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3화: 대표와의 거리
이수진 대표의 사무실은 크지 않았다. 민준이 예상한 것보다. 창문이 크고, 서울의 한강이 보였다. 하지만 책상은 작았고, 의자도 그러했다. 마치 대표가 이곳을 주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리는 것처럼.
“민 배우. 앉아.”
이수진이 말했다. 목소리는 낮고 정확했다. 감정 없는 톤. 민준은 앞의 의자에 앉았다. 준호는 뒤로 물러섰다. 그는 이 대화에 포함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어제 촬영본을 봤다.”
이수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녀는 민준의 눈을 직접 마주치지 않았다. 대신 손에 들려 있는 태블릿을 내려놨다. 그 위에는 어제 촬영한 장면의 스크린샷이 몇 장 떠 있었다. 민준의 얼굴이 여러 번 반복되어 있었다. 다양한 표정으로. 아버지의 손을 잡았을 때의 얼굴. 눈물이 맺혔을 때의 얼굴. 입술이 떨렸을 때의 얼굴.
민준은 자신의 얼굴을 직시할 수 없었다. 거울 앞에서 우리가 했던 말을 다시 생각했다. ‘모든 배우가 그 생각을 한다. 역할을 많이 할수록, 자신의 얼굴이 뭐인지 모르게 돼.’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인 것 같았다. 태블릿 위의 얼굴이 자신의 것인지, 누군가 다른 사람의 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PD가 보고했다고 들었다. 좋은 반응이라고.”
이수진이 이어 말했다. 그녀는 여전히 민준을 직접 보지 않았다. 대신 창밖을 보고 있었다. 한강이 아침 햇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그 반짝임은 차갑고, 날카로웠다.
“감사합니다.”
민준이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는 작았다. 이 사무실의 공기가 그런 목소리를 요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넌 4년 동안 우리 회사에 있었다.”
이수진이 갑자기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네.”
“4년 동안 뭐 했나?”
그 질문은 단순해 보였지만, 매우 날카로웠다. 민준의 목이 졸렸다. 4년. 그 시간은 어디로 갔을까. 엑스트라. 조연. 거절. 또 다른 거절. 그리고 더 많은 거절. 하지만 그것을 이 사무실에서, 이 여자 앞에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최선을 다했습니다.”
민준이 말했다. 그것은 진실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거짓이었다. 왜냐하면 ‘최선’이 무엇인지 자신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수진이 마침내 민준을 직접 봤다. 그녀의 눈은 검었다. 매우 검었다. 마치 모든 빛을 빨아들이는 검음처럼. 민준은 그 눈에 자신이 투영되는 것을 느꼈다. 작고, 약하고, 불충분한 배우로서.
“넌 성준이라는 후배가 있다는 걸 알지?”
이수진이 물었다.
“네. 같은 기수입니다.”
“성준이는 넌 다르다. 그 아이는 4년 동안 이미 3개의 드라마에 나왔고, 5개의 광고에도 출연했다. 그리고 이제 2억 팔천만 원이라는 광고비를 받는 배우가 됐다. 넌?”
이수진의 목소리는 여전히 낮았지만, 무언가 냉정한 것이 스며들어 있었다. 그것은 비난이 아니었다. 더 무서운 것이었다. 그것은 사실의 진술이었다. 돌이킬 수 없는, 명확한 사실.
민준은 대답할 수 없었다. 자신의 광고비가 얼마인지 모르고 있었다. 실제로 대부분의 경우 돈을 받지 않았다. 경험을 쌓기 위해. 포트폴리오를 위해. 또는 그냥 생존하기 위해.
“하지만 어제 촬영본을 봤을 때, 나는 생각했다. 이 아이가 왜 지금까지 이렇게 낮은 위치에 있었을까. 연기력은 성준이보다 훨씬 낫다. 감정의 깊이도 다르다. 그럼 뭐가 문제였을까.”
이수진이 일어났다. 그녀는 창문 쪽으로 걸어갔다. 한강 쪽으로. 민준은 그녀의 뒷모습만 볼 수 있었다. 정장의 등. 펼쳐진 어깨. 단단한 허리. 마치 이 건물 자체가 그녀의 척추인 것처럼.
“PD가 말했다. 넌 스튜디오에서 뭔가를 드러냈다고. 아버지와의 관계를 다루면서, 자신의 상처를 다루면서, 넌 정말로 깨졌다고. 그리고 그 깨짐이 화면에 나왔다고.”
이수진이 창밖을 계속 보고 있었다.
“근데 나는 다르게 본다. 넌 깨진 게 아니라, 비로소 보여졌다. 4년 동안 넌 자신을 숨겼다. 누군가에게 보여지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숨겼다. 그리고 어제, 넌 숨기기를 멈췄다.”
그 말이 민준의 가슴에 들어왔다. 우리의 말과 비슷했지만, 다른 무언가였다. 우리는 그것을 긍정적으로 말했다. 깨짐은 필요하다고. 하지만 이수진은 그것을 단순히 사실로 진술하고 있었다. 숨기기를 멈췄다. 그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은 것처럼.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
이수진이 갑자기 민준을 향해 질문했다. 여전히 창밖을 보고 있으면서.
“죄송한데, 무슨 말씀이신지…”
“이 드라마가 성공하면, 넌 새로운 배우가 될 거다. 이번 역할로 넌 비로소 ‘사람들이 보는 배우’가 된다. 그 이후는?”
민준은 입을 열려고 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 이후? 자신은 그 이후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현재를 생존하는 것이 이미 전부였다. 내일이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미래를 계획한다는 것은 사치였다.
“넌 모르는군.”
이수진이 말했다. 그것은 질책이 아니었다. 단순한 관찰이었다.
“내가 배우였을 때, 나는 한 가지를 배웠다. 성공은 위험하다는 것. 성공은 너를 변화시킨다. 아니, 너를 파괴한다. 넌 더 이상 원래의 너가 아니게 된다. 사람들의 기대가 너를 누른다. 팬들의 사랑이 너를 가둔다. 그리고 언론의 한 마디가 너를 무너뜨린다.”
이수진이 민준을 바라봤다. 이제 그녀의 눈에는 뭔가 다른 것이 있었다. 그것은 냉정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경험이었다. 오랜 시간 연기를 해온 사람의 경험. 그리고 그 경험이 남긴 상처.
“넌 준비가 되어 있나?”
“모르겠습니다.”
민준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더 이상 거짓을 말할 힘이 없었다.
이수진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은 짧은 웃음이었지만, 그 안에는 많은 것이 들어있었다. 슬픔과 이해, 그리고 약간의 자조.
“좋아. 적어도 정직하네.”
이수진이 자신의 책상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앉았다. 이제 그녀는 민준보다 높은 위치에 있었다.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이 드라마의 방송 일정을 알아?”
“아니, 모릅니다.”
“3주 뒤. 넷플릭스 피크 타임. 목요일 저녁 8시. 그리고 그 이후로 매주 목요일마다 한 편씩 나간다. 총 8부작이다. 넌 전체 8부작의 핵심 역할을 한다.”
민준의 손가락이 떨리기 시작했다. 3주. 그리고 그 이후 8주. 자신의 얼굴이 매주 전국의 스크린에 나타날 것이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나는 너를 위해 이미 몇 가지를 준비해놨다. 다음 달에는 대형 잡지와의 화보. 그 다음 달에는 라디오 인터뷰. 그리고 드라마가 끝난 후에는 영화 오디션을 몇 개 준비 중이다. 모두 좋은 프로젝트들이다.”
이수진이 태블릿을 다시 들었다. 스크롤을 내렸다. 수십 개의 파일이 나타났다. 모두 민준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근데 하나 명심해. 이 모든 것은 이 드라마가 성공하고, 넌 계속해서 그 수준의 연기를 유지할 때만 가능하다. 만약 넌 다음 촬영에서 어제 같은 수준의 연기를 하지 못한다면, 이 모든 계획은 변할 것이다. 이해?”
“네. 감사합니다.”
민준이 대답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감사로 가득 차 있지 않았다.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수진이 엘리베이터 쪽을 향해 손으로 가리켰다. 면접은 끝이었다.
준호가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민준이 나왔을 때, 그는 즉시 말을 걸었다.
“어땠어?”
“좋은 건 같은데…”
민준이 대답했다.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갔다.
“뭔데?”
“모르겠어요.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아요.”
준호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숫자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12층에서 11층으로, 10층으로, 9층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그게 바로 성공이야.”
준호가 말했다.
“성공이 이렇게…”
민준이 말을 맺지 못했다.
“이렇게 뭐?”
“두렵습니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문이 열렸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비어있는 상자처럼 보였다.
오후 3시, 더스타 엔터테인먼트의 라커룸. 민준은 거울 앞에 다시 서 있었다. 어제와 같은 위치에서. 하지만 어제와는 다른 감정으로.
라커룸에는 우리가 있었다. 그녀는 화장을 지우고 있었다. 메이크업 리무버를 얼굴에 칠하고, 티슈로 닦아내고 있었다. 그 반복적인 동작은 마치 어떤 의식처럼 보였다.
“우리가 성공한다고 생각해?”
민준이 물었다. 거울을 보면서.
“뭐가?”
우리가 대답했다. 거울을 보지 않으면서.
“이 드라마. 우리의 연기. 모든 것.”
우리가 거울을 바라봤다. 이제 그녀의 얼굴은 거의 맨얼굴이었다. 화장이 벗겨진 얼굴. 그것은 더 어려 보였고, 동시에 더 취약해 보였다.
“성공과 실패는 우리가 결정하는 게 아니야. 그건 사람들이 결정하는 거지. 우리는 그냥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거야. 배우로서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게 전부야.”
우리가 대답했다.
“근데 대표님은 말했어요. 성공은 위험하다고.”
민준이 말했다.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은 쓸쓸한 웃음이었다.
“대표님은 배우였을 때를 말하는 거겠지. 그 시대는 지금과 다르니까. 지금은 SNS가 있고, 팬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고, 자신의 말을 직접 전할 수 있다. 그건 예전과는 다른 거야.”
“그래도 여전히 두려운데요.”
민준이 말했다.
“당연하지. 이제 넌 이전의 너가 아니야. 그것은 무섭다. 누군가에게 보여진다는 것은 언제나 무섭다. 하지만…”
우리가 말을 잠깐 멈췄다. 그녀는 거울을 통해 민준의 눈을 마주쳤다.
“하지만 넌 이미 깨졌잖아. 그래서 더 이상 깨질 게 없어.”
그 말을 들었을 때, 민준은 뭔가 웃음이 나왔다. 우리의 말은 논리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처럼 들렸다.
저녁 7시, 민준의 오피스텔. 민준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고 있었다. 천장에는 작은 물얼룩이 있었다. 몇 달 전부터 있던 그것.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신청했지만, 수리는 여전히 오지 않았다.
휴대폰이 울렸다. 준호였다. 전화가 아니라 카톡.
“민준아. 내일 카페에서 만날까? 우리랑 넷.”
네 명. 민준, 우리, 준호. 그리고 누가? 민준은 생각해봤다. 더스타에서 자신과 가까운 사람은 우리와 준호뿐이었다. 다른 사람이 있을까?
민준은 카톡을 보냈다.
“누구요?”
준호의 답장은 빨랐다.
“성준이. 걔도 이제 우리 팀이니까.”
민준의 손가락이 멈췄다. 성준이? 그 배우? 자신보다 잘나가는 그 배우? 자신을 은근히 무시하던 그 배우?
준호의 다음 카톡이 들어왔다.
“드라마 촬영은 팀 작업이야. 그리고 이제 넌 우리 팀의 일부가 됐어. 내일 봐.”
민준은 천장을 계속 봤다. 물얼룩이 여전히 거기 있었다. 변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조금씩 커지고 있을 것이었다. 모든 것이 그렇게 시작된다. 작은 균열에서. 작은 변화에서. 그리고 그것을 막을 수 없다.
휴대폰을 들었다.
“알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그 메시지를 보낸 순간, 민준은 뭔가 다가 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전의 자신이 경험해본 적 없는 무언가였다. 그것은 두려움도 아니었고, 기대도 아니었다. 그것은 단순히 변화였다. 불가피한, 돌이킬 수 없는 변화.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서울의 밤은 여전히 밝았다. 창밖에는 수천 개의 불빛이 있었다. 각각의 불빛 안에는 누군가의 삶이 있었다. 누군가의 두려움이 있었다. 누군가의 꿈이 있었다. 민준은 그 불빛들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이제는 숨을 수 없는,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불빛으로.
다음 날 오전, 카페 “스튜디오 블루”. 강남역 근처에 있는 작은 카페. 배우들이 자주 오는 곳이었다. 조용하고, 프라이버시가 보장되고, 커피가 괜찮았다.
민준이 도착했을 때, 준호는 이미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성준이도 있었다. 밝은 갈색 눈. 표백한 금발.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들었을 법한 헬스장의 흔적이 그의 팔에 남아있었다.
우리는 화장실에서 나오고 있었다. 손을 씻으면서.
“안녕, 민준이.”
성준이가 먼저 인사를 했다. 그의 목소리는 밝았다. 하지만 그 밝음 안에는 뭔가 계산이 숨어 있었다. 민준은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민준이 대답했다. 존댓말로.
성준이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은 우호적인 웃음처럼 보였다.
“뭐 이런, 존댓말이야? 우리 같은 기수잖아. 편하게 말해도 돼.”
“아, 네. 습관이…”
민준이 말했다.
“근데 너, 어제 촬영 잘했던데? 대표님이 좋아하더라. 진짜 축하해.”
성준이가 말했다. 그리고 민준의 어깨를 친구처럼 친다. 하지만 그 손가락의 압력은 친근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무언가 다른 신호였다. ‘나도 알고 있다. 그리고 나는 너를 봤다.’
우리가 테이블에 앉았다. 준호가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그런데 너 알아? 내일이 중요해.”
성준이가 말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뭐가?”
민준이 물었다.
“내일이 우리의 두 번째 촬영이야. 첫 번째는 넌 진짜 잘 했는데, 이제 문제는 그다음이야. 많은 배우들이 첫 촬영은 잘 하는데, 두 번째 촬영에서 떨어지거든. 심리적 압박 때문에. 혹은 대표의 기대 때문에. 또는…”
성준이가 말을 멈추고 민준을 바라봤다.
“또는 뭐요?”
“또는 처음이 행운이었기 때문에. 그 다음부터는 실력이 드러나거든.”
성준이가 웃었다. 그것은 친근한 웃음이었다. 하지만 민준은 알고 있었다. 그것의 진정한 의도를.
준호가 커피를 내려놨다. 그 소리는 카페의 배경음악보다 더 크게 들렸다.
“성준이, 그만해. 넌 어제 촬영을 안 했잖아.”
준호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날카로웠다.
“뭐? 나 뭐 한 거 없는데?”
성준이가 무고한 척했다.
“넌 알아. 우리는 다 안다.”
준호가 대답했다.
우리가 민준의 팔을 만졌다. 그것은 무언의 신호였다. ‘괜찮아. 신경 쓰지 마.’
민준은 성준이를 바라봤다. 그의 표백한 금발. 그의 밝은 눈. 그리고 그 눈 속의 불안감. 민준은 비로소 알았다. 성준이가 자신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내일 촬영, 잘할게요.”
민준이 말했다. 성준이를 똑바로 보면서.
“응. 그럼 화이팅이야.”
성준이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저 마셨다. 그리고 일어섰다.
“나 이만 가야 할 것 같은데. 피부 관리 약속이 있어서. 너희들은 계속 있어.”
그가 떠난 후, 테이블에는 민준, 우리, 그리고 준호만 남았다.
“저 아이, 계속 그런 식으로 나오?”
민준이 물었다.
“그래. 저 아이도 두렵거든. 넌 빠르게 올라오고 있으니까. 그리고 저 아이는 외형으로만 올라왔는데, 넌 배우로서의 실력으로 올라오고 있으니까.”
준호가 대답했다.
“그래도 좋은 일이에요?”
민준이 물었다.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좋은 일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야. 경쟁이 있는 곳이면 늘 이런 일이 있지. 중요한 건 넌 흔들리지 않는 거야. 내일 촬영에서. 그리고 그 다음 촬영에서도. 넌 이미 깨졌으니까, 더 이상 깨질 게 없다고 했잖아.”
우리가 민준의 손을 잡았다.
“넌 할 수 있어.”
카페의 배경음악이 바뀌었다. 어떤 여가수의 발라드. 가사는 들리지 않았지만, 멜로디는 슬펐다. 마치 앞으로 일어날 많은 일들을 미리 예견하는 것처럼.
민준은 창밖을 봤다. 강남역 입구.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고 있었다. 각각의 사람들이 자신의 목표를 향해 걷고 있었다. 자신의 꿈을 향해. 또는 자신의 두려움에서 도망치면서.
‘내일이 온다.’
민준이 생각했다.
‘그리고 그 다음 내일도. 그리고 또 그 다음도.’
3주 뒤, 이 모든 것이 화면에 나타날 것이었다. 자신의 얼굴이. 자신의 목소리가. 자신의 모든 것이. 그리고 그것을 멈출 수 없을 것이었다. 물얼룩처럼, 한 번 생기면 점점 커지는 그것처럼. 자신의 인생도 이제부터 돌이킬 수 없이 변할 것이었다.
우리가 여전히 자신의 손을 잡고 있었다. 준호는 새로운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평온한 장면이었다. 하지만 민준은 알고 있었다. 이것도 잠깐일 것이라는 것을. 곧 그 평온함도 깨질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카페에서 나가면서, 민준은 거울 같은 유리창에 자신의 얼굴이 비치는 것을 봤다. 거울 속의 얼굴. 그것은 여전히 누구의 얼굴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중요하지 않았다. 그것은 곧 모두의 얼굴이 될 테니까.
밤 11시, 오피스텔의 침대. 민준의 휴대폰이 울렸다. 뉴스 알림.
“배우 민준, 넷플릭스 신작 드라마에서 주목할 신인 배우로 선정. ‘차기 대표 배우가 될 것으로 예상’.”
민준은 그 뉴스를 읽고 다시 읽었다. 자신의 이름이 거기 있었다. 자신의 얼굴도. 그리고 자신의 미래도.
그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누군가는 이미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자신의 무대는 이미 준비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은 이제 거기 서야만 했다. 무대 위에서. 스포트라이트 아래에서. 모두의 눈에 띄게.
민준은 휴대폰을 내려놨다. 천장을 다시 봤다. 물얼룩이 여전히 거기 있었다. 더 커졌을까? 아니면 같은 크기일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곧 더 큰 물얼룩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들이 결국 천장 전체를 덮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민준은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왜냐하면 우리의 말이 맞았기 때문이었다.
‘너는 이미 깨졌어. 그래서 더 이상 깨질 게 없어.’
그렇다면 앞으로 올 모든 것을 견딜 수 있을 것이었다. 성공도, 실패도, 기대도, 절망도.
민준은 눈을 감았다. 내일은 촬영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은 또 다른 촬영이었다. 그리고 3주 뒤에는 모든 것이 공개될 것이었다.
‘스포트라이트: 제2막.’
그것이 자신의 이야기였다. 첫 번째 막이 막을 내린 이후, 두 번째 막이 열리려고 하고 있었다. 그리고 민준은 그 막의 주인공이 되기로 결정했다.
눈을 감은 채로, 민준은 미소를 지었다.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 스포트라이트: 제2막
## 1부: 창밖의 세계
강남역 입구. 오후 3시 47분.
민준은 카페의 창가 자리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은 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손에 들린 아메리카노는 이미 식어 있었고, 그 위에는 얇은 막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는 그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마실 생각도 없었다. 단지 들고만 있었다. 무언가를 붙잡아야 한다는 본능적인 욕구 때문에.
창밖의 세상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사람들. 수없이 많은 사람들. 그들은 마치 거대한 유기체의 세포처럼 흘러다니고 있었다. 검은색 정장을 입은 직장인들, 핑크색 쇼핑백을 들고 걸어가는 젊은 여성들, 이어폰을 꽂은 채 휴대폰 화면만 보며 걷는 청소년들, 유모차를 밀고 있는 엄마들. 모두가 자신의 방향을 향해 걷고 있었다. 정확하고 목적 있는 걸음으로.
*’각자의 목표를 향해서.’*
민준은 생각했다. 그의 눈이 한 여자를 따라갔다. 검은색 정장의 여자.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지하철 입구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뭔가 다급한 표정이 있었다. 약속 시간에 늦은 사람의 얼굴. 또는 피해야 할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는 사람의 얼굴.
*’자신의 꿈을 향해. 또는…’*
민준은 커피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몇 주 전만 해도 그런 떨림은 없었다. 그때는 모든 것이 단순했다. 단순한 꿈. 단순한 목표. 배우가 되고 싶다는, 그것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의 옆자리에 앉은 준호가 새로운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준호는 평온했다. 정말 평온했다. 그의 얼굴에는 어떤 불안도 없었다. 마치 세상의 모든 일이 자신과는 무관한 것처럼. 또는 이미 모든 것을 예상하고 있는 사람처럼.
“뭐해? 커피 안 마셔?”
준호가 물었다. 그는 민준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한 척했다. 아니면 정말로 눈치채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그냥…”
민준은 대답을 찾지 못했다.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두렵다고? 그건 너무 약해 보였다. 또는 내가 후회한다고? 그건 너무 늦었다.
준호가 민준의 손을 잡았다. 카페 테이블 위에서. 공개적인 장소에서. 그것은 그들의 관계를 정의하는 방식이었다. 조심스럽지만 단호한. 숨겨지지만 당당한.
“3주 뒤면 모든 게 나온다.”
준호가 말했다. 그것은 질문이 아니라 선언이었다.
“알아.”
민준이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는 작았다.
“그 뒤엔?”
“모르겠어.”
“두려워?”
민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준호의 손을 더 꽉 잡았다. 뜨거운 손. 살아있는 손. 현재의 손.
*’내일이 온다.’*
민준은 생각했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진리였다.
*’그리고 그 다음 내일도. 그리고 또 그 다음도. 내일은 계속 온다.’*
커피 위의 막이 점점 두꺼워지는 것처럼,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흘러갔다. 그리고 3주는 생각보다 빨리 지나갈 것이었다. 빨리 흘러가는 악몽처럼. 또는 기다려온 무언가가 드디어 도착하는 순간처럼.
창밖의 사람들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민준의 불안을 모르고 있었다. 민준의 앞으로의 삶이 바뀔 것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저 자신들의 목표를 향해 걸어갈 뿐이었다.
*’언젠가는 이 사람들이 나를 알게 될까?’*
민준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좋은 일일까? 나쁜 일일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민준은 더 창밖을 들여다봤다. 하지만 창밖의 세상은 여전히 자신의 질문에 답해주지 않았다. 그저 무심하게, 끝없이 흘러갈 뿐.
“생각 많아?”
준호가 다시 물었다.
“항상.”
민준이 대답했다.
“이제는 생각을 멈춰야 할 때야.”
“할 수 있을까?”
“모르지. 하지만 해야 할 것 같아.”
준호는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셨다. 그리고 민준을 바라봤다. 그의 눈빛은 깊었다. 마치 미래를 보고 있는 사람의 눈빛처럼.
## 2부: 거울 속의 얼굴
카페에서 나가면서, 민준은 거울처럼 반사되는 유리문에 자신의 얼굴이 비치는 것을 봤다.
그곳에 있는 것은 누구인가?
그는 자신의 얼굴을 자주 봤다. 거울에서. 휴대폰 카메라에서. 영상 클립에서. 하지만 그 얼굴이 자신의 것이라는 확신을 가진 적이 없었다. 마치 낯선 사람의 얼굴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친숙하지만 낯선. 자신의 것이지만 자신이 아닌.
유리문에 비친 얼굴은 창백해 보였다. 오후 햇빛 때문에 더욱 그래 보였다. 또는 그냥 그렇게 보일 뿐인 것일 수도 있었다. 민준은 더 이상 자신의 얼굴을 정확하게 볼 수 없었다. 그 얼굴이 곧 수백만 개의 화면에 나타날 것이라는 생각이 그의 지각을 왜곡했기 때문이었다.
*’이것도 잠깐일 거야.’*
민준은 생각했다. 그의 손가락이 유리문에 닿았다. 차갑고 단단했다.
*’이 얼굴도. 이 몸도. 이 모든 것도.’*
강남역의 거리는 저녁으로 변하고 있었다. 오후의 햇빛이 건물들 사이로 빨려 들어가고, 그 자리에는 더 차가운 황금빛이 남았다. 거리의 조명들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네온사인, LED, 형광등. 모두가 밤을 환하게 밝히기 위해 경쟁하고 있었다.
민준은 거리를 따라 걸었다. 준호는 그의 옆에 있었다. 가까우면서도 먼. 함께이면서도 따로인. 그들의 관계는 항상 그랬다.
“앞으로 이런 시간이 많지 않을 거야.”
준호가 말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민준도 알고 있었다. 촬영이 시작되면 시간은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니게 될 것이었다. 그것은 제작진의 것이 되고, 팬들의 것이 되고, 세상의 것이 될 것이었다.
“알아.”
민준이 대답했다.
“그래도 괜찮아?”
“모르겠어. 지금은 괜찮은 척할 수밖에 없어.”
그들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때로는 말보다 침묵이 더 많은 것을 말했다. 강남역의 거리에서, 저녁 하늘 아래에서, 수백 명의 낯선 사람들 속에서, 두 사람은 자신들의 침묵 속에서 살았다.
## 3부: 밤의 깨달음
밤 11시 13분. 오피스텔의 침대.
민준은 천장을 보고 있었다. 그의 휴대폰은 손에 들려 있었다. 화면은 꺼져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켜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그것은 항상 그랬다.
밤 11시 23분. 휴대폰이 울렸다.
뉴스 알림. 그는 그것을 알 수 있었다. 진동의 패턴만으로도. 문자는 길게, 뉴스 알림은 짧게. 그것은 그의 몸이 이미 학습한 신호였다.
그는 화면을 켰다. 밝은 빛이 어두운 방을 침범했다. 그의 눈이 찡그렸다. 하지만 곧 적응했다.
**“배우 민준, 넷플릭스 신작 드라마에서 주목할 신인 배우로 선정. ‘차기 대표 배우가 될 것으로 예상’.”**
그는 그 문장을 읽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의 이름이 거기 있었다. “배우 민준”. 마치 그것이 이미 확정된 사실인 것처럼. 마치 그가 이미 누군가의 눈에는 그런 사람인 것처럼.
그는 기사를 클릭했다.
*“이번 드라마는 한국 드라마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올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신인 배우 민준의 열연은 시청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업계 전문가들은 그를 ‘차기 한류 배우’로 평가하고 있다.”*
*“그의 독특한 해석과 깊이 있는 감정 표현은 캐릭터를 완벽하게 살려냈으며…”*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된다.”*
민준은 기사를 읽지 않고 있었다. 그냥 글자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단어들이 의미를 잃어버렸다. 그냥 글자일 뿐이었다. 검은색 픽셀들의 배열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 글자들이 그의 인생을 정의하고 있었다.
*’그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누군가는 이미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민준은 생각했다. 그것은 낯설고 불쾌한 감정이었다. 자신이 없는 곳에서 자신에 대해 말해지는 것. 자신의 통제 밖에서 자신의 미래가 결정되는 것.
그는 휴대폰을 내려놨다. 천장으로 돌아갔다.
물얼룩이 여전히 거기 있었다. 예전에 봤던 그 물얼룩. 이번에도 똑같은 곳에 있었다. 왼쪽 위 모서리에서 약 30센티미터 떨어진 지점. 갈색으로 변한 물의 자국.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었다. 위층의 누군가가 물을 엎질렀을 수도 있고, 지붕의 누수일 수도 있었다. 어쨌든 그것은 거기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더 커졌을까? 아니면 같은 크기일까?’*
민준은 물얼룩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시간이 지나가면서 그것이 변했다. 처음에는 동전 크기였다. 지금은 손가락 너비 정도였다. 언제나 그랬다. 눈에 띄지 않지만 끊임없이 변하는 것. 그것이 물얼룩이었다.
*’곧 더 큰 물얼룩이 생길 거야.’*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기사를 읽으면서 느꼈던 불안감이 다시 밀려왔다. 밀려오는 파도처럼. 멈출 수 없는 파도처럼.
*’그리고 그것들이 결국 천장 전체를 덮을 거야.’*
그 생각은 불쾌했다. 하지만 동시에 어떤 해방감도 있었다. 이미 모든 것이 결정된 것 같으니까. 더 이상 피할 수 없다면,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의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준호였다.
*“봤어? 뉴스.”*
“응.”
민준이 대답했다.
*“어때? 기분.”*
“모르겠어. 좋은 것 같기도 하고 두려운 것 같기도 하고.”
*“그게 정상이야. 기대와 두려움이 공존하는 게 정상이야.”*
“그럼 언제부터 하나를 선택해야 해?”
*“언제든 될 때. 아니면 영원히 둘 다 가지고 있거나.”*
민준은 준호의 말을 들었다. 그의 목소리는 침대를 통해 울려 퍼졌다. 따뜻한 목소리. 안정적인 목소리.
“지금 뭐해?”
“집에 있어. 너 생각하면서 너를 바라보고 있어.”
“난 천장을 보고 있어.”
“천장에 뭐가 있어?”
“물얼룩.”
*“…뭐?”*
“물얼룩. 점점 커지고 있어. 언젠가는 천장 전체를 덮을 거야.”
*“그건… 집주인한테 얘기해야 하는 거 아니야?”*
민준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은 자신도 예상 못한 웃음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왔다. 밤의 어둠 속에서. 천장의 물얼룩을 바라보면서.
“아, 진짜…”
그는 말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그럼 뭐가 중요해?”*
민준은 생각했다. 진짜로 뭐가 중요한가? 뉴스 기사? 물얼룩? 미래? 현재?
“모르겠어. 근데… 3주 뒤 드라마가 나올 때, 이 모든 게 변할 거야. 이 방도, 이 천장도, 이 물얼룩도. 모든 게.”
*“너도?”*
“나도.”
*“두려워?”*
“응. 하지만…”
민준은 멈췄다.
“하지만?”
*“뭔가… 이미 깨진 것 같아.”*
*“깨진?”*
“응. 이미 깨져 있어서… 더 이상 깨질 게 없는 것 같아. 그래서 아무것도 두렵지 않은 것 같기도 해.”
*“그건 위험한 생각이야.”*
“알아.”
*“그래도?”*
“그래도… 뭔가… 편해.”
전화 선 너머에서 준호의 침묵이 있었다. 그것은 불편한 침묵이 아니었다. 이해하는 침묵이었다.
*“피곤해?”*
“응.”
*“자.”*
“너도.”
*“응. 그리고 민준?”*
“뭐?”
*“이거 다 끝나고도 우린 여전히 여기 있을 거야. 이 모든 게 지나간 뒤에도.”*
민준은 준호의 말을 들었다. 그리고 믿기로 했다. 그것이 거짓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믿기로 했다. 왜냐하면 지금은 거짓이라도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알았어. 고마워.”
*“뭐하러… 자, 자.”*
통화가 끝났다.
민준은 다시 천장을 봤다. 물얼룩은 여전히 거기 있었다. 더 커지지 않았을 수도 있고, 더 커졌을 수도 있었다. 어둠 속에서는 판단하기 어려웠다.
## 4부: 새벽의 결정
밤 1시 47분.
민준은 여전히 자지 않고 있었다. 그의 눈은 열려 있었다. 하지만 무언가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열려 있을 뿐이었다. 마치 시체의 눈처럼.
그의 머릿속은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3주 뒤면 모든 게 나온다.’*
그것은 준호의 말이었다. 또는 그 자신의 생각이었다. 어차피 구분할 필요는 없었다. 그들의 생각은 이미 겹쳐 있었다.
*’그 뒤엔?’*
그것은 미지의 영역이었다. 그 이후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다. 성공이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