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제2막 – 제22화: 그 이후의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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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2화: 그 이후의 침묵

민준의 휴대폰이 울렸다. 카톡 알림음. 아침 일곱 시, 오피스텔의 어둑한 침대에서. 그는 눈을 뜨지 않고 손을 뻗어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화면은 밝았다. 너무 밝아서 망막이 타는 듯했다.

메시지는 준호였다.

“민준아. 잘 잤나? 9시에 회사 와. 이수진 대표님이 너를 보고 싶대. 긴장하지 말고.”

민준은 메시지를 읽은 뒤 다시 눈을 감았다. 긴장하지 말라니. 그것은 이미 불가능한 요청이었다. 자신의 심장이 이미 가슴팍에서 소리를 내고 있었다. 둔탁하고, 불규칙한 소리.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갈비뼈를 두드리고 있는 것 같은 소리.

침대에서 일어나는 데 십 분이 걸렸다. 다리가 무거웠다. 아직도. 어제의 무게가 남아있었다. 옥상에서, 거울 앞에서, 그리고 그 이후의 침묵 속에서.

오피스텔의 욕실은 좁았다. 손을 들면 반대쪽 벽에 닿을 수 있을 정도. 샤워를 하면서 민준은 자신의 몸을 보지 않으려고 했다. 거울처럼. 자신의 얼굴을 보는 것이 두려웠다. 어제의 그 얼굴이 아직도 거기 있을까봐. 아버지의 손을 잡았던 그 얼굴이.

뜨거운 물이 어깨를 적시고 있었다. 수증기가 욕실을 채웠다. 민준은 눈을 감고 물이 자신을 씻어내가기를 기원했다. 어제의 모든 것을 .

하지만 물은 그것을 할 수 없었다.


더스타 엔터테인먼트는 아침 아홉 시에는 이미 분주했다. 로비에 들어섰을 때, 민준은 스튜디오를 촬영 중인 배우들을 볼 수 있었다. 창 너머로. 강한 조명 아래에서, 배우들이 자신의 감정을 연기하고 있었다. 마치 어제의 민준이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마치 계속 같은 방식으로, 같은 강도로, 같은 거짓으로 연기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준호가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커피를 들고. 아메리카노. 민준이 마시는 그것. 준호가 자신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민준은 여전히 놀랐다. 4년 동안 같은 회사에 있었지만, 3일 전까지 두 사람이 한 번 이상 말을 나눈 적이 없었다는 것이 이상했다.

“안녕.”

준호가 말했다. 목소리는 낮았다. 로비의 다른 배우들을 신경 쓰지 않기 위해 일부러 낮춘 것 같았다. 연예계의 기본 규칙. 남의 비즈니스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 아니, 신경 쓰는 척하지 않는다.

“감사합니다.”

민준이 커피를 받으며 말했다. 존댓말이 자동으로 튀어나왔다. 감정이 충분하지 않을 때, 민준은 항상 더 높은 경어를 사용했다. 자신의 불안감을 가리기 위해.

“대표님이 어떤 심정인지 알아? 대체로 좋은 신호야. 어제 촬영본을 본 거 같은데, 반응이 좋았다고 해. PD가 직접 대표님한테 보고했대.”

준호가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으면서 말했다. 민준이 옆에서 따라갔다. 준호의 보폭이 크고 안정적이었다. 마치 이 길을 수백 번을 걸어온 사람처럼.

“그래요?”

민준이 대답했다. 하지만 그 대답에는 기쁨이 없었다. 단지 확인일 뿐이었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을 확인하는 것. 또는 알고 싶지 않던 사실을 마주하는 것.

“우리가 너한테 말한 대로, 배우는 깨져야 돼. 그리고 넌 깨졌어. 화면에 그게 나온 거야.”

준호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숫자 12. 대표실이 있는 층.

“근데 그게 좋은 건가요?”

민준이 물었다. 엘리베이터가 올라가고 있었다. 1층, 2층, 3층. 숫자들이 점점 커졌다.

“지금은 그래. 이 드라마가 성공하면, 넌 새로운 배우로 인식될 거야. 깨진 배우로. 진정성 있는 배우로. 그게 넌 원했던 거 아니야? 누군가에게 보여지고 싶다는 것. 넌 이제 보여졌어.”

준호의 목소리에는 뭔가 감정이 섞여 있었다. 축하가 아니었다. 더 복잡한 뭔가였다. 이해. 그리고 약간의 시기.

엘리베이터가 12층에 멈췄다.


이수진 대표의 사무실은 크지 않았다. 민준이 예상한 것보다. 창문이 크고, 서울의 한강이 보였다. 하지만 책상은 작았고, 의자도 그러했다. 마치 대표가 이곳을 주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리는 것처럼.

“민 배우. 앉아.”

이수진이 말했다. 목소리는 낮고 정확했다. 감정 없는 톤. 민준은 앞의 의자에 앉았다. 준호는 뒤로 물러섰다. 그는 이 대화에 포함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어제 촬영 어땠어?”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했습니다.”

민준이 대답했다.

“그게 뭐 하는 말이야? 배우가 ‘최선을 다했다’고? 배우는 최선을 다하는 게 당연한 거고, 중요한 건 그 결과야. 화면에 뭐가 나왔냐는 거야.”

이수진이 민준을 바라봤다. 그 시선은 예리했다. 마치 자신이 배우의 내부를 들여다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처럼.

민준은 답변을 하지 않았다. 무엇을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좋은 게 나왔어. PD가 극찬했어. 너는 그 장면에서 연기하는 게 아니라 그냥 존재했다고. 마치 그 인물이 정말로 거기 있는 것처럼. 그게 정말로 일어나고 있는 일처럼. 그런 배우는 드물어.”

이수진이 책상에 손을 얹었다. 손가락이 가늘었다. 마치 피아니스트의 손처럼.

“고마워요.”

민준이 말했다.

“고마워하지 말고 계속 그 수준을 유지해. 이게 한 번의 운이 아니라, 너의 진짜 실력이라는 걸 보여줘야 해. 지금 모두가 너를 주목하고 있어. PD, 제작사, 방송국. 모두가. 그 압박감 속에서 넌 또 다시 그 수준의 연기를 할 수 있겠어?”

이수진의 질문은 친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명령에 가까웠다.

민준은 이수진의 눈을 마주쳤다. 처음으로. 그 눈에는 뭔가 있었다. 기대. 그리고 의심. 마치 그녀도 이 배우의 진실성을 믿지 않으면서, 동시에 믿고 싶어 하는 것처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민준이 대답했다.

“약속해.”

“네. 약속합니다.”

이수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대화의 끝이라는 신호였다. 민준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준호도 따라 일어섰다.

문을 나가려고 했을 때, 이수진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너는 왜 배우가 됐어?”

민준이 돌아봤다. 이수진은 창밖을 보고 있었다. 한강을 보고 있었다.

“음… 잘 모르겠습니다.”

민준이 대답했다. 그것이 진실이었다.

“알아낼 거야. 늦지 않으면 좋겠지. 좋은 배우들은 다 그걸 알아.”

이수진이 말했다.


사무실을 나온 뒤, 준호와 민준은 옥상으로 올라갔다. 어제의 그 장소. 난간이 있는 곳. 하지만 이번에는 우리가 없었다. 다만 두 명의 배우만이 있었다.

“어떻게 돼?”

준호가 물었다.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민준은 담배 연기를 싫어했지만, 이 순간에는 그 연기가 필요하게 느껴졌다. 뭔가를 가리는 것. 뭔가를 흐릿하게 하는 것.

“모르겠어요. 두려워요.”

민준이 대답했다. 그 말이 입에서 나온 순간, 뭔가가 가슴을 꾹 눌렀다. 자신의 마음을 누군가에게 드러내는 것. 그것은 여전히 어색했다.

“두려움은 좋은 거야. 두려움이 없으면 배우는 자만해. 자만한 배우는 죽어.”

준호가 담배를 깊게 들이마셨다. 연기가 그의 입에서 나왔다. 천천히.

“형은 두려워요?”

민준이 물었다.

준호가 웃었다. 그것은 진심의 웃음이 아니었다. 더 정확하게는, 진심이지만 다른 감정과 섞여 있는 웃음이었다.

“나는 두려움을 넘어선 지 오래야. 이제 내가 두려워하는 건 두려움이 없다는 거야. 내가 언제부터 아무것도 안 무서워하기 시작했는지, 그게 두려워.”

준호가 담배를 손가락으로 굴렸다. 재가 아래로 떨어졌다.

“형은 몇 살 때부터 배우였어요?”

“26살. 넌?”

“23살.”

“그럼 넌 아직도 배울 수 있어. 나는… 나는 모르겠어. 가르치는 것 빼고는.”

준호가 다시 담배를 피웠다.

민준은 준호를 바라봤다. 34살의 배우. 8년 경력. 드라마에서 몇 번은 주인공이 될 뻔했지만, 결국 2번 주인공으로 남아있는 배우. 그 배우의 눈에는 뭔가 없었다. 광택. 생명력. 마치 누군가가 그 안의 무언가를 빨아내버린 것처럼.

“형이 만약… 새로운 역할이 온다면? 제가 몰라봤던 종류의 역할?”

민준이 물었다.

준호가 담배를 내려놨다. 그의 눈이 민준을 바라봤다. 그 눈에는 갑자기 뭔가가 살아났다. 분노. 아니, 절망.

“그건 이미 늦었어. 나는 이 나이에, 이 경력에서는 변할 수 없어. 사람들은 나를 이미 정의했거든. ‘착한 남자 배우’. ‘2번 주인공 배우’. 그걸로 끝이야.”

준호의 목소리가 떨렸다. 처음으로, 민준은 준호의 진짜 목소리를 들었다.

“그럼 할 수 없어요?”

“할 수 있고 말고. 하지만 아무도 나를 새로운 배우로 안 봐. 그게 이 업계의 현실이야. 한 번 정의되면, 그게 영원해.”

준호가 담배를 다 피웠다. 손가락으로 불을 끄려고 했다. 하지만 불이 여전히 타고 있었다.

민준은 한 발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준호의 손을 잡았다. 담배를 든 손. 그것은 자연스러운 행동이 아니었다. 배우들은 서로를 이렇게 만지지 않았다. 특히 같은 성별의 배우들은 더욱.

하지만 이 순간에는 그것이 필요했다. 손의 온기. 누군가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 혼자가 아니라는 것.

“형은 아직도 할 수 있어요. 나 봐요. 어제 저는 거울을 봤어요. 제 얼굴을 못 봤어요. 근데 형은… 형은 제 얼굴을 봐줬어요. 그리고 우리가 저를 봐줬어요. 그게 뭔가를 바꾸는 거 아닌가요?”

민준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확신이 있었다.

준호가 민준의 손을 바라봤다. 그 손이 자신의 손을 잡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빠져가는 강물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잡아주는 것처럼.

“알 수도 있지.”

준호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가 다시 돌아왔다. 원래의 톤.


오후 세 시, 라커룸에서 민준은 우리를 만났다. 그녀는 거울 앞에 서 있었다. 어제처럼. 하지만 이번에는 자신을 보지 않고, 누군가를 찾고 있는 것 같았다.

“안녕.”

민준이 말했다.

우리가 돌아봤다. 그녀의 얼굴에는 뭔가가 있었다. 어제와 다른 감정. 불안감이 덜했다. 대신 뭔가 단단한 것이 생겼다. 결정력. 아니면 절망. 그 둘 사이의 어떤 것.

“너 대표님 만났어?”

“네. 좋은 반응이 나왔다고.”

“알았어. 나도 준호 형이랑 얘기했어. 우리 셋 다 뭔가 바뀌고 있는 것 같아.”

우리가 거울에서 떨어졌다.

“뭐가 바뀌고 있어요?”

민준이 물었다.

“모르겠어. 근데 깨짐이 계속된다는 건 알겠어. 너는 어제 깨졌고, 준호 형은 오래전부터 깨져 있었고, 나도… 나도 뭔가 깨지고 있어.”

우리가 민준을 바라봤다.

“뭐가 깨져요?”

“내가 충분해야 한다는 생각. 나는 지금까지 너무 많은 사람을 위해 살았어. 엄마, 아빠, 형, 그리고 이 업계의 모든 사람들. 근데 나는 누구를 위해 살고 있는 거야? 그 생각이 들었어. 어제 너를 봤을 때.”

우리의 목소리가 떨렸다.

“어제 제가 뭘 했어요?”

민준이 물었다.

“넌 아무것도 안 했어. 그냥 있었어. 너 자신의 아픔 속에서, 너 자신의 공포 속에서, 너는 그냥 있었어. 거짓 없이. 그것만으로 충분했어.”

우리가 말했다.

라커룸에는 두 명의 배우가 있었다. 거울을 사이에 두고. 하지만 거울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대신 둘 사이의 공기가 중요해 보였다. 그 공기 속의 이해. 그 공기 속의 인정.

“우리, 고마워요.”

민준이 말했다.

“감사하지 말아. 넌 나한테도 줬어. 약간의 용기를.”

우리가 대답했다.


저녁 여섯 시, 민준은 혼자 오피스텔로 돌아갔다. 계단을 올라가면서, 그는 자신의 발걸음을 들었다. 딛는 소리. 그 소리가 계단에 울렸다. 빈 건물에서. 마치 누군가가 자신을 따라오는 것처럼. 하지만 따라오는 것은 자신의 그림자일 뿐이었다.

오피스텔의 작은 방. 침대, 책상, 그리고 거울이 없는 욕실. 민준은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무언가 갈라진 선이 있었다. 아마 예전 세입자가 만든 흠집일 것이었다. 또는 건설 과정에서 생긴 것일 수도 있었다.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SNS를 켰다. 자신의 계정은 거의 활동이 없었다. 팔로워도 적었다. 하지만 댓글은 새로 달려 있었다. 넷플릭스 드라마의 공식 계정에서.

“어제 촬영분 봤는데, 이 배우 뉘 배우야? 진짜 연기 미쳤다.”

다른 댓글도 있었다.

“이 배우 찾는데 이름이 민준이라고? 팔로우 했어. 다음 에피소드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

민준은 댓글을 읽었다. 그리고 계속 읽었다. 한 시간, 두 시간. 수백 개의 댓글. 모두가 자신을 찾고 있었다. 아니, 자신의 역할을 찾고 있었다. 자신이 아니라, 그 캐릭터를. 자신이 거기에 있었던 아버지를 애도했던 그 역할을.

민준은 휴대폰을 내려놨다. 천장의 갈라진 선을 다시 봤다. 그 선이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깨짐. 그리고 그 깨짐 속에서 새로운 빛이 들어온다는 것.

윈도우창 밖으로는 서울의 야경이 보였다. 밤의 서울. 수백만 개의 불빛. 각각의 불빛 뒤에는 누군가가 있었다. 누군가의 희망. 누군가의 절망. 누군가의 깨짐.

민준은 자신의 손을 들어 올렸다. 어제처럼 떨리지 않았다. 대신 다른 감정이 있었다. 책임감. 누군가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감정. 누군가를 위해 깨져야 한다는 감정.

그의 입술이 움직였다. 혼잣말이었다.

“다음은 무엇인가.”

그것은 질문이 아니라, 선언이었다.

다음 날 아침, 민준은 준호와 우리로부터 카톡을 받았다.

준호: “PD가 다시 촬영하고 싶대. 너를. 더 큰 장면으로. 내일부터 대본 받을 거야.”

우리: “축하해. 근데 이제 진짜가 시작되는 거야. 더 깨져야 한다는 거. 괜찮아?”

민준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 거울 앞에 섰다. 이번에는 자신의 얼굴을 봤다. 어제의 그 얼굴. 아버지의 손을 잡았던 그 얼굴. 아직도 거기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얼굴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얼굴이 누군가 다른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그것이 자신의 얼굴이었다.

# 깨짐과 빛

## 1부: 감사와 용기

“우리, 고마워요.”

민준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약간 떨리고 있었다. 어제 촬영장에서의 감정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탓이었다. 가슴 한구석에는 아직도 뜨거운 무언가가 남아 있었다. 아버지를 연기했던 배우의 손을 잡았을 때의 감촉, 카메라 너머 감독의 눈빛, 그리고 그 모든 것 속에서 느껴지던 자신의 진정한 감정들이.

우리는 민준의 얼굴을 바라봤다. 햇살이 그의 얼굴 한쪽을 비추고 있었다. 그 빛 속에서 우리는 어제 촬영장에서 본 배우가 아닌, 진짜 민준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그가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감사하지 말아. 넌 나한테도 줬어. 약간의 용기를.”

우리가 대답했다. 그 말은 진심이었다. 사실 우리도 이 과정에서 변해 있었다. 민준의 떨리는 손을 잡으며 함께 촬영장으로 들어갔을 때, 우리는 자신이 누군가를 지탱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이 주는 책임감과 동시에, 그것이 주는 기쁨도 함께 느끼고 있었다.

두 사람은 잠시 말없이 서 있었다. 그들 사이의 침묵은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이해의 침묵이었다.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두 사람이 함께 경험한 무언가를 공유하는 침묵.

“이제 넌 유명해졌어. SNS에서도 얘기 많던데.”

우리가 웃으며 말했다.

“그런 건 아직 실감이 안 나. 그냥… 이상한 기분이야.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이 내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 같은.”

민준이 답했다. 그의 시선은 멀리 어딘가를 향하고 있었다. 우리는 민준이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연기와 현실의 경계, 그 사이에서 자기 자신이 어디 있는지에 대한 혼란.

“하지만 그건 넌 아니야. 그건 네가 만든 거야. 네 노력이 만든 거.”

우리가 말을 이었다.

“응. 알아. 그런데 그 사람이… 내 안에 남아 있는 것 같아. 계속.”

민준이 가슴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여전히 아버지를 잃은 아들의 슬픔이 남아 있었다. 연기로 인해 불러 일으켜진 감정이지만, 이제 그것은 민준 자신의 감정이 되어 있었다.

“그럼 그걸 가져가. 그게 넌 커지는 거야.”

우리가 말했다. 그리고 민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 손의 온기를 통해 무언가가 전달되는 듯했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 함께라는 것, 그리고 계속 나아갈 수 있다는 것.

## 2부: 귀로

저녁 여섯 시, 민준은 혼자 오피스텔로 돌아갔다.

그가 택시에서 내려 계단을 올라가면서, 자신의 발걸음을 들었다. 딛는 소리. 한 계단, 한 계단마다 울려 퍼지는 그 소리. 그 소리가 빈 계단에서 계속 울렸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을 따라오는 것처럼. 민준은 뒤를 돌아봤지만, 거기엔 아무도 없었다. 오직 자신의 그림자만이 계단 위에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림자는 민준보다 더 크게 보였다. 오후의 햇살이 점점 낮아지면서, 그림자는 점점 더 길어지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내면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오피스텔의 문을 열었다. 열쇠가 자물쇠에 들어갈 때의 금속음. 그 소리도 유독 크게 들렸다. 마치 세상의 모든 소리가 증폭되어 들리는 기분이었다.

작은 방. 침대, 책상, 그리고 거울이 없는 욕실. 그것이 민준의 전부였다. 그는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바라봤다.

천장에는 갈라진 선이 있었다. 길게 뻗어 있는 그 선. 아마 예전 세입자가 만든 흠집일 것이었다. 또는 건설 과정에서 생긴 것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이 건물이 오래되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균열일지도. 민준은 그 선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내면을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자신도 그런 균열들로 가득 차 있었다. 보이지 않을 뿐.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손가락이 화면을 터치했다. SNS 앱이 열렸다. 자신의 계정. 거의 활동이 없는 계정이었다. 팔로워도 적었다. 몇 개월 전만 해도 자신은 누구에게도 관심 받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댓글은 새로 달려 있었다. 수십 개, 아니 수백 개의 댓글. 거의 모두가 자신을 언급하고 있었다.

넷플릭스 드라마의 공식 계정에 달린 댓글을 읽었다:

“어제 촬영분 봤는데, 이 배우 뉘 배우야? 진짜 연기 미쳤다.”

그 아래에는 또 다른 댓글:

“이 배우 찾는데 이름이 민준이라고? 팔로우 했어. 다음 에피소드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또 다른 댓글들:

“배우 민준 어디서 봤는데… 암튼 진짜 좋아. 더 나왔으면 좋겠어.”

“이 장면 진짜 울었어. 배우가 뭔가 느껴지는 게 있어. 진짜로.”

“민준 배우 인스타 팔로우 했는데 활동이 거의 없네? 왜지? 더 자주 올려 줘.”

민준은 계속 읽었다.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났다. 수백 개의 댓글을 모두 읽었다. 아니, 같은 댓글을 반복해서 읽었다. 마치 그것이 정말로 자신에 대한 것인지 확인하려는 듯이.

모두가 자신을 찾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자신의 역할을 찾고 있었다. 자신이 아니라, 그 캐릭터를. 자신이 거기에 있었던 아버지를 애도했던 그 역할을. 거리 한복판에서 무릎을 꿇고 울었던 그 아들을.

그런데 그 역할이 자신의 내면에서 나온 것이라면? 그렇다면 그것도 자신의 일부가 아닌가?

민준은 휴대폰을 내려놨다. 손이 약간 떨렸다. 그 떨림은 흥분 때문인지, 두려움 때문인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천장의 갈라진 선을 다시 봤다.

그 선이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깨짐. 그리고 그 깨짐 속에서 새로운 빛이 들어온다는 것. 마치 금(金)으로 이음새를 메운 도자기처럼. 깨져 있지만, 그 깨짐이 더 아름답게 만드는 것.

## 3부: 야경의 의미

윈도우창 밖으로는 서울의 야경이 보였다.

밤의 서울. 수백만 개의 불빛. 불빛들은 마치 수백만 개의 심장처럼 뛰고 있었다. 각각의 불빛 뒤에는 누군가가 있었다. 누군가의 희망. 누군가의 절망. 누군가의 꿈. 누군가의 깨짐.

민준은 그 야경을 바라봤다. 그리고 생각했다. 저 모든 불빛 속에는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현실에 갇혀 있는 사람들. 하지만 동시에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사람들.

자신은 운이 좋았다. 기회가 찾아왔다. 무대가 주어졌다. 그리고 그 무대에서 자신의 진정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저 야경 속의 모든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싶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자신을 알리고 싶을 것이다. 자신이 여기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것이다.

그 생각이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었다.

민준은 자신의 손을 들어 올렸다.

어제처럼 떨리지 않았다. 아니, 다르게 떨리고 있었다. 어제의 떨림은 공포의 떨림이었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 하지만 지금의 떨림은 다른 종류였다.

책임감의 떨림. 누군가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감정. 누군가를 위해 깨져야 한다는 감정.

자신의 손을 계속 바라봤다. 그 손은 영화 속에서 아버지의 손을 잡았던 손이다. 그 손은 우리의 손을 잡았던 손이다. 그 손은 자신의 가슴을 치며 눈물을 흘렸던 손이다.

그 손이 이제는 누군가를 안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누군가의 길을 밝혀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의 입술이 움직였다. 혼잣말이었다.

“다음은 무엇인가.”

그것은 질문이 아니라, 선언이었다. 마치 자신에게 하는 약속처럼. 또는 자신 안에 있는 그 캐릭터에게 하는 말처럼.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다는 선언. 더 이상 도망칠 수 없다는 선언. 그리고 더 깊이 들어가겠다는 선언.

## 4부: 새로운 시작

다음 날 아침, 민준이 눈을 뜬 것은 햇살 때문이었다.

창문 사이로 밀어닥치는 햇살이 그의 얼굴을 쓸어갔다. 새벽부터 뒹굴던 그는 이제 완전히 깨어 있었다. 어제의 생각들이 다시 떠올랐다. 야경 위의 그 손, 그 선언.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알림이 여러 개 있었다.

준호로부터의 메시지:

“PD가 다시 촬영하고 싶대. 너를. 더 큰 장면으로. 내일부터 대본 받을 거야. 축하한다. 진짜.”

그 메시지를 읽고 몇 초간 멈췄다. 다시 읽었다. 또 다시 읽었다. 더 큰 장면. 그것은 또 다른 도전을 의미했다. 또 다른 깨짐을 의미했다.

우리로부터의 메시지:

“축하해. 근데 이제 진짜가 시작되는 거야. 더 깨져야 한다는 거. 괜찮아?”

민준은 메시지를 읽고 웃음이 나왔다. 우리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정확히 같은 것을 말했다. 마치 마음을 읽은 것처럼.

그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 침대에서 일어나 거울 앞에 섰다.

이 오피스텔 방에는 거울이 없었다. 욕실에만 있었다. 그 거울은 작고 낡았다. 하지만 충분했다.

거울 속의 자신을 봤다. 이번에는 어제의 그 배우 민준이 아니었다. 단순히 촬영장에 있었던 그 캐릭터도 아니었다.

거기에 있는 것은 어제 아버지의 손을 잡았던 그 얼굴이었다. 그 얼굴은 여전히 울음이 남아 있는 얼굴이었다. 눈 주변은 약간 붓고 있었다. 어젯밤 울었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 얼굴에는 동시에 무언가 다른 것도 있었다.

결연함. 또는 깨달음. 또는 새로운 책임감.

“이게… 내 얼굴이구나.”

민준이 중얼거렸다.

어제까지는 자신의 얼굴을 보는 것이 낯설었다. 마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얼굴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연기 때문에, 그리고 그 연기 이후의 혼란 때문에, 자신이 누구인지 불명확했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그 얼굴은 누군가 다른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얼굴이었다. 모든 상처가 있는, 모든 눈물이 묻어 있는, 모든 감정이 새겨져 있는 자신의 얼굴.

그리고 그 얼굴이 아름다웠다.

## 5부: 선택

민준은 거울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창밖의 햇살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민준은 그 변화를 느끼지 못했다. 거울 속 자신과의 대면에 모든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 깨져야 한다는 거.”

우리의 말을 다시 생각해 봤다.

더 깨진다는 것.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더 많이 상처받는다는 뜻인가? 더 많이 울어야 한다는 뜻인가? 또는 자신의 내면을 더 깊이 파고들어가야 한다는 뜻인가?

아마 모두 맞을 것이다. 배우가 되려면, 특히 진정성 있는 배우가 되려면, 자신의 내면을 계속 파고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계속 깨져야 한다. 깨진 부분을 통해서 더 진실된 감정이 흘러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민준은 손을 들어 거울에 닿게 했다. 거울 속 자신의 손도 똑같이 움직였다. 마치 자신과 악수하는 것처럼.

“알겠어. 더 깨지겠어. 그리고 그 깨짐이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도록.”

거울 속 자신이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또는 자신이 거울 속 자신에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 6부: 새로운 메시지

휴대폰의 알림음이 울렸다.

또 다른 메시지가 들어왔다. 이번에는 감독으로부터였다. 감독의 연락처는 민준의 휴대폰에 어제 저장되었다.

“민준 씨, 정말 멋진 연기였습니다. 당신의 진정성이 화면에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내일 오피스에 와서 새로운 대본을 받아가세요. 더 큰 역할입니다. 더 어려운 역할입니다. 하지만 당신이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대하겠습니다.”

민준은 그 메시지를 읽으며 심호흡을 했다. 가슴이 철렁하면서 동시에 고동쳤다. 두려움과 설렘이 동시에 찾아왔다.

“더 어려운 역할.”

그 말이 자꾸만 반복되었다. 자신이 할 수 있을까? 어제처럼 또 깨져야 할까? 더 깊이 깨져야 할까?

하지만 동시에 자신은 알고 있었다. 그 두려움이 자신을 앞으로 나아가게 할 것이라는 것을. 그 두려움이 자신을 더 진정한 배우로 만들 것이라는 것을.

## 7부: 아침의 결심

민준은 다시 침대에 누웠다.

천장의 갈라진 선을 다시 봤다. 오늘은 그 선이 다르게 보였다. 어제는 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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