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4화: 거울 속의 낯선 사람
휴대폰 화면의 밝기가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밤 11시 45분. 민준은 침대 위에 누워 있었고,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반지하방의 천장은 항상 습기로 어두웠다. 곰팡이 자국이 여러 군데 있었다. 마치 지도처럼.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끊임없이 상기시켜주는 지도.
CEO 이수진의 전화는 1시간 전에 끝났다. 내용은 간단했다. 모든 인터뷰 요청을 거절할 것. 광고 제안도 마찬가지. 지금은 연기에만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내일 회사에 와서 새로운 역할에 대해 얘기하자는 것이었다.
새로운 역할.
그 말이 자꾸만 떠올랐다. 마치 물 위의 떠돌이처럼, 자신의 의식 위에 떠다니고 있었다.
휴대폰을 집었다. 우리의 메시지를 다시 봤다.
“민준아. 내일 시간 돼? 카페에서 봤으면 좋겠어.”
그리고 그 아래 추가 메시지.
“진짜 축하해. 그리고… 다른 얘기도 해야 할 것 같아. 내일 봐.”
그 마지막 문장. ‘다른 얘기도 해야 할 것 같아.’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우리의 입가에서 늘 흘러나오는 밝은 톤이 그 메시지에는 없었다. 대신 어떤 무게감이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결정한 사람의 말투처럼.
민준은 휴대폰을 내려놨다. 그리고 침대 옆의 작은 거울을 들었다. 반지하방의 유일한 거울. 10센티미터 정도의 작은 손거울. 아버지의 것이었다. 아버지가 죽기 전에 남긴 물건들 중 하나.
거울 속에 자신의 얼굴이 나타났다. 어두운 불빛 아래에서. 눈은 깊어 보였다. 광대뼈는 더 두드러져 보였다. 체중을 많이 잃었다. 지난 몇 주일 동안. 기사 사진 속의 자신은 이 모습을 잘 포착했다. 슬픔이 얼굴에 새겨져 있었다. 아니면 기자와 사진작가가 그렇게 만들었을 수도 있었다.
지난 4년간, 자신은 거울을 많이 봤다. 배우는 그렇게 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얼굴을 연구한다. 어떤 각도에서 더 좋아 보이는지. 어떤 표정이 어떤 감정을 전달하는지. 하지만 이 거울 속의 자신은 자신이 만든 표정이 아니었다. 이것은 자신의 진정한 모습이었다. 피로한, 배고픈, 외로운 배우의 모습.
휴대폰이 울렸다. 밤 11시 47분에. 전화였다.
화면에는 ‘준호’라는 이름이 떠 있었다.
민준은 한 번 더 화면을 봤다. 준호는 밤에 잘 전화를 하지 않았다. 이미 자신이 충분히 폐를 끼쳤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런데 왜 지금 전화를 할까.
민준은 전화를 받았다.
“형.”
“민준이. 깨 있어?”
준호의 목소리는 다르게 들렸다. 평소의 차분함이 없었다. 대신 무언가 다급한 톤이 있었다.
“네. 방금 깼어요.”
거짓이었다. 민준은 계속 깨어 있었다. 하지만 준호에게 그것을 알릴 수는 없었다.
“기사 봤어? 너.”
“네, 봤습니다.”
“좋지? 기분 어때?”
민준은 답하기 전에 한 번 숨을 쉬었다. 거울을 내려놨다. 자신의 얼굴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아직 실감이 안 나요. 꿈인지 현실인지.”
“당연하지. 너 4년을 기다렸어. 이제 처음 시작하는 거야. 기사 하나 가지고 끝나는 게 아니라.”
준호가 말했다. 그 말 속에는 격려가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어떤 절박함도 있었다.
“형은 어때요?”
민준이 물었다. 그것은 무의식적인 질문이었다. 자신이 말해야 할 차례인데, 상대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 배우들이 자신의 감정을 숨기기 위해 자주 쓰는 기법.
“나? 나는… 좋아. 너 때문에 좋다고 할까. 너를 보니까.”
준호가 말했다. 그리고 잠깐 침묵이 있었다. 전화 너머의 침묵. 그것은 5초 정도 지속되었다.
“민준이. 나 한 가지 물어봐도 돼?”
“네, 뭐요?”
“너 아직도… 그런 생각은 안 해?”
민준의 몸이 경직되었다. 그 질문.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자신도 알고 있었지만, 들으면서도 깨닫게 되었다. 준호가 자신이 얼마나 깨지기 쉬운 상태인지를 알고 있다는 것을.
“아니요. 형이 있으니까.”
민준이 대답했다. 그것은 진실이었을까. 아니면 준호를 안심시키기 위한 거짓이었을까. 자신도 확신할 수 없었다.
“다행이야. 그렇지만 너는 여전히 조심해야 해. 알지? 성공이 더 위험할 수 있어. 사람들이 너를 보기 시작하면, 너는 더 많은 기대를 받아. 그리고 그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할 때, 넘어진다. 심하게.”
준호의 목소리는 낮아졌다. 마치 자신의 경험을 말하는 것처럼.
“알겠습니다.”
“내일 뭐 해?”
“내일은 회사에 가서 CEO님을 만나기로 했어요. 그리고 우리 후배를 만나기로 했고요.”
“우리?”
준호의 목소리에 미묘한 변화가 생겼다. 질문이 아니라 확인처럼 들렸다.
“네. 우리 후배가 축하한다고 해서.”
“그럼 괜찮아.”
준호가 말했다. 하지만 그 ‘괜찮아’는 자신에게 말하는 것인지, 민준에게 말하는 것인지 불분명했다.
“형, 혹시 괜찮으시면 내일 저랑 만날래요? 우리 후배 만난 다음에.”
민준이 물었다. 그것은 필요했다. 준호를 볼 필요가 있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응. 좋아. 그럼 내일 봐. 그리고 민준이.”
“네?”
“잘했어. 진심으로.”
전화가 끝났다. 민준은 휴대폰을 내려놨다. 그리고 다시 천장을 봤다. 곰팡이 지도.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주는 지도. 그런데 이제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침이 되었다. 밝은 햇빛이 반지하방의 좁은 창을 통해 들어왔다. 도로 수준의 높이에 있는 창이라서, 햇빛은 사람들의 발과 자동차 타이어를 먼저 비추었다. 그 위에 얼굴과 몸이 있었다.
민준은 6시에 일어났다. 배우는 그렇게 하는 것이었다. 일찍 일어난다. 피부 관리를 한다. 몸을 푼다. 자신을 준비한다.
오늘은 특히 더 신경 써야 했다. CEO를 만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우리를 만나기 때문이었다.
민준은 거울 앞에 섰다. 작은 거울이 아니라, 벽에 붙어 있는 전신거울 앞에. 그곳에서 자신의 전체 모습이 보였다. 까만 반팔 티셔츠와 헐거운 검정 바지. 얼굴은 창백했다. 눈 아래에는 다크서클이 있었다. 4년간의 피로가 얼굴에 새겨져 있었다.
민준은 옷을 갈아입었다. 준비된 옷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면접용 옷은 있었다. 회사 미팅용 옷. 회색 셔츠. 검정색 바지. 최소한의 격식.
거울을 다시 봤다. 이번에는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신인 배우 민준. 기사에 나온 그 배우. 기자들과 댓글 사람들이 본 그 배우.
하지만 거울 속의 눈은 여전히 같았다. 불안했다. 깊었다.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의 눈.
더스타 엔터테인먼트 건물은 강남역 근처에 있었다. 12층짜리 건물. 5층부터 8층까지가 회사 오피스였다. 민준은 이 건물을 몇 백 번은 들어왔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게 느껴졌다.
로비의 보안 시스템이 달라 보였다. 엘리베이터가 더 높아 보였다. 다른 직원들의 눈빛도 달라 보였다. 혹은 자신이 다르게 보는 것일 수도 있었다.
엘리베이터에 탔을 때, 거울이 있었다. 엘리베이터의 거울. 자신의 모습이 반복되어 나타났다. 옆면, 정면, 다시 옆면. 무한 반복.
6층에서 내렸다. CEO의 사무실이 있는 층. 민준은 복도를 걸었다. 회사의 냄새. 에어컨 냄새와 카펫 냄새, 그리고 누군가의 향수. 강남의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냄새.
CEO의 비서실이 보였다. 젊은 여직원이 앉아 있었다.
“안녕하세요. 민준 배우시죠?”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그것은 새로운 일이었다. 전에는 아무도 자신을 배우로 부르지 않았다.
“네, 안녕하세요.”
“CEO님이 기다리세요. 들어가셔도 됩니다.”
민준은 문을 두드렸다. CEO의 사무실 문.
“들어와.”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민준은 문을 열었다.
CEO 이수진의 사무실은 전에 본 것과 같았다. 큰 창. 강남의 전망이 보이는 창. 그리고 자신의 책상 뒤에 앉아 있는 52세의 여성.
“민 배우. 앉아.”
CEO가 손짓했다. 민준은 앞의 의자에 앉았다. 책상을 사이에 두고.
“기사 반응이 좋지?”
“네, 감사합니다.”
“너를 본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제 너는 ‘그냥 배우’가 아니다. ‘가능성 있는 배우’가 됐어. 알지?”
“네.”
“그런데 말이야. 너는 아직 부족해. 연기력도, 경험도, 매력도. 다 부족해. 하지만 너한테는 하나의 장점이 있어.”
CEO가 일어섰다. 창가로 걸어가서, 강남을 내려다봤다.
“뭘까?”
민준은 답하지 못했다.
“너는 눈빛이 있어. 진정성. 그것이 현재 한국 드라마에서 제일 부족한 게 뭔지 알아? 진짜 감정. 배우들이 아무리 잘해도, 뭔가 가짜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뭘까. 너는 달라. 너는 진짜 슬툀 보여. 왜냐하면 너는 진짜 슬프니까.”
CEO가 다시 앉았다. 책상 쪽으로.
“내가 너를 보면 생각난다. 나 자신. 내가 배우였을 때. 내가 너 나이였을 때. 난 너처럼 눈빛이 있었어. 그리고 난 그 눈빛 때문에 작은 역할들을 많이 했어. 그런데 말이야. 그 눈빛이 사라지는 순간이 온다. 언젠가는. 그 순간이 무서워서, 난 배우를 그만뒀어.”
민준은 CEO를 바라봤다. 처음으로, 그녀가 인간처럼 보였다. 배우로서. 그리고 그 배우가 실패했던 사람으로서.
“그래서 나는 너를 믿어. 넌 그 눈빛을 잃지 않을 거야. 아니, 잃으면 안 돼. 그 눈빛이 너의 가치야. 알겠지?”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너를 위한 새로운 프로젝트가 있어. 영화야. 한국 영화. 독립영화지만, 좋은 감독이야. 그리고 넌 이 영화의 주인공이 될 거야. 아직 확정은 아니지만, 나는 감독에게 너를 추천할 거고, 감독은 너를 볼 거야. 그 다음은… 너의 몫이야. 알겠지?”
민준의 심장이 크게 뛰었다. 주인공. 그것은 자신이 4년을 기다린 단어였다.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그리고 또 한 가지. 너는 아무도 믿으면 안 돼. 이 업계에서는. 너는 너만 믿어야 해. 그리고 너의 연기만. 나머지는 다 거짓이야. 사람들의 말, 기자들의 기사, 팬들의 댓글, 다 거짓이야. 알겠지?”
“네.”
민준이 대답했지만, 마음으로는 동의하지 않았다. 준호는? 우리는? 그들은 거짓이 아니었다.
CEO는 그것을 알았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말하지 않았다.
“그럼 나가. 그리고 내일 모레 감독을 만나러 가. 주소는 비서가 줄 거야. 준비하고 가.”
“네, 감사합니다. CEO님.”
민준이 일어섰다.
“그리고 민 배우.”
민준이 문 앞에 섰을 때, CEO가 말했다.
“기사 댓글 보지 마. 너를 위한 충고야.”
카페는 강남역 근처의 작은 카페였다. 우리가 자주 가는 곳이라고 했다. 민준은 전에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우리가 보내준 위치정보를 따라 들어갔다.
안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낮 시간이라서. 테이블에는 노트북을 펼친 사람들이 몇 있었고, 한 구석에는 책을 읽는 사람이 있었다.
우리가 창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커피를 마시고 있는 우리. 그리고 민준이 들어온 것을 본 우리의 얼굴이 밝아졌다.
“어! 와!”
우리가 일어섰다. 배우는 자신의 감정을 몸으로 표현했다.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었다. 일어나기, 손을 흔들기, 밝은 목소리.
민준이 다가갔다.
“오셨어요.”
우리가 앉으라고 손짓했다. 민준이 앉았다.
“와, 정말 봤어. 기사. 너 사진 정말 좋더라.”
우리가 말했다. 그리고 더 자세히 보았다. 마치 처음 만나는 사람을 보듯이.
“감사합니다. 우리 씨가 보내줘서 봤어요.”
“진짜 축하해. 그리고…”
우리가 말을 멈췄다. 마치 중요한 것을 말할 준비를 하는 것처럼. 민준은 그것을 알았다. 배우들은 침묵의 의미를 안다.
“뭐요?”
민준이 물었다.
우리가 커피잔을 들었다가 내려놨다.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사실 내가 너를 부른 이유가… 축하 말고도 있어. 너도 알 수 있겠지만, 내가 너 때문에 뭔가 불안해. 너가 올라가고 있잖아. 그리고 난 아직도 여기 있고. 뮤지컬만 하고 있고. 그런데…”
우리가 눈을 들었다. 그리고 민준을 봤다. 직접 봤다.
“그런데 내가 기쁜 거야. 진심으로. 너가 성공하는 게. 왜냐하면 넌 정말 배우거든. 진짜. 그리고 내가… 내가 너를 좋아하는 것 같아. 배우로서가 아니라. 사람으로서.”
침묵이 흘렀다. 그것은 길었다. 3초. 5초. 7초.
민준의 입은 닫혀 있었다. 말할 말이 없었다. 또는 말할 용기가 없었다.
“아, 이상한 거 알아. 너가 잘되면 더 멀어질 텐데, 내가 이런 말을 하다니. 근데 진짜야. 넌 내가 본 배우 중에 제일 진정성이 있는 배우야. 그리고 그 진정성이 너라고 생각해. 넌 연기가 아니라 그냥 살아가는 거 같아. 무대 위에서도. 그래서 내가…”
우리가 다시 말했다.
“내가 너를 응원하고 싶어. 계속. 아무리 멀어져도. 알지?”
민준은 여전히 답하지 못했다. 그의 목은 조여 있었다. 감정이 그렇게 만들었다.
“그리고 하나 더. 내가 뮤지컬 오디션에 떨어졌어. 어제. 주인공 역할이었는데. 실력이 부족하다고 했어. 그래서 내가 깨달았어. 난 배우로서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거. 그런데 너를 보니까, 내가 뭘 해야 할지 알 것 같았어. 난 뮤지컬만 할 게 아니라, 드라마도 해봐야 할 것 같아. 영화도. 너처럼. 그리고 너를 따라가고 싶어. 배우로서.”
우리가 웃었다. 눈물이 흘렀다.
“그래서 내가 너를 부른 거야. 축하도 하고, 내 감정도 말하고, 그리고 너한테 미안하다고도 하고 싶었어. 미안해, 민준이. 내가 너보다 먼저 입사했는데, 아무것도 못해줘서. 오히려 넌 나를 도와줬고. 그런데…”
민준은 손을 뻗었다. 테이블 위에서. 우리의 손을 찾아서.
그리고 그것을 잡았다.
“감사합니다. 우리 씨. 정말 감사합니다.”
민준이 말했다. 목소리는 작았지만, 분명했다.
“내가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말을 들으면. 하지만… 고마워요. 정말.”
우리가 손을 더 세게 쥐었다.
“너는 괜찮아. 정말 괜찮을 거야. 난 알아. 넌 배우야. 진정한 배우야.”
카페의 사람들이 그들을 봤을 수도 있었다. 손을 잡은 두 젊은이.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이 순간은 그들의 것이었다. 배우들의 순간. 침묵이 가장 크게 말하는 순간.
카페를 나온 후, 민준은 우리와 강남역 근처를 걸었다. 두 사람은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필요했다. 침묵 속에서 무언가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했다.
“미안해, 내가 대답을 못 해서.”
민준이 말했다.
“괜찮아. 너는 지금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거겠지. 그리고 그게 맞아. 넌 이제 배우가 돼야 해. 사람이 되기 전에. 그것이 이 업계야.”
우리가 말했다.
“근데 나는 준호 형도 있고, 우리 씨도 있으니까. 혼자가 아니야.”
민준이 말했다.
우리가 멈췄다. 그리고 민준을 봤다.
“너 준호 형을 좋아해?”
그 질문. 그것은 단순한 질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가 물어야 했던 질문이었다.
“아니요. 형을 존경해요.”
민준이 대답했다.
우리가 다시 걸었다.
“다행이야.”
그것만 말했다. 하지만 그 말 속에는 많은 것이 있었다.
준호와의 약속은 저녁 7시였다. 한강 공원 근처의 카페. 민준은 시간이 남아서, 그곳 근처를 걸었다.
한강이 보였다. 저녁의 한강. 물은 노을의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빨강, 주황, 분홍색. 모든 색이 섞여 있었다.
민준은 한강의 난간에 섰다. 그리고 자신의 손을 봤다. 우리가 잡았던 손. 그것은 여전히 따뜻했다.
휴대폰이 울렸다. 준호였다.
“민준이. 나 이미 카페에 왔어. 어디야?”
“지금 가요, 형. 5분이면 도착할 것 같아.”
민준이 말했다.
“응. 기다릴게.”
통화가 끝났다.
민준은 한강을 한 번 더 봤다. 그리고 걸어갔다. 준호를 향해. 그의 유일한 앵커를 향해.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우리가 있었다. 그리고 그 감정이 자신을 무엇으로 만들 것인지, 자신은 아직도 알 수 없었다.
단지 알 수 있는 것은, 자신이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위험한 것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이제 자신은 누군가를 잃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제34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