가슴 어딘가를 건드렸다는 걸 느꼈다. 그리움. 그것은 정확한 말이었다. 자신이 느끼던 것은 그것이었다. 그런데 자신은 그것을 그리움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것을 도망이라고, 도망침이라고, 무언가를 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것을 그리움이라고 불렀다. 자신이 뭔가를 놓친 것이라고.

비행기가 구름 속으로 들어갔다. 창밖이 하얀색이 되었다. 마치 모든 것이 지워지는 것처럼. 마치 아래의 세상이 없어지는 것처럼. 세아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자신의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의 손. 검고 주름진 손. 해녀의 손. 물에 담겨 있던 시간들로 가득한 손. 그 손이 자신을 어루만지던 느낌. 자신은 그것을 얼마나 오래 느끼지 못했는가. 얼마나 오래 그 손을 피했는가. 강리우의 손이 더 따뜻했다고 생각했다. 강리우의 손이 자신을 구해줄 거라고 생각했다. 얼마나 어리석었는가. 얼마나 맹목적이었는가.

“할머니.”

세아가 말했다.

할머니가 세아를 봤다.

“제주에서 뭐 하세요?”

세아가 물었다.

“살아요.”

할머니가 말했다. 간단하게. 마치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요?”

세아가 다시 물었다.

“내 모든 게 제주에 있거든. 젊을 때 물질한 포구. 내 손. 내 몸. 내 기억. 다 제주에 있어. 그래서 가.”

할머니가 말했다.

세아는 그 말을 들으면서 자신이 뭔가를 놓쳤다는 걸 깨달았다. 자신이 제주를 떠났을 때, 자신은 무엇을 버렸는가. 무엇을 남겨두고 왔는가. 단지 어린 시절뿐인가. 아니면 자신의 일부였는가. 자신의 손. 자신의 목소리. 자신이 누구였는지.

비행기가 다시 구름을 빠져나왔다. 창밖이 파란색으로 변했다. 하늘. 그 위의 하늘. 다시 한번 밝아진 세상. 마치 처음 다시 보는 것처럼. 마치 눈이 뜨인 것처럼.

세아는 휴대폰을 켰다. 비행기 모드였지만, 그래도 메시지는 보였다. 하늘이로부터. 몇 개.

“공항 빠져나왔지? 안 그럼 말해.”

“비행기 탔으면 좀 쉬어. 너 진짜 피곤해 보여. 극도로.”

“그리고 엄마한테 좋은 말 많이 해. 뭔 말 해야 할지 모르겠으면 그냥 안아. 우리 엄마들은 말이 필요 없어. 손이 필요해.”

마지막 메시지는 10분 전에 보내진 것이었다. 비행기가 이미 하늘에 뜬 후였다. 하늘이가 보안 검사대를 지나 뭔가 생각해서 보낸 메시지. 또는 자신이 떠난 후에 생각해서 보낸 메시지.

세아는 화면을 켜둔 채로 창밖을 봤다. 하늘이 해준 말들. 그리고 할머니가 해준 말들. 모두 같은 말이었다. 돌아가라. 그리워하라. 손으로 말해라. 목소리가 아니라 손으로.

세아의 손을 봤다. 작은 손. 피아니스트의 손은 아니었다. 음악가의 손도 아니었다. 단지 작은 손. 하지만 그 손이 뭔가를 할 수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세아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비행기는 계속 날고 있었다. 제주를 향해. 남쪽으로. 따뜻한 곳으로. 아니면 따뜻한 기억으로.


제주 공항에 도착했을 때 날씨는 어두워지고 있었다. 저녁 6시 30분. 겨울이라 날이 빨리 졌다. 활주로를 나갈 때 세아는 바다 냄새를 맡았다. 짠 냄새. 염분. 그 냄새가 자신을 어딘가로 끌어당겼다. 마치 자신이 그 냄새를 따라 이 섬에 온 것처럼. 마치 그 냄새가 자신을 부르고 있었던 것처럼.

짐을 찾으면서 세아는 자신의 엄마가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엄마는 오지 않을 거라고도 생각했다. 엄마는 자신이 가야 할 곳임을 알 것이다. 자신이 가야 하는 집. 그 길을 스스로 걸어야 한다는 것을 알 것이다.

택시를 탔다. 기사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단지 주소를 물었다. 세아가 말한 주소. 그 길로 가기만 했다.

창밖으로 제주가 흘러갔다. 야경. 조명등들. 건물들. 사람들. 모두 자신이 떠난 그대로인 것 같았다. 아니, 더 변한 것 같았다. 더 크고, 더 높고, 더 밝았다. 하지만 근본은 같았다. 같은 바다. 같은 섬. 같은 공기.

택시가 포구 근처로 왔다. 세아의 엄마가 일하던 곳. 아침 일찍 나가서 물속으로 들어가던 곳. 세아가 어릴 때 엄마를 기다리던 곳. 흰 포말이 일고 있던 해수. 엄마가 물 위로 올라올 때 내던 소리. 그 숨비 소리. 살아있다는 소리.

택시가 멈춰 섰다. 세아의 집 앞. 작은 한옥. 낡았다. 하지만 여전히 거기 있었다. 자신이 떠났을 때와 같은 자리에.

세아는 택시 요금을 냈다. 손가락으로 카드를 탭했다. 말로 하지 않고. 기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문을 열어주었다.

밖에 나왔을 때 바람이 불었다. 염분을 묻힌 바람. 제주의 바람. 이 바람은 자신의 얼굴을 스쳤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뺨을 톡 건드린 것처럼. 마치 자신을 깨우려고 하는 것처럼.

문을 두드렸다. 누군가 안에서 움직였다. 발소리. 그리고 문이 열렸다.

엄마였다.

세아는 자신의 엄마를 봤다. 더 늙어 있었다. 몇 달 사이에. 머리는 더 희었다. 등은 더 굽어 있었다. 하지만 눈은 같았다. 깊은 눈. 물 속 눈. 모든 것을 본 눈.

둘은 말을 하지 않았다. 단지 서로를 봤다. 오래 동안. 마치 서로가 여전히 여기 있다는 걸 확인하는 것처럼.

그리고 엄마가 손을 들었다. 검고 주름진 손. 해녀의 손. 그 손이 세아의 머리를 만졌다. 아주 천천히. 마치 자신의 딸이 깨질 수도 있는 무언가인 것처럼. 마치 자신의 딸을 다시 만드는 것처럼.

세아는 그 손 아래에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울었다. 소리 없이. 입을 다문 채로. 눈물만 흘렸다. 그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말이었다. 그것이 자신이 해야 하는 모든 말이었다.

엄마는 말을 하지 않았다. 단지 세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계속. 멈추지 않고. 마치 자신이 물 속에서 올라올 때 세아가 해주던 것처럼. 마치 자신의 딸이 돌아왔다는 걸 자신의 손으로 말하는 것처럼.

“왔니.”

엄마가 마침내 말했다. 질문이 아니었다. 확인. 마치 자신이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네.”

세아가 말했다.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오래 사용하지 않은 목소리. 울음 속에 잠긴 목소리.

“들어와.”

엄마가 말했다.

세아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따뜻한 냄새. 무언가 끓고 있는 냄새. 밥. 국. 그리고 다른 무언가. 아마도 엄마가 자신이 올 거라고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마치 자신이 이미 연락했던 것처럼. 마치 자신의 발걸음이 이미 들렸던 것처럼.

“밥 먹어.”

엄마가 말했다.

세아는 밥상 앞에 앉았다. 밥. 국. 반찬들. 모두 자신이 어릴 때 먹던 것들이었다. 제주의 음식. 염분의 맛. 바다의 맛.

첫 숟가락을 떠서 입에 넣었을 때, 세아는 자신이 얼마나 오래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 않았는지를 깨달았다. 편의점 도시락. 강리우의 집의 밥. 모두 다른 맛이었다. 모두 자신의 혀를 속인 음식이었다.

하지만 이 밥은 속이지 않았다. 이 국은 거짓이 아니었다. 이것이 자신의 음식이었다. 자신의 엄마가 만든 음식. 자신의 섬의 음식.

엄마는 밥상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고 세아가 먹는 것을 봤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단지 봤다. 마치 자신이 물 속에 있을 때 자신의 딸이 하던 것처럼. 마치 자신의 딸이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처럼.

“도현이는?”

세아가 물었다.

“학교.”

엄마가 대답했다. 간단하게.

“아버지는?”

세아가 물었다.

엄마의 표정이 변했다. 아주 약간. 하지만 세아는 그것을 봤다.

“아버지는 조용해. 많이 조용해.”

엄마가 말했다.

세아는 그 말을 들었다. 조용하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버지가 말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인가. 아니면 아버지가 더 이상 여기에 없다는 의미인가. 세아는 묻지 않았다. 답을 원하지 않았다. 단지 밥을 먹었다. 계속 먹었다. 마치 자신이 오래 먹지 않았던 것을 보상받는 것처럼.

밥을 먹은 후에 엄마는 세아를 침실로 데려갔다. 자신의 어릴 때 침실. 마루. 창문. 밖으로 보이는 바다. 밤의 바다. 검은 바다. 하지만 파도의 소리는 들었다. 계속 들렸다. 마치 자신을 부르는 것처럼.

“쉬어.”

엄마가 말했다.

세아는 침대에 누웠다. 낡은 침대. 어릴 때 누워있던 침대. 자신이 아직도 여기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침대에. 이 방에. 이 섬에.

엄마는 불을 꺼주고 나갔다. 문을 살짝 열어두고. 마치 자신이 언제든 돌아올 수 있도록.

세아는 어둠 속에서 눈을 떴다. 천장을 봤다. 낡은 천장. 몇 군데 곰팡이가 피어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익숙했다. 그것도 자신의 것이었다.

그리고 세아는 듣기 시작했다. 바다의 소리를. 파도의 소리. 그것이 자신의 유일한 음악이 되었다. 강리우의 손이 아니라. 하늘이의 말이 아니라. 단지 바다의 소리. 자신의 섬의 소리.

세아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오랜 시간 만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꿈 없이. 기억 없이. 단지 자신이 어딘가에 다시 도착했다는 확인만 가지고.


밤이 깊어갔다. 제주의 밤. 차갑고, 조용하고, 오래된 밤. 세아의 엄마는 부엌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물을 끓이는 소리. 그릇을 닦는 소리. 그리고 무언가를 쓰는 소리.

엄마는 종이에 뭔가를 쓰고 있었다. 글씨는 크지 않았다. 손이 떨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글자는 명확했다. 몇십 년을 물에 담그며 연습한 손. 그 손이 종이 위에서도 정확했다.

편지였다. 세아의 아버지에게 쓰는 편지. 세아가 왔다는 것을 알리는 편지.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기도했는지를 알리는 편지. 자신의 딸이 돌아오기를. 자신의 딸이 살아서 돌아오기를.

엄마는 그 편지를 접었다. 그리고 창밖을 봤다. 바다. 검은 바다. 그 바다 너머 어딘가에 그의 아버지가 있다고 생각했나.

“고마워.”

엄마가 중얼거렸다. 아무에게 말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에게 말하는 것도 아닌, 그냥 밤에 말하는 것. 밤하늘에 말하는 것.

“내 딸을 돌려줘서. 고마워.”

그리고 엄마는 불을 껐다. 자신도 자러 가기 위해. 자신의 딸이 있는 집에서. 자신의 딸이 다시 숨을 쉬는 이 집에서.

세아는 여전히 자고 있었다. 깊은 잠. 그 잠 속에서 누군가 그를 부르고 있었다. 그것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따뜻한 목소리. 염분 냄새가 나는 손. 자신을 깨우지 않으면서 자신이 여기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손.

새벽 3시. 제주의 새벽. 아직 아무도 깨어있지 않은 시간. 하지만 바다는 깨어있었다. 바다는 항상 깨어있다. 멈추지 않으면서. 계속 움직이면서. 계속 부르면서.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면서.


화 끝

# 돌아온 딸

## 1부: 귀향

밥을 먹는 동안 세아는 자신이 얼마나 배고팠는지를 깨달았다. 그것은 단순한 신체의 허기가 아니었다. 마치 자신의 몸 전체가, 세포 하나하나가 오랜 세월 동안 굶주려 있었던 것처럼, 이 음식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달라 보였다. 입안에서 밥알이 녹아내릴 때마다, 어떤 깊은 곳에서 신음 같은 무언가가 올라왔다.

“많이 먹어. 많이.”

엄마의 목소리는 자꾸만 떨렸다. 엄마는 밥을 담은 그릇을 들었다가 내려놨다. 다시 들었다. 마치 그 그릇이 너무 무거워서, 아니면 너무 가벼워서,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몰라하는 것처럼. 세아는 엄마의 손을 보았다. 그 손은 세아가 기억하는 그 손이 아니었다. 더 작아 보였다. 더 투명해 보였다. 마치 바다 물에 오래 담가진 것처럼 주름이 깊었고, 색이 변해 있었다.

“엄마.”

세아가 말했다.

“뭐니?”

“손이… 아파?”

엄마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그리고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슬픈 웃음이었다. 아니, 슬픔과 기쁨이 뒤섞인 웃음이었다.

“아프지 않아. 아파할 시간이 없었어.”

엄마는 다시 밥을 담아내밀었다. 그리고 자신도 밥을 집어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엄마는 제대로 먹지 않았다. 그저 입에 밥을 넣고 씹기만 했다. 마치 의례처럼. 마치 이 행위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딸과 함께 밥을 먹는다는 사실 자체만이 중요한 것처럼.

두 사람 사이에는 오랜 침묵이 흘렀다. 그것은 불편한 침묵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침묵 속에서 많은 말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몇 년 동안 나누지 못한 말들. 몇 년 동안 묵혀 있던 말들. 하지만 그것들은 말해질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로가 여기 있다는 것을. 서로가 살아있다는 것을.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밥을 다 먹으면 쉬어야 해. 많이 피로했을 거야.”

엄마가 말했다. 그 목소리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것은 엄마가 많은 사람을 돌보며 얻은 확신이었다. 아마도 이 섬에서 아이들을 낳고, 병들고, 죽는 과정을 많이 봐왔을 것이다. 그래서 엄마는 알았다. 세아가 얼마나 피로했는지를. 얼마나 깊은 곳에서 지쳐 있는지를.

세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마지막 숟가락을 입에 넣었다. 밥은 따뜻했다. 간장도 짰다. 반찬은 단순했다. 시금치 나물. 계란말이. 김. 하지만 이것들이 세아의 입안에서 폭발했다. 마치 자신이 오래 먹지 않았던 것을 보상받는 것처럼, 마치 자신의 혀가 다시 깨어나는 것처럼.

## 2부: 침실

밥을 먹은 후에 엄마는 세아를 침실로 데려갔다. 그것은 세아의 어릴 때 침실이었다. 문을 열었을 때 나온 냄새는 바다 냄새와 오래된 나무 냄새가 섞여 있었다. 그 냄새 속에는 세아의 어린 시절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방은 작았다. 정말 작았다. 어떻게 자신이 이 작은 공간에서 자랐는지 의아할 정도로. 하지만 그 작은 공간이 세아에게는 온 세상이었다. 마루는 오래되어 있었고, 여기저기 갈라져 있었다. 햇빛에 변색된 자리들도 있었다. 창문 근처에는 먼지가 쌓여 있었고, 그 먼지 사이로 밤의 바다가 보였다.

“창문을 열어줄까?”

엄마가 물었다.

“아니.”

세아가 대답했다. “이대로 괜찮아.”

바다는 검은 색이었다. 깊고 검은 색. 낮에 본 바다와는 완전히 다른 바다였다. 낮에는 바다가 생명력으로 가득 차 있었다면, 지금의 바다는 침묵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그 침묵 속에서도 파도의 소리가 들렸다. 계속 들렸다. 마치 자신을 부르는 것처럼. 마치 자신의 이름을 계속 부르는 것처럼.

“쉬어.”

엄마가 말했다. 그것은 명령이 아니었다. 부탁이었다. 아니, 기도였다.

세아는 침대에 누웠다. 그것은 낡은 침대였다. 어릴 때 누워있던 그 침대. 매트리스는 딱딱했고, 침대 프레임은 삐걱거렸다. 하지만 세아가 누워지는 순간, 무언가가 자신의 안에서 풀려났다. 마치 오랜 시간 동안 꼭 조여두었던 끈이 풀려나는 것처럼.

“자신이 아직도 여기 있다.”

세아는 생각했다.

“이 침대에. 이 방에. 이 섬에.”

그것은 현실이었다. 꿈이 아니었다. 자신은 정말 돌아온 것이었다. 어디서? 언제? 어떻게? 그런 질문들은 지금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었다. 이 침대. 이 방. 이 바다의 소리. 그리고 자신의 옆에 있는 엄마.

엄마는 불을 꺼주었다. 손을 뻗어 전등 스위치를 찰칵 눌렀을 때, 방 전체가 어둠에 잠겼다. 하지만 엄마는 문을 완전히 닫지 않았다. 살짝 열어두었다. 마치 자신이 언제든 돌아올 수 있도록. 마치 자신이 밤중에 깨어났을 때 자신의 엄마를 찾을 수 있도록.

“엄마.”

세아가 어둠 속에서 말했다.

“여기 있어. 엄마가 여기 있어.”

엄마의 목소리는 복도에서 들려왔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세아를 안심시켰다. 진짜로. 깊은 곳에서.

## 3부: 어둠

세아는 어둠 속에서 눈을 떴다. 아니, 이미 눈을 떴던 것인가? 자신이 눈을 감았던 것인가? 시간의 감각이 흐릿했다. 하지만 천장은 명확했다. 낡은 천장. 몇 군데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검은 점들처럼. 마치 별들처럼.

“그 곰팡이도 내 것이구나.”

세아는 생각했다.

그것도 자신의 것이었다. 자신의 과거의 것이었다. 자신의 어린 시절의 것이었다. 자신이 밤에 누워서 바라보던 천장 위의 그 곰팡이들. 그것들이 자신에게 말을 걸기도 했다. 어린 세아는 그 곰팡이들에게 자신의 비밀을 말했다. 밤 중에. 아무도 듣지 않을 때.

파도의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밤이 깊어갈수록 더 크게. 마치 바다가 깨어나고 있는 것처럼. 마치 바다가 자신을 깨워내려고 하는 것처럼.

“강리우의 손이 아니라.”

세아는 생각했다.

“하늘이의 말이 아니라.”

도시에서의 모든 것들이 멀어졌다. 강리우라는 남자. 하늘이라는 여자. 그들이 자신에게 했던 말들. 그들이 자신을 만졌던 손들. 그 모든 것이 지금, 이 어둠 속에서는 소음처럼 들렸다.

“단지 바다의 소리. 자신의 섬의 소리.”

그것만이 음악이었다. 그것만이 자신을 깨우는 진짜 음악이었다. 그것만이 자신을 부르는 진짜 목소리였다.

세아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오랜 시간 만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꿈 없이. 기억 없이. 단지 자신이 어딘가에 다시 도착했다는 확인만 가지고.

하지만 그 깊은 잠 속에서도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그것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따뜻한 목소리. 염분 냄새가 나는 손. 자신을 깨우지 않으면서 자신이 여기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손.

## 4부: 밤의 깊이

밤이 깊어갔다. 제주의 밤. 그것은 서울의 밤과는 완전히 달랐다. 서울의 밤은 불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네온사인들. 자동차 불빛들. 아파트 창문의 불빛들. 하지만 제주의 밤은 달았다. 차갑고, 조용하고, 오래된 밤.

세아의 엄마는 부엌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물을 끓이는 소리. 그릇을 닦는 소리. 그리고 무언가를 쓰는 소리. 그 소리들이 밤의 침묵을 깨뜨렸다. 하지만 그것은 방해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오히려 안식을 주는 소리였다. 누군가가 깨어 있다는 확인을 주는 소리였다.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확인을 주는 소리였다.

엄마는 종이에 뭔가를 쓰고 있었다. 글씨는 크지 않았다. 손이 떨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글자는 명확했다. 몇십 년을 물에 담그며 연습한 손. 물질을 다루고, 바다를 다루고, 아이들을 다루며 연습한 손. 그 손이 종이 위에서도 정확했다.

편지였다.

세아의 아버지에게 쓰는 편지. 세아가 왔다는 것을 알리는 편지.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기도했는지를 알리는 편지.

“우리 딸이 왔어. 살아서 왔어.”

엄마는 중얼거렸다. 손가락에는 펜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파란색 잉크. 그것도 자신의 것이었다. 자신의 인생의 색이었다.

“자신의 딸이 돌아오기를. 자신의 딸이 살아서 돌아오기를.”

얼마나 많은 밤을 이렇게 기도했을까? 얼마나 많은 밤을 이 부엌에서 무언가를 쓰면서 보냈을까?

엄마는 종이에 계속 글을 썼다. 손가락이 떨렸지만, 글씨는 멈추지 않았다.

“네가 어디서 뭐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들리는가? 우리 세아가 돌아왔다. 살아서 돌아왔다. 내가 기도한 그 딸. 내가 밤마다 부른 그 딸. 그 딸이 돌아왔다.”

글씨가 점점 커졌다. 손가락의 떨림도 커졌다. 하지만 엄마는 멈추지 않았다. 계속 썼다.

“고마워. 진짜 고마워. 나는 더 이상 뭘 원하지 않아. 그냥 이것만으로 충분해. 우리 세아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

엄마는 펜을 내려놨다. 그리고 창밖을 봤다.

바다. 검은 바다. 그 바다 너머 어딘가에 그의 아버지가 있다고 생각했나? 아니면 그냥 바다 자체가 아버지라고 생각했나?

“고마워.”

엄마가 중얼거렸다. 아무에게 말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에게 말하는 것도 아닌, 그냥 밤에 말하는 것. 밤하늘에 말하는 것. 별들에 말하는 것. 그리고 아마도 바다에 말하는 것.

“내 딸을 돌려줘서. 고마워.”

엄마는 편지를 접었다. 정확하게. 세 번 접었다. 그리고 그것을 봉투에 넣지는 않았다. 그냥 탁자 위에 놓아두었다. 마치 그것을 누군가가 읽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그리고 엄마는 불을 껐다. 자신도 자러 가기 위해. 자신의 딸이 있는 집에서. 자신의 딸이 다시 숨을 쉬는 이 집에서.

## 5부: 새벽의 고요함

새벽 3시였다. 제주의 새벽. 아직 아무도 깨어 있지 않은 시간. 닭도 울지 않았고, 개도 짖지 않았다. 바람도 불지 않았다. 마치 시간 자체가 멈춘 것처럼.

하지만 바다는 깨어 있었다. 바다는 항상 깨어 있다. 멈추지 않으면서. 계속 움직이면서. 계속 부르면서.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면서.

침실에서 세아는 깊은 잠에 잠겨 있었다. 그 잠 속에서도 어떤 목소리가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따뜻한 목소리. 아버지의 목소리인가? 아니면 바다의 목소리인가?

“세아야.”

그 목소리가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세아야. 돌아와. 돌아와.”

그리고 세아는, 깊은 잠 속에서도, 그 부름에 응답하고 있었다. 자신의 몸 전체로. 자신의 심장으로. 자신이 여기 있다는 것을 알리면서.

복도에서는 엄마가 문을 통해 자신의 딸을 바라보고 있었다. 문을 통해. 어둠을 통해. 하지만 그 어둠이 자신들을 나누지는 못했다. 그 어둠 속에서도 엄마는 자신의 딸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딸의 숨을 들을 수 있었다. 자신의 딸이 살아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엄마는 문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아무도 듣지 않는 곳에서. 그리고 기도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 말은 누구에게 하는 말인가? 하늘에? 바다에? 아니면 자신의 남편에게?

“내 딸을 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엄마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침묵 속에서. 아무도 듣지 않는 밤에서. 아무도 보지 않는 어둠에서.

그리고 바다는 계속 울었다. 파도의 소리로.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면서.

“세아야. 세아야. 세아야.”

마치 바다 자체가 자신의 딸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것처럼. 마치 바다가 자신의 딸을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새벽은 깊어만 갔다. 하지만 그 깊음 속에는 온기가 있었다. 어떤 온기. 어떤 확신. 어떤 기도가 응답받았다는 확신.

그리고 세아는, 그 깊은 어둠과 그 바다의 부름 속에서, 마침내 자신이 돌아왔다는 것을 알았다. 완전히. 온전히. 절대적으로.

이 섬에. 이 방에. 이 침대에.

그리고 자신의 엄마가 있는 곳에.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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