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불탄 소녀 – 제10화: 누군가의 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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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0화: 강리우, 두 번째

맥주 캔이 비어 있었다.

세아는 캔을 테이블 위에 세워두고 장판의 등을 쓰다듬었다. 장판은 이미 잠든 것 같았다 — 눈이 반쯤 감겨 있었고, 호흡이 느리고 균일했다. 고양이는 자신이 따뜻한 곳에 있을 때 그것을 안다. 사람과 다른 점이 그거라고 세아는 생각했다. 사람은 따뜻한 곳에 있으면서도 추운 척한다.

“야.”

하늘이 말했다. 두 번째 캔을 다 마신 후였다. 하늘은 맥주를 마셔도 취하지 않는 체질이었다 — 정확히는, 취해도 눈빛이 똑같은 체질이었다. 세아는 그것을 부러워한 적이 있었다. 감정이 눈에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

“응.”

“강리우 알아?”

세아는 장판의 등에서 손을 멈췄다.

“JYA 대표 아들.” 하늘이 캔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오늘 회의실에 있었어?”

“없었어.”

“없었구나.” 하늘이 무릎을 세워 팔로 감쌌다. “나 그 인간 인스타 봤는데. 음악 관련 계정인데 팔로워가 팔십만이야. 음악 이야기만 하는데. 음반 리뷰, 공연 후기, 가끔 본인 피아노 영상.”

“피아노.”

“응. 근데 요즘은 안 올라와. 일 년 넘게. 피아노 영상이.”

세아는 그 정보를 머릿속 어딘가에 놓아뒀다. 서랍을 열고 넣는 것이 아니라 — 테이블 한쪽에 올려두는 것처럼. 나중에 다시 볼 수도 있고, 그냥 거기 있을 수도 있는 방식으로.

“왜 얘기해.”

“JYA 전속 계약이면 걔가 연결돼 있을 거잖아. 실질적으로.” 하늘이 말했다. “A&R 팀에 있다는데. 근데 아버지 회사니까 얼마나 독립적으로 움직이는지는 모르지.”

“…네가 그걸 어디서 알아.”

“음악 업계 손님이 많아. 타투.” 하늘이 어깨를 으쓱했다. “팔뚝이 캔버스가 되는 직업군이 있거든. 뮤지션, 셰프, 군인. 걔네가 다 말 많아.”

세아는 잠깐 웃었다. 소리가 없는 웃음이었다 — 입꼬리만 올라가는 종류.

“자고 가.” 하늘이 말했다.

“괜찮아.”

“고시원 혼자 가봤자 새벽에 또 뭔가 써.”

세아는 부정하지 않았다. 하늘이 세아를 오래 알고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새벽 두 시에 멜로디가 써진다는 것을. 그리고 그 멜로디가 다음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서랍에 들어간다는 것을.

“고시원 가면 뭐해.” 하늘이 물었다.

“…자.”

“거짓말.”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접이식 침대 좁은데.” 하늘이 말했다. “장판이도 같이 올라올 거고. 근데 그게 싫으면 가도 돼.”

세아는 방석 위에 앉은 채로 잠깐 생각했다. 고시원 방의 냄새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 환기가 안 되는 공간의 냄새. 벽이 얇아서 옆방 알람 소리가 들리는 것. 새벽 세 시에 수도관에서 나는 소리가 노크처럼 들리는 것.

“자고 갈게.”


다음 날 아침, 세아가 눈을 뜬 것은 장판 때문이었다.

장판이 세아의 얼굴 옆에 앉아 있었다. 코가 세아의 귀에 닿을 것 같은 거리였다. 고양이 특유의 온기가 얼굴 한쪽에 느껴졌다.

세아는 눈을 떴다. 천장이 낮았다. 반지하의 천장은 항상 낮다.

핸드폰을 봤다. 오전 여덟 시 십이 분. 편의점 알바가 열 시였다.

세아는 천천히 일어났다. 장판이 비켜줬다. 하늘은 아직 자고 있었다 — 접이식 침대 반 이상을 차지한 채로. 하늘은 잠을 많이 자는 사람이었다. 타투이스트는 손 떨리면 안 된다고, 수면이 직업이라고 했다.

세아는 신발을 신고 조용히 문을 열었다.

밖은 흐렸다. 홍대 골목 아침은 밤과 다른 냄새가 났다 — 밤에는 맥주와 튀김과 담배 냄새였고, 아침에는 젖은 아스팔트와 쓰레기봉투와 커피 냄새였다. 세아는 두꺼운 쪽 냄새가 더 정직하다고 생각했다.

골목을 빠져나와 큰길로 올라오면서 핸드폰을 봤다. 카카오톡이 하나 와 있었다.

발신인: 박인철.

“나세아 씨, 어제 수고했어요. 추가로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시간 될 때 연락주세요.”

세아는 읽고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걸어가면서 생각했다 — 추가로 드릴 말씀. 그 말이 서류에 없는 것에 대한 말인지, 서류에 있는 것에 대한 보충인지. 둘 다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둘 다 아닐 수도 있었다.

홍대 입구역 방향으로 걷다가 GS25 앞을 지났다. 자동문이 열리면서 에어컨 바람이 나왔다. 세아는 멈췄다가 들어갔다.

삼각김밥 하나, 따뜻한 캔커피 하나.

계산대 앞에 서면서 세아는 자신이 어젯밤 하늘에게 “밥 먹었어”라고 대답한 것이 생각났다. 하늘이 “뭐 먹었어”라고 물었을 때 “편의점”이라고 했다. 지금도 편의점이었다. 패턴이 변하지 않았다. 하루가 지났는데도.

계산하고 나와서 삼각김밥 포장을 뜯으면서 걸었다.

참치마요 아닌 걸 집었어야 했는데, 라고 생각했다.

손에 잡힌 게 참치마요였다.


편의점 알바가 끝난 것은 오후 두 시였다.

세아는 앞치마를 벗고 탈의실 거울 앞에 섰다. 거울이 작았다. 얼굴만 겨우 들어왔다. 세아는 자신의 얼굴을 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 좋아하지 않는다기보다는, 습관이 안 됐다. 거울을 오래 보는 사람들이 거기서 무엇을 보는지 세아는 잘 몰랐다.

핸드폰을 꺼냈다. 박인철에게 답장을 써야 했다.

오늘 오후 가능한데요.

쓰고 지웠다.

무슨 내용인지 먼저 말씀해주실 수 있어요?

쓰고 지웠다.

결국 보낸 것은:

가능해요.

세 글자였다. 박인철이 오 분 만에 답장을 보냈다.

“합정동 카페 어때요. 세 시요.”

합정동이라는 단어에 세아는 잠깐 멈췄다. JYA 사람이 합정동에 오겠다는 것이 —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 지형이 바뀌는 느낌이었다. 강남에서 계약서를 꺼내던 사람들이 합정동으로 온다. 그것이 배려인지 전략인지 세아는 아직 구분이 안 됐다.

네.

답장을 보냈다.


카페는 합정역 2번 출구 쪽에 있었다.

세아가 아는 카페였다 — 이름이 없는 카페. 정확히는 간판이 있는데 글자가 없었다. 그냥 파란 원이 그려진 간판. 동네 사람들이 “파란 데”라고 불렀다. 커피가 진하고 의자가 불편했다. 그래서 사람이 오래 앉아 있지 않았다. 세아는 그 이유로 이 카페를 좋아했다.

박인철이 먼저 와 있었다.

세아가 들어갔을 때 그는 창가 자리에 앉아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어제의 회의실 복장과는 달랐다 — 정장이 아니라 진한 회색 맨투맨에 청바지였다. 회사 사람이 아니라 그냥 사람처럼 보였다. 그것이 의도인지 아닌지 세아는 알 수 없었다.

박인철이 고개를 들었다.

“왔어요. 앉아요.”

세아는 맞은편에 앉았다. 의자가 나무였다. 등받이가 없었다. 불편했다.

“뭐 마실래요?”

“아메리카노요.”

박인철이 카운터에 가서 주문을 했다. 세아는 창밖을 봤다. 합정동 오후였다. 골목에 사람이 몇 명 지나갔다. 강아지를 데리고 걷는 사람, 자전거를 끌고 가는 사람, 이어폰을 끼고 빠르게 걷는 사람. 빠르게 걷는 사람의 이어폰 줄이 흔들렸다. 무선이 아닌 유선 이어폰이었다. 세아도 유선이었다. 소리가 더 좋아서.

박인철이 돌아와 앉았다.

“어제 회의 어땠어요.”

“이미 물어봤잖아요.”

“엘리베이터에서 물어봤는데 제대로 대답 안 해서.”

세아는 그것을 인정했다. 대답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었으니까.

“추가로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하셨잖아요.”

“맞아요.” 박인철이 테이블 위에 팔꿈치를 올렸다. 회의실에서보다 자세가 낮아졌다. “어제 유재원 팀장이 제안한 거. 그게 JYA의 공식 제안이에요. 근데 저는 거기 소속이 아니에요.”

세아가 그를 봤다.

“저는 독립 프로듀서예요. JYA 협력사. 어제 자리에 있었던 건 〈창가에서〉 프로듀싱을 제가 했기 때문이에요.”

“…그걸 왜 지금 말해요.”

“어제는 말하기 애매한 자리였으니까요.” 박인철이 커피잔을 받아들면서 말했다. “제가 어제 그 자리에서 나세아 씨 편이 아닌 것처럼 앉아 있었는데. 그게 불편했어요.”

세아는 그 말을 잠시 가만히 뒀다.

커피가 나왔다. 세아 앞에 아메리카노가 놓였다. 검고 뜨거웠다. 세아는 컵을 양손으로 감쌌다. 손바닥에 열이 전해졌다.

“그러면 지금 무슨 말을 하려는 거예요.”

박인철이 잠깐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머리를 한 번 긁었다.

“사실은,” 그가 말했다. “강리우 씨가 만나고 싶다고 했어요. 나세아 씨를.”


세아는 컵을 내려놓지 않았다.

열이 손에 남아 있었다. 뜨거운 것을 손에 쥐고 있으면 집중이 됐다. 세아가 겨울에 따뜻한 음료를 사는 이유의 반은 그거였다 — 마시려는 것이 아니라 쥐고 있으려고.

“강리우가.”

“네.”

“왜요.”

박인철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세아의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을 선택하는 사람의 침묵이었다 — 모르는 침묵이 아니라 고르는 침묵.

“〈창가에서〉 들었대요. 원본.”

“원본이요.”

“나세아 씨가 박소진 씨한테 보낸 최초 데모. 박소진 씨 폰에 있는 파일.”

세아의 손에서 컵이 약간 흔들렸다. 알아채지 못할 만큼 작게. 하지만 세아는 알았다.

데모 파일이 있었다. 박소진에게 처음 보낼 때 보이스 메모 앱으로 녹음한 것이었다. 편곡 없이, 믹싱 없이, 그냥 세아의 목소리와 기타 하나로 된 것. 지금 스트리밍에 올라가 있는 버전과는 달랐다. 달랐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 완전히 다른 곡이었다. 같은 멜로디였지만 다른 온도였다. 프로덕션이 붙으면 곡이 깨끗해지는 대신 무언가를 잃는다. 세아는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는 몰랐지만, 데모 파일에는 있고 발매 버전에는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강리우가 그것을 들었다.

“어떻게 들은 거예요.”

“박소진 씨가 틀어줬대요. 강리우 씨가 곡 미팅 때 원본 있냐고 물어봤고.”

“왜 물어봤어요.”

“발매 버전이 뭔가 다르다고 느꼈대요. 원래 이 멜로디가 이렇게 생긴 게 아닌 것 같다고.”

세아는 컵을 테이블 위에 내려놨다. 소리가 약간 났다. 박인철이 세아를 봤다.

그 사람이 들었다.

세아는 그 생각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랐다. 기분이 좋다는 것도 아니었고, 불편하다는 것도 아니었다. 누군가가 — 아무도 아닌 사람이 아니라, JYA의 아들이, A&R 팀의 사람이 — 완성된 버전이 아니라 데모를 들었다는 것. 그리고 거기서 뭔가가 다르다는 것을 알아챘다는 것.

세아가 바이올린 소리를 들었을 때 어떤 것인지 알았다. 연주자가 활을 움직이기 직전의 한 박자 — 아직 소리가 나지 않는데 이미 음악이 시작된 것 같은 순간. 지금이 그 느낌이었다.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았는데, 무언가가 이미 시작된 것 같은.

“만나고 싶다는 게 어떤 의미예요.”

“음악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어요.”

“JYA 사람으로서요?”

박인철이 잠깐 생각했다.

“…아마 그 경계가 강리우 씨한테는 항상 명확하지 않을 거예요. 본인도.”

세아는 그 대답을 가만히 들었다.

“만나야 해요?”

“안 만나도 돼요. 강요 아니에요.” 박인철이 말했다. “근데 저는 나세아 씨한테 알리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몰래 연결되는 것보다.”

세아는 창밖을 봤다. 골목에 이제 사람이 없었다. 흐렸던 하늘이 조금 더 어두워지고 있었다. 비가 올 것 같은 색이었다.

“생각해볼게요.”

박인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더 말하지 않았다. 세아는 그것이 좋았다 — 더 설득하지 않는 것. 설득하지 않는 것이 때로는 가장 강한 설득이라는 걸 알고 있는 것인지는 몰랐지만, 어쨌든 세아는 그 침묵을 불편해하지 않았다.

커피를 다 마셨다. 박인철이 계산을 하려고 했다. 세아가 먼저 카드를 꺼냈다.

“제가 낼게요.”

“아니에요, 제가—”

“여기 제 동네예요.”

박인철이 멈췄다가 웃었다. 웃으면 눈 주름이 생기는 사람이었다.

“그 논리 맞네요.”


카페에서 나왔을 때 빗방울이 한두 개 떨어졌다.

세아는 우산이 없었다. 항상 없었다. 우산을 사는 데 돈을 쓰는 것이 아까운 게 아니라 — 우산을 들고 다니는 것을 잊는 것이 습관이었다. 비가 오면 맞는다. 그게 세아의 방식이었다.

박인철이 우산을 폈다.

“같이 써요.”

“괜찮아요.”

“비 맞으면 목 상해요.”

세아가 잠깐 멈췄다. 그 말이 정확했기 때문이었다. 세션 보컬에게 목은 직업이었다.

세아는 우산 아래로 들어갔다. 박인철이 키가 세아보다 30센티 가까이 컸기 때문에 우산이 세아 쪽으로 기울었다.

“합정역까지 가요?”

“네.”

두 사람은 걸었다. 빗소리가 우산 위에서 났다. 작은 소리였다. 아직 본격적으로 오는 게 아니었다.

“나세아 씨.” 박인철이 말했다.

“네.”

“강리우 씨 만나면 한 가지만 기억해요.”

“만난다고 한 게 아닌데요.”

“만날 것 같아서요.” 그가 말했다. 확신이 아니라 — 경험으로 아는 말 같았다. “그 사람은 음악 이야기할 때 솔직해요. 근데 회사 이야기 나오면 달라져요. 그 경계를 나세아 씨가 알고 있어야 해요.”

세아는 그 말을 들으면서 걸었다. 아스팔트가 빗물에 젖기 시작했다. 구두 앞코가 조금 젖었다.

“본인은 그 경계를 알아요?” 세아가 물었다.

박인철이 잠깐 말이 없었다.

“…저도 항상 명확하지는 않아요. 솔직히.”

합정역 입구에서 우산을 나왔다. 빗방울이 몇 개 어깨에 떨어졌다. 세아는 계단 쪽으로 걸어가다가 돌아봤다.

“연락할게요.”

“네. 기다릴게요.”

세아는 계단을 내려갔다. 지하의 공기가 달랐다 — 습하고 약간 달콤한 냄새. 지하철역 특유의 냄새를 세아는 오래 맡아왔다. 이 냄새가 나면 하루가 이동 중이라는 뜻이었다. 어딘가로 가거나, 어딘가에서 돌아오거나.

오늘은 어느 쪽인지 세아는 몰랐다.


고시원에 돌아온 것은 저녁 다섯 시였다.

방에 들어가서 외투를 벗고 침대 위에 앉았다. 침대가 좁아서 벽에 등을 기댔다. 천장을 봤다. 천장에 얼룩이 하나 있었다. 처음 이 방에 왔을 때부터 있던 얼룩이었다. 세아는 가끔 그 얼룩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 물 때인지, 곰팡이 이전 단계인지, 아니면 그냥 오래된 것의 흔적인지.

핸드폰을 봤다. 도현에게서 카카오톡이 와 있었다.

“누나 오늘 뭐함. 나 치킨 먹고 싶은데 사줄 사람 없음.”

세아는 답장을 쳤다.

“학원 갔다 와서 공부해.”

“ㅋㅋ 누나 개정 ㅋㅋ 아니 근데 진짜로 밥은 먹었어?”

“먹었어.”

“뭐.”

“…편의점.”

“야 나세아 아니 나누나 ㅋㅋ 그게 밥임? 레전드 ㅋㅋ 아 진짜 걱정됨. 나 대학 등록금 어차피 장학금으로 할 거니까 누나 돈 쓰지 마.”

세아는 그 메시지를 읽고 잠깐 멈췄다.

도현이 이런 말을 할 때가 있었다. 걱정을 웃음으로 포장해서 보내는 것. 세아가 그것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알고 있었다. 다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 세아는 거기서 생각을 멈췄다.

“장학금 받으려면 공부해야 하는 거 알지.”

“ㅇㅇ 알어. 하고 있어 지금. 치킨 먹으면서.”

“치킨 어디서 났어.”

“친구가 삼.”

“공부해.”

“ㅇㅋ누나도밥먹어진짜로”

띄어쓰기가 없는 마지막 메시지를 세아는 두 번 읽었다.

핸드폰을 침대 위에 놓고 기타 케이스를 열었다. 세아의 기타는 야마하 어쿠스틱이었다. 사 년 된 것이었다. 헤드 부분에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 하늘이 붙인 것이었는데 떼지 않았다. 고래 모양이었다.

기타를 꺼내서 무릎 위에 놓았다.

아무것도 치지 않았다.

그냥 들고 있었다. 기타의 무게가 무릎에 실렸다. 나무의 온기가 손에 느껴졌다. 세아는 이것이 — 기타를 들고 아무것도 치지 않는 것이 — 가장 솔직한 상태라고 생각했다. 무언가를 만들려는 것도 아니고, 연습하려는 것도 아니고. 그냥 거기 있는 것.

강리우가 데모를 들었다.

그 생각이 다시 왔다. 세아는 기타 줄 위에 손가락을 올려뒀다. 누르지 않은 채로. 줄이 차가웠다. 조금 있으면 손의 온도로 줄이 따뜻해질 것이었다.

강리우가 어떤 사람인지 세아는 몰랐다. 인스타그램에 피아노 영상을 올리다가 일 년 전부터 멈췄다는 것. JYA 대표의 아들이라는 것. A&R 팀에 있다는 것. 그것들이 정보였다.

그런데 발매 버전이 아닌 데모를 들었다는 것 — 그것은 정보가 아니었다. 다른 종류였다.

세아는 손가락을 줄 위에서 움직였다. 소리가 없었다. 아직 누르지 않았으니까. 공기 중에서 손이 기타 줄 위를 미끄러졌다. 아직 음악이 아닌 상태에서.

그러다가 세아가 손가락을 눌렀다.

C코드. 가장 기본적인 코드. 음악을 배우면 처음 배우는 것. 세아가 처음 기타를 잡았을 때 어머니가 가르쳐준 것이기도 했다. 제주 집 마당에서, 여름이었다. 어머니가 물질을 마치고 돌아온 날이었다. 손이 짜고 거칠었는데 기타 줄을 눌러서 코드를 만들었다. C코드.

이 기억이 왜 지금 나는지 세아는 알 수 없었다.

기타를 내려놓고 노트를 꺼냈다.

세아의 작곡 노트는 다이소에서 산 스프링 노트였다. 표지에 아무것도 없는 것. 내지에 오선지도 없는 것 — 세아는 오선지에 쓰지 않았다. 그냥 일반 줄 노트에 멜로디를 숫자로 표기하고, 가사를 쓰고, 화살표와 메모를 섞어서 썼다. 남이 보면 암호처럼 보이는 방식이었다. 하늘이 한 번 봤다가 “이게 뭐야, 수학 문제야”라고 했었다.

노트를 펼쳤다. 마지막 페이지가 열렸다.

세아가 쓰다가 멈춘 것이 있었다. 사흘 전에 쓴 것이었다. 멜로디 라인 두 개와 가사 한 줄.

물 위에서 숨을 쉬면 / 그게 노래라고 했잖아요

세아는 그 줄을 봤다. 어머니 이야기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해녀들이 물 위로 올라올 때 내는 소리 — 숨비소리. 그것이 세아에게는 첫 번째로 들은 음악이었다.

그 아래에 새로운 것을 썼다.

누군가 원본을 들었다면

쓰고 멈췄다.

이상한 메모였다. 가사가 되기에도 애매하고 메모가 되기에도 애매한. 그냥 오늘 있었던 일이 줄로 나온 것이었다. 세아는 때때로 이런 식으로 썼다 — 음악이 되려는 것인지 아닌지 모르는 것들을. 그것들이 나중에 뭔가가 되기도 했고, 영원히 노트 안에 있기도 했다.

노트를 덮었다.

창문에 빗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아까보다 굵어졌다. 반지하 창문으로는 사람들 발만 보였다. 빗속에서 발들이 움직였다 — 우산 없는 발, 장화 신은 발, 뛰는 발, 천천히 걷는 발.

세아는 핸드폰을 들었다.

박인철의 번호로 메시지를 보냈다.

만날게요. 강리우 씨.

전송하고 핸드폰을 뒤집어 놓았다.

빗소리를 들었다. 고시원 방에서 빗소리는 크게 들렸다 — 창문이 얇아서. 빗방울이 창에 부딪히는 소리가 일정하지 않았다. 패턴이 없는 소리였다. 세아는 패턴이 없는 소리를 좋아했다. 패턴이 없으면 억지로 분석하지 않아도 됐다.

핸드폰이 진동했다.

박인철: “내일 오후 가능해요? 장소는 제가 잡을게요.”

세아: “네.”

박인철: “근데 나세아 씨.”

세아: “…”

박인철: “음악 이야기만 하면 돼요. 다른 거 결정 안 해도 되고. 그냥 그것만.”

세아는 그 메시지를 읽고 잠깐 있었다. 창문에 빗소리가 났다. 발들이 지나갔다. 뛰는 발이 하나 지나가다가 멈췄다가 다시 뛰었다.

음악 이야기만 하면 돼요.

세아는 그 말이 가장 간단하면서 가장 어려운 말이라고 생각했다. 음악 이야기만 하는 것. JYA 이야기도, 크레딧 이야기도, 전속 계약 이야기도 없이. 그냥 음악.

그게 가능한지 세아는 몰랐다.

하지만 오늘은 일단 그것을 믿어보기로 했다.


다음 날 오전, 세아가 편의점 알바를 시작하기 전에 하늘한테서 카카오톡이 왔다.

“야 어제 몰래 나간 거 알아.”

“알바 있었어.”

“장판이가 섭섭해했어. 아침에 네 발 냄새 찾더라.”

세아는 편의점 앞치마를 매면서 답장을 쳤다.

“강리우 만나기로 했어.”

답장이 삼십 초 안에 왔다.

“야!!!!!!”

“느낌표 몇 개야.”

“일곱 개. 이 상황에 걸맞은 수. 언제.”

“오늘 오후.”

“뭐 입어.”

“그게 중요해?”

“중요하지. 첫인상은 마지막 인상이야. 내가 배운 것 중에 제일 맞는 말임.”

“처음 만나는 게 아니야.”

“언더스코어에서 봤다고? 그건 카운터에요. 어두웠잖아.”

세아는 그것에 대답하지 않았다. 편의점 문이 열렸다. 손님이 들어왔다.

“야 나세아.” 하늘의 다음 메시지가 왔다. “한 가지만. 그 사람이 네 음악 좋아하는 건지, 네 음악이 필요한 건지 잘 봐. 그게 달라.”

세아는 그 메시지를 읽고 핸드폰을 앞치마 주머니에 넣었다.

손님한테 “어서 오세요”를 말했다.

그 사람이 네 음악 좋아하는 건지, 네 음악이 필요한 건지.

카운터 뒤에 서서 세아는 그 문장의 무게를 가늠했다. 좋아하는 것과 필요로 하는 것. 둘이 다른 것이 맞았다. 하지만 둘 다일 수도 있지 않나, 라는 생각도 했다. 그리고 그 생각을 한 자신이 — 이미 조금 기울어져 있다는 것을 세아는 알았다.

편의점 냉장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손님이 음료를 고르고 있었다. 형광등이 반짝였다. 바깥에서 자동차 소리가 들렸다. 평범한 오전이었다.

세아는 계산대 위에 두 손을 올려놓고 창밖을 봤다.

오후가 오고 있었다.


박인철이 잡은 장소는 예상치 못한 곳이었다.

연남동 작은 레코드 가게였다. 홍대에서 걸어서 십 분 거리. 간판에 ‘오래된 것들’이라고 한글로 쓰여 있었다. 영어 이름은 없었다. 창문에 LP가 붙어 있었다. 문을 열면 종이 울리는 가게였다.

세아가 들어갔을 때 강리우는 LP 진열대 앞에 서 있었다.

세아는 그를 알아봤다 — 언더스코어의 어두운 조명 안에서 봤던 것과 달리, 낮의 레코드 가게에서 보는 강리우는 달랐다. 더 선명했다. 눈 밑에 다크서클이 있었고, 입은 것이 구겨진 흰 셔츠였다. 비싼 것 같았는데 다림질을 안 했다. 손은 — 박인철이 피아니스트 손이라고 했던 — 지금은 LP 케이스를 잡고 있었다.

종이 울렸다. 강리우가 고개를 들었다.

두 사람이 눈이 마주쳤다.

세아는 먼저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이유는 없었다. 그냥 그랬다.

강리우가 LP를 진열대에 다시 꽂았다. 세아 쪽으로 걸어왔다.

“나세아 씨.”

“네.”

“강리우예요.”

“알아요.”

짧은 침묵.

강리우가 입꼬리를 약간 올렸다. 웃음이라고 하기에는 작았다. 확인이라고 하기에는 따뜻했다.

“박인철 씨가 뭐라고 했어요. 저에 대해.”

“음악 이야기할 때 솔직하다고요.”

“그리고요.”

“회사 이야기 나오면 달라진다고요.”

강리우가 잠깐 세아를 봤다. 무언가를 읽는 것 같은 시선이었다 — 서류를 읽는 시선이 아니라, 악보를 읽는 시선. 박자를 세는 것처럼.

“맞는 말이에요.” 그가 말했다. 부정하지 않았다.

세아는 그것이 — 부정하지 않는 것이 — 예상 밖이었다는 것을 인정했다.

“앉을까요.”

레코드 가게 안쪽에 의자가 두 개 있었다. LP를 들을 수 있는 코너였다. 턴테이블이 있고, 헤드폰이 있고, 의자가 마주 보고 있었다. 가게 주인은 카운터 뒤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손님은 세아와 강리우뿐이었다.

두 사람이 앉았다.

강리우가 LP 한 장을 꺼냈다. 케이스를 세아 쪽으로 밀었다.

세아는 그것을 봤다. 윤이상의 1970년대 음반이었다. 독일에서 발매된 것이었다. 케이스가 낡아서 모서리가 닳아 있었다.

“들어봤어요?”

“이름은 알아요.”

“현악 사중주 두 번째.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중에 제가 좋아하는 거예요.” 강리우가 LP를 턴테이블에 올렸다. 바늘을 내렸다.

소리가 났다.

현악기가 켜지는 소리였다. 현대음악 특유의 — 불편한 아름다움이 있는 소리. 조화를 향해 가다가 직전에 비트는 것 같은. 세아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등받이에 기댔다.

“〈창가에서〉 데모.” 강리우가 말했다. “들었어요.”

“들었다고 했다고요.”

“발매 버전이랑 달랐어요.”

“알아요.”

“어떻게 달랐는지 알아요?”

세아는 잠깐 생각했다.

“발매 버전은 완성됐어요.” 세아가 말했다. “데모는 완성이 안 됐어요. 그 차이예요.”

“저는 반대로 들었어요.”

세아가 강리우를 봤다.

“데모가 완성된 거고 발매 버전이 미완성이에요.” 그가 말했다. “프로덕션이 붙으면서 원래 있던 게 사라졌어요. 뭔가가.”

현악이 비틀렸다가 다시 뻗었다. 윤이상의 음악이 공기 중에 있었다.

“그게 뭔지 알아요?” 세아가 물었다. 물으면서 자신이 왜 물어보는지 알았다. 그것을 자신도 언어로 표현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강리우가 잠깐 생각했다. 손이 무릎 위에 있었다. 피아니스트 손이 아무것도 치지 않았다.

“온도요.” 그가 말했다. “데모에는 온도가 있었어요. 발매 버전은 — 정확하게 만들어졌는데. 온도가 없어요.”

세아는 그 말을 들었다.

온도.

그것이었다.

세아가 데모를 처음 보이스 메모로 녹음했을 때 — 편의점 알바 끝나고 고시원 방에서, 새벽 두 시에, 기타 하나로 — 그날의 온도가 거기 들어갔다. 밖이 추웠고, 방이 좁았고, 목이 약간 아팠고, 도현한테서 “엄마 오늘 병원 갔는데 검사 결과 다음 주에 나온대”라는 카카오톡을 받고 한 시간 후에 기타를 잡았다. 그 모든 것이 소리에 들어갔다. 들어가려고 한 것이 아니라 — 그냥 들어갔다.

믹싱 엔지니어가 그것을 정리했다. 잡음을 제거하고, 호흡 소리를 깎고, EQ를 조정했다. 곡이 깨끗해졌다. 그리고 세아가 잃어버린 것이 거기 있었다.

“…맞아요.” 세아가 말했다.

“그 온도를 어디서 만들어요.”

세아는 강리우를 봤다. 그 질문이 — 음악적 분석인지, 개인적인 것인지 세아는 구분하려다가 멈췄다. 둘이 같은 질문이었다.

“새벽에요.” 세아가 말했다. “피곤하고, 배고프고, 뭔가 안 좋을 때요.”

강리우가 그 말을 들었다.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그냥 들었다.

“그게 좋은 거예요?” 세아가 물었다. “그런 상황에서만 나오는 게.”

강리우가 잠깐 시선을 턴테이블로 옮겼다. LP가 돌고 있었다.

“좋다 나쁘다의 문제가 아니에요.” 그가 말했다. “그냥 그게 나세아 씨 음악이에요. 아직은.”

아직은.

그 단어가 공기 중에 남았다. 윤이상의 현악이 다시 비틀렸다가 뻗었다. 레코드 가게 주인이 페이지를 넘겼다. 외부에서 자동차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세아는 그 ‘아직은’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물어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기 때문이 아니라 — 물어보면 대답이 나올 것 같았기 때문에. 그리고 그 대답이 지금 이 레코드 가게에서, 윤이상의 음악이 있는 이 공기 안에서 나오는 것이 — 아직 준비가 안 됐다는 것을 세아는 알았다.

강리우가 세아를 봤다.

“다른 곡은요.” 그가 물었다. “〈창가에서〉 말고. 다른 것도 있어요?”

세아는 잠깐 멈췄다.

열두 곡이 있었다. 그 중 세 곡이 다른 아티스트의 이름으로 발매됐다. 나머지 아홉 곡은 — 노트 안에 있었다. 다이소 스프링 노트 안에. 아무도 모르는 것들.

“…있어요.”

“들어볼 수 있어요?”

세아는 강리우를 봤다. 그가 세아를 보고 있었다. 악보를 읽는 시선이 아니었다 — 지금은 그냥 사람을 보는 시선이었다. 유재원이 서류에서 사람으로 전환할 때의 시선과는 달랐다. 유재원의 것은 계획된 전환이었다. 강리우의 것은 — 본인도 모르게 바뀐 것 같았다.

세아는 대답하기 전에 윤이상의 현악을 한 번 더 들었다.

불편한 아름다움. 조화를 향해 가다가 직전에 비트는 것.

“아직은 아니에요.”

세아가 말했다.

강리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실망한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 그 대답을 예상했다는 것도 아니었고, 그 대답이 맞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언제요.” 그가 물었다.

“…모르겠어요.”

강리우가 잠깐 무언가를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전속 계약 이야기는 오늘 안 할게요.” 그가 말했다. “그거 때문에 부른 게 아니에요.”

“그러면 왜 부른 거예요.”

“데모 때문에요.” 강리우가 말했다. “그 온도. 그게 어디서 오는지 알고 싶었어요. 직접.”

“이제 알았어요?”

“조금은요.” 그가 말했다. “조금 더 알고 싶어요.”

LP가 끝났다. 바늘이 빈 홈 위에서 돌았다. 가게 주인이 책에서 고개를 들어 두 사람을 봤다가 다시 내렸다.

강리우가 LP를 턴테이블에서 꺼냈다. 케이스에 넣었다. 그 동작이 느리고 정확했다. 오래 반복한 사람의 동작이었다.

“나세아 씨.”

“네.”

“한 가지만 물어봐도 돼요.”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 말라고 하지도 않았다.

“〈창가에서〉 쓸 때 뭘 생각했어요.”

세아는 잠깐 그 기억을 꺼냈다. 찾는 데 시간이 걸렸다 — 먼 곳에 있어서가 아니라, 꺼내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였다.

“창문이요.” 세아가 말했다.

“창문.&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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