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제2막 – 제69화: 사무실의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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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69화: 사무실의 침묵

이수진의 사무실은 민준이 기억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넓은 공간. 바닥에서 천장까지 닿는 유리창. 강남의 야경이 그림처럼 배경으로 펼쳐져 있었다. 밤 11시 57분. 시간을 읽을 수 있었다. 빌딩 옥상의 형광등 때문에. 그리고 이수진의 손목시계 때문에. 그녀는 항상 정확했다. 5분이라고 했으니, 5분이었을 것이다.

민준은 복도에서 10초를 더 서 있었다. 문을 열기 전에. 자신의 호흡을 정리하려고. 하지만 호흡은 정리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가빠졌다. 심장이 자신의 갈비뼈를 내부에서 두드리고 있었다. 타닥타닥. 우리의 손가락처럼. 절망의 리듬.

문을 열었다.

이수진은 책상 뒤에 앉아 있었다. 화면을 보고 있었다. 무언가를 읽고 있었다. 민준이 들어온 것을 눈으로 감지했을 것이지만, 그녀는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5초. 10초. 15초. 침묵이 쌓였다. 그것은 방 안에 먼지처럼 떠다니기 시작했다. 호흡할 때마다 들어오는 침묵.

“앉아.”

이수진이 말했다. 여전히 화면을 보면서. 그녀의 손가락이 터치패드 위에서 움직였다. 클릭. 클릭. 뭔가를 선택하거나 삭제하는 소리였다.

민준은 앉았다. 그녀의 책상 앞, 두 개의 의자 중 하나에. 그 의자는 낮았다. 의도적으로. 앉은 사람이 이수진을 올려다봐야 하도록 설계된 의자였다. 권력의 기하학. 건축학. 심리학.

이수진이 마침내 화면에서 눈을 돌렸다. 그녀의 눈은 검었다. 매우 검었다. 마치 그 안에 빛이 들어가면 반사되지 않고 흡수되는 것처럼. 52세. 그 나이는 그녀의 얼굴에 새겨져 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권력이 얼굴을 젊게 만들고 있었다. 권력은 여성에게 특별한 화장품이었다.

“오늘 뭔가 있었나?”

이수진이 물었다. 질문이라기보다는 선포였다. 마치 자신이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 민준의 입에서 확인을 받으려고 하는 톤이었다.

“특별한 건 없습니다.”

민준이 대답했다.

이수진의 입 끝이 살짝 올라갔다. 웃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웃음의 형태를 한 뭔가 다른 것이었다. 마치 누군가가 웃음의 껍질만 뒤집어쓴 것처럼.

“넷플릭스 촬영 일정을 받았나?”

“아직 구체적인 일정은…”

“넷플릭스 담당 프로듀서가 너한테 연락했나?”

이수진의 질문이 더 빨라졌다. 마치 자신이 민준을 어디론가 몰고 있는 것처럼. 마치 자신이 이미 그 목적지를 알고 있으면서.

“아니요.”

민준이 대답했다.

이수진이 일어났다. 천천히. 마치 자신의 몸이 무겁다는 것을 모두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처럼. 그녀는 창으로 걸어갔다. 강남의 야경을 내려다봤다. 그 거리에는 수만 명이 살고 있었다. 각자의 꿈을 가지고. 각자의 절망을 가지고.

“너는 내가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 알고 있나?”

이수진이 창을 통해 말했다. 그녀의 얼굴이 유리에 반사되었다. 창밖의 야경 위에 중첩된 얼굴.

“넷플릭스 드라마를 잘 연기하는 것을 기대하신다고 생각합니다.”

민준이 대답했다.

이수진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번엔 진짜 웃음이었다. 목에서 나오는 웃음. 그것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5초. 그리고 멈췄다.

“너는 정말 순진하구나.”

그녀가 말했다. 여전히 창을 보면서.

“내가 기대하는 건 너의 연기가 아니야. 나는 이미 너의 연기 수준을 안다. 넷플릭스도 알고 있고. 모두가 알고 있어. 너는 평범한 배우야. 아주 평범한.”

침묵. 그 단어들이 민준의 귀에 박혔다. 평범한. 그것은 4년 전부터 들어온 말이었다. 오디션에서. 거절 메시지에서. 준호의 침묵 속에서. 하지만 이수진의 입에서 나올 때는 다르게 들렸다. 그것은 선택이었다. 평가가 아니라, 선택. 마치 자신이 의도적으로 평범한 배우를 선택했다는 뜻인 것처럼.

“그렇다면 저를 왜 뽑으셨습니까?”

민준이 물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처음으로 떨렸다.

이수진이 창에서 돌아섰다. 그녀의 얼굴이 이제 다시 선명해졌다. 조명 아래의 얼굴. 그리고 그 얼굴에는 뭔가가 있었다. 민준은 그것을 읽을 수 없었다. 감정이 있었다. 하지만 어떤 감정인지는 불명확했다. 연민인가? 혐오인가? 흥미인가? 아니면 다른 것인가?

“너는 무언가를 찾고 있지 않니?”

이수진이 물었다. 질문이 아니라, 진술이었다.

“뭘요?”

“구원.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기를. 누군가에게 보여지기를. 그게 너를 움직이는 거야. 그게 너를 여기까지 끌어온 거고. 그리고 그게…”

이수진이 걸어왔다. 책상 앞에 서서. 민준을 내려다봤다.

“…그게 내가 너를 필요로 하는 이유야.”

민준의 호흡이 멈췄다.

“이 넷플릭스 드라마는 단순한 드라마가 아니야. 대본을 읽었니?”

“아직…”

“아직 읽지 않았구나. 좋아. 그럼 내가 말해줄게. 그 드라마는 어떤 시스템의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이야기야. 아주 조용히. 아주 자연스럽게. 그리고 아무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는 이야기야. 너는 그 피해자이자 가해자 역할을 할 거야. 평범한 얼굴로. 평범한 목소리로. 평범한 연기로. 그래서 아무도 널 의심하지 않을 거야. 아무도 널 보지 않을 거야.”

민준이 일어났다. 의식적으로가 아니라, 자신의 신체가 거부하는 것처럼. 마치 자신의 몸이 그 말을 더 이상 앉아서 들을 수 없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처럼.

“저는…”

“너는 뭐?”

이수진이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호기심이 있었다. 진정한 호기심.

“저는 그런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민준이 말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할 수 있었다. 그는 이미 해왔다. 카페에서. 준호 앞에서. 우리 앞에서. 자신을 포장했다. 자신의 감정을 숨겼다. 자신을 평범하게 만들었다. 그것이 그의 능력이었다. 그것이 그의 저주였다.

“너는 할 수 있어.”

이수진이 말했다. 확신을 가지고.

“내가 그걸 아는 이유는, 너는 이미 하고 있었으니까. 지난 4년간. 너는 자신을 감춰왔어. 너는 자신을 평범하게 만들어왔어. 그래서 아무도 너를 본 적이 없어. 그것이 너의 강점이고, 그것이 내가 너를 원하는 이유야.”

민준이 책상을 짚었다. 손이 떨렸다. 매우 심하게.

“그 역할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요?”

민준이 물었다. 그것은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다.

이수진이 조용히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은 매우 짧은 웃음이었다. 1초. 그 1초 안에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위협. 연민. 흥미. 그리고 뭔가 더 깊은 것. 마치 이수진이 이미 민준의 미래를 알고 있으면서, 그것을 그에게 알려주지 않기로 선택한 것처럼.

“너는 아직도 모르니? 너는 이미 선택의 여지가 없어. 넷플릭스 계약도 이미 너의 이름으로 체결되었고, 대본도 이미 배포되었고, 촬영도 다음 주에 시작돼. 너는 이미 여기에 갇혀 있어. 지난 4년 동안과 똑같이.”

민준의 세계가 흔들렸다. 마치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하지만 흔들림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부에서 왔다. 자신의 중심에서.

“대표님, 저는…”

“넷플릭스 담당자와 내일 오전 10시에 만날 거야. 강남역 근처 카페에서. 그때 대본을 받고, 촬영 일정을 받아. 그리고 다음 주 월요일부터 촬영을 시작해. 알겠니?”

이수진이 말했다. 더 이상 질문의 여지가 없는 톤으로.

“네.”

민준이 대답했다.

“좋아.”

이수진이 책상으로 돌아갔다. 화면을 다시 켰다. 마치 민준이 이미 없는 사람인 것처럼.

“그리고 민준이.”

이수진이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으면서 말했다.

“응?”

“너는 누구와도 이 대본에 대해 이야기하지 말아. 넷플릭스의 비밀유지 조항이 있거든. 위반하면 소송이 들어와. 너는 감당할 수 없는 액수의 소송이 들어올 거야. 알겠니?”

“네.”

민준이 대답했다.

“그리고 너의 친구들한테도 알려주지 말아. 특히 준호한테. 그 사람은 너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 뿐이야. 너는 혼자가 되어야 해. 완전히 혼자.”

이수진의 마지막 말이 민준의 귀를 관통했다. 혼자. 그 단어는 마치 주문처럼 들렸다. 저주의 주문. 마치 이수진이 자신을 마술로 고립시키려고 하는 것처럼. 아니, 그것은 마술이 아니었다. 그것은 현실이었다. 그것은 이미 일어나고 있었다.

민준이 사무실을 나갔다. 어떻게 나갔는지는 기억하지 못했다. 단지 자신이 복도에 서 있다는 것만 알았다. 그리고 뒤에서 이수진의 사무실 문이 닫혔다. 소리 없이. 마치 자신이 거기 없었던 것처럼.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호출 버튼을 눌렀다. 버튼은 빨갛게 켜졌다. 누군가 이미 버튼을 눌렀을 수도 있었다. 아니면 자신이 눌렀을 수도 있었다. 상관없었다.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올 것이었다. 또는 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상관없었다.

민준의 휴대폰이 울렸다. 진동이 아니라, 울림. 벨소리. 누군가가 전화를 하고 있었다.

화면을 보았다.

“준호”

이름이 떴다.

민준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진동만 느끼면서 서 있었다. 휴대폰이 떨렸다. 마치 자신의 손 안에서 자신의 심장이 뛰고 있는 것처럼. 호출이 끝났다. 한 번의 호출. 그리고 다시 울렸다. 즉시. 같은 이름. “준호”. 같은 떨림.

이번엔 민준이 버튼을 누르려고 했다. 하지만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신경계가 자신의 의지를 거부하고 있는 것처럼. 그의 손은 휴대폰을 들었지만, 수신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단지 화면을 보기만 했다.

“준호”

그 이름을 보면서, 민준은 병원 침대 위의 젊은 남자를 떠올렸다. 호흡기. 의료용 밴드. 그리고 그 눈. 이미 떠난 눈.

전화가 끝났다.

그리고 바로 다시 울렸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문이 열렸다. 비어 있었다. 민준은 엘리베이터에 들어갔다. 문이 닫혔다. 그리고 그는 내려가고 있었다. 계속 내려가고 있었다. 지하 1층. 지하 2층. 지하 3층. 더스타 엔터테인먼트의 지하 연습실이 있는 곳.

휴대폰은 계속 울리고 있었다. 진동 모드로 바꾸지 않았다. 벨소리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메아리쳤다.

“준호. 준호. 준호.”

이름이 반복되었다.

민준은 음소거 버튼을 눌렀다.

침묵이 돌아왔다. 하지만 그 침묵은 평화롭지 않았다. 오히려 더 무거웠다. 마치 자신이 뭔가 중요한 것을 거절했을 때의 그런 침묵.

엘리베이터가 지하 3층에 도착했다.

문이 열렸다.

지하 연습실은 비어 있었다. 밤 12시 17분. 아무도 없을 시간이었다. 단지 거울과 바닥과 스프링쿨러와 냄새만 있었다. 습한 냄새. 땀의 냄새. 그리고 뭔가 더 깊은 냄새. 절망의 냄새. 마치 그 방이 수년간 누군가의 절망을 흡수해온 것처럼.

민준이 거울 앞에 섰다.

그의 얼굴이 반사되었다. 평범한 얼굴. 밝은 갈색 눈. 검은 머리. 그것이 그 자신이었다. 그것이 이수진이 원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네 명의 배우가 경쟁하는 넷플릭스 드라마에서 자신을 선택하게 한 것이었다. 자신의 평범함. 자신의 보이지 않음. 자신의 부재.

거울 앞에 선 채로, 민준은 자신의 얼굴을 들어올렸다.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의 얼굴인 것처럼 관찰했다.

“이게… 나야?”

그가 중얼거렸다.

거울은 대답하지 않았다.

민준의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침묵을 해제했나? 아니었다. 다른 전화였다. 화면을 보았다.

“엄마”

엄마로부터의 통화였다.

이번엔 민준이 응답했다. 거울 앞에 서 있으면서.

“여보세요?”

“민준아, 넌 뭐 해? 왜 전화를 안 받니?”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걱정이 들렸다. 하지만 민준은 그 걱정이 자신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존재가 엄마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괜찮습니다. 엄마.”

민준이 말했다.

“넌 항상 괜찮다고 말해. 넌 정말 괜찮니? 진짜로?”

엄마가 물었다.

민준은 거울 속의 자신을 봤다. 그 평범한 얼굴. 그 보이지 않는 배우. 그 갇힌 사람.

“네, 엄마. 정말 괜찮습니다.”

그가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거울 속에서, 자신의 얼굴이 미소를 지었다. 완벽한 미소. 완벽하게 거짓된 미소. 마치 연기를 하는 것처럼.


# 벨소리

다시 울렸다.

그 소리는 마치 자신의 가슴을 직접 파고드는 것 같았다. 민준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손가락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휴대폰의 진동이 주머니 속에서 계속되고 있었다. 준호. 준호. 준호. 이름이 반복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아니, 실제로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음소거 버튼을 누르지 않은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왜 이렇게 모르쇠를 하고 있어.”

입 밖으로 나온 자신의 목소리가 낡은 로비에서 이상하게 들렸다. 더스타 엔터테인먼트 건물의 로비는 밤 시간이 되면 으스스했다. 24시간 경비가 있긴 했지만, 밤 12시를 넘긴 시간에는 거의 아무도 없었다. 민준 혼자 남겨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세상 전체에서 혼자인 것 같은 기분.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현대식 스테인리스 문이 천천히 열렸다. 내부는 텅 비어 있었다. 미러 스티커로 장식된 벽이 민준의 모습을 여러 각도에서 비춰냈다. 그는 한 명의 자신이 아니라 여러 명의 자신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어느 것이 진짜 자신일까? 어느 것이 거짓일까?

민준이 엘리베이터에 들어갔다.

차가운 금속 바닥이 구두를 통해 느껴졌다. 버튼 패널 앞에 서서 ‘지하 3층’을 눌렀다. 손가락이 버튼에 닿는 순간, 거기에 새겨진 수많은 손가락자국들이 눈에 들어왔다. 몇 년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버튼을 눌렀을까? 몇 명이 자신처럼 불안해하면서 누눌렀을까?

문이 닫혔다.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천히 내려가고 있었다. 계속 내려가고 있었다. 1층. 지하 1층. 지하 2층. 지하 3층. 더스타 엔터테인먼트의 지하 연습실이 있는 곳. 그 어둡고 습하고, 꿈과 절망이 섞여 있는 공간.

엘리베이터 벽에 붙은 조명이 깜빡였다. 마치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았다. 경고하는 것 같았다. ‘돌아가. 아직도 돌아갈 수 있어.’

휴대폰은 계속 울리고 있었다.

진동 모드로 바꾸지 않았다. 바꾸지 않았다는 것을 의식적으로 깨달았다. 그것은 무의식적인 결정이 아니었다. 자신이 전화를 받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그 의지마저도 약했다. 약한 의지가 만든 벨소리. 벨소리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메아리쳤다. 금속의 벽들이 그 소리를 증폭시켰다. 마치 자신의 죄책감을 증폭시키는 것처럼.

“준호. 준호. 준호.”

이름이 반복되었다.

그 이름을 들을 때마다, 민준의 가슴 어딘가가 철렁 내려앉았다. 준호는 자신과 같은 시기에 더스타에 들어온 트레이니였다. 밝은 성격에 춤을 정말 잘했다. 노래도 좋았다. 자신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왜 자신이 선택되었을까? 왜 자신이 넷플릭스 드라마 역할을 따냈을까?

*그건… 다른 이유 때문이겠지.*

그 생각은 민준의 뇌에서 살짝 옆으로 물러났다. 지금은 생각하고 싶지 않은 생각이었다.

휴대폰 화면이 밝아졌다. 준호의 얼굴이 표시되었다. 프로필 사진. 밝은 미소. 그것은 자신이 알던 준호의 모습이었다. 그 미소는 얼마나 오래되었을까? 그 미소는 이제 존재할까?

민준은 음소거 버튼을 눌렀다.

버튼을 누르는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마치 자신이 누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손이 자신을 배신하는 것 같았다. 화면이 검어졌다. 전화는 끊겼다. 하지만 끊어진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오직 미루어진 것 같았다. 언젠가는 받아야 할 전화. 언젠가는 마주해야 할 목소리.

침묵이 돌아왔다.

하지만 그 침묵은 평화롭지 않았다. 오히려 더 무거웠다. 더 짓누르는 것 같았다. 마치 자신이 뭔가 중요한 것을 거절했을 때의 그런 침묵. 누군가의 손을 놓쳤을 때의 침묵. 누군가의 목소리를 외면했을 때의 침묵.

엘리베이터가 지하 3층에 도착했다는 신호음이 울렸다.

낮은 음의 신호음. 음악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그것. 하지만 그것이 가장 명확한 신호였다. 도착했다.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다. 더 이상 도망칠 수 없다.

문이 열렸다.

천천히 열렸다. 마치 무언가를 드러내기를 꺼리는 것처럼.

지하 연습실은 비어 있었다.

밤 12시 17분. 아무도 없을 시간이었다. 다른 트레이니들도 모두 귀가했을 시간이었다. 혹은 어딘가 다른 곳으로 향했을 시간이었다. 단지 거울과 바닥과 스프링쿨러와 냄새만 있었다. 습한 냄새. 장시간 닫혀있는 공간의 냄새. 땀의 냄새. 수많은 사람들의 꿈이 흘린 땀의 냄새. 그리고 뭔가 더 깊은 냄새. 절망의 냄새. 마치 그 방이 수년간 누군가의 절망을 흡수해온 것처럼.

민준의 코로 들어오는 그 냄새는 낡은 것이었다. 익숙한 것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5년을 보냈다. 5년 동안 매일 이 냄새를 맡으며 거울 앞에 섰다. 춤을 배우고, 노래를 배우고, 자신을 속이는 법을 배웠다.

“여기 왔네.”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자신의 목소리가 텅 빈 방에서 이상하게 울렸다. 마치 다른 사람의 목소리인 것처럼.

민준이 거울 앞에 섰다.

벽 전체가 거울이었다. 거울 속에는 무한히 많은 자신의 모습이 반복되었다. 앞쪽의 자신. 옆쪽의 자신. 뒤쪽의 자신. 어느 것이 진짜 자신일까? 거울이 보여주는 모습일까? 아니면 거울 뒤에 있는 진짜 자신일까?

거울 속에 비친 그의 얼굴을 관찰했다.

평범한 얼굴. 밝은 갈색 눈. 검은 머리. 특별한 특징 없는 얼굴. 그것이 그 자신이었다. 그것이 이수진 프로듀서가 원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네 명의 배우가 경쟁하는 넷플릭스 드라마에서 자신을 선택하게 한 것이었다. 자신의 평범함. 자신의 보이지 않음. 자신의 부재.

그 순간, 거울 속의 자신과 실제의 자신 사이에 뭔가 차이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거울은 거짓을 말할 수 있다. 거울은 조명이 좋으면 누구나 예쁘게 만든다. 거울은 존재하지 않는 것도 존재하게 만든다.

거울 앞에 선 채로, 민준은 자신의 얼굴을 들어올렸다.

턱을 들었다.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의 얼굴인 것처럼 관찰했다. 각도를 바꿔가며 살펴봤다. 왼쪽 프로필. 정면. 오른쪽 프로필. 카메라에 잘 나오는 각도는 어디일까? 방송국에서 가장 선호하는 표정은 무엇일까?

“이게… 나야?”

그가 중얼거렸다. 목소리가 떨렸다.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자신에게 물었다. “이게 정말 나야?” 거울은 대답하지 않았다. 거울은 절대 대답하지 않는다. 거울은 오직 비추기만 한다.

그의 손이 거울에 닿았다.

냉기가 손가락 끝에 전해졌다. 유리의 차가움. 부드러우면서도 날카로운 물질. 거울은 자신을 비춰주지만 동시에 자신을 막는다. 만질 수 없게 한다.

“준호한테… 뭐라고 말해야 할까.”

혼잣말이 자신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통제할 수 없는 혼잣말. 민준은 자신의 입을 다물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 말은 이미 공중에 떠 있었다. 연습실 전체에 울려 퍼졌다. 천장에 부딪혀 다시 돌아왔다.

“준호한테… 뭐라고…”

자신의 목소리가 자신을 고소하는 것 같았다.

민준의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손가락이 거울에서 떨어졌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화면을 보았다.

“엄마”

엄마로부터의 통화였다.

밤 12시 20분. 엄마는 왜 이 시간에 전화를 했을까? 그것이 아버지의 일 때문일까? 아니면 자신이 답장을 하지 않은 것이 때문일까? 아니면 어머니의 모성직감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감지했기 때문일까?

이번엔 민준이 응답했다.

거울 앞에 서 있으면서. 거울 속의 자신이 보는 가운데. 거울 속의 자신이 판단하는 가운데.

“여보세요?”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평온한 목소리. 아무것도 없는 목소리. 연기하는 목소리.

“민준아, 넌 뭐 해? 왜 전화를 안 받니?”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걱정이 들렸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종류의 걱정인지는 불명확했다. 자신의 아들이 괜찮은지에 대한 걱정일까? 아니면 자신의 아들이 자신에게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에 대한 걱정일까? 엄마의 목소리에는 항상 이중성이 있었다. 사랑과 부담이 섞여 있었다.

“괜찮습니다, 엄마.”

민준이 말했다. 거울 속의 자신이 말하고 있었다.

“넌 항상 괜찮다고 말해. 넌 정말 괜찮니? 진짜로?”

엄마가 물었다. 목소리에 지친 듯한 톤이 섞여 있었다. 아마 엄마도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의 아들이 거짓말을 한다는 것을. 자신의 아들이 항상 괜찮다고 말한다는 것을.

“네, 엄마. 정말 괜찮습니다.”

민준은 거울 속의 자신을 봤다.

그 평범한 얼굴. 그 보이지 않는 배우. 그 갇힌 사람. 그 거짓말쟁이.

전화 너머에서 엄마가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렸다. 그 한숨 안에는 몇 년의 피로가 담겨 있었다. 자신의 아들을 이해할 수 없는 피로. 자신의 아들과 대화할 수 없는 피로. 자신의 아들이 자신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피로.

“그래. 잘 자. 내일도 화이팅.”

엄마가 말했다.

“네. 감사합니다.”

민준이 대답했다. 감사한다는 말은 거짓이었다. 그는 감사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엄마가 자신을 더 잘 이해해주기를 원했다. 그는 자신의 엄마가 자신의 거짓말을 지적해주기를 원했다. 그는 자신의 엄마가 자신을 강제로 멈추게 해주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통화를 끊었다.

거울 앞에 다시 섰다. 거울 속에서, 자신의 얼굴이 미소를 지었다. 완벽한 미소. 완벽하게 거짓된 미소. 마치 연기를 하는 것처럼. 아니, 연기를 하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준호였다. 다시.

이번에는 민준이 어떻게 해야 할까? 또 외면할 것인가? 영원히 외면할 것인가? 준호는 언제까지 전화를 할 것인가? 준호는 언제 포기할 것인가?

*포기하지 않으면 어떡하지.*

그 생각이 떠올랐다. 준호가 포기하지 않으면, 자신은 계속 이렇게 있어야 한다.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거짓된 미소를 보면서, 전화를 외면하면서.

거울 속의 자신이 음소거 버튼을 누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 그것이 더 쉬울 것이다. 계속 외면하는 것이. 계속 연기하는 것이. 계속 거짓말을 하는 것이.

민준은 음소거 버튼을 눌렀다.

다시.

그리고 또 다시.

거울 속에서, 완벽한 미소가 계속 유지되었다.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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