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제2막 – 제88화: 손가락의 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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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88화: 손가락의 온도

손이 민준의 어깨에 닿은 순간, 세상의 음성이 끊긴다. 아니, 끊기는 게 아니라 왜곡된다. 박미라 감독의 “시작” 신호는 수중의 메아리처럼 들린다. 카메라의 윙윙거리는 소리는 먼저 곤충의 울음처럼, 그 다음엔 심장 박동처럼 느껴진다.

민준은 이준혁의 손을 본다. 그 손이 자신의 어깨 위에 있다. 언제 닿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카메라가 돌기 시작한 후인지, 그 전인지. 시간이 이미 선형이 아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본다.”

박미라의 목소리가 어딘가에서 들린다. 아마 모니터 너머. 아마 현실 쪽. 하지만 민준은 이제 현실이 어디인지 알 수 없다.

이준혁의 손가락이 민준의 셔츠 천을 천천히 누른다. 압력이 아니라 무게다. 마치 자신의 모든 배역 경험을 그 손끝에 모아서, 민준을 누르고 있는 것처럼. 민준은 그것을 느낀다. 그리고 느끼는 것이 실수라는 것을 안다. 왜냐하면 느끼면, 반응이 나오기 때문이다. 반응이 나오면, 그것이 캐릭터가 되기 때문이다. 캐릭터가 되면, 그것이 영원히 기록되기 때문이다.

민준의 몸이 뒤로 물러난다. 한 걸음. 그것은 연기가 아니다. 그것은 생존 본능이다.

“좋아, 좋아. 그 거리감이 정확해.”

박미라가 말한다. 그녀는 민준의 후퇴를 연기의 일부로 본다. 그것이 박미라의 재능이자 문제점이다. 그녀는 모든 움직임을 예술로 본다. 심지어 공포도.

이준혁은 움직이지 않는다. 손은 그대로 공중에 남겨진다. 마치 민준을 붙잡기 위해 뻗어 있던 팔이, 이제는 민준이 도망친 허공을 만지고 있는 것처럼. 그것은 아버지의 슬픔이다. 배역 안의 슬픔. 하지만 민준은 그것이 배역인지 현실인지 구분할 수 없다.

“컷!”

박미라가 외친다. 하지만 그것이 모든 것을 멈추지는 못한다. 카메라는 멈춘다. 조명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민준의 심장은 계속 뛴다.

준호가 세트 위로 올라온다. 그의 발걸음은 빠르다. 공식적이지 않은 빠르기. 감독의 지시를 기다리는 매니저의 발걸음이 아니라, 누군가를 데려가려는 사람의 발걸음.

“민준이, 물 좀 마셔.”

준호가 말한다. 그것은 제안이 아니다. 명령이다. 민준은 그것을 안다. 그리고 따른다. 세트를 내려온다. 이준혁의 눈을 피하면서.

“좋은 테이크였어요.”

이준혁이 박미라에게 말한다. 그의 목소리는 진심으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이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거짓말하는 목소리보다, 진심으로 들리는 목소리가 훨씬 위험하다.

“민준이가 뭔가 흔들렸어. 그게 좋았어. 아버지의 손길에 대한 저항감. 그걸 원했어.”

박미라가 모니터 앞에서 일어난다. 그녀는 이제 만족하고 있다. 그런데 만족의 근거가 뭔가. 민준의 공포다. 그 공포가 화면에 잘 기록되었다는 만족.

민준은 물을 마신다. 그것도 천천히. 마치 자신의 목이 이물질로 막혀 있어서, 물이 통과하기 위해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물의 온도는 차갑다. 거의 얼음에 가깝다. 그것은 좋다. 그것이 현실이라는 증명이기 때문이다. 물은 현실이다. 현실은 물이다. 둘 다 찬 것들이다.

준호는 민준의 옆에 서 있다. 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존재가 말한다. 다양한 것들을. 나가 여기 있다. 넌 혼자가 아니다. 하지만 너는 이미 그것을 안다. 그리고 그것이 너를 약하게 만든다.

“다시 한 번 해볼까요?”

박미라가 말한다. “처음부터요.”

민준은 자신의 포지션으로 돌아간다. 세트의 반대편. 거리는 여전히 3미터. 거리는 줄어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거리는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손 닿는 거리까지.

이준혁도 포지션으로 돌아간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차분하다. 아버지의 얼굴. 약한 아버지의 얼굴. 가면을 벗으려고 하는 아버지의 얼굴.

“카메라 롤.”

박미라가 말한다.

“롤링.”

카메라맨이 대답한다.

“액션.”

박미라가 외친다.

이번에는 이준혁이 움직인다. 같은 방식으로. 같은 속도로. 마치 첫 번째 테이크를 정확히 복제하려고 하는 것처럼. 하지만 배우는 절대 같은 것을 두 번 할 수 없다. 배우는 항상 진화한다. 아니면 악화한다. 변한다. 같은 것을 반복하는 것은 배우가 아니라, 로봇이다.

이준혁은 로봇이 아니다.

그의 손가락이 이번에는 민준의 어깨에 먼저 닿지 않는다. 대신 민준의 팔을 만진다. 더 낮은 곳. 더 가까운 곳. 거의 팔꿈치 근처.

민준의 팔이 반사적으로 움직인다. 옆으로. 아니, 뒤로. 아니, 정확히는 이준혁의 손에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좋아. 그 거리감이 정확해.”

박미라가 다시 말한다. 같은 말. 같은 위치. 같은 만족감. 하지만 이것은 다르다. 이것은 더 정교하다.

이준혁의 손이 민준의 팔을 따라온다. 마치 자석처럼. 마치 중력처럼. 마치 숙명처럼.

“아버지가 아들을 놓치지 않는다.”

이준혁이 소리내어 말한다. 대사가 아니다. 배역이 아니다. 현실의 말이다. 현실의 손가락이 민준의 팔을 잡는다.

민준의 몸이 얼어붙는다. 아니, 얼어붙는 게 아니라 뜨거워진다. 손이 닿은 부분부터 뜨거워진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피부에 불을 붙이는 것처럼. 화면에는 어떻게 보일까. 민준은 생각한다. 이 뜨거움이 화면에 보일까. 이 공포가 보일까. 이 무력함이 보일까.

“컷!”

박미라가 외친다. 하지만 이준혁의 손은 멈추지 않는다. 아주 짧은 순간, 0.5초 정도 더 유지된다. 그것은 고의적이다. 민준은 알 수 있다. 그것이 감독의 지시를 무시하는 순간이라는 것을.

준호가 세트 위로 올라온다. 이번에는 빠르지 않다. 아주 느리다. 마치 자신이 지금 한 발짝 더 빨리 움직이면, 뭔가가 부서질 것 같아서인 것처럼.

“촬영을 멈춰.”

준호가 박미라에게 말한다. 그것은 제안이 아니다. 명령이다.

박미라가 준호를 본다. 그녀의 눈에는 놀라움이 있다. 매니저가 감독에게 촬영 중단을 명령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민준이가 좀 컨디션이 안 좋아 보여요.”

준호가 말한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하다. 전문적이다. 하지만 그 아래에는 뭔가가 흘러 있다. 제한된 분노. 제한된 공포.

“아니, 지금 정말 좋은 테이크였는데요. 감정이 깊어지고…”

박미라가 항의한다.

“컨디션 관리가 더 중요합니다.”

준호가 말한다. 그리고 민준의 팔을 잡는다. 이준혁의 손 위로. 준호의 손이 이준혁의 손 위에 놓인다. 조용한 권력의 전시. 마치 자신의 손이 그 손보다 더 따뜻하다는 것을, 더 진정성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듯이.

이준혁의 손이 천천히 물러난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차분하다. 하지만 그의 눈은 변했다. 그 눈 안에 뭔가가 일어났다. 계산이 되어 있다. 다음 수를 생각하는 포식자의 계산.

민준은 준호를 따라 세트를 내려온다. 준호의 손이 여전히 자신의 팔을 잡고 있다. 마치 자신을 물속에서 건져 올리는 것처럼.

“오늘 촬영은 여기까지 할게요.”

박미라가 선언한다. “내일 다시. 좋은 컨디션으로.”

스튜디오는 소음으로 채워진다. 조명을 정리하는 스태프들의 움직임. 장비를 옮기는 소리. 그 모든 것이 배경이 되는 동안, 민준과 준호는 조용히 빠져나간다.

촬영 트레일러로 들어가는 순간, 준호는 문을 닫는다. 그 소리는 크다. 마치 세상 전체를 차단하는 것처럼.

“손가락이 어디까지 올라갔어?”

준호가 묻는다. 직접적이다. 감정 없이.

“팔… 팔꿈치 근처.”

민준이 대답한다.

준호는 민준의 팔을 본다. 그 팔의 피부는 여전히 빨간색이다. 손가락 자국이 선명하다. 마치 그 손이 민준을 표시하려고 했던 것처럼. 소유를 표시하는 방식으로.

“다시 해야겠어. 의료 검진.”

준호가 말한다.

“뭐요?”

민준이 묻는다.

“촬영 중에 배우 간에 신체 접촉이 있을 때는, 의료 검진이 필수야. 특히 마킹이 생길 만큼의 강도로. 너는 몰랐을 수도 있지만, 이건 프로덕션의 기본이야.”

준호가 설명한다. 그의 목소리는 정확하다. 법적인 목소리. 변호사의 목소리.

“그런데… 감독님은 뭐라고 할까요?”

민준이 물었다.

“박미라는 좋은 감독이야. 그래서 이해할 거야. 배우를 보호하는 게 좋은 영화를 만드는 거라는 걸.”

준호가 말한다. 하지만 그의 눈은 다른 곳을 본다. 창밖. 그 너머의 서울. 이 도시 어딘가에 있을 이준혁을.

“형… 그 배우가 지금 뭘 생각하는 것 같아요?”

민준이 물었다.

준호는 한참을 말하지 않는다. 마치 자신이 이준혁의 머리 속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것처럼. 그 안의 계산을 읽으려고 하는 것처럼.

“그 배우는 지금 뭘 생각하는 게 아니라, 뭘 배우고 있어. 넌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는지. 넌 누가 개입하면 물러나는지. 그리고 그 누가가 누구인지.”

준호가 말한다. 그의 목소리는 이제 매우 조용하다.

“형, 그럼… 저는?”

민준이 물었다.

“넌 지금부터 더 조심해야 해. 정말, 정말 조심해. 왜냐하면…”

준호가 말을 멈춘다. 그의 턱이 조여진다.

“왜냐하면요?”

“왜냐하면 그 배우는 이제 너의 약점을 알았으니까. 그리고 그것을 쓸 거야. 영화 속에서, 영화 밖에서. 어디든. 어떻게든.”

준호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가장 큰 경고다.

민준은 자신의 팔을 본다. 그 팔의 빨간 자국들. 손가락의 온도가 아직도 남아 있다. 아니, 남아 있는 게 아니라, 점점 깊어지고 있다. 마치 그 손가락이 자신의 살 안으로 파고드는 것처럼.

그리고 민준은 깨닫는다. 준호가 말한 것의 진정한 의미를. 약점을 아는 것과 그것을 쓰는 것 사이에는, 수개월이 아니라 단 며칠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며칠 동안, 자신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저항할 수 있을까. 아니면 계속 물러나기만 할까.

창밖으로는 서울의 밤이 펼쳐져 있다. 형광등과 네온사인들. 그 모든 불빛 아래, 수백 명의 배우들이 자신의 약점을 숨기고 있다. 그리고 그들을 노리는 사람들이 있다. 언제나.

민준은 그 중 한 명이다. 더 이상 관찰자가 아니라, 사냥의 대상으로서. 그리고 그것이 바뀔 수 있을까. 민준은 모른다.

준호의 손이 민준의 어깨에 다시 놓인다. 이번에는 따뜻하다. 그 따뜻함이 얼마나 오래 유지될 수 있을까. 민준은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 약점

## 1부: 경고

법률사무실의 회의실은 겨울 오후의 창백한 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준호는 창가에 서 있었고, 민준은 책상 앞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 사이의 거리는 채 3미터가 되지 않았지만, 마치 훨씬 더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촬영 중에 배우 간에 신체 접촉이 있을 때는, 의료 검진이 필수야. 특히 마킹이 생길 만큼의 강도로.”

준호의 목소리는 정확했다. 마치 법정에서 판례를 설명하듯이, 한 마디 한 마디를 신중하게 발음했다. 그것이 변호사 준호였다. 민준이 형이라고 부르는, 그 실직적인 자아였다.

“너는 몰랐을 수도 있지만, 이건 프로덕션의 기본이야.”

민준은 그 말을 들으면서 자신의 팔을 내려다봤다. 흰색 셔츠 소매 아래로 보이는 붉은 자국들. 어제 촬영장에서 생긴 것들이었다. 감독 박미라는 그것들을 보고도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냥 “좋아, 다시 한 번 해보자”라고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감독님은 뭐라고 할까요?”

민준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조심스러웠다. 마치 얇은 얼음 위를 걷고 있는 사람처럼, 한 발 한 발을 조심스럽게 내디디는 듯했다.

준호는 돌아서서 민준을 바라봤다. 그의 눈빛은 차가웠다. 아니, 차갑다기보다는 계산적이었다. 마치 체스판 위의 말들을 세고 있는 것처럼.

“박미라는 좋은 감독이야.”

준호가 말했다. 그의 턱은 약간 경직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해할 거야. 배우를 보호하는 게 좋은 영화를 만드는 거라는 걸.”

말은 그럴듯했다. 하지만 준호의 눈은 창밖을 보고 있었다. 서울의 겨울 하늘을 통해 어딘가 더 먼 곳을, 더 구체적인 누군가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이준혁이었을 것이다. 촬영 현장에서 민준과 신체 접촉을 한 배우. 그 남자의 이름을 준호의 입에서 직접 들은 것은 아니었지만, 민준은 알고 있었다.

“형… 그 배우가 지금 뭘 생각하는 것 같아요?”

민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준호의 얼굴 표정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법적인 분석의 얼굴이 아니었다. 그것은 더 위험한 무언가였다.

준호는 한참을 말하지 않았다. 그의 입술이 일직선으로 굳어졌고, 눈동자만 천천히 움직였다. 마치 어떤 계산을 하고 있는 것처럼. 또는 어떤 심리를 읽으려고 하는 것처럼. 민준은 형의 얼굴을 보면서, 이것이 바로 준호가 법정에서 상대방 변론인을 바라보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배우는 지금 뭘 생각하는 게 아니라, 뭘 배우고 있어.”

준호가 천천히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조용했고, 그 때문에 더욱 무거웠다.

“넌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는지. 넌 누가 개입하면 물러나는지. 그리고 그 누가가 누구인지.”

민준의 숨이 얕아졌다. 가슴이 철렁했다. 그 느낌은 마치 높은 곳에서 갑자기 떨어지는 순간의 그것과 비슷했다.

“형, 그럼… 저는?”

민준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다.

준호가 민준 옆에 앉았다. 형의 움직임은 조용했지만 의도적이었다. 마치 무언가를 보호하듯이, 또는 무언가를 봉쇄하듯이.

“넌 지금부터 더 조심해야 해. 정말, 정말 조심해.”

그의 목소리는 형제의 목소리였다. 변호사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때문에 더욱 무서웠다. 민준이 형을 이렇게 본 적이 있었던가? 형은 항상 확신에 차 있었는데, 지금 형의 얼굴에는 분명히 두려움이 있었다.

“왜요? 왜냐하면요?”

민준이 물었다. 준호의 턱이 조여졌다. 그것은 감정을 억누르려는 노력의 신호였다.

“왜냐하면 그 배우는 이제 너의 약점을 알았으니까. 그리고 그것을 쓸 거야.”

준호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 수준이 되어 있었다. 마치 바람 소리처럼, 또는 물 흐르는 소리처럼. 하지만 그 조용함이 가장 큰 경고였다.

“영화 속에서, 영화 밖에서. 어디든. 어떻게든.”

## 2부: 자국

민준은 자신의 팔을 들어 올렸다. 셔츠 소매를 걷어 올렸다. 손가락 자국들이 뚜렷했다. 어제 촬영장에서 생긴 것들이었다. 아니, 방금 생긴 것들이었을 수도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국들이 점점 짙어지는 것 같았다.

그것은 이상했다. 신체적인 통증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어제 촬영이 끝난 후, 민준은 찬 물에 팔을 담갔고, 파스를 붙였고, 잠을 잤다. 통증은 사라졌다. 하지만 자국은 남아 있었다. 그리고 지금, 준호의 말을 들은 후에는, 그 자국이 점점 깊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손가락의 온도가 아직도 남아 있다. 아니, 남아 있는 게 아니라, 점점 깊어지고 있다. 마치 그 손가락이 자신의 살 안으로 파고드는 것처럼.

민준은 자신의 팔을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저 자국들이 뭐였을까. 단순한 신체 접촉의 증거일까. 아니면 이미 시작된 무언가의 첫 번째 신호일까.

촬영장에서 일어난 일을 다시 생각해봤다.

이준혁이 민준의 팔을 잡았다. 박미라 감독이 “좀 더 강하게”라고 말했다. 이준혁이 더 강하게 잡았다. 민준은 저항하지 않았다. 이것은 일이었고, 연기였고, 촬영이었다. 이준혁의 손가락이 민준의 팔에 깊이 파고들었다. 그 느낌은 분명했다. 정확했다. 그리고 계산적이었다.

박미라가 “컷”이라고 말했을 때, 이준혁은 손을 놓았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놓지 않았다. 그 눈빛이 민준을 훑고 지나갔다. 마치 뭔가를 확인하듯이. 또는 뭔가를 기억하듯이.

“형…”

민준이 작게 중얼거렸다.

준호는 여전히 민준의 팔을 보고 있었다.

“그 자국들이 빨리 사라져야 해. 가능하면 오늘 안에. 내일까지는 절대 안 돼.”

준호가 말했다.

“왜요?”

“왜냐하면 저 자국들이 증거가 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증거는 이야기가 돼. 이야기는 무기가 돼. 특히 영화판에서는.”

민준의 가슴이 철렁했다. 이야기? 무기? 그것들이 뭐였을까.

“형, 저는… 뭘 잘못했어요?”

민준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거의 울음에 가까웠다.

준호가 민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의 손은 따뜻했다. 하지만 그 따뜻함이 얼마나 오래 유지될 수 있을까. 민준은 모르고 싶었다.

## 3부: 도시의 밤

창밖으로는 서울의 겨울 밤이 펼쳐져 있었다.

형광등들과 네온사인들. 건물들의 창문들에서 쏟아지는 불빛들. 그 모든 것들이 마치 거대한 신경망을 이루고 있는 것 같았다.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맥동하는 도시.

민준은 그 밤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 모든 불빛 아래에서 일어나고 있을 일들을 상상했다.

수백 명의 배우들이 있을 것이다. 수천 명일 수도 있다. 그들 모두가 자신의 약점을 숨기고 있을 것이다. 또는 숨기려고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어떤 약점들이 있을까. 신체적인 약점들? 심리적인 약점들? 경제적인 약점들? 아니면 그 모든 것의 조합?

그리고 그들을 노리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항상. 언제나. 어디든. 그런 사람들은 그 약점들을 찾아낼 줄 안다. 그리고 찾아낸 후에는, 그것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도 안다.

이준혁도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일까. 민준은 모르고 싶었다. 하지만 준호의 경고가 없었다면, 아마도 민준은 그것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촬영장에서 일어난 일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봤다. 이번에는 더 자세하게. 더 조심스럽게.

첫 번째 신체 접촉은 2테이크였다. 민준이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 접촉이 “우발적”이었다는 것이었다. 대사 중에 이준혁이 민준의 팔을 잡았다. 박미라가 “좋아”라고 말했다.

두 번째는 3테이크였다. 이번에는 더 강했다. 박미라가 지시했다. 이준혁이 따랐다.

세 번째는… 세 번째는 뭐였을까. 민준은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때 이준혁의 눈빛이 달랐다는 것은 기억했다. 마치 뭔가를 테스트하듯이. 또는 뭔가를 학습하듯이.

그리고 컷 이후. 그때 이준혁은 뭐라고 말했을까. 아, 맞다. 이준혁은 말하지 않았다. 다만 웃었다. 그 웃음이 뭐였을까.

민준은 자신의 팔의 자국들을 다시 한 번 들어다봤다. 손가락의 흔적들. 다섯 개의 손가락이 남긴 다섯 개의 선들. 마치 어떤 암호 같았다. 또는 어떤 표식 같았다.

준호가 말했다. 저 자국들이 증거가 될 수 있다고. 그렇다면 증거는 뭐였을까. 뭐의 증거였을까.

민준은 깨달았다. 그것이 바로 준호가 경고하려고 한 것이었다. 약점을 아는 것과 그것을 쓰는 것 사이에는, 수개월이 아니라 단 며칠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며칠 동안, 자신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저항할 수 있을까. 아니면 계속 물러나기만 할까.

## 4부: 포식자

준호가 다시 말했다.

“그 배우가 뭘 하려고 하는 건지, 내가 정확히 알아. 왜냐하면 내가 그런 사람들을 많이 봤으니까. 법정에서.”

준호의 목소리는 더 낮아졌다. 마치 비밀을 말하는 것처럼.

“그런 사람들의 패턴은 언제나 같아. 먼저 약점을 찾아. 그 다음에는 그것을 확인해.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그것을 쓰지.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항상 하나의 단계가 있어. 그것은…”

준호가 말을 멈췄다.

“그것은 뭐예요?”

민준이 물었다.

“그것은 너가 물러나는지 안 물러나는지를 보는 단계야. 만약 넌 처음부터 물러나면, 그 배우는 다시는 너를 건드리지 않을 거야. 더 이상의 가치가 없으니까. 하지만 넌 물러나지 않았어. 그리고 그것이 신호가 돼. 너는 견딜 수 있다는 신호. 너는 두려워한다는 신호. 그리고 그런 신호는…”

준호가 민준의 눈을 바라봤다.

“그런 신호는 사냥감이라는 신호야.”

민준의 입이 말라왔다. 사냥감. 그 단어가 자신을 정확히 설명하는 것 같았다. 마치 어떤 무서운 영화를 보고 있는 것처럼, 민준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서울의 밤 속에서, 높은 건물들 사이에서, 영화 스튜디오 안에서, 이준혁이라는 포식자 앞에서 떨고 있는 자신을.

하지만 그것이 바꿀 수 있을까. 민준은 모르고 싶었다. 이제 알아야 한다는 것도. 그리고 이미 알고 있다는 것도.

“형… 저는 뭘 해야 해요?”

민준이 물었다.

준호는 오래 생각했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단단했다. 하지만 눈에는 뭔가 다른 감정이 흐르고 있었다. 분노? 아니다. 두려움? 그것도 아니다. 그것은… 결단이었다.

“넌 이제 조심해야 해. 정말 조심해. 그리고 만약 뭔가 일어나면, 즉시 나한테 말해. 어떤 것이든. 가장 작은 것이든. 가장 사소한 것이든. 알겠어?”

준호가 말했다.

“알겠어요.”

민준이 대답했다.

그리고 두 형제는 창밖의 서울을 바라봤다. 그 도시의 밤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움 아래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었다. 하지만 민준은 이제 알고 있었다.

## 5부: 따뜻함

준호의 손이 민준의 어깨에 다시 놓였다.

이번에는 다른 손이었다. 다른 온기였다. 마치 보호하듯이. 또는 지켜내듯이.

“넌 강해야 해. 왜냐하면 이 도시에는 넌 혼자가 아니거든. 나가 있어. 그리고 나는 너를 지킬 거야. 어떻게든.”

준호의 목소리는 이제 다시 형의 목소리였다. 변호사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는 법적인 정확성이 담겨 있었다. 마치 법정 선서를 하는 것처럼 정확하게.

민준은 형의 손을 느꼈다. 그 따뜻함이 얼마나 오래 유지될 수 있을까. 민준은 알고 싶지 않았다. 대신 그냥 그 순간에 집중했다. 형의 손. 그 따뜻함. 그리고 그것이 전하는 메시지.

“고마워요, 형.”

민준이 중얼거렸다.

“고마워하지 마. 이건 나의 책임이야. 형으로서의 책임. 그리고 변호사로서의 책임.”

준호가 대답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서 있었다. 창가에서. 겨울 밤의 서울을 바라보면서. 그 도시의 불빛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마치 별들이 떨어지고 있는 것처럼. 또는 무언가가 깨어나고 있는 것처럼.

민준은 생각했다. 저 불빛들 중 하나가 이준혁일 것이다. 그리고 그 불빛 아래에서, 그 배우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뭘 계획하고 있을까. 다음 움직임은 뭘까.

민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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