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제2막 – 제72화: 새벽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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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72화: 새벽의 선택

민준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우리의 문자를 읽었다. 화면의 글씨가 떨려 보였다. 자신의 손이 떨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민준이. 뭔가 있었어? 연락 안 돼서 걱정돼.” 시간은 자정 32분. 몇 시간 전이었다. 민준이 이수진의 사무실로 들어가기 전이었다.

그는 우리에게 전화를 걸어야 했다. 하지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 “대표님이 내가 죽어있다고 했어”? “준호가 나를 구원하려고만 한다고 했어”? “내일부터 촬영을 시작해야 하는데, 그게 뭔지 모르겠어”?

엘리베이터는 천천히 내려가고 있었다. 48층에서. 민준은 자신의 심장박동을 세면서 내려가는 층수를 세었다. 심박 하나, 한 층. 심박 하나, 한 층. 마치 자신이 시간 대신 거리를 측정하는 것처럼. 또는 자신의 생명이 층수로 계산되는 것처럼.

36층에 도착했을 때,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누군가가 타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문이 열렸다. 하지만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냥 빈 복도였다. 회사의 야간 경비 구역. 불이 꺼져 있었다. 마치 비어있는 무덤처럼.

문이 다시 닫혔다. 민준은 계속 내려갔다.

지하 1층에 도착했을 때는 새벽 1시가 되어 있었다. 시간이 이상하게 흘렀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복도를 걸을 때, 그는 자신이 실제로 움직이고 있는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혹은 자신이 죽은 후의 이동인지. 이수진의 말처럼, 자신이 이미 죽어있다면, 지금의 행동들은 무엇인가? 시뮬레이션인가? 습관인가?

지하 주차장은 조용했다. 불이 희뿌연 형광색이었다. 차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그 사이사이로 그림자들이 움직였다. 아니, 움직이지 않는 그림자들이었다. 그냥 서 있는 그림자들. 마치 자신처럼.

민준은 자신의 차를 찾기 위해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차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차가 있을 수 없었다. 월급으로 차를 유지할 수 없었다. 아, 그럼 왜 자신이 여기를 걷고 있는 걸까? 어디로 가려고 하는 걸까?

택시를 잡아야 했다.

지상으로 올라가 거리에 나왔을 때, 새벽 공기가 그의 얼굴을 쳤다. 강남의 새벽은 낮과 다르지 않았다. 불빛들이 여전히 켜져 있었다. 밤을 낮처럼 만드는 인공의 밝음. 그 밝음 속에서, 민준은 자신을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마치 거울 없이 자신의 얼굴을 보려고 하는 것처럼.

택시가 나타났다. 빨간색. 택시 기사는 졸고 있었다. 민준이 문을 열자, 그는 깜짝 놀라며 눈을 떴다.

“어디갈래요?”

택시 기사가 물었다. 서울 사투리. 거칠지만 따뜻한 목소리.

“신림동.”

민준이 말했다. 자신의 반지하 원룸이 있는 곳. 그곳으로 가야 했다. 왜냐하면 그곳이 자신의 집이었으니까. 유일한 자신의 공간.

택시는 움직였다. 강남의 밤 거리를 헤치며. 민준은 창밖을 봤다. 밤의 서울. 불빛의 서울. 자신이 4년간 살아온 서울. 하지만 낯선 서울이었다. 마치 처음 보는 도시처럼. 또는 죽은 후 보는 도시처럼.

휴대폰이 울렸다. 준호였다.

민준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대신 보이스메일로 남겨지기를 기다렸다. 몇 초 후, 문자가 왔다.

“민준이. 지금 뭐 해? 대표님과 만났어? 잘됐나?”

민준은 문자를 읽었지만 답장하지 않았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 준호에게 이수진이 무엇을 말했는지 전할 수 없었다. 특히 “구원의 욕구는 아주 위험해”라는 부분은. 그 말이 준호를 상처입힐 것을 알고 있었다. 또는 자신을 더욱 고립시킬 것을.

신림역에 도착했을 때는 새벽 1시 47분이었다. 민준은 택시비를 내고 내렸다. 지갑에 남은 돈은 3만 원 정도였다. 다음 달 월급까지 이것으로 버텨야 했다. 라면, 편의점 계란말이, 그리고 가끔의 커피. 그것이 자신의 식생활이었다.

원룸으로 가는 골목길은 어둠 속에 있었다. 거리등이 거의 없었다. 이곳은 강남이 아니었다. 학생들과 재수생들의 동네였다. 꿈을 가진 젊은이들의 동네. 또는 꿈을 잃은 젊은이들의 동네.

자신의 문을 열었을 때, 곰팡이 냄새가 나왔다. 천장의 곰팡이는 여전히 자랐다. 마치 생명을 가진 것처럼. 자신보다 더 생명력 있게. 민준은 침낭에 누웠다. 침대를 살 돈이 없었다. 침낭 위에 담요를 덮고 자는 것이 자신의 침실이었다.

휴대폰을 들었다. 우리의 문자가 또 왔다.

“민준이. 제발 연락 줄래. 나 진짜 걱정돼. 너 괜찮아?”

그는 우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새벽 2시가 넘은 시각에.

“여보세요?”

우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놀란 목소리였다. 마치 자신이 이미 잠들었다가 갑자기 깨어난 것처럼.

“내가 깼나?”

민준이 물었다.

“아니… 아니야, 괜찮아. 뭐야? 뭐가 있었어?”

우리의 목소리가 점점 또렷해졌다. 지금도 자신의 일을 챙기는 목소리. 자신을 걱정하는 목소리.

민준은 한 동안 말하지 않았다. 우리의 숨소리만 들렸다. 전화 너머에서. 그리고 자신의 숨소리. 자신의 옆에서. 거울처럼.

“이수진이 나한테… 뭔가를 말했어.”

민준이 마침내 말했다.

“뭔데? 좋은 말이었어? 악い말이었어?”

우리가 물었다. “악은” 대신 자신도 모르게 일본어가 나왔다. 지쳐있는 신호였다. 또는 자신도 불안하다는 신호.

“둘 다야. 동시에.”

민준이 대답했다.

“그럼… 그럼 말해 봐. 천천히.”

우리가 말했다.

민준은 이수진과의 대화 전부를 말했다. 자신이 평범한 배우라는 것. 자신이 이미 죽어있다는 것. 자신이 무언가를 찾고 있다는 것. 그리고… 준호에 대해. 준호의 “구원의 욕구”에 대해.

우리는 들었다. 아무 말 없이. 가끔 “응” 하는 신음 소리만 내면서.

모든 것을 말한 후, 민준은 침묵했다.

“민준이… 난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

우리가 마침내 말했다.

“우리도 모르겠어.”

민준이 대답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우리가 같이 카페에서 말한 게 있잖아. 너 기억해?”

우리가 물었다.

“뭔데?”

민준이 물었다.

“너는… 너는 배우가 되고 싶은 거야? 아니면…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은 거야?”

그 질문이 공중에 떠 있었다. 마치 이수진의 질문처럼. 하지만 다른 종류의 질문이었다. 이수진의 질문은 예리한 칼이었고, 우리의 질문은 따뜻한 손이었다. 하지만 둘 다 상처를 주었다.

“모르겠어. 나 정말… 모르겠어.”

민준이 말했다. 목소리가 갈라지고 있었다.

“너는… 내가 필요하지? 그래도?”

우리가 물었다. 그것은 질문이라기보다는 간청이었다.

민준은 우리의 카페에서의 모습을 생각했다. 우리가 그의 불안정한 감정들을 받아주던 모습. “넌 괜찮아”라고 말해주던 모습. 그리고 자신이 그 말을 얼마나 원했는지. 그리고 준호가 자신을 보호해주던 모습. 준호의 팔 안에서 자신이 얼마나 안전했는지.

“필요해. 넌… 넌 꼭 필요해.”

민준이 말했다.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마치 자신의 몸이 자신을 배반하는 것처럼.

“그럼… 그럼 넌 이제부터 뭘 해야 할까?”

우리가 물었다.

“모르겠어. 진짜… 정말 모르겠어.”

민준이 대답했다.

“나한테 물어봐.”

우리가 말했다.

“뭐?”

민준이 물었다.

“이제부터… 넌 나한테만 물어봐. 이수진이 뭐라고 하든, 준호가 뭐라고 하든, 넌 나한테만 물어봐. 알겠어? 나는… 나는 너를 놓지 않을 거야.”

그 말이 민준을 무너뜨렸다. 진짜로. 그의 몸이 침낭 안에서 떨렸다. 마치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자신을 움직이는 것처럼. 눈물이 계속 흘렀다.

“고마워. 진짜… 고마워.”

민준이 말했다. 목소리는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아니야. 나한테 고마워하지 마. 넌… 넌 나한테 필요한 사람이야. 내가 그런 거 아니라, 너는 정말로 내게 필요한 사람이야. 그래서… 그래서 넌 절대 나한테서 떨어지면 안 돼.”

민준은 그 말을 들었다. 또 다시. 그리고 또 다시. 전화를 끝낸 후에도, 그 말은 자신의 귀 안에 계속 울려 퍼지고 있었다.

새벽 3시가 되었을 때, 민준은 우리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우리가 물었다. 아직도 깨어있었다.

“내일… 촬영장에 같이 와 줄래?”

민준이 물었다.

“촬영장?”

우리가 되물었다.

“응. 이수진이 내일부터 촬영을 시작한다고 했어. 나는… 혼자는 못 갈 것 같아.”

침묵이 흘렀다. 몇 초. 긴 침묵.

“응. 나 갈게. 어디야?”

민준은 아직 구체적인 촬영 정보를 받지 못했다. 이수진이 메일로 보내주겠다고 했지만, 아직 오지 않았다. 아니, 또는 왔지만 자신이 확인하지 않았다. 휴대폰의 메일함을 열었다.

50개의 미읽 메일 중에, 이수진의 메일이 있었다. 제목: “제71차 넷플릭스 드라마 – 촬영 일정 및 기본 정보”

민준은 메일을 열었다.

촬영 장소: 강변 스튜디오 (강남구 강변로 135)

촬영 일시: 2024년 1월 15일 오전 8시

배역: 이동수 (아버지, 50대 중반)

장면: 1화 오프닝 – 아버지의 죽음

민준은 그 정보를 읽고 또 읽었다. 아버지의 죽음. 자신의 배역은 아버지의 죽음을 연기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아버지의 나이는 50대 중반. 자신의 아버지가 죽을 나이. 자신의 아버지가 자살한 나이.

그것이 우연일까? 아니면 이수진의 계획일까?

“민준이? 들려?”

우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응. 들려.”

민준이 말했다.

“어디야? 촬영장이 어디야?”

민준은 주소를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배역을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가 죽을 나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침묵했다. 긴 침묵.

“내가… 내가 맞게 들었어? 아버지의… 죽음을 연기한다고?”

우리가 물었다.

“응.”

“아… 민준이… 그건…”

“알아. 나도 알아. 하지만 그게 내가 해야 할 일인 것 같아. 그게… 그게 내가 이 자리에 온 이유인 것 같아.”

그 말을 하는 순간, 민준은 뭔가를 깨달았다. 이수진이 자신을 선택한 이유. 자신이 이미 죽어있다는 이유. 자신이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이유. 그리고 그 무언가가 자신의 아버지라는 이유.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었다. 거미줄처럼. 마치 처음부터 자신이 이 역할을 하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넌… 괜찮아?”

우리가 물었다.

“모르겠어. 하지만 해야 할 것 같아.”

민준이 대답했다.

새벽 4시. 민준은 침낭 안에서 천장의 곰팡이를 바라봤다. 그것도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자라고 있었다. 자신처럼. 자신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죽음을 연기하면서, 동시에 살아있으면서. 그것이 곰팡이의 삶이었고, 그것이 자신의 삶이었다.

전화 너머에서 우리의 숨소리가 들렸다. 여전히 깨어있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놓지 않기 위해. 마치 자신이 우리를 지켜주는 것처럼. 거울처럼. 쌍을 이루며.

“나는… 나는 아직 살아있는 것 같아.”

민준이 말했다.

“응. 넌 살아있어. 내가 보고 있으니까.”

우리가 대답했다.

그리고 그 순간, 새벽의 어둠 속에서, 민준은 자신이 마침내 누군가의 거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을 비추는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를 비추는. 우리를 비추는. 우리가 자신을 비추듯이.

새벽 5시가 되었을 때, 민준은 일어났다. 침낭에서 나왔다. 곰팡이 천장을 등지고. 그리고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의 자신은 여전히 창백했다. 여전히 죽어보였다. 하지만 거울 속의 눈은… 거울 속의 눈은 뭔가를 찾고 있었다.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안녕, 민준.”

자신이 거울 속의 자신에게 말했다. 첫 번째로.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면서.

그리고 그 순간, 거울 속의 자신이 미소를 지었다. 억지 웃음이 아닌. 진짜 웃음이. 처음으로.


현재 시각: 새벽 5시 47분

촬영 시작까지: 2시간 13분

민준은 샤워를 했다. 반지하의 냉수로. 몸이 떨렸지만, 깨어났다. 진짜로. 그리고 옷을 입었다. 가장 깔끔한 검은 셔츠를 입었다. 그것은 자신의 유일한 “좋은” 옷이었다. 오디션을 볼 때만 입던 옷.

휴대폰을 들었다. 우리의 문자가 있었다.

“넌 준비됐어?”

민준은 답장했다.

“아직 모르겠어. 하지만 가 봐야 할 것 같아.”

그리고 다시 한 번 더 타이핑했다.

“우리가 함께면, 난 할 수 있을 것 같아.”


권의 위치: 하강 — 절정 직후의 선택, 새로운 방향 설정

이 화는 민준이 이수진의 진실을 받아들이고, 우리와의 관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준호의 “구원의 욕구”라는 말이 던져진 후, 민준은 우리에게만 의존하기로 선택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자신이 맡게 된 역할 — “아버지의 죽음” — 이 자신의 트라우마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것이 3권의 절정을 향한 마지막 강하강 장면이 되며, 다음 화에서 촬영장에서의 직접적인 대면이 시작될 것을 예고한다.

# 제13화: 거울 속의 얼굴

## 1부: 곰팡이와 자기 기만

새벽 4시 12분.

민준은 천장을 바라봤다. 정확히는 천장의 곰팡이를 바라봤다. 반지하 방의 한쪽 구석에 피어난 검은색 반점들. 석 달 전만 해도 그것을 곰팡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때라고 생각했다. 손톱으로 긁으면 떨어질 것 같은, 그런 때.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것은 더 진해졌고, 더 퍼졌고, 더 살아있어졌다.

*살아있다.*

이 단어가 자신의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곰팡이가 살아있다는 것. 그것도 자신처럼. 자신도 알지 못하는 순간에, 자신의 방 위에서, 자신의 천장 위에서.

곰팡이는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그것도 자라고 있었다. 아주 천천히, 아주 은밀하게, 마치 자신이 깨어있는 동안 자신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것처럼. 하지만 밤이 되면, 어둠이 깔리면, 그것은 자신의 역할을 해냈다. 자신의 삶을 살았다. 자신처럼.

민준은 다시 생각해봤다. 곰팡이의 삶이 뭘까. 죽음을 연기하면서, 동시에 살아있으면서. 검은 반점처럼 보이면서, 그 안에서는 수백만 개의 포자가 춤을 추면서.

*그게 내 삶이구나.*

이 깨달음이 가슴을 내려쳤다. 깨끗하고, 날카로운 통증처럼. 아니, 통증이 아니었다. 인식이었다. 자신을 인식하는 것. 자신이 실제로 무엇인지를.

죽어 보이지만 살아있는 것. 움직이지 않지만 성장하는 것. 아무도 신경 쓰지 않지만, 이 방 어딘가에서 계속 숨을 쉬고 있는 것.

전화가 울렸다.

화면에는 ‘우리’라고만 표기되어 있었다. 이름이 없었다. 단지 ‘우리’. 마치 둘이 하나인 것처럼. 또는 하나가 둘인 것처럼.

민준은 받았다. 말을 먼저 꺼내지 않았다. 다만 호흡음을 전했다. 새벽 4시의 고요한 방에서, 자신의 숨이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갔다.

“여기 있어?”

우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가 아니라, 존재가 들렸다. 마치 이 전화선이 생명줄인 것처럼.

“응. 여기 있어.”

민준이 대답했다. 목소리가 낯설었다. 자신의 목소리 같지 않았다. 더 깊었고, 더 침착했고, 더 절망적이었다.

“곰팡이를 봤어?”

우리가 물었다.

“응.”

“어때?”

민준은 다시 천장을 봤다. 검은 반점들이 어둠 속에서 더 선명해 보였다. 마치 자신을 보고 있는 눈처럼.

“살아있어.”

“응. 넌?”

이 질문이 민준의 가슴을 멈추게 했다. 자신은? 자신은 뭐지? 살아있는가? 아니면 곰팡이처럼 죽어 보이면서 살아있는 것인가?

“나는… 나는 아직 살아있는 것 같아.”

그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응. 넌 살아있어. 내가 보고 있으니까.”

우리가 대답했다. 그 목소리에는 확신이 있었다. 마치 그것이 사실이 되게 하는 힘이 있는 것처럼.

민준은 눈을 감았다. 전화선 너머의 존재를 느끼며. 우리의 숨소리가 들렸다. 여전히 깨어있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놓지 않기 위해. 아니, 자신이 우리를 지켜주는 것처럼. 거울처럼. 쌍을 이루며.

“우리 계속 이렇게 있을 거야?”

민준이 물었다.

“응. 계속 여기 있을 거야. 너를 위해.”

“그게… 맞아?”

“뭐가?”

“내가 너를 지켜야 하는 거 아니야? 너를 구원해야 하는 거 아니야?”

전화선 너머에서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 속에는 많은 것들이 있었다. 슬픔, 분노, 그리고 무언가 다른 것. 뭔가 훨씬 깊은 것.

“민준. 우리가 상처를 준 건 알아. 하지만…”

“근데 넌 내가 필요했어.”

민준이 끝을 맺었다. 이것이 사실이었다. 우리가 자신을 필요로 했고, 자신도 우리를 필요로 했다. 그것이 선하거나 악하거나 옳거나 그렇거나 하지 않았다. 그냥 필요했다. 곰팡이가 습도를 필요로 하는 것처럼.

“응. 나 너 필요해. 그게 미안해.”

“미안하지 않아도 돼.”

민준이 말했다. 그리고 그 순간, 새벽의 어둠 속에서, 자신이 마침내 누군가의 거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을 비추는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를 비추는 것. 우리를 비추는 것. 우리가 자신을 비추듯이.

“민준?”

“응.”

“다시… 다시 살아봐. 내 앞에서. 내가 널 봐 줄 테니까.”

민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호흡음만 전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 2부: 새벽의 깨어남

새벽 5시가 되었을 때, 민준은 일어났다.

침낭에서 나왔다. 곰팡이 천장을 등지고. 침낭 안의 따뜻함을 떠나 반지하의 차가운 공기로 나왔다. 몸이 떨렸다. 하지만 그 떨림이 삶의 증거였다.

거울 앞에 섰다.

자신의 방의 유일한 거울. 손가락 자국으로 뒤범벅 된 작은 거울. 그 안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봤다.

여전히 창백했다. 여전히 죽어 보였다. 색이 없었고, 생기가 없었고, 마치 누군가 그려 놓은 스케치 같았다. 하지만 거울 속의 눈은… 거울 속의 눈은 뭔가를 찾고 있었다.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자신을 찾고 있었다.

민준은 입을 열었다. 거울 속의 자신에게 말했다. 처음으로. 제대로.

“안녕, 민준.”

자신의 이름이 자신의 입에서 나왔을 때, 뭔가가 부러졌다. 아니, 연결되었다. 자신과 거울 속의 자신이. 현실과 반사가. 죽음과 삶이.

그리고 그 순간, 거울 속의 자신이 미소를 지었다.

억지 웃음이 아니었다. 예능인의 웃음도 아니었다. 진짜 웃음이었다. 처음으로. 그 미소가 거울을 통해 현실로 흘러나왔다.

## 3부: 준비

새벽 5시 47분.

시간이 남아있었다. 2시간 13분. 촬영 시작까지.

민준은 샤워를 했다. 반지하의 냉수로. 수도꼭지를 틀었을 때, 물이 나오기까지 몇 초가 걸렸다. 그 몇 초 동안 자신은 파이프 속 어딘가에 있었다. 어둠 속에 있었다. 그러다가 물이 터져 나왔을 때, 자신은 깨어났다.

물이 얼었다. 진짜 얼음처럼 차가웠다. 몸이 떨렸다. 심장이 빨라졌다. 폐가 경련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것이 삶이었다. 통증과 저항과 계속해서 깨어있으려는 것.

찬물이 얼굴을 때렸다. 귀를 때렸다. 목을 때렸다. 민준은 입을 벌렸다. 물을 마시고, 뱉고, 다시 마셨다. 마치 자신이 물이 되기 위해. 곰팡이가 습도가 되기 위해.

수건으로 닦았다. 거울을 다시 봤다. 물에 젖은 얼굴. 떨리는 입술. 이제 좀 덜 죽어 보였다. 아직도 창백했지만, 뭔가 안에서 빛이 나오는 것 같았다.

옷을 입었다. 가장 깔끔한 검은 셔츠를 입었다. 그것은 자신의 유일한 “좋은” 옷이었다. 오디션을 볼 때만 입던 옷. 그 셔츠를 입었을 때, 자신이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을 느꼈다. 배우 민준. 우리의 거울. 누군가의 광선.

휴대폰을 들었다.

화면에는 메시지가 있었다. 우리로부터.

*“넌 준비됐어?”*

민준은 한참을 생각했다. 준비가 뭐지? 이수진을 다시 봐야 하고, 그 여자와 같은 세트에 있어야 하고, 죽음을 연기해야 하는 것. 자신의 아버지의 죽음을 연기하는 것. 그걸 준비할 수 있나?

하지만 자신은 입력했다.

*“아직 모르겠어. 하지만 가 봐야 할 것 같아.”*

그리고 다시 한 번 더 타이핑했다. 손가락이 조금 떨렸지만, 확실했다.

*“우리가 함께면, 난 할 수 있을 것 같아.”*

전송.

메시지가 날아갔다. 새벽의 무선을 통해. 저 멀리 어딘가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누군가에게.

## 4부: 거울과 반사

민준은 다시 한 번 천장을 봤다.

곰팡이가 그대로 있었다. 밤새 조금 더 자란 것 같았다. 아니, 그냥 그렇게 보일 뿐이었다. 자신의 시선이 달라졌기 때문에. 자신의 이해가 달라졌기 때문에.

곰팡이와 자신.

둘 다 죽어 보인다. 둘 다 살아있다. 둘 다 누군가의 눈에 띄기 전까지 자신의 할 일을 한다.

그리고 지금, 자신을 보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 우리가. 전화선 너머에서. 계속 봐 줄 거라고 약속하면서.

*그럼 난 이제 거울이 될 수 있다.*

민준은 옷을 다시 정렬했다. 검은 셔츠의 주름을 펴며. 이것이 자신의 첫 번째 영화였다. 이것이 자신의 첫 번째 죽음이었다. 아니, 자신의 죽음을 연기하는 것이었다.

창밖을 봤다. 새벽은 아직 검었다. 하지만 그 검음 속에서 무언가가 준비되고 있었다. 햇빛이. 새로운 날이. 새로운 삶이.

그리고 자신도 준비되고 있었다.

거울 앞에서 한 번 더.

“안녕, 민준.”

자신이 거울 속의 자신에게 말했다.

“안녕, 너.”

거울이 대답했다. 아니, 자신이 거울을 통해 자신에게 대답했다.

그리고 그들은 함께 웃었다. 처음으로. 진짜로.

**현재 시각: 새벽 6시 22분**

**촬영 시작까지: 1시간 38분**

민준은 반지하를 떠났다. 검은 셔츠를 입고, 거울 속에서 본 자신의 얼굴을 마음에 담고.

계단을 올라갔다. 하나, 둘, 셋…

위로. 자신의 천장 위로. 곰팡이 위로. 죽음 위로.

햇빛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은 아니지만, 곧. 곧 나올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우리의 시선으로, 우리의 사랑으로, 우리의 거울로.

첫 번째 촬영. 첫 번째 죽음. 첫 번째 삶.

그것이 모두 같은 것이었다.

## 후기: 권의 위치

**하강 — 절정 직후의 선택, 새로운 방향 설정**

이 화는 민준이 이수진의 진실을 받아들이고, 우리와의 관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준호의 “구원의 욕구”라는 말이 던져진 후, 민준은 자신이 누군가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자신도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대신, 그는 우리와 거울처럼 존재하기로 선택한다.

곰팡이는 이 관계의 은유다. 죽어 보이지만 살아있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지만 계속 자라고, 어둠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하는 것. 민준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마지막에 자신이 맡게 된 역할 — “아버지의 죽음” — 이 자신의 트라우마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것은 3권의 절정을 향한 마지막 강하강 장면이 되며, 다음 화에서 촬영장에서의 직접적인 대면이 시작될 것을 예고한다.

민준은 이제 거울이 된다. 더 이상 자신만을 비추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비추는. 그리고 그 거울 속에서, 자신이 처음으로 살아있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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