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98화: 답변의 형태
준호의 질문이 떨어진 후, 민준은 오랫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조수석에서 그의 몸이 경직되어 있었고, 손가락들이 무릎 위에서 천천히 움직였다. 카운팅하는 것 같았다. 어떤 리듬을 찾으려는 것처럼. 주차장의 형광등은 여전히 켜져 있었고, 그것이 자동차 안을 바다 밑처럼 밝히고 있었다. 침묵 속에서 들리는 것은 차 밖의 바람과 자동차 신문지 아래로 스치는 낙엽들의 소리뿐이었다.
“내가…”
민준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 단어는 완성되지 않았다. 마치 문장이 목구멍에서 멈춘 것처럼.
“쉬워. 단순하게 생각해.”
준호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이제 전과 달랐다. 경고에서 거의 간청으로 변해 있었다. 마치 민준의 대답을 듣기 위해 숨을 참고 있는 것처럼.
민준은 자신의 손을 봤다. 여전히 세트장에서 창유리를 만졌을 때의 감각이 남아있었다. 차갑고, 약간 끈기 있는 그 촉감. 그리고 박미라가 말했던 말들. 희생이에요. 그 단어가 자신의 피부 위에 남겨진 자국처럼 느껴졌다.
“이 역할을 하고 싶어?”
준호가 다시 물었다. 이번에는 더 단순한 형태로.
“네.”
민준이 말했다. 그 대답은 빨랐다. 거의 반사적으로.
“왜?”
준호가 물었다.
“왜냐하면…”
민준이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멈췄다. 왜냐하면이라는 단어 뒤에는 뭔가 있어야 했다. 이유가. 동기가. 그런데 그것을 찾는 것이 어려웠다. 아니, 정확하게는 그것을 말하는 것이 어려웠다.
준호는 기다렸다. 그의 인내심은 깊었다. 마치 물 속에서 사냥감을 기다리는 포식자처럼 조용했다.
“왜냐하면 내가 이것을 못하면, 내가 뭔지 모르기 때문이에요.”
민준이 마침내 말했다. 그 문장은 거의 숨겨진 것처럼 나왔다. 자신을 배신하는 고백처럼.
준호가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그가 민준의 말을 더 깊이 들을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보였다. 눈을 감으면 귀가 더 예민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계속해.”
준호가 말했다.
“저는… 4년 동안 엑스트라였습니다. 아무도 제 얼굴을 기억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제 이름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냥 ‘저 배우’였습니다. 그게 아니라, 저는 ‘배우’도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냥… 있었던 거예요. 배경처럼. 벽처럼.”
민준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박미라가 저를 본 거예요. 저를. 민준이라는 이름의 사람을 본 게 아니라, 저 안에 있는 뭔가를 봤어요. 그리고 그것이… 그것이 처음이었어요.”
준호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조용했지만, 그의 입술은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것처럼. 하지만 소리는 나지 않았다.
“그래서 제가 원하는 건… 제가 누군가에게 봐지고 싶은 거예요. 이 역할 때문이 아니라, 제가 봐지고 싶어요. 제 존재가 인정받고 싶어요.”
민준이 계속했다.
“그게 나쁜 건가요?”
준호가 눈을 뜬 후 한동안 말하지 않았다. 그의 손이 운전대에 다시 올려졌고, 그것을 세게 쥐었다. 마치 자신을 진정시키려고 하는 것처럼.
“나쁜 건 아니야.”
준호가 마침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이제 다시 낮아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른 종류의 낮음이었다. 실패를 인정하는 사람의 낮음이었다.
“그런데?”
민준이 물었다.
“그런데 위험해. 그것이 맞아. 왜냐하면 이 업계는 너를 보는 게 아니라, 너를 소비하기 때문이야. 박미라가 너를 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너를 봤던 게 아니라 그녀가 원하는 뭔가를 너에게서 본 거야. 그리고 그것을 뽑아내려고 할 거야. 계속해서. 계속해서.”
준호가 앞을 바라봤다. 주차장의 다른 차들. 대부분 비어있었다. 저녁이 깊어지고 있었다.
“그러면 내가 그것을 주지 말면 되는 거 아닌가요?”
민준이 물었다.
“너는 이미 줬어. 오늘 세트장에서. 그 창 앞에서. 그리고 일단 뭔가를 준 후에는, 그것을 다시 가져올 수 없어.”
준호가 말했다.
민준의 손이 다시 움직였다. 이번에는 조수석 문을 향해. 핸들. 그것을 잡으려고 하는 움직임.
“나가고 싶어?”
준호가 물었다. 놀라움 없이.
“네.”
민준이 말했다.
“그래. 나가.”
준호가 말했다.
민준은 차 문을 열었다. 주차장의 공기가 들어왔다. 저녁의 공기. 약간 차갑고, 콘크리트의 냄새가 섞여있었다. 그는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준호를 향해 돌아봤다.
“감사합니다.”
민준이 말했다.
“뭐가?”
준호가 물었다.
“말씀해주셔서. 저는… 혼자 생각했으면 영원히 몰랐을 것 같아요.”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시동을 걸었다. 엔진음이 울렸다. 그리고 자동차는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민준을 남겨두고.
민준은 그 자동차를 바라봤다. 빨간 테일라이트. 점점 멀어지는 검은 차체. 그리고 마침내 주차장의 모퉁이를 돌아 사라졌다. 그 순간, 주차장은 더 텅 빈 것처럼 보였다. 마치 세상이 더 작아진 것처럼.
민준은 집으로 가지 않았다. 대신 지하철을 탔다. 신도림역에서 2호선을 타서 강남역으로. 강남역에서 버스를 갈아탔다. 목적지는 없었다. 그저 움직이고 싶었다. 제자리에 있고 싶지 않았다. 마치 정지하면 자신이 녹아내릴 것처럼 느껴졌다.
저녁 9시쯤, 민준은 강남역 인근의 어느 카페에 들어갔다. 스타벅스. 대체 가능한 카페. 어디에나 있는 카페. 그러한 무의미함이 좋았다.
커피를 주문했다. 아메리카노. 크기 중간. 가장 평범한 선택. 그는 창가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밖을 바라봤다. 강남의 거리. 사람들. 차들. 모두가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 목적지가 있는 것처럼.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카톡이었다. 우리라는 이름의 연락처에서.
“민준이, 요즘 어때? 넘 바쁠 것 같은데 ㅋㅋ 혹시 주말에 시간 되니? 극장에 새 뮤지컬이 올렸거든. 함께 보고 싶어.”
민준은 메시지를 읽었다. 그리고 읽은 후에 휴대폰 화면을 내렸다. 대답하지 않았다. 나중에 하기로 생각했다. 하지만 나중은 올 것 같지 않았다.
커피를 마셨다. 따뜻했다. 입술을 화상 입힐 정도로. 그 통증이 좋았다. 적어도 뭔가를 느낄 수 있었으니까.
밤 11시, 민준은 자신의 반지하 방에 돌아왔다. 천장의 곰팡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마치 자신의 일부인 것처럼. 침대는 깔끔했다. 아무도 누운 적이 없는 침대처럼.
그는 침대에 누웠다. 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준호의 말이 계속 들렸다. 위험해. 그것이 맞아. 그리고 그의 자신의 대답이. 저는 봐지고 싶어요.
그는 천장을 봤다. 곰팡이의 지도. 그것이 마치 어떤 메시지처럼 느껴졌다. 해독되지 않은 메시지. 그런데 그것은 아마도 다음과 같은 뜻일 것 같았다.
넌 이미 선택했다. 이제는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다음 날 아침, 민준의 휴대폰에 새로운 메시지가 있었다. 박미라 감독에게서였다.
“민 배우, 오늘 신 재촬영입니다. 어제의 그 에너지를 다시 한 번. 근데 이번엔 좀 더 깊이 있게. 감정이 아니라 신체에서 나오도록. 알겠죠?”
민준은 메시지를 읽었다. 그리고 화면을 끄지 않은 채로 한동안 들고 있었다. 손가락이 화면을 터치했다. 회신 버튼.
그는 타이핑했다. 천천히. 한 글자씩.
“네, 감독님. 준비하겠습니다.”
전송 버튼을 눌렀다. 메시지가 전달되었다. 그 순간, 그는 알았다. 이것은 단순한 회신이 아니었다. 이것은 약속이었다. 자신에게 하는 약속. 박미라에게 하는 약속. 그리고 어쩌면 이 업계에 하는 약속이었을지도 모른다.
오전 10시, 민준은 다시 촬영장에 있었다. 세트는 어제와 같았다. 창. 조명. 카메라. 하지만 어제의 그것과는 달랐다. 어제는 그것들이 그를 관찰하고 있었다면, 오늘은 그가 그것들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차이가 있었다. 미묘하지만 결정적인 차이.
“민 배우, 위치로 가실래요?”
스태프가 말했다.
민준은 창 앞으로 걸어갔다. 그의 움직임은 어제보다 느렸다. 더 의도적이었다. 마치 매 발걸음이 무언가를 결정하는 것처럼.
“좋아요. 시작할까요?”
박미라가 모니터 뒤에서 말했다.
“네.”
민준이 답했다.
그리고 카메라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오후 4시, 촬영이 끝났다. 박미라는 민준을 호출했다. 세트의 한쪽 구석으로. 다른 스태프들에게서 떨어진 곳으로.
“너 어제보다 좋았어.”
박미라가 말했다. 그녀의 얼굴은 진지했다. 그것은 칭찬이 아니었다. 관찰이었다.
“감사합니다.”
민준이 말했다.
“근데 너, 뭐 있어? 표정이 다르다. 어제는 혼란스러웠는데, 오늘은… 포기한 것 같아.”
박미라가 물었다. 그녀의 눈은 예리했다.
민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었다.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어제 준호와의 대화를. 자신의 선택을. 그 선택이 가져올 결과를.
“포기는 좋은 감정이야. 배우들은 많이 저항해. 자신의 감정을 지키려고. 하지만 좋은 배우는 포기하는 법을 안다. 완전하게.”
박미라가 계속했다.
“그리고 넌 방금 그 포기를 했어. 화면에 담겼어. 영구적으로.”
그녀가 돌아섰다. 그리고 촬영장으로 돌아갔다. 민준은 그 자리에 남겨졌다. 혼자. 세트의 모퉁이에서. 그리고 그 순간, 그는 알았다.
준호가 맞았다는 것을.
일단 뭔가를 준 후에는, 그것을 다시 가져올 수 없다는 것을.
저녁 6시, 민준은 준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준호는 세 번 울린 후에 받았다.
“어떻게 됐어?”
준호가 물었다. 마치 계속된 대화인 것처럼.
“촬영이 끝났습니다.”
민준이 말했다.
“잘했어?”
“네.”
“그리고?”
“그리고… 내가 이미 줬다는 걸 알겠습니다. 가져올 수 없다는 것도.”
준호는 한동안 말하지 않았다. 배경음만 들렸다. 자동차 음악. 그는 운전 중이었다.
“그래. 좋아. 그럼 이제 넌 배우야. 진짜로.”
준호가 말했다.
“배우라니요?”
민준이 물었다.
“배우는 자신이 뭘 잃어버렸는지 알 때부터 시작이야. 그 전까지는 그냥 광대일 뿐이고.”
전화가 끊겼다. 민준은 휴대폰을 내렸다. 그리고 창 밖을 봤다. 강남의 저녁. 조명들이 하나둘 켜지고 있었다. 마치 세계가 무대로 변해가는 것처럼.
그는 손을 들었다. 자신의 손. 어제 창유리를 만졌던 그 손. 그것을 봤다.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그리고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98화 끝]
# 98화 – 포기의 기술
## 제1장: 본격적인 시작
“네.”
민준이 답했다. 목소리는 깨끗했지만, 그 한 음절 뒤에는 무수한 선택지들이 숨어 있었다. 예, 아니오. 그것만이 아니었다. 자신을 주는 것과 지키는 것 사이의 거대한 틈. 그 틈 속에서 그는 지금 서 있었다.
박미라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그의 대사 이후에 뭔가 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스크립트에는 그게 전부였다. 단 한 마디. “네.”
민준은 자신의 두 손을 살펴보았다.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것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배우들이 하는 방식대로. 감정을 숨기는 방식대로.
그리고 카메라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카메라의 소리는 독특했다. 마치 거대한 심장이 뛰는 것처럼. 혹은 제한된 시간이 흘러가는 소리처럼. 민준은 그 소리에 익숙해지려고 했지만, 익숙해질 수 없었다. 매번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뭔가 중요한 것이 영구적으로 기록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표정. 자신의 목소리. 자신의 움직임. 그 모든 것이 필름에 갇혀, 다시는 돌릴 수 없게 되는 것처럼.
카메라 너머로 박미라 감독이 보였다. 그녀는 모니터를 통해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사냥꾼의 눈이었다. 그것도 사냥을 마친 사냥꾼이 아니라, 사냥감의 약한 점을 찾아내려는 중인 사냥꾼의 눈이었다.
민준은 자신의 대사를 읽기 시작했다. 스크립트의 문장들이 자신의 입에서 나올 때, 그것들은 변했다. 종이에 인쇄된 글자들이 음성으로 변할 때, 뭔가 본질적인 것이 추가되었다. 그것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역할의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동시에 자신의 것이었다. 그 모순 속에서, 진정한 배우의 마법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컷!”
박미라가 외쳤다. 카메라가 멈췄다. 심장이 뛰기를 멈췄다.
“다시 한 번. 이번엔 더 천천히. 마치 네가 이미 죽어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것처럼.”
민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지시를 이해했는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이미 죽어 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감정적으로 죽어 있다는 뜻인가? 아니면 정말로 죽어 있다는 뜻인가? 스크립트를 다시 읽어보니, 그의 역할은 말기 암 환자였다. 아, 그렇다면 박미라는 자신이 문자 그대로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 깨달음이 그의 몸을 지나갔다. 차갑고, 무겁고, 확실한 깨달음이.
카메라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네.”
이번엔 다른 성질의 목소리였다. 그것은 누군가가 마지막 순간에 내는 목소리였다. 모든 저항을 포기한 후의 목소리였다.
“좋아!”
박미라가 외쳤다.
세트는 잠깐의 침묵으로 가득 찼다. 그것은 좋은 테이크가 끝난 후의 침묵이었다. 그 침묵 속에서 모든 스태프들이 호흡하고 있었다. 배우의 몸에서 흘러나온 뭔가를 느끼면서.
민준은 자신의 손을 다시 들었다. 그 손이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두려움의 떨림이 아니었다. 그것은 창조의 떨림이었다. 무언가를 만들어낸 후의 떨림이었다.
## 제2장: 오후 4시의 깨달음
오후 4시가 되었을 때, 촬영이 끝났다. 하루의 촬영 스케줄이 완료되었다. 여러 시간 동안 같은 장면을 반복했고, 같은 감정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했다. 민준은 피곤했다. 그것은 신체적 피로가 아니었다. 그것은 영혼의 피로였다.
박미라가 손짓으로 민준을 호출했다. 그녀는 세트의 한쪽 구석으로 손가락을 움직였다. 다른 스태프들에게서 떨어진 곳으로. 카메라와 조명이 닿지 않는 그림자 속으로.
민준은 그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촬영장의 바닥은 차가웠다. 세트의 전자기기들과 조명이 내뿜는 열로 따뜻했던 공간을 떠나자, 갑자기 추위가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너 어제보다 좋았어.”
박미라가 말했다. 그녀의 얼굴은 진지했다. 주름이 더 깊어 보였다. 마치 모든 배우의 성장을 목격해온 사람의 주름처럼. 그것은 칭찬이 아니었다. 민준은 그것을 알았다. 칭찬이라면 그녀는 다른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더 부드러운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이것은 관찰이었다. 과학자가 현미경 아래의 박테리아를 바라보는 것처럼 냉정한 관찰이었다.
“감사합니다.”
민준이 말했다. 그것은 자동적인 대답이었다. 배우들이 감독 앞에서 배우는 첫 번째 말이었다.
박미라는 그의 얼굴을 더 자세히 살펴보았다. 마치 그의 얼굴에 숨겨진 메모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녀의 눈은 예리했다. 이 나이대의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예리했다. 수십 년 동안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인간을 관찰해온 사람의 눈이었다.
“근데 너, 뭐 있어? 표정이 다르다.”
박미라가 물었다. 그것은 질문이지만, 동시에 선언이었다. 그녀는 이미 뭔가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어제는 혼란스러웠는데, 오늘은… 포기한 것 같아.”
박미라가 계속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낮았다. 마치 세트의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안 되는 비밀을 나누는 것처럼.
민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었다.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어제 준호와의 대화를. 그 대화 속에서 자신이 내린 선택을. 그 선택이 가져올 결과를. 배우로 살아가야 한다는 결정 자체를.
어제는 정말로 혼란스러웠다. 준호의 전화를 받은 순간부터, 민준의 정신은 두 가지 방향으로 찢어져 있었다. 한쪽은 안전함을 원했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고, 일반적인 인생을 살고, 평범한 행복을 찾는 길. 다른 한쪽은 위험함을 원했다. 배우로 살아가고, 불확실한 미래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영혼을 무언가를 위해 내주는 길.
그 두 길 사이에서 그는 흔들렸다. 카메라 앞에 서 있으면서도, 그 흔들림이 화면에 드러나고 있었다. 박미라가 그것을 본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오늘 아침, 거울을 보면서 민준은 이미 선택을 했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이 배우가 되기로 선택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선택의 대가로, 자신이 뭔가를 잃을 것이라는 것도.
그 포기가 자신의 얼굴에 드러난 것 같았다.
“포기는 좋은 감정이야.”
박미라가 계속했다. 그녀는 창문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세트 밖의 서울 시내가 보이는 창문으로. 오후 4시의 햇빛이 노란색으로 변해 있었다.
“배우들은 많이 저항해. 자신의 감정을 지키려고. 마치 자신의 감정이 소중한 재산이라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그건 실수야. 감정은 재산이 아니야. 감정은 빌려온 것이야. 우주에서, 신에게서, 역사에서 빌려온 것이야.”
민준은 그녀의 말을 들었다. 그것은 배우 교육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생 교육이었다.
“좋은 배우는 포기하는 법을 안다. 완전하게. 자신의 감정을 영화에, 역할에, 카메라에 넘기는 법을 안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는 가져올 수 없다는 것도 안다.”
박미라가 민준을 다시 바라봤다.
“그리고 넌 방금 그 포기를 했어. 화면에 담겼어. 영구적으로.”
그녀가 돌아섰다. 그리고 촬영장으로 돌아갔다. 민준은 그 자리에 남겨졌다. 혼자. 세트의 모퉁이에서. 그 냉한 그림자 속에서.
그 순간, 민준은 무언가를 깨달았다. 준호가 맞았다는 것을. 그의 말이 정확했다는 것을. 일단 뭔가를 준 후에는, 그것을 다시 가져올 수 없다는 것을. 자신이 오늘 화면에 남긴 자신의 감정들은, 영원히 그것으로 남을 것이라는 것을. 다른 버전의 자신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그것은 무섭고, 동시에 해방적이었다.
그는 자신의 손을 들었다. 어제 창유리를 만졌던 그 손. 그것을 봤다. 손가락들이 여전히 약간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떨림은 이제 두려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삶의 증거였다.
## 제3장: 저녁 6시의 전화
저녁 6시가 되었을 때, 민준은 자신의 휴대폰을 들었다. 화면을 켰다. 준호의 번호를 찾았다. 그리고 전화를 걸었다.
그것은 의도적인 행동이었다. 준호가 먼저 전화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먼저 연락하는 것. 그것은 선택이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여보세요?”
준호가 받았다. 그의 목소리는 운전 중인 것처럼 들렸다. 배경에는 자동차 엔진음과 라디오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어떻게 됐어?”
준호가 물었다. 마치 그들이 계속된 대화를 하고 있었던 것처럼. 마치 어제의 대화가 끝나지 않았던 것처럼.
“촬영이 끝났습니다.”
민준이 말했다. 그는 여전히 경어를 사용했다. 그것은 습관이었다. 아니면 존경이었다.
“잘했어?”
준호가 물었다.
“네.”
민준이 대답했다.
그들 사이에는 짧은 침묵이 있었다. 그 침묵 속에서 민준은 자신의 감정들을 정렬하려고 했다.
“그리고?”
준호가 물었다. 그것은 단순한 물음표가 아니었다. 그것은 더 깊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 촬영이 잘 되었다는 것만이 아니라, 당신이 깨달았는가, 당신이 이해했는가, 당신이 준비되었는가라는 의미였다.
민준은 깊게 숨을 쉬었다. 창밖을 봤다. 강남의 저녁이 펼쳐져 있었다. 조명들이 하나둘 켜지고 있었다. 사무실의 형광등, 가게의 간판등,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마치 세계가 무대로 변해가는 것처럼.
“그리고… 내가 이미 줬다는 걸 알겠습니다. 가져올 수 없다는 것도.”
민준이 말했다.
준호는 한동안 말하지 않았다. 배경음만 들렸다. 자동차 음악. 그는 운전 중이었다. 도시를 가로질러서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
“그래. 좋아. 그럼 이제 넌 배우야. 진짜로.”
준호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마치 이미 알고 있던 결론을 확인하는 것처럼.
“배우라니요?”
민준이 물었다. 그것은 자신이 이해하지 못했다는 신호였다.
“배우는 자신이 뭘 잃어버렸는지 알 때부터 시작이야. 그 전까지는 그냥 광대일 뿐이고.”
준호가 말했다.
그 말이 끝난 후, 전화가 끊겼다. 준호가 끊은 것이 아니었다. 신호가 끊긴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민준은 준호가 의도적으로 전화를 끊었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말을 남기고, 상대방이 그것을 생각하게 하기 위해.
민준은 휴대폰을 내렸다. 그것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창 밖을 봤다.
강남의 저녁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혹은 더 아름다워 보였다. 마치 자신이 처음 이 도시를 보는 것처럼.
그는 손을 들었다. 자신의 손. 어제 창유리를 만졌던 그 손. 오늘 화면에 담겼던 그 손. 그것을 봤다.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그 손은 더 이상 어린이의 손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른의 손이었다. 그것은 선택을 한 손이었다.
그리고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그 주먹 안에는 모든 것이 들어 있었다. 모든 두려움, 모든 기대, 모든 포기, 모든 선택. 그것들이 한 점으로 압축되어 있었다.
그는 그 주먹을 들어올렸다. 마치 누군가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처럼. 혹은 자신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처럼.
그 순간, 민준은 알았다.
자신이 이제 배우가 되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시작이었다.
**[98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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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필로그: 밤의 생각
밤이 깊어질수록, 민준의 생각은 더 복잡해졌다. 자신의 침대에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면서, 그는 자신이 한 선택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았다.
배우가 된다는 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이 정말로 자신이 원하는 것인가? 아니면 자신이 두려워서 도망치는 것인가?
아니다. 그것은 도망이 아니었다. 준호의 말이 맞다. 도망이 아니라 포기였다. 그리고 포기는 용감한 행동이었다.
민준은 자신의 양손을 펼쳤다. 손가락들이 천천히 펴졌다. 그 손들이 앞으로 어떤 일을 할 것인가. 어떤 감정들을 표현할 것인가. 어떤 캐릭터들의 살을 입을 것인가.
그것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배우의 삶이었다. 알 수 없는 미래 속에서, 자신의 영혼을 무언가에 넘기는 것. 그리고 그것을 영구적으로 잃어버리는 것.
그것이 두렵지 않다고 말하면 거짓이다. 하지만 그것이 흥미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