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제2막 – 제68화: 시간은 무자비한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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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68화: 시간은 무자비한 배우

3권의 18화. 민준이 준호의 고백 이후 첫 번째로 혼자가 되는 순간.


카페를 나간 후, 민준은 지하철역 계단 앞에 서 있었다. 손잡이를 잡지 않은 채로. 마치 손잡이를 잡는 순간, 자신이 이곳에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 될까봐 두려워하는 것처럼. 주변 사람들은 그를 밀고 지나갔다. 통근하는 사람들. 학생들.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아빠. 모두가 자신의 목표지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민준은 여전히 계단 입구에 서 있었다.

그는 여전히 떠났어.

준호의 마지막 말이 민준의 귀를 맴돌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귀가 아니라, 뇌간의 어딘가에서.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반복되는 루프처럼. 그 친구 준호. 이름이 같은 사람. 병원 침대 위에서 호흡기를 달고 누워있는. 우리가 보여준 사진에서. 그의 눈은 이미 닫혀 있었나? 아니, 열려 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았다. 그것이 더 무서웠다.

민준은 휴대폰을 꺼냈다. 화면을 켜는 순간, 약 50개의 미수신 전화 기록이 떠올랐다. 엄마. 모두 엄마로부터의 전화였다. 시간대가 다양했다. 오전 7시 14분. 오전 11시 33분. 오후 3시 2분. 저녁 8시 47분. 그리고 가장 최근의 것은 방금 전. 밤 11시 52분.

내가 전화를 받아야 하나?

민준은 화면을 바라봤다. 엄마의 프로필 사진. 그것은 5년 전의 사진이었다. 머리 색이 다른. 더 밝아 보이는 얼굴. 아버지가 아직 살아있던 시절의 얼굴. 이제는 그렇지 않았다. 민준은 프로필을 업데이트하지 않았다. 그것은 의도적인 선택이 아니었다. 다만, 그 사진을 보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휴대폰을 열지 않으려고 했던 것일 뿐이었다.

그는 전화를 받지 않고 휴대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지하철역의 소음은 끊임없었다. 삐익삐익. 문이 열리는 소리. 사람들의 발소리. 누군가의 목소리. “다음은 강남역입니다.” 기계음. 인간적이지 않은 음성이 계속해서 역 이름을 반복했다. 다음역. 그다음역. 그 다음역. 마치 시간이 일직선으로만 흘러가는 것처럼. 뒤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모두가 앞으로만 나아가고 있었다.

민준은 계단을 내려갔다. 손잡이를 잡지 않은 채로. 그의 손은 주머니 안에 있었다. 주먹을 쥐고 있었다. 손톱이 손가락 안쪽을 파고들었다. 통증. 그것은 좋았다. 그 통증은 자신이 여전히 무언가를 느낄 수 있다는 증거였으니까.

플랫폼에 도착했을 때, 전차가 방금 떠난 것처럼 보였다. 빈 선로. 그리고 반대편 플랫폼에서 다른 전차가 도착하고 있었다. 민준은 벤치에 앉았다. 자신의 왼쪽에는 나이 먹은 여성이 앉아 있었다. 그 여성은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의 손가락이 끊임없이 움직였다. 불안한 손가락. 마치 자신의 손가락처럼.

우리의 손가락도 그랬지.

민준이 생각했다. 카페에서. 탁탁탁. 그 리듬. 그것은 음악이 아니었다. 그것은 절망의 리듬이었다.

그의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이번엔 엄마가 아니었다. 화면에 뜬 이름은 “이수진”이었다.

민준의 심장이 멈췄다. 정말로 멈췄다. 몇 초간. 그 몇 초는 마치 몇 분처럼 느껴졌다. 그는 화면을 바라봤다. 초록색 수신 버튼과 빨간색 거부 버튼. 선택지. 항상 선택지가 있었다. 하지만 선택의 자유는 없었다.

그는 수신 버튼을 눌렀다.

“네, 대표님.”

“민준이.”

이수진의 목소리는 침착했다. 너무 침착해서, 그것이 오히려 위협처럼 들렸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무기를 숨기고 있을 때, 그 침착함 자체가 가장 무서운 것이 되는 것처럼.

“네.”

“지금 어디냐?”

“지하철역입니다.”

“어느 역?”

왜 그녀가 자신의 위치를 알고 싶어 하는지 민준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거짓말을 할 생각은 없었다. 거짓말은 이미 너무 많았다.

“강남역입니다.”

“좋아. 5분만에 내 사무실로 와.”

“지금요?”

“응. 5분.”

이수진이 전화를 끊었다. 신호음 없이. 그냥 침묵만 남겼다.

민준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나이 먹은 여성이 그를 흘깃 봤다. 아마도 그의 얼굴이 마음에 걸렸던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을 계속했다. 불안한 손가락. 기다림의 손가락.

민준은 일어섰다. 전차를 타지 않고. 다시 계단으로 올라갔다. 손잡이를 잡지 않은 채로.


이수진의 사무실은 강남의 한 고층 건물의 42층에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민준은 자신의 얼굴이 반사되는 거울 같은 엘리베이터 벽을 봤다. 그 얼굴은 낯선 것처럼 보였다. 누가 그렇게 창백한 얼굴을 가질 수 있을까. 누가 그렇게 눈 밑에 검은 자국을 가질 수 있을까. 누가 그렇게 입가에 떨림을 가질 수 있을까.

그건 내 얼굴이야.

민준이 생각했다. 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마치 거울이 누군가 다른 사람을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혹은 자신이 이미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것처럼.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42층. 복도는 텅 비어 있었다. 밤중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수진의 사무실 앞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따뜻한 불빛. 부적절한 따뜻함. 마치 이곳이 안전한 장소라고 계속 거짓말을 하려고 하는 것처럼.

민준은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

이수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무실 안에는 이수진 혼자만 있었다. 그녀는 책상 뒤에 앉아 있었고, 그 책상 위에는 수많은 서류들이 놓여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조명에 의해 반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 마치 그녀가 두 사람인 것처럼.

“앉아.”

이수진이 말했다.

민준은 그 앞의 의자에 앉았다. 사무실의 창에서는 서울의 야경이 보였다. 수많은 불빛. 수많은 삶.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고, 모두가 자신의 고통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서로를 보지 않았다.

“너는 최근에 무엇을 했나?”

이수진이 물었다.

“뭐라고 하면 좋을까요?”

민준이 반문했다.

“정직하게 대답해. 최근에 누구를 만났나?”

민준은 침묵했다. 그의 입이 무언가를 말하려고 움직였다가, 다시 닫혔다. 거짓말과 진실 사이에서 떠있는 상태였다.

“준호를 만났습니다.”

민준이 마침내 말했다.

이수진의 펜이 손 위에서 멈췄다. 그녀는 펜을 가지고 있었나? 민준은 방금 그것을 깨달았다. 그녀의 손에 펜이 들려 있었다. 검은색 펜. 매우 비싼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외에는…”

민준이 말했다.

“우리를 만났습니다.”

이수진의 얼굴이 변했다. 아주 미세하게. 그것은 표정의 변화라기보다는, 무언가가 내부에서 움직였다는 신호였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계획이 예상과 다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 깨달음이 얼굴을 통과하려고 할 때.

“누가 우리를 소개해줬나?”

“준호입니다.”

민준이 대답했다.

“준호가.”

이수진이 반복했다. 그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확인이었다. 마치 자신이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것처럼.

“당신은 제가 누구와 만나는지 알고 있었어요?”

민준이 물었다.

“너는 우리의 계약을 읽었나?”

이수진이 대신 물었다.

“네. 준호가 보여줬어요.”

민준이 대답했다.

이수진은 펜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천천히. 마치 그것이 폭탄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리고 그녀의 손을 모으고 책상 위에 올렸다. 두 손가락이 서로를 가리키고 있었다. 마치 기도하는 자세처럼. 하지만 그것은 기도가 아니었다.

“넷플릭스 드라마 촬영은 언제 시작되나?”

“다음 달입니다.”

민준이 답했다.

“너는 그 역할을 하고 싶나?”

침묵.

민준은 그 질문에 답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넷플릭스 드라마를 하고 싶었나? 아니면 그 역할이 그에게 주어진 구명줄이었나? 아니면 그것은 함정이었나?

“당신이 저를 이용하고 있는 건가요?”

민준이 물었다.

이수진의 얼굴이 경직되었다. 정확히 그녀의 턱선에서부터. 마치 누군가가 그곳에 손을 대고 천천히 힘을 주고 있는 것처럼. 그것은 준호의 그것과 같은 반응이었다. 진실이 드러날 때의 신체의 반응.

“너는 아직도 모르고 있구나.”

이수진이 말했다.

“뭘 모르고 있어요?”

민준이 물었다.

이수진은 자신의 의자를 뒤로 밀었다. 천천히 일어섰다. 그리고 창문 앞으로 걸어갔다. 그곳에서 그녀는 서울의 야경을 바라봤다. 수많은 불빛. 수많은 삶.

“너는 자신이 왜 배우가 되려고 했는지 아나?”

이수진이 물었다. 그녀는 여전히 창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네에요?”

민준이 물었다.

“그것은 질문이 아니라, 너 자신에게 던져야 할 질문이다. 왜 배우가 되려고 했나?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누군가가 되기 위해서인가?”

이수진이 말했다.

“전 둘 다입니다.”

민준이 답했다.

“그게 맞다.”

이수진이 돌아섰다. 이제 그녀의 얼굴은 다시 반으로 나뉘어 있지 않았다. 양쪽 모두 밝혔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에는 무언가가 보였다. 동정? 아니. 그것보다는 더 차갑운 것. 인식. 자신의 실수를 인식하는 표정.

“나는 너를 배우로 만들지 않으려고 했다.”

이수진이 말했다.

“뭐라고요?”

민준이 물었다.

“나는 너를 무언가의 도구로 만들려고 했다. 나는 너를 이용하려고 했다. 내 과거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서. 내 죄책감을 덜기 위해서.”

이수진의 목소리는 평탄했다. 감정이 없는 목소리.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더 무거웠다.

“그럼 지금은 뭐예요?”

민준이 물었다.

“지금은 너를 풀어주려고 한다.”

이수진이 말했다.

그녀는 자신의 책상으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몇 장의 종이를 들었다. 그것을 민준에게 건넸다.

“이것은 무엇인가요?”

민준이 물었다.

“계약의 취소 문서다. 너는 자유다. 더 이상 나의 배우가 아니다. 더 이상 나의 도구가 아니다.”

이수진이 말했다.

“하지만 넷플릭스 역할은?”

민준이 물었다.

“그것은 내가 줄 수 없다. 그것은 이미 결정된 것이다. 하지만 너는 그 역할을 거절할 자유가 있다. 이제부터는 모든 선택이 너의 것이다.”

이수진이 말했다.

민준은 그 종이를 들었다. 손이 떨렸다. 그 종이 위의 글자들이 흔들렸다. 그것을 읽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읽을 필요는 없었다. 그는 이미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자유. 하지만 그것이 정말로 자유일까?

“당신은 왜 이렇게 하는 거예요?”

민준이 물었다.

이수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창문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곳에서 그녀는 서울의 야경을 바라봤다. 마치 그것이 자신의 과거이자 미래인 것처럼.

“가. 그리고 절대로 돌아오지 말아.”

이수진이 말했다.

민준은 그 종이를 들고 사무실을 나갔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는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그 종이를 바라봤다. 계약의 취소 문서. 자유의 종이. 하지만 그것은 무겁게만 느껴졌다. 마치 그것이 자신의 인생 전체의 무게를 담고 있는 것처럼.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을 때, 민준은 그 종이를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밤은 여전히 깊었다. 그리고 서울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빛은 더 이상 따뜻하지 않았다. 그것은 차가운 빛이었다. 무관심의 빛이었다.

민준의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이번엔 엄마였다. 자정을 넘어선 시간에.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대신 그는 거리를 걸었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면서. 단지 앞으로 나아갈 뿐.

그의 발은 자동으로 움직였다. 강남역으로. 그리고 지하철 환승역으로. 그리고 다시 그 벤치가 있는 플랫폼으로. 나이 먹은 여성은 이미 떠나있었다. 누군가를 찾지 못했거나, 아니면 누군가를 찾았거나.

민준은 벤치에 앉았다. 혼자. 그리고 그 순간, 그는 깨달았다.

자유란 이런 것인가?

혼자인 것. 아무도 그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 아무도 그를 제약하지 않는 것. 아무도 그를 이용하려고 하지 않는 것. 그리고 동시에, 아무도 그를 보호하지 않는 것. 아무도 그를 돌보지 않는 것.

그의 휴대폰이 또 울렸다. 이번엔 준호였다.

민준은 잠시 화면을 바라봤다. 그리고 수신 버튼을 눌렀다.

“형.”

민준이 말했다.

“민준. 미안해. 정말로 미안해. 난 너를 상처 줬어. 그리고 나도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 하지만…”

준호의 목소리가 떨렸다.

“하지만 뭐예요?”

민준이 물었다.

“하지만 난 너를 잃고 싶지 않아. 제발. 제발 내 말을 들어줘. 넷플릭스 역할을 거절하지 말아. 이수진이가 뭐라고 말했는지 상관없이. 너는 배우가 될 수 있어. 너는 충분해. 너는…”

준호의 목소리가 끊어졌다.

민준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단지 그 침묵을 들었을 뿐. 그 침묵 속에는 모든 것이 있었다. 모든 후회. 모든 미안함. 모든 사랑.

그리고 그 순간, 민준은 깨달았다.

자유는 혼자인 것이 아니다. 자유는 선택하는 것이다.

“네, 형. 이해했어요.”

민준이 말했다.

하지만 그것도 거짓말이었다. 그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알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배우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가장 무서웠다.


12,847자

# 자유의 무게

## 첫 번째 부분: 종이

이수진이 말했다.

“계약 해지서입니다. 당신은 자유입니다.”

그 말은 마치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민준은 그 단어들을 천천히 씹으며 이해하려 했다. 자유. 그것은 그가 오랫동안 꿈꿔온 단어였다. 그런데 왜 그 말이 나오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을까?

이수진은 책상 너머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감정이 없었다. 전문가다운 냉정함. 그녀는 지난 5년간 민준의 에이전트였다. 그의 모든 활동을 관리했던 여자였다. 그의 꿈을 팔았던 여자였다. 그리고 이제 그 꿈을 버리게 하는 여자였다.

“당신은 넷플릭스 오디션을 거절했습니다. 당신은 광고료를 거절했습니다. 당신은 드라마 제의를 거절했습니다.”

이수진이 계속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기계적이었다. 마치 엑셀 시트를 읽어내리는 로봇처럼.

“그럼 당신이 뭘 원하는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당신을 도와줄 수 없습니다. 더 이상 당신을 대리할 수도 없고요.”

민준은 그 말을 듣고 있으면서도 듣지 않고 있었다. 그의 귀는 그녀의 목소리를 포착했지만, 그의 뇌는 그 의미를 거부하고 있었다. 마치 그 말이 자신에게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게 향한 것처럼.

“계약 해지서에 서명하시면 됩니다. 그럼 모든 게 끝입니다.”

이수진이 말하며 문서를 민준의 방향으로 밀어냈다. 그 문서는 하얀 종이였다. A4 크기. 별로 크지 않은 종이. 그런데 그것이 민준의 인생을 결정하는 종이였다.

민준의 손이 떨렸다. 그는 펜을 집어들었다. 검은 볼펜. 평범한 펜. 그 펜의 끝을 문서의 서명란에 가져갔다. 그리고 멈췄다.

얼마나 오래 그렇게 있었을까? 1초? 10초? 1분?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그의 머리 속에서는 수천 개의 목소리가 동시에 울리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을 포기하려고?*

*5년을 버리려고?*

*엄마에게 뭐라고 말할 거야?*

*준호에게는?*

*그런데 정말로 배우가 되고 싶었어?*

*아니다. 그건 엄마의 꿈이었어. 준호의 꿈이었어.*

*그럼 네 꿈은 뭐야?*

민준은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자신이 꿈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자체를 깨달은 적이 없었다.

그는 서명했다.

펜은 종이 위를 미끄러져 내려갔다. 검은 잉크가 흰 종이 위에 자신의 이름을 그려냈다. 박민준. 그의 이름. 그의 서명. 그의 항복.

“감사합니다.”

이수진이 말했다. 그 말은 다른 말이었다. 진심이 담긴 감사가 아니라, 의무적인 인사였다. 마치 손님을 배웅할 때 하는 인사처럼.

“당신은 이제 자유입니다. 당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세요.”

그 말이 가장 크게 박혔다.

*하고 싶은 것.*

그가 하고 싶은 것이 뭐였더라?

민준은 그 종이를 들고 사무실을 나갔다.

## 두 번째 부분: 엘리베이터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는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그 종이를 바라봤다. 계약의 취소 문서. 자유의 종이.

그런데 그것은 무겁게만 느껴졌다.

민준은 그 종이를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종이의 무게는 변하지 않았다. 아마 1그램도 안 될 것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무거운가?

아, 알겠다. 이건 종이의 물리적 무게가 아니었다. 이건 상징의 무게였다.

이 종이는 그의 지난 5년을 담고 있었다. 그의 청춘을 담고 있었다. 그의 모든 희생을 담고 있었다. 밤 11시까지 촬영장에 있던 것들. 거울 앞에서 표정을 연습하던 것들. 거절당했던 오디션들. 얻었던 작은 배역들. 그리고 결국 얻지 못했던 큰 꿈들.

마치 그것이 자신의 인생 전체의 무게를 담고 있는 것처럼.

엘리베이터의 벽면은 거울로 되어 있었다. 민준은 거울 속의 자신을 봤다. 28세의 남자.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 피곤해 보이는 남자.

그의 눈 아래에는 검은 원이 있었다. 수면 부족의 증거. 그의 얼굴은 창백했다. 햇빛을 받지 못한 증거. 그의 입술은 굳어 있었다. 미소를 잊어버린 증거.

*이게 나야?*

그는 거울 속의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다.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며 층수를 세었다. 27층. 26층. 25층…

각 층마다 어떤 사무실이 있을까? 어떤 사람들이 일하고 있을까? 그들은 행복할까? 그들은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할까?

민준은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배우가 되었을 때, 나는 행복했나?*

그 질문의 답은 명확했다. 아니오.

그가 행복했던 순간들은 배우로서의 성공이 아니라, 다른 순간들이었다. 친구들과 웃던 순간. 엄마가 음식을 해줄 때. 준호와 함께 영화를 보던 밤들.

그런데 그런 순간들이 언제부터 줄어들기 시작했을까?

5년 전부터다. 배우가 되려고 결심했던 그날부터.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을 때, 민준은 그 종이를 주머니에 넣었다.

## 세 번째 부분: 밤의 서울

그리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밤은 여전히 깊었다. 자정을 넘어서 있었다. 서울의 밤은 항상 이렇다. 깊은데도 밝다. 밤인데도 조용하지 않다. 마치 이 도시는 잠을 자지 않는 것 같다.

강남역 근처는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술 취한 회사원들이 포장마차에 앉아 있었다. 젊은 여자들이 클럽으로 향하고 있었다. 택시 운전사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민준은 혼자였다.

서울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네온사인. 가로등. 빌딩의 불빛들. 하지만 그 빛은 더 이상 따뜻하지 않았다.

그것은 차가운 빛이었다.

무관심의 빛이었다.

이 도시는 민준을 모른다. 이 도시는 그의 이름을 모른다. 이 도시는 그가 배우인지 아닌지 상관하지 않는다. 서울은 매일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삼켰다가 뱉어낸다. 그 중 하나가 더 추가되거나 빠져도 상관없다.

민준은 거리를 걸으며 그런 생각에 빠져 있었다.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는 “엄마”라고 떠 있었다.

자정을 넘어선 시간에 엄마가 왜 전화를 할까? 아, 알겠다. 준호가 아마 말했을 것이다. 민준이 에이전시를 나갔다고. 계약을 해지했다고.

민준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 대신 그는 거리를 걸었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면서. 단지 앞으로 나아갈 뿐.

그의 발은 자동으로 움직였다. 마치 그의 몸이 이미 목적지를 알고 있는 것처럼.

## 네 번째 부분: 벤치

그의 발은 자동으로 움직였다. 강남역으로. 그리고 지하철 환승역으로. 그리고 다시 그 벤치가 있는 플랫폼으로.

그곳은 민준이 오기 전에, 누군가 다른 사람이 있던 자리였다. 나이 먹은 여성. 회색 머리. 그녀는 벤치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민준은 그날 그녀를 봤다. 마지막 지하철을 기다리며. 그녀의 얼굴은 슬픈 표정이었다. 하지만 희망적이었다. 마치 누군가가 곧 올 것 같은 표정으로.

오늘 밤, 그녀는 더 이상 그 벤치에 없었다. 누군가를 찾았거나, 아니면 누군가를 찾지 못했거나.

민준은 벤치에 앉았다. 혼자.

벤치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금속 벤치. 온기가 없는 벤치. 마치 이 벤치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앉았다가 떠났을 것이다. 그들은 모두 무엇을 기다리고 있었을까? 기차? 버스? 아니면 누군가?

민준은 벤치의 차가운 온도를 느껴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깨달았다.

*자유란 이런 것인가?*

혼자인 것.

아무도 그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

아무도 그를 제약하지 않는 것.

아무도 그를 이용하려고 하지 않는 것.

그리고 동시에, 아무도 그를 보호하지 않는 것.

아무도 그를 돌보지 않는 것.

그는 이제 정말로 자유였다.

아무도 그에게 언제 일어나라고 하지 않았다. 아무도 그에게 어디로 가라고 하지 않았다. 아무도 그에게 뭘 하라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자유는 너무나 무거웠다.

민준은 하늘을 봤다. 서울의 밤하늘. 별들은 희미했다. 도시의 불빛이 별들을 삼켜버렸다. 달도 구름에 숨어 있었다.

*내가 뭘 원했더라?*

그 질문이 자꾸자꾸 떠올랐다.

배우가 되고 싶었나?

아니면 엄마를 기쁘게 하고 싶었나?

아니면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었나?

아니면 나 자신을 증명하고 싶었나?

그런데 지금, 모든 게 끝났다. 계약도 끝났다. 배우의 꿈도 끝났다. 그렇다면 이제 뭐가 남았나?

## 다섯 번째 부분: 통화

민준의 휴대폰이 또 울렸다.

이번엔 준호였다.

준호. 그의 형. 5살 위의 형. 그의 매니저였던 형. 그를 배우로 만들려고 했던 형.

민준은 잠시 화면을 바라봤다.

“준호”

화면에 떠 있는 이름을 바라봤다.

정말로 받을까? 아니면 무시할까?

민준은 받기로 결정했다.

수신 버튼을 눌렀다.

“형.”

민준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깊었다. 피곤했다.

“민준. 미안해. 정말로 미안해. 난 너를 상처 줬어.”

준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 너가 뭘 생각하는지. 너가 뭘 원하는지. 너가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 하지만…”

준호가 말을 멈췄다.

“하지만 뭐예요?”

민준이 물었다.

“하지만 난 너를 잃고 싶지 않아. 제발. 제발 내 말을 들어줘.”

준호의 목소리에는 절박함이 담겨 있었다.

“넷플릭스 역할을 거절하지 말아. 이수진이가 뭐라고 말했는지 상관없이. 너는 배우가 될 수 있어. 너는 충분해. 너는…”

준호의 목소리가 끊어졌다.

마치 그가 울고 있는 것 같았다.

## 여섯 번째 부분: 침묵 속의 진실

민준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단지 그 침묵을 들었을 뿐.

휴대폰을 통해 전해지는 준호의 숨소리. 그의 울음을 참으려는 소리.

그 침묵 속에는 모든 것이 있었다.

모든 후회.

모든 미안함.

모든 사랑.

5년 전, 준호는 민준에게 이렇게 말했다.

“민준아, 넌 배우가 될 수 있어. 나는 그걸 알아.”

그때 준호의 눈에는 빛이 있었다. 희망의 빛. 확신의 빛.

“형이 너를 도와줄게. 형이 너를 유명하게 만들어줄게. 그런 다음에는 엄마도 행복할 거고, 우리 가족도 행복할 거야.”

그 말은 얼마나 아름다웠나.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5년이 지났다. 민준은 여전히 작은 배역만 받았다. 조연. 엑스트라. 광고. 그게 전부였다.

그 와중에 준호는 매니저로서 민준을 갈구었다.

“왜 더 잘 하지 못해? 왜 오디션에서 떨어져?”

“다른 배우들을 봤어. 그들이 더 잘해.”

“넌 왜 그럼?”

준호의 질문들은 칼 같았다. 그리고 그것들은 모두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하지만 사랑도 때론 칼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결국 민준은 부러졌다.

그리고 이제, 준호는 민준을 다시 세우려고 하고 있었다.

“너는 충분해.”

그 말.

그 간단한 세 단어가 민준을 흔들었다.

## 일곱 번째 부분: 거짓과 진실

“네, 형. 이해했어요.”

민준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마치 모든 것을 받아들인 것처럼.

하지만 그것도 거짓말이었다.

그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준호가 말한 것들. “너는 배우가 될 수 있어.” “너는 충분해.” 그 말들은 모두 좋은 말이었다. 하지만 민준에게는 그것들이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왜일까?

아, 알겠다.

왜냐하면 민준은 더 이상 배우가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가 5년간 깨달아야 했던 진실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외면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너무나 힘들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자랑스러워할 꿈을 포기한다?

준호가 나를 위해 만들어놓은 계획을 버린다?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계속했다. 오디션에 간다. 거절당한다. 상처 받는다. 그리고 다시 시작한다.

그 악순환이 5년을 반복되었다.

그리고 이제, 그것이 끝났다.

민준은 전화를 끊었다. 준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민준? 민준?”

하지만 민준은 이미 끝내기로 결정했다.

## 여덟 번째 부분: 깨달음

그리고 그 순간, 민준은 깨달았다.

*자유는 혼자인 것이 아니다.*

*자유는 선택하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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