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01화: 다섯 번째 계단
제주행 비행기는 오후 4시 30분 출발이었다. 세아는 공항 라운지에 앉아 창밖을 봤다. 활주로 위의 비행기들이 한 줄로 서 있었다. 마치 새들처럼. 마치 뭔가를 기다리고 있는 새들처럼. 그 새들이 날 수 있을지, 아니면 계속 땅에 머물러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늘이가 옆에 앉아 있었다.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실은 그 휴대폰을 보지 않고 있었다. 화면은 검게 꺼져 있었다. 손가락만 움직였다. 습관적인 움직임. 마치 자신이 뭔가를 해야 한다는 착각을 유지하기 위한.
“이상해?”
하늘이가 물었다. 갑자기.
세아는 하늘이를 봤다. 그 친구의 얼굴에는 피로가 있었다. 깊은 피로. 밤새 누군가를 병원에서 돌보고, 경찰서를 따라다니고, 변호사 사무실에 들어갔던 피로. 자신의 피로를 나눠 가진 사람의 피로.
“뭐가요?”
세아가 물었다.
“가는 거. 제주 가는 게 이상하지 않아?”
하늘이가 물었다.
“왜요?”
세아가 물었다.
“왜냐하면 이 몇 달 동안 넌 서울을 떠난 적이 없었거든. 강리우 때문에. 그 사람 손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거든. 근데 이제 넌 가. 그것도 혼자.”
하늘이가 말했다.
세아는 그 말을 들으면서 창밖의 비행기들을 봤다. 그 새들이 이제 날아오르려고 했다. 바퀴가 지면에서 떨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 번 떠오르면 돌아올 수 없다. 그것이 비행기였다. 그것이 도망침이었다. 아니, 그것이 출발이었다.
“무섭진 않아요.”
세아가 말했다.
“거짓말.”
하늘이가 말했다. 그냥 그렇게. 판단 없이. 단지 사실처럼.
“거짓말 아니에요.”
세아가 말했다.
“그럼 뭐야? 무서움 말고?”
하늘이가 물었다.
세아는 그 질문에 대해 생각했다. 무서움이 아니라면 뭔가. 안도감? 아니다. 해방감? 그것도 아니었다. 자신이 느끼는 것은 그보다 더 정확한 감정이었다. 그것은—
“확인.”
세아가 말했다.
“뭐의?”
하늘이가 물었다.
“제가 살아있다는 것의.”
세아가 말했다.
하늘이는 그 말을 들으면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창밖을 봤다. 비행기들을. 그 새들을.
“그럼 가. 가서 살아있는 거 느껴.”
하늘이가 말했다.
탑승 시간이 되었을 때, 하늘이는 세아를 게이트까지 따라갔다. 보안 검사대 앞까지. 그 이상은 못 간다. 거기부터는 세아 혼자였다. 다른 세계로 가는 통로. 다른 삶으로 가는 통로.
“제주에서 뭐 할 거야?”
하늘이가 물었다.
“엄마 봐야 돼요. 도현이도.”
세아가 말했다.
“오빠는?”
하늘이가 물었다.
“뭐?”
세아가 물었다.
“넘버 원. 나는 어때? 제주에서 나 생각 안 할 거야?”
하늘이가 농담처럼 말했다. 하지만 눈은 웃지 않았다.
“당연히 할게요.”
세아가 말했다.
“거짓말하지 마. 넌 제주 가면 서울 따위 잊어버릴 거야. 그 바다 보고 엄마한테 안기고. 그럼 서울이 뭐 하는 곳인지도 까먹고. 나 따위도.”
하늘이가 말했다.
“아니에요.”
세아가 말했다.
“진짜야. 넌 그런 인간이야. 한 번 떠나면 뒤를 안 본다. 그게 넌데, 나는 그걸 알아. 그래서 괜찮아. 가. 그리고 거기서 뭔가 좋은 거 찾아. 내가 못 찾은 거. 내가 포기한 거. 넌 찾아.”
하늘이가 말했다.
세아는 그 말을 들으면서 자신의 친구를 봤다. 이 사람. 지난 몇 개월 동안 자신 곁에 있던 이 사람. 자신이 떠날 수 없게 붙잡아 주던 이 사람. 이제 자신을 떠나보내고 있었다.
“고마워요.”
세아가 말했다.
“알았어. 도착하면 연락.”
하늘이가 말했다.
보안 검사대를 지나면서 세아는 뒤를 돌아봤다. 하늘이는 여전히 거기 서 있었다. 손을 들어 흔들고 있었다. 아주 천천히. 마치 누군가를 배웅하는 것처럼. 마치 그 사람이 돌아올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는 것처럼.
비행기 안은 상큼한 냄새가 났다. 소독약. 인공 향료. 그리고 수백 명의 낯선 사람들. 그들은 모두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었다. 누군가는 제주로. 누군가는 다른 곳으로. 모두 다른 삶으로.
세아는 창가 자리에 앉았다. 짐칸 위에 작은 가방을 올렸다. 옷 몇 개. 세면도구. 그리고 경찰서에서 받은 상담 센터 안내문. 그것이 자신이 가져간 전부였다.
비행기가 활주로 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천히. 그러다가 점점 빨라졌다. 엔진음이 커졌다. 마치 뭔가가 깨어나는 소리처럼. 마치 세상이 흔들리는 소리처럼.
그리고 바퀴가 지면에서 떨어졌다. 한 순간에. 갑자기. 마치 비행기 자체가 새가 되는 순간처럼. 마치 자신도 그 새와 함께 날아오르는 순간처럼.
세아는 창밖을 봤다. 서울이 아래로 작아지고 있었다. 빌딩들이 점이 되고 있었다. 강이 실처럼 보이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이 멀어지고 있었다.
강리우. 그 이름도 아래로 남겨지고 있었다. 변호사. 경찰서. 그 모든 것이 아래로 남겨지고 있었다. 하지만 완전히 떠나갈 수는 없었다. 그것들은 자신의 뼈 속에 살아있었다. 마치 금속 조각처럼. 마치 꺼낼 수 없는 파편처럼.
비행기는 구름 위로 올라갔다. 하얀 구름. 그 위는 맑은 하늘이었다. 파란색. 깊은 파란색. 마치 바다 같은 파란색.
세아는 자신의 손을 봤다. 손가락들. 손톱. 손금. 이 손으로 자신이 뭘 했는가. 이 손으로 자신이 뭘 쓸 수 있는가.
비행기 승무원이 기내식을 날랐다. 샌드위치. 음료수. 작은 봉지에 든 초콜릿. 세아는 그것들을 받았다. 하지만 먹지는 않았다. 단지 손에 들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뭔가를 해야 한다는 제스처를 유지하기 위해.
옆자리에 남자가 앉았다. 나이는 오십 대쯤. 신문을 읽고 있었다. 경제 섹션. 그 위에는 기업 뉴스가 있었다. 어떤 회사가 인수되었다는 뉴스. 누군가의 직장이 사라졌을 것이다. 누군가의 인생이 바뀌었을 것이다. 하지만 신문의 글씨는 그것을 숫자로만 표현했다.
세아는 눈을 감았다. 창밖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서울도. 구름도.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았다. 단지 어둠. 자신의 눈 뒤의 어둠. 그 어둠이 가장 안전한 곳이었다.
그곳에서 세아는 생각했다. 지난 몇 달을 생각했다. 강리우를 만난 그 밤. 병원 현관. 한강 다리. 경찰서의 형광등. 변호사 사무실의 회색 벽. 모든 것이 꿈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꿈이 아니었다. 현실이었다. 자신이 실제로 살아낸 현실.
그렇다면 지금은 뭔가. 비행기 안. 구름 위. 어디도 아닌 곳. 그것은 현실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사이 공간이었다. 서울과 제주 사이. 과거와 미래 사이. 죽음과 삶 사이.
비행기가 난기류를 만났다. 갑자기 흔들렸다. 마치 뭔가가 자신을 밀어붙이는 것처럼. 마치 누군가가 자신을 아래로 내려치려고 하는 것처럼. 승객들이 비명을 질렀다. 옆자리의 남자가 신문을 꼬았다. 하지만 세아는 움직이지 않았다.
이 흔들림. 이것도 살아있다는 증거였다. 공기 속에서 부딪히는 것들의 증거. 자신의 몸이 어딘가에 붙어있다는 증거.
“처음이세요?”
옆자리의 남자가 물었다. 신경 쓰는 척했다. 하지만 실은 자신의 두려움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었던 것이다.
“아니에요.”
세아가 말했다. 그것은 거짓이었다.
“경험 많으신 분이군요.”
남자가 말했다. 그리고 다시 신문으로 돌아갔다. 신문이 더 안전했다. 신문 속의 세상은 더 단순했다.
두 시간 반이 지났다. 비행기는 제주 공항에 접근했다. 기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제주에 내려갈 준비를 하라는 목소리. 마치 또 다른 세상으로 가려고 하는 사람들을 깨우는 목소리.
세아는 창밖을 다시 봤다. 제주가 보였다. 해안선. 푸른색. 초록색. 회색의 산. 그 모든 것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점에서 선으로. 선에서 면으로. 추상에서 구체로.
비행기가 내려앉으면서 바퀴가 지면에 닿았다. 땅. 다시 땅이었다. 하늘에서 내려온 것. 다시 중력의 영역으로 돌아온 것. 다시 무게를 느끼는 것.
공항을 나갔을 때 세아는 공기의 냄새를 맡았다. 서울과는 다른 냄새. 소금기. 바람. 그리고 뭔가 익숙한 냄새. 어린 시절의 냄새. 자신이 잊었던 냄새. 아니, 자신이 잊고 싶었던 냄새.
택시 기사는 목도리를 맸다. 겨울이었다. 제주의 겨울은 서울과는 달랐다. 덜 춥고 덜 건조했다. 마치 바다가 온기를 나누어 주는 것처럼.
“어디 가세요?”
택시 기사가 물었다.
세아는 주소를 말했다. 자신의 어린 시절 집. 어머니가 있는 곳. 도현이가 있을 그곳. 하지만 그것이 여전히 자신의 집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곳이 여전히 자신을 받아줄 준비가 되어 있는지도.
택시가 움직였다. 제주의 도로를 따라. 검은 아스팔트. 그 위의 흰 선. 도로 양옆의 감귤 밭. 돌담. 자신이 어렸을 때 뛰어다니던 곳. 자신의 발이 닿았던 땅.
모든 것이 맞는 것 같으면서도, 모든 것이 낯선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다른 누군가의 추억을 보고 있는 것처럼. 마치 자신이 그곳에 살았던 사람이 아닌 것처럼.
택시는 계속 나아갔다. 산을 넘고. 마을을 지나고. 바다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세아는 그 냄새를 다시 맡았다. 소금. 해초.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
집이 보였다. 작은 집. 돌로 지은 집. 지붕은 이끼가 낀 듯했다. 하지만 창문의 불은 켜져 있었다. 누군가 기다리고 있었다. 누군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세아는 택시에서 내렸다. 발이 제주 땅에 닿았다. 다시. 오랜만에. 마치 처음 닿는 것처럼. 마치 마지막으로 닿는 것처럼.
문이 열렸다. 어머니였다. 해녀의 얼굴. 검게 탄 얼굴. 하지만 눈은 여전히 부드러웠다. 마치 바다처럼 깊은 눈.
“왔니.”
어머니가 말했다. 그냥 그것뿐이었다. 질문도 설명도 없었다. 단지 확인. 자신의 딸이 돌아왔다는 확인.
세아는 어머니를 봤다. 그리고 자신이 왜 여기로 왔는지를 깨달았다. 도망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돌아가기 위해서.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다시 배우기 위해서.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다시 기억하기 위해서.
“네. 왔어요.”
세아가 말했다.
어머니는 세아를 안았다. 말 없이. 그 안에는 모든 것이 있었다. 모든 질문의 답이. 모든 죄책감의 용서가. 모든 외로움의 끝이.
제주의 밤은 조용했다. 서울의 밤처럼 밝지 않았다. 별들이 훨씬 더 많이 보였다. 마치 하늘 전체가 작은 불들로 가득 찬 것처럼. 마치 누군가가 하나하나 켜 놓은 불들처럼.
세아는 어릴 때 방에서 누워 있었다. 천장의 점박이. 그 점박이가 별이라고 생각했었다. 자신의 작은 방이 자신의 작은 우주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 우주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 알았다. 그 점박이는 별이 아니었다. 단지 습기였다. 곰팡이였다. 시간이 남기는 흔적이었다. 그리고 우주는 훨씬 더 크고 깊고 어두웠다. 자신이 도망칠 수 없을 정도로.
도현이는 아직 깨어 있었다. 고등학교 공부를 하고 있었다. 책상에 엎드려서. 마치 자신이 보호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처럼.
“누나?”
도현이가 고개를 들었다.
“응.”
세아가 말했다.
“오래됐네.”
도현이가 말했다. 아주 담담하게.
“미안해.”
세아가 말했다.
“뭐하러 왔어?”
도현이가 물었다.
“살기 위해.”
세아가 말했다.
도현이는 그 대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다시 책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손은 멈춰 있었다. 손가락이 페이지 위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자신도 그 대답이 필요했던 것처럼.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제주의 밤. 침묵의 밤. 하지만 그 침묵은 적대적이지 않았다. 그것은 보호하는 침묵이었다. 자신이 여기에 있어도 된다는 침묵. 자신이 여기에 있어야 한다는 침묵.
세아는 다시 창밖을 봤다. 별들. 그 별들이 하나하나 켜져 있었다. 누군가가 켜 놓은 게 아니라, 자신이 켜야 하는 불들처럼. 자신의 인생이 이미 불들로 시작되었다는 뜻처럼.
강리우는 어디에 있을까. 서울의 어디선가 누워있을 것이다. 변호사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마 다음 재판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하늘이는. 타투 샵에서 누군가의 팔에 바늘을 들이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여기 있었다. 제주의 밤. 어머니의 옆. 도현이의 책 소리가 들리는 곳. 이곳이 어디인가. 이것이 어디인가.
세아는 그 질문에 답을 찾기 시작했다. 그것은 집이 아니었다. 피난처도 아니었다. 도망의 끝도 아니었다. 그것은—
“엄마.”
세아가 어머니를 불렀다.
“응.”
어머니가 답했다. 마치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저 여기 있어도 돼요?”
세아가 물었다.
어머니는 그 질문을 들으면서 세아의 머리를 쓸어내렸다. 말 없이. 손으로. 어머니의 손은 따뜻했다. 마치 해에 데워진 바위처럼. 마치 제주 바다가 주는 온기처럼.
“당연하지. 넌 내 딸이니까.”
어머니가 말했다.
그 말이 들렸을 때, 세아는 자신이 무엇을 기다렸는지 깨달았다. 단지 그 말. 그 문장. 그 확인. 자신이 누군가의 딸이라는 것. 자신이 어딘가에 속한다는 것. 자신이 태어났던 곳으로 돌아와도 된다는 것.
밤은 더 깊어갔다. 어머니는 자신의 방으로 갔다. 도현이는 결국 잠들었다. 책 위에 얼굴을 묻고. 세아는 혼자 남았다. 창밖의 별들과 함께.
그리고 그 순간, 비행기 안에서 느꼈던 것이 다시 돌아왔다. 그것은 무서움이 아니었다. 무서움도 안도감도 아니었다. 그것은 확인. 자신이 살아있다는 확인. 자신이 움직인다는 확인. 자신이 여기에 있다는 확인.
불은 천천히 꺼져가고 있었다. 어머니의 방의 불. 도현이의 책상의 불. 그리고 자신의 창문 밖의 별들도. 하나하나. 천천히. 아침이 올 때까지.
세아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내일을 생각했다. 내일은 무엇을 할 것인가. 어머니를 도울 것인가. 도현이와 대화할 것인가. 아니면 그냥 여기에 있을 것인가.
하지만 그것은 내일의 문제였다. 지금은 밤이었다. 제주의 밤. 자신의 밤. 자신이 살아낸 밤. 자신이 견뎌낸 밤. 그리고 자신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밤.
아래층에서 어머니가 뭔가를 정리하는 소리가 들렸다. 작은 소리. 마치 몰래 움직이는 것처럼. 하지만 세아는 그 소리를 알았다. 어머니가 자신의 방을 정리하고 있다는 것을. 자신이 돌아올 때를 위해 오래전부터 정리해 두었던 방을. 자신이 떠났을 때도, 자신이 안 왔을 때도, 그 방은 그대로 있었다는 뜻.
세아는 눈을 떴다. 그리고 다시 창밖의 별들을 봤다. 하나하나. 점이 아니라 불. 누군가의 불이 아니라 자신의 불.
아침까지 아직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자신은 여기에 있을 것이었다. 제주에. 어머니와 함께. 도현이와 함께. 자신의 시간으로.
<5권, 제1화 끝>
# 제5권, 제1화: 두 개의 밤
## 1부: 평행선
**하늘이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세아는 택시 창밖의 제주 야경을 바라보며 그 생각에 빠져 있었다. 새벽 한시 반. 비행기에서 내린 지 정확히 두 시간 십 분. 서울에는 여전히 밤이 짙게 깔려 있을 시간이었다.
*타투 샵. 아마 타투 샵에 있겠지.*
세아는 눈을 감았다. 검은 천장이 떠올랐다. 타투 샵의 천장. 그곳의 형광등 아래서 하늘이는 누군가의 팔에 바늘을 들이대고 있을 것이다. 그 팔은 누구의 팔일까. 어떤 무늬를 원하는 사람일까. 하늘이는 그 사람의 얼굴을 보며 웃고 있을까, 아니면 그 표정 없는 얼굴로 일만 하고 있을까.
세아는 알 수 없었다. 더 이상 하늘이의 일상을 공유하지 않기로 했으니까.
택시는 제주의 해안도로를 따라 움직였다. 윤기 나는 검은 아스팔트 위에 가로등의 불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길을 만들어 놓은 것처럼. 세아를 위해. 세아가 돌아올 수 있도록.
*아니지. 돌아온 게 아니라 와본 거겠지.*
세아는 손가락으로 차창을 따라 그었다. 미지근한 유리. 밖의 공기는 훨씬 더 차가울 것이었다. 밤의 제주는 겨울의 냉기를 머금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뭔가 다른 것도 있었다. 바다의 냄새. 소금기. 아주 오래전에 맡았던 냄새.
“여기 맞습니다.”
택시 기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섯 살 때부터 들어온 이 고장의 사투리. 세아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마치 자신이 깨어 있지 않았던 것처럼. 마치 자신이 꿈속을 헤매고 있었던 것처럼.
집이 눈에 들어왔다.
단층의 작은 집. 돌담으로 둘러싸여 있고, 현관 옆에 동백나무가 한 그루 서 있는. 세아가 가장 오래전에 기억하는 집. 자신이 엄마의 손을 잡고 처음 들어왔던 집. 자신이 처음 밤하늘의 별을 봤던 집.
세아는 천천히 차를 내렸다. 짐은 많지 않았다. 검은색 롤러백 하나와 작은 백팩. 마치 어디로든 다시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증명하듯이.
“감사합니다.”
세아가 기사에게 돈을 건넸다. 기사는 흔쾌히 받지 않고 한 번 더 쳐다봤다.
“어디서 봤는데…”
“처음이에요.”
세아가 미소를 지었다.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진실이기도 했다. 여섯 살의 세아와 지금의 세아는 다른 사람이었으니까.
—
**현관문을 열기 전에 세아는 한 번 더 멈췄다.**
가슴이 빨리 뛰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마치 누군가와의 첫 데이트를 앞두고 있는 것처럼. 또는 가장 중요한 면접을 앞두고 있는 것처럼. 하지만 이것은 그런 게 아니었다. 이것은 그보다 훨씬 더 무섭고, 훨씬 더 중요했다.
어머니.
세아는 그 단어를 속으로 되풀이했다. 어머니. 그것은 지난 십 년간 자신이 가장 적게 사용한 단어였다. 아니, 아예 사용하지 않은 단어였다. 엄마. 아빠. 부모. 가족. 그런 단어들은 자신의 입에서 나온 적이 없었다.
하지만 오늘 밤, 세아는 그 단어를 써야 했다.
세아는 심호흡을 했다. 코로 들이마셨다. 제주의 밤공기가 폐 깊숙이 들어왔다. 그 공기 속에는 바다의 향기도, 흙의 냄새도, 그리고 무언가 낯설면서도 친숙한 무언가가 섞여 있었다.
손잡이를 돌렸다.
문은 열리지 않았다.
세아는 다시 한 번 힘을 주었다. 열쇠로 잠겨 있었다. 당연하다. 새벽 한시 반에 문을 열어두고 있을 리가 없지.
세아는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엄마의 번호는 여전히 저장되어 있었다. 십 년 전의 번호. 지금도 쓰고 있을까. 세아는 손가락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호출음이 울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여보세요?”
목소리가 들렸다.
세아는 말을 잇지 못했다. 마치 자신의 혀가 어디론가 사라진 것처럼. 그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너무 오래전의 목소리. 너무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목소리. 그런데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마치 어제 들었던 것처럼.
“여기… 저 왔어요.”
세아의 목소리는 떨렸다. 열여섯 살의 목소리가 아니라 어린아이의 목소리였다.
“응?”
어머니의 목소리에도 잠깐의 침묵이 있었다. 그 침묵이 영원할 것 같았다. 세아는 그 침묵 속에서 자신이 틀렸을 가능성을 생각했다. 엄마가 자신을 원하지 않을 가능성. 엄마가 자신을 잊었을 가능성.
“세아?”
하지만 그 불안은 순간에 사라졌다. 어머니는 자신을 알아봤다. 목소리만으로.
“응, 엄마.”
세아가 작게 대답했다.
“지금? 지금이 몇 시야?”
“새벽이에요. 죄송해요. 갑자기…”
“잠깐만. 잠깐만.”
어머니는 전화를 끊지 않은 채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아는 그 움직임의 소리를 들었다. 침대에서 일어나는 소리. 슬리퍼를 끌며 걷는 소리. 집 안의 불을 켜는 소리. 마치 어머니가 세아의 모든 움직임을 따라 하는 것처럼. 또는 세아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온 집을 깨우는 것처럼.
“현관에 있니?”
어머니의 목소리가 더 가까워졌다.
“네.”
곧 문이 열렸다.
—
## 2부: 돌아옴
**어머니는 자신이 기억하던 모습과 다르고도 같았다.**
나이가 들었다. 세아는 그것을 먼저 깨달았다. 검은 머리에 회색이 섞여 있었다. 얼굴에는 주름이 깊어져 있었다. 손에는 나이가 묻어 있었다. 하지만 눈은 같았다. 그 눈의 색깔. 그 눈 안의 빛.
“세아…”
어머니는 한 마디만 했다. 그리고 세아를 끌어안았다.
세아는 움직이지 못했다. 마치 자신이 돌로 변한 것처럼. 어머니의 품 안에서 숨을 쉬지 못하는 것 같았다. 십 년의 세월이 한 번에 내려앉은 것 같았다. 모든 선택이, 모든 결정이, 모든 도망이.
“미안해. 미안해. 우리 세아.”
어머니가 계속 중얼거렸다. 마치 자신을 달래는 것처럼. 또는 세아를 달래는 것처럼.
세아는 천천히 팔을 올렸다. 그리고 어머니의 등을 안았다. 그 순간, 자신이 얼마나 외로웠는지 알 수 있었다. 거리로 나가 있을 때도, 학교에 있을 때도, 하늘이와 함께 있을 때도. 자신은 항상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들어와. 들어와.”
어머니가 손을 잡고 집 안으로 이끌었다.
거실의 불이 켜져 있었다. 세아는 집 안을 둘러봤다. 십 년 전과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같은 소파. 같은 책장. 같은 냄새. 하지만 뭔가는 분명히 달라져 있었다. 책들이 더 늘어나 있었다. 벽에는 사진들이 붙어 있었다. 세아는 그 사진들을 피했다. 자신이 없는 사진들을 보고 싶지 않았다.
“어, 어디서 왔어? 비행기?”
어머니가 물었다. 물음표가 아니라 마침표로 끝나는 질문처럼 들렸다. 마치 어머니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하는 것처럼.
“서울에서요.”
“도현이는?”
세아는 놀랐다. 어머니가 도현이를 알고 있다는 것이. 아니, 알고 있었다는 것이.
“자고 있어요. 책상에서.”
“너 혼자 왔어?”
“네.”
어머니는 그 대답을 받고 다시 세아를 끌어안았다. 이번에는 더 오래. 마치 자신이 풀어놓으면 세아가 다시 사라질 것이라는 두려움으로.
“밥 먹었어? 피곤하지?”
“괜찮아요.”
세아가 거짓말을 했다. 자신은 매우 피곤했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십 년을 혼자 짊어지고 있던 마음이.
어머니는 세아의 손을 잡고 안방으로 데려갔다.
—
**방은 그대로였다.**
세아가 떠나던 날처럼. 마치 누군가가 시간을 멈춰놓은 것처럼. 어린 세아의 그림이 벽에 붙어 있었다. 초등학교 일학년 때 그린 그림. 엄마와 아빠와 나. 해는 노랗고, 풀은 파랗고, 집은 빨강다. 아이의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제 색깔을 가지고 있었다.
“이건…”
세아가 말을 잇지 못했다.
“떼지 않았어. 떼지 못했어. 이건…”
어머니도 말을 마치지 못했다.
세아는 침대에 앉았다. 침대도 그대로였다. 같은 침구. 같은 베개. 마치 자신이 어제 자리를 떠난 것처럼.
“저 여기 있어도 돼요?”
세아가 물었다. 그 질문은 하늘이에게 한 것이 아니었다. 처음으로 자신의 어머니에게 했다.
어머니는 대답 대신 세아의 머리를 쓸어내렸다. 말 없이. 손으로. 어머니의 손은 따뜻했다. 마치 해에 데워진 바위처럼. 마치 제주 바다가 주는 온기처럼. 세아는 눈을 감았다.
“당연하지. 넌 내 딸이니까.”
어머니가 말했다.
그 말이 들렸을 때, 세아는 자신이 무엇을 기다렸는지 깨달았다. 재판 준비도 아니었다. 학교도 아니었다. 하늘이도 아니었다. 단지 그 말. 그 문장. 그 확인.
“자신이 누군가의 딸이라는 것.”
세아는 속으로 반복했다.
“자신이 어딘가에 속한다는 것.”
다시 한 번.
“자신이 태어났던 곳으로 돌아와도 된다는 것.”
—
**밤은 더 깊어갔다.**
어머니는 자신의 방으로 갔다. 세아는 거실의 소파에 누웠다. 어머니는 침구를 깔아주고, 베개를 놓아주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마치 세아가 어린아이인 것처럼. 또는 자신이 너무 오래동안 그렇게 해주지 못했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것처럼.
“엄마.”
세아가 불렀다.
“응.”
어머니가 즉시 대답했다. 마치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미안해요.”
“뭐가 미안해.”
“떠나서. 안 왔어서. 그동안…”
“그건 내가 미안해야 할 일이야.”
어머니가 끊었다.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넌 그럴 일이 없어. 절대로.”
어머니의 손이 세아의 머리를 다시 한 번 쓸어내렸다. 이번에는 작별의 인사처럼.
세아는 눈을 감았다.
거실의 불이 꺼졌다. 어머니의 방의 불이 꺼졌다. 집 안은 조용해졌다. 오직 시계 바늘 소리만 들렸다. 째깍째깍. 마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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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부: 밤의 질문
**세아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천장을 바라봤다. 거실의 천장. 이것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 천장의 모양. 그 천장이 만드는 그림자. 어린 시절에 자신은 이 천장을 보며 뭔가를 기다렸었다. 무엇을 기다렸을까.
세아는 눈을 떴다. 어두운 거실이 보였다. 하지만 완전한 어둠은 아니었다. 창밖의 별빛이 들어와 있었다. 제주의 밤하늘. 오염되지 않은 검은색. 그 속의 무수한 불.
*하늘이는 지금 뭐 하고 있을까.*
세아는 다시 그 생각을 했다. 새벽 한시 반이 서울에서는 새벽 두시 반이었다. 아마 타투 샵은 문을 닫았을 것이다. 하늘이는 어디에 있을까. 자신의 방에? 거리에? 또는 누군가의 옆에?
세아는 핸드폰을 집었다. 화면이 켜졌다. 하늘이의 이름이 저장되어 있었다. 하지만 세아는 전화를 걸지 않았다. 대신 뉴스를 검색했다.
“법원, 미성년자 폭행 사건 재판 연기”
기사가 떴다. 세아는 그것을 읽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하늘이가 법정에 서야 한다는 것. 자신이 증인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 그 모든 것이.
세아는 핸드폰을 내려놨다.
거실에서 무언가 소리가 났다. 아래층에서. 세아는 벌떡 일어났다.
어머니가 내려오고 있었다.
“못 잤니?”
어머니가 물었다. 자신도 잠을 이루지 못한 것 같았다.
“네. 엄마도요?”
“응. 자꾸만…”
어머니는 말을 마치지 못했다. 하지만 세아는 알았다. 어머니도 자신처럼 뭔가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
“차 마실래?”
어머니가 제안했다.
세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
**부엌에서 두 사람은 침묵으로 마주했다.**
어머니는 보리차를 끓였다. 세아는 그것을 마셨다. 뜨거운 차가 식도를 타고 내려갔다. 그것은 아주 오래전의 맛이었다. 어린 세아가 마시던 차. 어머니가 끓여주던 차.
“학교는?”
어머니가 물었다.
“자퇴했어요.”
“왜?”
세아는 대답을 고민했다. 정직하게 말해야 할까, 아니면 거짓말을 해야 할까. 하지만 이 집에서는 거짓말이 의미가 없어 보였다.
“사건 때문에. 증인 신문도 있고…”
“그건…”
어머니가 말을 시작했다가 멈췄다.
“넌 왜 서울에 있었어?”
“보호시설에 있었어요.”
“보호… 세아.”
어머니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건 내가 못 챙겨줬다는 뜻이잖아.”
“아니에요. 제가…”
세아가 말하려 했지만 어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넌 왜 연락을 안 했어? 한 번이라도?”
그 질문은 책임 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