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제2막 – 제64화: 침묵의 계약서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Prev64 / 184Next

# 제64화: 침묵의 계약서

민준의 손이 떨렸다. 매우 미세하게. 테이블 위에서, 우리의 손가락 옆에서. 그것은 통제할 수 없는 떨림이었다. 신경계가 뇌의 명령을 무시하고 자신의 신호만 따르는 그런 떨림. 마치 그의 몸이 자신의 마음보다 먼저 공포를 감지한 것처럼.

“침묵 조항이?”

민준이 다시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더욱 선명해졌다. 하지만 그것은 명확함이 아니라, 긴장감이었다. 마치 줄을 점점 더 팽팽하게 당기는 것처럼.

우리는 이제 테이블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완전히 무너진 자세. 마치 자신이 이 대화를 계속하는 것이 자신의 몸의 체중을 초과한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당신이 받는 역할.”

우리가 말했다. 문장을 끝까지 완성할 힘이 없는 것처럼 끊어 끊어 말했다.

“그 역할을 할 조건이 있어.”

“무슨 조건?”

민준이 물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답을 예상하고 있는 것처럼. 그저 확인을 원하는 것이었다. 확인이라는 고통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신이 그 역할을 하는 동안, 그리고 그 역할을 한 이후로도, 당신은 절대로 내 친구의 죽음에 대해 말하지 않을 거야.”

우리가 말했다.

“법적으로?”

민준이 물었다.

“법적으로.”

우리가 확인했다.

“그리고 만약 내가 말하면?”

“이수진이가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거야. 그리고 이기겠지. 왜냐하면 당신이 받은 합의금의 조건이 침묵이었으니까. 당신이 그 조건을 위반하는 것은 법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사실이니까.”

우리가 말했다.

준호의 손이 민준의 팔을 더욱 꽉 잡았다. 마치 자신이 민준을 지구에 고정시키려고 하는 것처럼. 아니면 민준이 어떤 극단적인 결정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카페의 조명은 여전히 따뜻했다. 그 따뜻함이 이 순간에 얼마나 부적절한지. 마치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이 카페의 조명을 밝게 설정해놓고, 그 안에서 인생을 파괴하는 대화를 하도록 배치한 것처럼. 배경음악은 여전히 재즈였고, 여전히 슬프지도 밝지도 않은 감정을 담고 있었다.

“그 계약서는 어디에 있어요?”

민준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이제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다.

“이수진이의 변호사 사무실에. 그리고 아마 당신도 사본을 가지고 있을 거야. 아직 읽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말했다.

민준은 그 말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의 계약서. 자신이 서명했던 종이. 자신이 읽지 않았던, 혹은 읽었지만 이해하지 못했던 문장들. 모두가 이 순간을 위해 미리 작성되었던 것.

“제가 그 계약서를 읽은 적이 있나요?”

민준이 물었다.

“당신이 계약서를 읽었느냐는… 당신이 아는 거 아니야?”

우리가 물었다. 그것은 질책이 아니었다. 오히려 더 깊은 이해였다. 민준도 자신의 삶이 얼마나 흩어져 있는지 모른다는 것. 자신이 서명한 것들이 무엇인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 자신의 절망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깨닫게 되는 순간.

민준은 자신의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손이 떨렸다. 화면을 켰다. 메일을 찾았다. 이수진과 관련된 메일을 검색했다. 수십 개가 나타났다. 모두 “계약서”, “동의서”, “조건” 같은 단어들이 제목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가장 최근의 메일을 열었다. 첨부 파일. PDF. 파일 이름: “Netflix_Casting_Contract_Final.pdf”

“이건… 제가 받은 거네요.”

민준이 말했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믿을 수 없다는 것처럼.

“응.”

우리가 대답했다.

민준은 PDF를 열었다. 페이지가 로드되었다. 첫 번째 페이지. 두 번째 페이지. 그는 빠르게 스크롤했다. 마치 자신이 어떤 독약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찾으려고 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것을 찾았다. 페이지 7. 작은 글씨로. “Confidentiality and Non-Disclosure Clause”

그는 그 섹션을 읽기 시작했다. 그의 눈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라인이 라인으로 쌓였다. 문장이 문장을 만들었다. 법적 용어. 정확한 표현. “The Performer agrees to maintain strict confidentiality regarding…”

그리고 그것이 끝이었다. 그것이 자신의 삶이었다. 화면 위의 몇 개의 문장. 자신을 영원히 묶어두는 몇 개의 문장.

“이거… 이건 내가 서명한 거예요?”

민준이 물었다. 아직도 자신의 눈이 화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당신이 서명했어.”

우리가 대답했다.

“언제?”

“이수진이가 계약을 제시했을 때. 당신이 그 부사장실에 들어갔을 때. 당신은 기억 못 하냐?”

우리가 물었다. 그것은 책망이 아니라, 진지한 호기심이었다. 민준이 그 순간을 정말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가능한가.

민준은 생각했다. 그 장면으로 돌아갔다. 얼마나 오래 전이었는가? 며칠? 일주일? 시간이 흐르는 방식이 바뀌었다. 마치 한 순간이 여러 달처럼 느껴지는 그런 방식으로. 그 방은 어떤 방이었는가? 큰 창문. 서울의 스카이라인. 그리고 이수진의 얼굴. 그 얼굴이 자신에게 종이를 내밀었을 때의 표정. 그것이 무엇이었는가? 친절? 아니면 무언가 더 계산적인 것?

“기억해요.”

민준이 말했다. 거짓이었다. 하지만 그는 계속했다.

“하지만 그게 이런 뜻일 줄은…”

“당신은 읽지 않았어. 또는 읽었지만 이해하지 못했어.”

우리가 말했다. 이번에는 더 부드럽게. 마치 자신이 이미 민준을 판단했고, 그 판단 이후의 것이 연민이었다.

“당신은 그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어?”

우리가 물었다.

민준은 다시 그 장면으로 돌아갔다. 더 깊게. 그 방에서 무엇을 생각했는가? 자신의 넷플릭스 역할. 자신의 기회. 자신의 탈출. 4년의 엑스트라 생활로부터의 탈출. 그것이 전부였다.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계약의 조건들? 그것들은 배경 소음이었다. 자신이 주목해야 할 것은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계약서 자체였다. 자신의 이름. 자신의 역할. 자신의 미래.

“저는… 그때 행복했어요.”

민준이 조용히 말했다.

그 말이 나오는 순간, 무언가가 터졌다. 마치 댐이 무너지는 것처럼. 그것은 울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소리가 없는 통곡이었다. 그의 어깨가 떨렸고, 그의 손가락이 핸드폰을 놓으려고 했고, 준호가 자신의 팔을 더욱 꽉 잡았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준호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민준이 그동안 들었던 어떤 목소리와도 달랐다. 그것은 보호자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멘토의 목소리도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도 파괴된 사람의 목소리였다.

카페의 다른 손님들은 자신의 대화를 계속하고 있었다. 노트북을 열고 있었다. 라떼를 마시고 있었다. 완전히 무관한 세계. 자신들의 오후가 계속되는 세계. 그 세계와 민준이 있는 세계는 같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지만, 완전히 다른 차원이었다.

“제가 뭘 해야 하는 거예요?”

민준이 물었다. 그것은 도움을 청하는 목소리였다. 아이의 목소리. 자신의 아버지를 잃은 후로는 듣지 못했던 그런 목소리.

우리와 준호가 눈을 마주쳤다. 그들은 이미 이 질문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답을 가지고 있었다. 또는 답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들도 모르고 있었다.

“당신은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어.”

우리가 말했다. 마치 자신이 이 선택지들을 오래 전부터 준비해놓고 있었던 것처럼.

“첫 번째, 당신은 그 역할을 한다. 그리고 침묵한다. 영원히.”

우리가 말했다.

“두 번째?”

민준이 물었다.

“두 번째, 당신은 그 역할을 거절한다.”

우리가 말했다.

“그리고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민준이 물었다.

“당신의 계약서에는 위약금 조항이 있어. 당신이 이수진이의 제안을 거절하면, 당신은 그 금액을 내야 해. 250억 원.”

우리가 말했다. 마치 그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숫자인 것처럼.

민준의 얼굴이 더욱 창백해졌다. 250억 원. 그 숫자는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의 인생 전체보다 큰 숫자였다. 자신의 아버지의 빚도 그보다 작았다. 자신이 평생을 벌어도 만족할 수 없는 그런 숫자.

“그건… 불가능해요.”

민준이 말했다.

“응. 불가능해.”

우리가 대답했다.

“그럼 제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없는 거네요.”

민준이 말했다. 그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선언이었다.

“있어.”

준호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매우 낮았다. 하지만 확신이 있었다.

“뭐?”

민준이 물었다.

“당신이 그 역할을 해. 그리고 우리가 함께 그 증거를 모은다.”

준호가 말했다.

“증거?”

민준이 물었다.

“그 친구가 남긴 모든 것. 메시지. 이메일. 일기. 그리고 그 친구의 부모님이 가지고 있는 것들. 모든 것을 수집한다. 그리고 당신이 유명해진 이후에, 당신은 모든 것을 공개한다.”

준호가 말했다.

“하지만 계약서…”

민준이 말했다.

“계약서는 무효가 될 거야. 왜냐하면 그것이 강압에 의한 계약이기 때문이야. 그리고 그것을 증명할 수 있으니까.”

준호가 말했다.

“어떻게?”

민준이 물었다.

우리가 손을 들어올렸다. 핸드폰을 꺼내었다. 음성 녹음 앱을 열었다. 그리고 재생을 눌렀다.

이수진의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나왔다. 그것은 녹음된 음성이었다. 매우 명확하게. 마치 자신이 이미 오래 전부터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당신이 이 역할을 받는 대신에, 당신은 침묵할 것이다. 그 친구의 죽음에 대해. 그것이 조건이다.”

이수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침묵하지 않는다면?”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민준이 자신의 목소리를 인식했다. 그것은 자신의 과거 목소리였다. 자신이 그 방에 있었을 때의 목소리.

“그러면 당신의 경력은 끝난다. 내가 당신을 고소할 테니까. 그리고 내가 이길 거다. 왜냐하면 당신이 이미 합의금을 받았으니까. 당신이 다시 기사를 내는 것은 계약 위반이다. 그리고 법은 항상 계약을 보호한다.”

이수진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녹음이 끝났다.

“어디서…”

민준이 말을 시작했다.

“당신이 그 방에 들어갔을 때, 나는 밖에 있었어. 그리고 내 핸드폰이 녹음하고 있었어. 당신이 물어볼 질문들이 있을 거라는 걸 알았으니까.”

우리가 말했다.

“그럼 당신은… 계획을 가지고 있었어요?”

민준이 물었다.

“응. 하지만 그 계획은 당신이 같이 해야 하는 거야. 당신이 동의할 때까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왜냐하면 당신이 당사자니까. 당신의 목소리가 필요하니까. 당신의 결정이 필요하니까.”

우리가 말했다.

민준은 그 모든 정보를 처리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니, 정확하게는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없는지.

“제가 그 역할을 거절할 수 없다는 건 알아요.”

민준이 말했다. 그것은 항복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선택이었다. 자신의 삶을 자신이 선택하는 것.

“그럼 우리는 함께한다.”

준호가 말했다.

“언제까지?”

민준이 물었다.

“필요한 만큼.”

우리가 대답했다.

카페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오후 3시 47분. 그것은 민준의 인생이 바뀐 정확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카페의 다른 손님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라떼를 마시고 있었다. 그들의 세계는 계속되고 있었다. 하지만 민준의 세계는 멈추었다. 아니, 멈춘 것이 아니라, 방향이 바뀌었다.

마치 자신이 처음으로 자신의 삶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 침묵의 대가

## 1부: 녹음의 재생

카페의 소음이 배경처럼 흐르고 있었다. 에스프레소 머신의 쉭쉭거리는 소리, 손님들의 낮은 목소리, 가끔 울려 퍼지는 카운터의 초인종. 민준이는 그 모든 소리를 들으면서도 듣지 않고 있었다. 자신의 시선은 테이블 위의 핸드폰에 고정되어 있었다. 화면의 밝기가 자신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고, 그 빛 속에서 자신의 표정은 마치 낯선 사람의 것처럼 보였다.

“민준아, 정신 차려.”

준호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민준이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준호는 자신의 맞은편에 앉아 있었고, 양손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손가락들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준호도 긴장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아니, 단순한 긴장이 아니라 뭔가 더 무거운 감정을 억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뭐 하려는 거야?”

민준이가 물었다. 목소리가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들렸다. 딱딱하고, 낮고,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모방하는 것 같았다. 그것은 공포의 신호였다. 자신의 몸이 이미 일어날 일을 예감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준호는 대답 대신 손을 들어올렸다. 천천히, 마치 항복하는 제스처처럼. 그 손에는 아이폰이 들려 있었다. 최신 모델은 아니지만, 충분히 오래된 기종이었다. 준호가 며칠 전부터 뭔가를 하고 있었다는 증거였다. 민준이는 준호의 표정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입술이 일직선으로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고, 눈썹 사이에 깊은 주름이 파여 있었다.

“이거 봐야 해. 아니, 들어야 해.”

준호가 말했다. 손가락이 화면을 터치했다. 음성 녹음 앱이 열렸다. 파란색 배경에 하얀 파형이 떠 있었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녹음되어 있다는 뜻이었다. 민준이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마치 엘리베이터가 급강하하는 느낌. 그 느낌은 단지 신체적인 것이 아니었다. 정신적인 낙하였다. 무언가 매우 잘못되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감지했기 때문이었다.

준호의 손가락이 재생 버튼 위에 멈췄다. 그 손가락은 떨리고 있었다. 아니, 떨리는 것이 아니라 마치 그 버튼을 누르는 것에 대항해서 저항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카페의 배경음도 멀어진 것처럼 들렸다. 세상은 이 순간을 위해 숨을 멈춘 것처럼 보였다.

재생 버튼을 누르는 소리. 매우 작은 소리였지만, 민준이의 귀에는 폭발음처럼 들렸다.

스피커에서 음성이 나왔다.

그것은 여자의 목소리였다. 차갑고, 명확하고, 마치 오래전부터 이 말을 수백 번 연습했던 것처럼 들렸다. 감정의 진동이 없었다. 완벽하게 제어된 목소리였다. 민준이는 즉시 그 목소리를 인식했다.

이수진.

프로듀서 이수진의 목소리였다.

“당신이 이 역할을 받는 대신에, 당신은 침묵할 것이다. 그 친구의 죽음에 대해. 그것이 조건이다.”

카페의 모든 소리가 순간적으로 의식에서 사라졌다. 주변의 사람들, 커피의 향기, 햇빛이 들어오는 창문—모든 것이 사라졌다. 세상은 이 목소리와 이 말뿐이었다. 민준이의 손가락들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것을 숨기기 위해 주먹을 쥐었다. 손가락의 끝이 손바닥에 파고들었다. 신체적인 통증이 정신적인 충격을 약간이나마 상쇄시켜 주었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침묵하지 않는다면?”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남자의 목소리였다. 그것은 의문형이었지만, 동시에 도전이었다. 마치 누군가가 이미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상대방이 그것을 인정하도록 강요하는 것처럼.

민준이는 그 목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알았다.

자신의 목소리였다.

자신이 그 방에서 이수진과 나눈 대화였다. 그 끔찍한 방, 그 끔찍한 시간. 민준이는 그 날을 되돌리고 싶었다. 아니, 되돌리는 것이 아니라 그날이 결코 일어나지 않았기를 바랐다. 마치 그것이 다른 사람의 인생이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으로.

“그러면 당신의 경력은 끝난다. 내가 당신을 고소할 테니까. 그리고 내가 이길 거다. 왜냐하면 당신이 이미 합의금을 받았으니까. 당신이 다시 기사를 내는 것은 계약 위반이다. 그리고 법은 항상 계약을 보호한다.”

이수진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이번에는 더 명확했다. 마치 법정에서 판사 앞에서 진술하는 것처럼 또렷했다. 그 음성에는 절대적인 확신이 담겨 있었다. 확신뿐만 아니라, 그것을 뒷받침하는 확실한 자신감이 있었다. 이수진은 이미 모든 것을 계획했었다. 민준이가 할 수 있는 말, 할 수 없는 말, 할 것이고 할 수 없을 것들—모든 것을.

녹음이 끝났다.

침묵이 흘렀다. 그것은 음성이 끝난 후의 침묵이 아니라, 시간 자체가 멈춘 것처럼 보이는 침묵이었다. 민준이는 숨을 쉬고 있었지만, 그것을 의식하지 못했다. 마치 자신의 폐가 자동으로 작동하는 기계인 것처럼. 자신의 마음은 아직 그 녹음된 음성 속에 갇혀 있었다. 다시 그 방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 방. 그 창백한 벽들. 그 무거운 공기.

## 2부: 질문들

“어디서…”

민준이가 말을 시작했다. 목소리가 끊겼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목구멍을 누르고 있는 것처럼. 다시 시도했다.

“어디서 이걸 얻었어?”

준호를 바라봤다. 준호의 표정은 진지했다. 아니, 진지함을 넘어서 절박했다. 마치 자신이 방금 어떤 큰 결정을 내린 후 그것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의 표정이었다.

“당신이 그 방에 들어갔을 때, 나는 밖에 있었어.”

준호가 말했다. 손가락이 테이블 위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신경적인 움직임이었다. 자신의 불안을 표현하는 몸짓이었다.

“그리고 내 핸드폰이 녹음하고 있었어. 당신이 물어볼 질문들이 있을 거라는 걸 알았으니까. 그래서…”

“그래서 뭐? 날 따라온 거야?”

민준이의 목소리에 날카로움이 실렸다. 그것은 준호에 대한 분노가 아니었다. 자신에 대한 분노였다. 자신이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된 자신에 대한 분노였다. 그리고 그 분노가 향할 곳이 없으니까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향하고 있었다.

“아니. 나는 그 건물의 지하주차장에 있었어. 당신을 따라가려고 한 게 아니라, 내가 이미 알고 있었거든. 당신이 이수진과 만날 거라는 걸.”

준호가 말했다. 이제 그의 목소리는 더 단호했다. 마치 자신의 결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목소리에 힘을 실으려고 하는 것처럼.

“어떻게 알았어?”

“그건 나중에 설명할게. 지금은 이게 더 중요해. 이거 들었잖아. 녹음에서.”

민준이는 준호의 말을 듣고 있었지만, 동시에 듣고 있지 않았다. 자신의 뇌가 두 가지를 동시에 처리하려고 하고 있었다. 현재의 대화와 과거의 기억. 그 방에서의 일들이 다시 떠올랐다.

이수진의 얼굴. 그녀의 눈. 그 차가운 눈.

“제가 그 역할을 거절할 수 없다는 건 알아요.”

민준이가 천천히 말했다. 그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진술이었다. 자신이 이미 깨달은 사실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괴로웠다. 마치 자신이 이미 오래전부터 이 길을 걸어가고 있었는데, 지금에야 그것을 인식하게 된 것처럼.

“그럼… 당신은 뭘 원하는 거야?”

민준이가 물었다. 준호를 바라봤다. 준호의 눈에는 뭔가 타오르는 것이 있었다. 결의. 아니면 복수심. 민준이는 그것이 어느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원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원해야 하는 거야.”

준호가 말했다.

“우리?”

“응. 당신, 나,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 이수진이 한 일에 대해 누군가는 말해야 해. 누군가는 증언해야 해. 그래야만 다른 사람들이 당신 같은 일을 당하지 않아.”

## 3부: 결정의 무게

카페의 조명이 오후 햇빛과 섞여 있었다. 그 섞인 빛 속에서 민준이의 그림자는 여러 개로 분산되어 보였다. 마치 자신이 여러 개의 자아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한 명은 배우 민준이였다. 다른 한 명은 기자 민준이였다. 또 다른 한 명은 단순한 인간 민준이였다. 그리고 또 다른 한 명은… 누군가의 친구였다.

“그 친구. 너는 알아?”

민준이가 물었다. 준호의 눈을 바라봤다.

“응. 나도 알았어. 그 친구가 왜 죽었는지. 아직도 완벽하게 증명되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의심할 이유가 있어. 그리고 그 이유가 이수진과 연결되어 있다는 걸 나도 알아.”

준호의 목소리에 감정이 실렸다.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민준이는 그것을 보며 깨달았다. 준호도 이 일에 얼마나 깊이 관여하고 있는지를. 준호도 자신만큼 고통받고 있었다는 것을.

“그럼 우리는 함께한다.”

민준이가 말했다. 그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선택이었다. 자신의 삶의 방향을 바꾸는 선택이었다.

준호의 얼굴이 변했다. 마치 그가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있던 말을 들은 것처럼. 그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흘리지 않았다. 단지 눈을 깜박였을 뿐이었다.

“언제까지?”

민준이가 물었다.

“필요한 만큼.”

준호가 대답했다. 그 대답은 시간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결의에 대한 것이었다. 얼마나 오래 걸릴 것인가가 아니라, 얼마나 멀리 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카페의 시계가 3시 47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민준이는 그 시간을 기억했다. 아니, 기억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기 때문이었다.

## 4부: 세계의 변화

그 순간, 세상이 변했다.

아니, 정확하게는 민준이의 세상이 변했다. 주변의 세상은 여전히 같았다. 카페의 다른 손님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음료를 마시고 있었다. 노트북을 두드리는 소리, 친구들끼리 나누는 웃음소리, 카운터에서의 주문 소리—모든 것이 여전했다.

하지만 민준이의 내부는 완전히 변했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뇌 안의 모든 신경을 다시 연결한 것처럼. 그의 시각이 변했다. 세상을 보는 방식이 변했다.

그 창문 너머의 거리. 자동차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걷고 있었다. 모두가 자신의 인생을 살고 있었다. 평범한 인생들. 하지만 민준이는 이제 알고 있었다. 그 평범한 인생들 뒤에 숨겨진 이야기들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때때로 그 이야기들은 아무도 듣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뭐부터 시작할 거야?”

민준이가 물었다. 준호를 바라봤다. 준호의 표정은 놀랍게도 침착했다. 마치 이 모든 것을 이미 계획하고 있었던 것처럼.

“증거를 더 모아야 해. 녹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법적으로는.”

준호가 말했다.

“그럼 위험한 거네.”

민준이가 중얼거렸다.

“응. 매우 위험해. 하지만 우리는 이미 위험한 상황에 있어. 지금 물러서면 넌 영원히 침묵해야 해. 그리고 나도 이 녹음을 들었다는 것 때문에 위험해질 거고. 그래서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해. 물러설 수 없어.”

준호의 말은 논리적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더 무섭게 느껴졌다. 왜냐하면 그것은 현실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현실이 된 것을 인식하는 것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민준이는 자신의 커피를 마셨다. 오래전에 식은 커피였다. 그 쓴맛이 자신의 혀에 남았다. 그것은 마치 자신의 선택의 맛이었다. 쓴맛. 하지만 피할 수 없는 맛.

## 5부: 내면의 독백

*이게 뭐 하는 거야, 민준아?*

자신에게 묻는 자신의 목소리가 있었다. 그것은 이성의 목소리였다. 경고의 목소리였다.

*넌 배우야. 그것으로 충분했어. 그 역할 받고, 돈 받고, 유명해지고. 그것으로 충분했어. 왜 이제 와서 모든 걸 망치려고 해?*

하지만 다른 목소리도 있었다. 더 깊은 곳에서 나오는 목소리.

*그 친구를 기억해? 넌 기억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넌 기억하고 있어. 그 친구의 얼굴. 그 친구의 목소리. 그리고 그 친구가 죽었다는 것.*

민준이의 손이 떨렸다. 그것을 숨기기 위해 손가락을 깍지껴 묶었다. 손가락 끝이 손가락 끝과 맞닿았다. 그 접촉이 자신의 떨림을 확인시켜 주었다.

“괜찮아?”

준호가 물었다.

민준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이었다. 하지만 그 거짓은 준호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자신에게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이었다.

*넌 할 수 있어.

64 / 184

Leave a Comment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