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제2막 – 제92화: 선택이라는 이름의 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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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92화: 선택이라는 이름의 덫

준호가 입을 다물었다. 그의 턱이 움직였다가 멈췄다. 마치 무언가를 삼키려던 중에 멈춘 것처럼. 민준은 거울 속 그의 얼굴을 본다. 형광등의 불빛 아래서 준호의 얼굴은 더 나이 들어 보인다. 34세의 배우. 아니, 이제 그는 배우가 아니다. 민준은 그것을 안다. 준호는 배우 역할을 하는 무언가다. 매니저. 아니, 매니저도 아니다. 그것은 더 복잡한 무언가다. 그것을 민준은 아직 이름 붙일 수 없다.

“넌 지금까지 뭘 해온 거 같아?”

준호가 물었다. 그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질책이었다. 아니, 그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자백이었다. 누군가에게 하는 자백이 아니라, 자신에게 하는 자백.

민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준호가 대기실의 소파에 앉았다. 천천히. 마치 자신의 몸이 그의 통제를 벗어난 것처럼. 소파의 가죽이 그의 무게를 받으면서 작은 음성을 냈다. 민준은 그 음성을 들었다. 그것은 항복의 음성이었다.

“이준혁은 네가 생각하는 그런 배우가 아니야.”

준호가 다시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이제 완전히 다르다. 낮고, 무겁고, 마치 관 속에서 나오는 것 같은 목소리.

“뭐라고 했잖아. 누군가와의 관계가—”

민준이 말했다.

“관계가 아니야.”

준호가 끊었다.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것은 무거운 침묵이었다. 마치 물 속에 가라앉는 듯한. 민준은 그 침묵을 견디려고 했지만, 견딜 수 없었다. 사람은 침묵을 견딜 수 없다. 침묵은 생각을 강요한다. 그리고 생각은 두려움으로 변한다.

“그럼 뭔데?”

민준이 물었다.

준호는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그의 손가락이 자신의 눈 위를 지나갔다. 마치 그것을 지우려고 하는 것처럼. 아니, 마치 그것을 숨기려고 하는 것처럼.

“이준혁은…”

준호가 말을 시작했다. 그리고 멈췄다.

“뭐?”

민준이 다시 물었다.

“이준혁은 박미라의 남자야.”

준호가 말했다.

그 문장은 대기실 안에 떨어졌다. 마치 돌이 호수에 떨어지는 것처럼. 파동을 만들면서. 하지만 파동은 물 위에만 있지 않다. 그것은 공기 속으로 퍼진다. 민준의 폐 속으로. 그의 심장 속으로.

“뭐…?”

민준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더 이상 그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박미라의 남자야. 그리고 박미라는 그 드라마의 감독이고, 그 드라마는 제작사의 누군가의 돈으로 만들어지고 있어. 그 누군가는 박미라를 좋아해. 아니, 소유하고 싶어 해. 그리고 박미라는 그것을 알면서도 그 돈을 받아. 그리고 그 돈으로 그 드라마를 만들어. 그리고 이준혁은 그 모든 것의 중심에 있어. 연결점으로. 마치 촉매제처럼.”

준호가 말했다. 그의 말은 빨라졌다. 마치 댐이 터지면서 물이 쏟아지는 것처럼. 그는 멈출 수 없었다.

민준은 거울 앞의 의자에 앉았다. 그의 다리가 더 이상 그를 지탱할 수 없었다.

“그러면…”

민준이 말했다.

“그러면 넌 뭐야?”

준호가 물었다. 그것은 민준의 질문이 아니라, 준호가 민준에게 물으면서 동시에 자신에게 물은 질문이었다.

“나는…”

민준이 말했다.

“넌 그 바퀴 위의 톱니야. 그들이 돌아가기 위해 필요한 톱니. 너가 아름답게 연기하면, 드라마가 성공해. 드라마가 성공하면, 투자자가 기뻐해. 투자자가 기뻐하면, 박미라가 더 많은 돈을 받아. 박미라가 더 많은 돈을 받으면, 이준혁은 더 깊게 묻혀있어. 그리고 그것이 계속 반복되는 거야. 너는 그 시스템의 일부고, 그 시스템은 절대로 멈추지 않아.”

준호가 말했다.

민준은 손가락으로 자신의 목을 쓸었다. 마치 그곳에 뭔가가 감겨 있는 것처럼. 목줄이. 사슬이. 무언가가.

“그럼 내가 뭘 해야 하는데?”

민준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준호가 일어섰다. 천천히. 그의 무릎이 소파에서 떨어지면서 작은 음성을 냈다. 그는 민준 앞에 섰다. 거울 속에 두 개의 얼굴이 나타났다. 하나는 27세의 배우. 하나는 34세의 배우. 아니, 배우가 아닌 무언가.

“그게 문제야.”

준호가 말했다.

“뭐가?”

민준이 물었다.

“넌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지금은. 왜냐하면 넌 이미 그 안에 있으니까. 촬영했으니까. 영상이 남았으니까. 그리고 그 영상은 이제 누군가의 손에 있어. 그 누군가가 누군지는 넌 알 수 없지만, 분명히 누군가의 손에 있어.”

준호가 말했다.

민준은 자신의 손가락을 본다. 그것들은 여전히 떨리고 있다. 촬영 후로 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니, 촬영 중에 이미 떨리고 있었다. 이준혁의 손이 다가올 때부터.

“그 누군가가 날 어떻게 할 거야?”

민준이 물었다.

준호가 대답하지 않았다. 그것은 대답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대답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다. 아니, 대답을 알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모르니?”

민준이 물었다.

“모르지.”

준호가 말했다.

“그럼 뭘 알아?”

민준이 물었다.

준호가 거울로 다가갔다. 그의 손이 거울을 쓸었다. 마치 거울 너머의 무언가를 지우려고 하는 것처럼. 하지만 거울은 계속 반사했다. 그의 손. 그의 얼굴. 그의 공포.

“난 알아. 넌 이 드라마에서 절대로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걸. 넌 항상 배경일 거야. 하지만 동시에 넌 그 배경에서 너무 눈에 띠게 될 거야. 그게 최악이야. 완전히 사라지거나, 완전히 밝혀지거나. 그 중간에는 없어.”

준호가 말했다.

“그럼 내가 드러내버리면 어때?”

민준이 물었다. 그것은 충동적인 질문이었다. 하지만 그 충동은 진정했다.

“드러낸다고?”

준호가 물었다.

“모든 거. 이준혁이 뭔지, 박미라와의 관계가 뭔지, 그 투자자가 누구인지. 다 드러내버리면 어때?”

민준이 말했다.

준호가 웃었다. 그것은 웃음이 아니라, 비웃음이었다. 마치 가장 우스꽝스러운 농담을 들었을 때의 비웃음.

“드러낸다고? 누한테? 누가 들어줄 거 같아? 넌 지금 누구야? 넌 아무도 아니야. 넌 그냥 배우고, 배우는 말을 하지 않아. 배우는 연기해. 그게 배우의 일이고, 그게 배우의 무기이면서 동시에 배우의 감옥이야.”

준호가 말했다.

민준은 손을 주먹으로 쥐었다. 그의 손가락이 자신의 손가락을 누르고 있다. 너무 강하게. 피가 나갈 정도로. 하지만 피는 나지 않았다. 다만 손가락이 하얀색으로 변했다. 혈액이 흐르지 않는 곳이 하얀색이 된다. 그것은 죽음의 색이다.

“그럼 내가 포기하면 어때? 드라마 포기하고, 배우 그만두고, 다 그만둬.”

민준이 말했다.

준호가 민준을 본다. 거울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그의 눈이 민준의 눈을 마주친다.

“넌 할 수 없어.”

준호가 말했다.

“왜?”

민준이 물었다.

“왜냐하면 넌 이미 협력했으니까. 촬영했으니까. 영상이 나왔으니까. 그리고 그 영상은 증거야. 넌 그것을 지울 수 없어. 아무도 지울 수 없어. 그것은 영원히 남을 거야. 디지털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영원해.”

준호가 말했다.

민준은 자신의 손을 본다. 떨리는 손. 그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잡았다. 마치 자신의 머리를 뽑아내려고 하는 것처럼. 하지만 뽑아낼 수 없다. 그것은 자신의 몸이고, 자신은 자신의 몸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럼 뭐를 어떻게 해?”

민준이 물었다. 그것은 더 이상 준호에게 하는 질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에게 하는 질문이었다.

준호가 대기실의 소파에 다시 앉았다. 그의 몸이 완전히 무너졌다. 마치 뼈가 없는 것처럼.

“난 모르겠어.”

준호가 말했다.

“뭐?”

민준이 물었다.

“난 모르겠다니까. 너를 어떻게 도와줄지. 그게 내 역할이었는데, 넌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 빠졌어. 그리고 난 그걸 못 막았어. 넌 봤잖아. 나도 그 시스템의 일부라는 걸.”

준호가 말했다.

민준은 처음으로 준호의 얼굴을 제대로 본다. 아니, 거울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그의 얼굴에는 주름이 많다. 그 주름들은 세월의 주름이 아니다. 그것들은 두려움의 주름이다. 불안의 주름이다. 자신이 할 수 없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의 주름이다.

“그럼 최악의 경우는 뭐야?”

민준이 물었다.

준호가 민준을 본다. 그의 눈 속에는 무언가가 죽어있다. 그것은 희망이다. 아니, 그것은 더 깊은 무언가다. 그것은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력이다. 자신이 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그것이 죽어있다.

“최악의 경우는…”

준호가 말했다.

그리고 멈췄다.

민준은 기다렸다. 침묵 속에서. 그 침묵은 영원한 것 같았다. 하지만 침묵은 영원하지 않다. 침묵은 항상 끝난다. 누군가가 말을 시작할 때.

“최악의 경우는 그들이 널 더 깊게 밀어붙인다는 거야. 더 많은 촬영. 더 노출적인 장면. 더 취약한 모습. 그리고 그 영상이 어딘가로 흘러나가. 그게 혹은 협박의 수단이 될 수도 있고, 혹은 그냥 망가짐의 수단이 될 수도 있어. 넌 알 수 없어. 어디로 가는지. 누가 보는지. 언제 터지는지.”

준호가 말했다.

민준은 자신의 가슴이 아프다는 것을 느낀다. 아니, 가슴이 아닌 더 깊은 곳에서. 그것은 내장기관의 통증이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몸 안에 손을 집어넣어서 무언가를 집어내려고 하는 것처럼.

“그럼 나한테 할 수 있는 조언은 뭐야?”

민준이 물었다.

준호가 일어섰다. 그의 움직임은 이제 완전히 다르다. 마치 로봇이 움직이는 것처럼. 자동적으로. 의식 없이.

“조언?”

준호가 말했다. 그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응.”

민준이 말했다.

“조언은… 계속 연기해. 완벽하게 연기해. 그들이 너를 원하는 대로. 그리고 그 과정에서 너는 계속 기록되고, 계속 소비되고, 계속 사라져갈 거야. 하지만 그게 배우의 숙명이야. 그것이 우리가 선택한 길이고.”

준호가 말했다.

“나는 선택한 게 없는데?”

민준이 물었다.

“맞아. 넌 선택하지 않았어. 하지만 넌 동의했어. 촬영에. 장면에. 그 모든 것에. 그리고 동의는 선택이야. 비록 그 선택이 거부당할 수 없는 것일지라도.”

준호가 말했다.

준호가 문을 열었다. 대기실 밖의 복도가 보인다. 그곳은 밝다. 형광등의 불빛으로. 그곳은 카메라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미 모든 것이 기록되었으니까. 민준의 얼굴, 그의 감정, 그의 취약함. 모든 것이.

“대기실에서 나오지 마. 한 시간 더 쉬어. 그 다음에 메이크업 다시 하고, 저녁 촬영 준비해.”

준호가 말했다.

“또 촬영이 있어?”

민준이 물었다.

“응. 야간 촬영. 같은 장면. 다른 각도. 이준혁이 있는 다른 테이크.”

준호가 말했다.

민준은 자신의 손을 본다. 그것들은 여전히 떨리고 있다. 그 손으로 어떻게 연기를 할 수 있을까. 그 손으로 어떻게 거부감을 표현할 수 있을까. 그 손으로 어떻게 아버지의 손을 피할 수 있을까.

준호가 문을 닫았다. 대기실이 다시 침묵으로 변했다. 하지만 그 침묵은 이전의 침묵과 다르다. 그것은 이제 확실한 침묵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침묵이다.

민준은 거울 앞에 다시 서 있다. 자신의 얼굴을 본다. 그것은 여전히 배우의 얼굴이다. 아니, 이제 그것은 배우의 얼굴이 아니다. 그것은 희생자의 얼굴이다. 아니, 그것도 아니다. 그것은 단순히 영상이다. 픽셀의 조합이다. 누군가의 손에 있는 데이터다.

시간이 흘렀다. 정확한 시간을 민준은 알 수 없다. 그의 휴대폰은 침묵하고 있다. 준호는 돌아오지 않는다.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다. 단지 형광등의 빛만이 그의 얼굴을 계속 비춘다. 가혹하게. 멈추지 않고.

민준은 자신의 옷을 벗었다. 아니, 벗을 생각을 했을 뿐 실제로 벗지는 않았다. 그것도 이제는 위험하다는 것을 그는 안다. 모든 것이 위험하다. 모든 것이 기록될 수 있다. 모든 행동이 해석될 수 있다. 모든 순간이 무기가 될 수 있다.

그는 소파에 누웠다. 그의 몸은 완전히 피로해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뜨여 있었다. 그것들은 천장을 본다. 천장은 하얀색이다. 그것은 캔버스처럼 보인다. 누군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그릴 수 있는 캔버스처럼. 하지만 그 이야기는 민준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다. 그것은 박미라의 이야기고, 이준혁의 이야기고, 투자자의 이야기고, 준호의 이야기다. 민준의 이야기는 그 모든 이야기의 배경이다. 그것은 장식이다. 그것은 도구다. 그것은 더 이상 민준의 것이 아니다.

시간이 더 흘렀다. 메이크업 담당자가 들어왔다. 그녀는 민준의 얼굴을 본다.

“얼굴이 창백한데? 괜찮아?”

그녀가 물었다.

민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입은 닫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열리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촬영 중에는. 촬영이 끝날 때까지는.

메이크업 담당자는 그의 얼굴에 파운데이션을 바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가락은 차갑다. 그것들은 민준의 뺨을 쓸었다. 그리고 민준은 그것을 느낀다. 하지만 느끼지 않는다. 그것은 모순이다. 하지만 이제 모순은 민준의 삶의 일부다.

“저녁 촬영 준비해. 아버지와 아들. 마지막 장면이야.”

메이크업 담당자가 말했다.

마지막 장면. 민준은 그 말을 듣는다. 마지막. 하지만 그것은 마지막이 아니다. 왜냐하면 마지막은 없으니까. 배우에게는 항상 다음 장면이 있다. 다음 테이크가 있다. 다음 역할이 있다. 그것은 영원히 계속된다. 마지막이 올 때까지. 그리고 마지막은 죽음일 때뿐이다.

민준은 거울 속의 자신을 본다. 파운데이션이 입혀진 얼굴. 그것은 더 이상 그의 얼굴이 아니다. 그것은 캐릭터의 얼굴이다. 아버지의 손길에 거부감을 느끼는 아들의 얼굴. 그것은 완벽하다. 박미라가 원하는 대로. 그것은 영원히 남을 것이다. 디지털의 세상에서. 누군가의 손에 있을 것이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처럼.

그리고 민준은 그것을 받아들인다. 그것이 선택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이 덫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일어섰다. 촬영장으로 가기 위해. 완벽하게 연기하기 위해. 자신의 영혼을 팔기 위해.

세트 위에 서는 순간, 민준은 이준혁을 본다. 그의 얼굴. 그것은 차분하다. 마치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아니, 모든 것이 계획대로 일어났다는 듯이.

박미라가 액션을 외친다.

그리고 민준은 다시 연기한다. 마치 그것이 선택인 것처럼. 마치 그것이 그의 길인 것처럼. 마치 그것이 자유인 것처럼.

하지만 그것은 모두 거짓이다.

그것이 가장 무서운 부분이다.


12,847자

# 거짓의 무게

그것도 이제는 위험하다는 것을 그는 안다. 모든 것이 위험하다. 모든 것이 기록될 수 있다. 모든 행동이 해석될 수 있다. 모든 순간이 무기가 될 수 있다.

민준은 소파에 누웠다. 검은색 가죽 소파는 너무 차갑다. 촬영장의 라운지는 항상 과도하게 냉방되어 있다. 누군가는 이를 ‘전문적인 환경’이라고 부른다. 민준은 이를 ‘생명력을 빨아먹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몸은 완전히 피로해 있었다. 근육의 깊숙한 곳부터 시작된 피로감이 마치 겨울 추위처럼 골수까지 스며들어 있었다. 어제 밤 세 시간의 수면, 그 전날의 이틀 밤 촬영, 그 전의 투자자 미팅들. 모두가 그의 육체에 쌓여 있다. 하지만 그의 눈은 떠여 있었다. 감으려고 해도 감기지 않는 그런 눈. 아드레날린과 불안감이 섞인 화학물질이 그의 신경계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의 눈들은 천장을 본다. 천장은 하얀색이다. 깨끗한 흰색. 완벽한 흰색. 너무나 완벽해서 오히려 불안한 그런 흰색. 그것은 캔버스처럼 보인다. 누군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그릴 수 있는 캔버스처럼. 민준은 그 흰색 캔버스에 자신을 투영해본다. 자신의 미소, 자신의 눈물, 자신의 절망. 그런데 잠깐—그것이 자신의 것인가?

*아니다. 그것은 내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그린 게 아니라 누군가 다른 사람이 그린 이야기다. 박미라가 그린 이야기. 그녀의 카메라 너머에서, 그녀의 감독적 시선을 통해. 이준혁이 그린 이야기도 있다. 그의 입술의 미묘한 움직임, 그의 눈빛에 담긴 계산. 투자자들이 그린 이야기도 있다. 그들은 이 영화에서 무엇을 보고 싶어 하는가? 어떤 드라마를 원하는가? 그리고 준호도. 준호가 발설한 이야기. 그것이 가장 위험한 버전이다.

민준의 이야기는 그 모든 이야기의 배경이다. 그것은 장식이다. 그것은 도구다. 그것은 더 이상 민준의 것이 아니다. 언제부터였을까? 정확히 언제 자신의 삶이 타인의 재산이 되었을까?

시간이 더 흘렀다. 얼마나 흘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시간은 이 촬영장에서 의미가 없다. 시간은 극본의 지시에 따라 움직인다. ‘아침 장면’ ‘오후의 슬픈 독백’ ‘저녁의 대결’.

메이크업 담당자가 들어왔다. 그녀의 이름은 수진. 수진은 항상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한다. 마치 민준이 깨질 수 있는 도자기인 것처럼. 그녀는 민준의 얼굴을 본다. 그녀의 눈이 가늘어진다. 그것은 전문적인 우려의 신호다.

“얼굴이 창백한데? 괜찮아?”

그녀가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진정한 걱정이 있다. 민준은 이 순간을 감사한다. 이것이 유일한 순간이다. 누군가가 ‘민준’을 보는 순간. ‘캐릭터’가 아닌. 하지만 그것도 착각일 수 있다. 수진도 배우다. 그녀도 자신의 역할을 한다. ‘배려하는 스태프’ 역.

민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입은 닫혀 있었다. 말하기 전에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생각할 것도 이미 다 생각했다. 결론은 늘 같다. 말하지 않는 것이 낫다. 그리고 그것은 열리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촬영 중에는. 촬영이 끝날 때까지는. 아니, 촬영이 끝난 후에도. 왜냐하면 촬영이 끝나도 카메라는 계속 굴러가니까.

수진은 그의 침묵을 이해한다. 그녀는 이런 배우들을 많이 봤다. 신경이 곤두선 배우들. 역할에 깊이 빠진 배우들. 또는 심리적으로 무너진 배우들. 그녀는 구분하지 않는다. 그저 그들의 얼굴을 만질 뿐이다.

“알겠어. 그럼 기초부터 시작할게.”

수진은 민준의 얼굴에 파운데이션을 바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가락은 차갑다. 스펀지로 문지르는 그 감각이 민준의 뺨을 쓸었다. 그리고 민준은 그것을 느낀다. 물리적인 감각으로. 하지만 동시에 느끼지 않는다.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의 얼굴을 만지고 있는 것처럼. 그것은 모순이다. 하지만 이제 모순은 민준의 삶의 일부다.

“저녁 촬영 준비해. 아버지와 아들. 마지막 장면이야.”

수진이 말했다. 그녀의 입술이 움직이면서 그 말을 전달한다. 뭔가 중요한 정보를 전하는 톤이다. 마지막 장면. 민준은 그 말을 듣는다. 마지막. 그 단어의 무게가 어깨에 떨어진다.

하지만 그것은 마지막이 아니다. 왜냐하면 마지막은 없으니까. 배우에게는 항상 다음 장면이 있다. 촬영 순서는 극본 순서를 따르지 않는다. 스케줄의 편의에 따라 뒤죽박죽 섞여 있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은 시간 순서로는 마지막이지만, 서사적으로는 절대 마지막이 아니다. 그리고 이 영화가 끝나도 다음 영화가 있다. 다음 테이크가 있다. 다음 역할이 있다. 그것은 영원히 계속된다. 마지막이 올 때까지. 그리고 마지막은 죽음일 때뿐이다.

민준은 거울 속의 자신을 본다. 아니, 거울 속의 ‘그것’을 본다. 파운데이션이 입혀진 얼굴. 자신의 피부 톤은 이미 사라졌다. 대신 그곳에는 균일한 베이지색이 있다. 인공적인 색. 카메라 앞에서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설계된 색.

“더 밝게 할까? 요즘 조명이 강해졌잖아.”

수진이 물었다.

민준은 다시 말하지 않는다. 그저 한 번 눈을 깜빡인다. 동의의 신호.

수진은 그의 얼굴에 더 많은 파운데이션을 얹는다. 그것은 더 이상 그의 얼굴이 아니다. 그것은 캐릭터의 얼굴이다. 아버지의 손길에 거부감을 느끼는 아들의 얼굴. 그 거부감은 미묘해야 한다. 관객이 느낄 수 있지만, 아버지 역을 하는 이준혁은 모르는 척해야 한다. 그래서 더 드라마틱해진다.

그것은 완벽하다. 박미라가 원하는 대로.

“다음은 아이섀도우.”

수진이 중얼거린다. 그녀는 팔레트에서 여러 색을 섞기 시작한다. 갈색, 회색, 검은색. 어두운 색들. 슬픔의 색들. 절망의 색들. 또는 위험의 색들.

민준은 거울을 통해 자신의 눈이 변해가는 것을 본다. 화장이 진행되면서 어떤 새로운 인물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것이 바로 이준혁의 아들이다. 부모의 과보호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날 수 없는 그런 아들. 대학 입시를 앞둔 불안감과 아버지의 기대라는 무게에 짓눌린 그런 아들.

극본에서 그 아들은 아버지와 대항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자신의 꿈을 말한다. 배우가 되겠다고. 그것은 아버지의 꿈과 충돌한다. 아버지는 의사가 되길 원한다. 갈등이 고조된다. 아버지는 아들을 때린다. 아들은 울음을 터뜨린다. 감정적 폭발.

민준은 이미 그 장면을 여러 번 촬영했다. 다른 각도에서. 다른 조명 아래에서. 다른 마이크로폰 배치로. 이제 그 장면을 또 촬영할 것이다.

그것은 영원히 남을 것이다. 디지털의 세상에서. 누군가의 손에 있을 것이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처럼. 지금 당신이 보는 그 울음이 진짜인지 아닌지 누가 알겠는가? 그것이 정말 그 배우의 감정인지, 아니면 완벽한 거짓인지. 그 구분은 이미 무의미해졌다. 진짜와 거짓의 경계가 무너졌으니까.

“끝이야. 준비됐어?”

수진이 거울을 들고 뒤로 물러난다. 민준은 거울 속의 자신을 본다. 그것은 거울 속의 자신이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 다른 사람이다. 완벽하게 만들어진 누군가. 완벽하게 배치된 누군가.

민준은 거울에서 눈을 돌린다. 이제 그를 보는 것이 고통스럽다.

“감사합니다.”

그는 처음으로 말을 한다. 그의 목소리는 쉬어 있다. 얼마나 오래 말하지 않았는가? 그의 목의 근육이 이 단순한 문장을 말하는 것에 저항한다.

“힘내. 오늘 장면이 무거울 거야.”

수진이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 한 순간의 진정한 접촉. 그것은 화장을 하지 않는 손이다. 따뜻한 손이다.

민준은 그 손의 온기를 느낀다. 그리고 다시 그것을 느끼지 않는 척 한다.

촬영장으로 가는 복도는 길다. 그리고 텅 비어 있다. 대부분의 스태프들은 이미 세트 위에 있다. 조명을 설정하고, 카메라를 배치하고,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민준의 아버지 역을 할 배우인 이준혁도 이미 준비되어 있을 것이다.

이준혁.

그 이름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민준의 심장이 빨라진다. 이준혁은 유명한 배우다. 연기력으로 유명한 배우. 하지만 그것보다 더 유명한 것은 그의 성격이다. 완벽주의자. 냉정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그리고 위험한.

민준이 처음 이 영화에 캐스팅되었을 때, 모든 사람들이 축하했다. “이준혁과 함께 일할 수 있다니! 이건 정말 대단한 기회야!” 하지만 민준은 그 말을 들으면서 공포감을 느꼈다. 이준혁은 신인 배우들을 으깨는 것으로 유명했다. 아니, 으깬다는 표현이 정확하지 않다. 그는 그들을 ‘성장’시킨다고 말한다. 강압적이고, 비판적이고, 때로는 모욕적인 방식으로.

그리고 박미라 감독은 그를 사랑한다. 이준혁을 사랑한다. 왜냐하면 그의 강렬함이 스크린에 나타나니까. 그의 냉정함이 영화를 더 깊게 만드니까.

민준은 복도를 걷다가 멈춘다. 세트 입구 앞에서. 거기서 그는 심호흡을 한다. 깊게. 천천히. 자신의 신경계를 진정시키기 위해.

*이것은 배우의 일이다. 이것이 직업이다. 감정을 통제하고, 이야기를 전달하고, 완벽하게 거짓을 말하는 것. 그것뿐이다.*

그렇게 자신을 설득한다.

세트 위에 들어서는 순간, 민준은 이준혁을 본다. 그의 얼굴. 그것은 차분하다. 마치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아니, 모든 것이 계획대로 일어났다는 듯이. 이준혁의 얼굴에는 어떤 감정도 없다. 그것은 연기의 신호다. 이제부터 그는 아버지가 된다는 신호.

박미라 감독이 자신의 자리에 앉아 있다. 그녀의 옆에는 촬영감독이 있고, 그 옆에는 스크립터가 있다.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준비되어 있다.

박미라가 어두운 색의 셔츠를 입고 있다. 그녀는 항상 어두운 색을 입는다. 마치 그 색들이 그녀를 배경으로 만들어줄 것처럼. 하지만 그녀는 절대 배경이 아니다. 그녀는 이 모든 것의 중심이다. 이 영화의 중심. 이 드라마의 중심.

“민준, 여기.”

박미라가 손짓한다. 민준은 세트 위의 자신의 위치로 간다. 방 안. 침실. 책상이 있고, 침대가 있고, 창문이 있다. 그리고 아버지가 들어올 문이 있다.

“이준혁, 준비됐어?”

박미라가 묻는다.

“물론이지.”

이준혁이 답한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하다. 그것은 무서운 목소리다. 왜냐하면 그 목소리에는 어떤 감정의 변동도 없기 때문이다.

“좋아. 그럼 시작하자. 배우들, 시작 위치로.”

박미라가 외친다.

민준은 침대에 앉는다. 극본에 따르면, 이 순간 그는 대학 입시 합격 통보를 받았다. 의대에 합격했다. 아버지가 원하던 대로.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배우가 되고 싶다. 그것이 자신의 진정한 꿈이다.

이준혁은 문을 통해 들어온다. 천천히. 위협적으로. 그의 움직임은 계산되어 있다. 모든 것이 계산되어 있다.

“너 합격했대. 축하한다.”

이준혁이 말한다. 그의 목소리에는 기쁨이 없다. 있는 것은 확인뿐이다. 자신의 계획이 성공했다는 확인.

민준은 침대에서 일어난다. 그의 움직임도 계산되어 있어야 한다. 아버지의 말에 대한 거부감. 그 거부감은 신체로 표현되어야 한다. 손가락이 움직인다. 턱이 조인다. 시선이 회피한다.

“아버지… 나는…”

민준이 말하기 시작한다. 그의 목소리는 떨린다. 그것은 연기다. 완벽한 연기다.

“뭐?”

이준혁이 묻는다. 한 단어. 하지만 그 단어에는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아버지의 권위. 아버지의 기대. 아버지의 위협.

민준은 멈춘다. 그의 입이 다물어진다. 극본에서는 여기서 말을 이어가야 한다. “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라고 말해야 한다. 하지만 이 순간, 그 말이 나오지 않는다.

아니, 나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나오면 안 된다. 왜냐하면 아직 테이크가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액션!”

박미라가 외친다.

그 순간, 무언가가 민준 안에서 깨어난다. 마치 스위치가 켜지는 것처럼. 그것이 배우라는 것의 의미다. 그 순간 그는 민준이 아니게 된다. 그는 캐릭터가 된다.

“아버지… 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민준이 말한다. 이제 그것은 민준의 목소리가 아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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