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71화: 거울 속의 거짓
민준은 영화 세트에서 눈을 떴다. 메이크업 의자의 냄새, 바셀린과 파운데이션의 향이 코를 찔렀다. 그의 몸은 의자에 앉아 있었고, 얼굴에는 누군가의 손이 터치하고 있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손은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일상적인 온도로 느껴졌다. 손가락들이 파운데이션을 펴바르며 그의 피부를 쓸어가는 감촉이 있었다.
“얼굴이 창백하네요.”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목소리는 밝고 경쾌했다. 그녀는 이런 말을 하루에 몇 번이나 했을 것이다. 그녀의 말은 공기 중의 불안감을 떨쳐내기 위해 하는 것처럼 들렸다. “요즘 스트레스 받으세요?”
민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거울을 보며, 거울 속의 얼굴은 자신의 얼굴이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는 자신의 얼굴이었지만, 동시에 아니었다. 그것은 민준이라는 이름을 가진 누군가의 얼굴이었고, 동시에 영화에서 살아갈 누군가의 얼굴이었다. 두 개의 얼굴이 겹쳐져 있었다. 어느 것이 진짜인지 더 이상 구분할 수 없었다. 그의 눈은 거울 속의 눈을 마주쳤고, 그 눈은 그의 눈과 같은 색이었지만, 다른 빛을 발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계속했다. 콘실러로 눈 아래의 검은 자국을 덮었다. 잠을 못 자는 흔적들. 밤새 천장의 곰팡이 지도를 세고 있던 시간들. 그것들이 사라졌다. 파운데이션 층 아래로. 메이크업이라는 것은 기가 막힌 발명이었다. 진실을 덮는 것. 그게 전부였다. 민준은 그 발명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알았다. 진실을 감추는 것은 얼마나 쉽고, 얼마나 위험한가.
“좋아요. 이제 눈 메이크업 들어갈게요.”
민준은 눈을 감았다. 어둠이 찾아왔다. 그 어둠 속에서 그는 준호의 목소리를 들었다. 카페에서의 목소리. 차갑고, 절망적이고, 명령조였다. “민준이, 넌 뭐가 필요한 거야?” 그 질문은 아직도 그의 뇌에 박혀 있었다. 마치 못처럼. 그의 심장은 아직도 그 목소리에 반응했다. 그의 손은 아직도 그 질문의 중량을感じ고 있었다.
눈을 뜨니, 아이섀도를 칠하고 있었다. 청회색. 차분한 색이었다. 슬픔을 연기하기 좋은 색. 아니, 슬픔을 숨기기 좋은 색이었다. 메이크업은 또 다른 연기였다. 얼굴 위에 그려지는 거짓. 민준은 그 색이 그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지 궁금했다. 그가 슬픔을 표현할 수 있을까? 슬픔을 감출 수 있을까?
“PD님이 이 씬에서 좀 더 무거운 표정을 원하신대요.”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말했다. “감정이 많이 드러나는 느낌으로요.”
민준의 입꼬리가 움직였다. 그것을 웃음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아니었다. 그저 근육의 수축이었다. 감정 없는 움직임. 연기 없는 연기. 그의 몸은 아직도 그 무게를感じ고 있었다. 그의 마음은 아직도 그 질문의 중량을 느끼고 있었다.
세트로 나가는 복도는 길었다. 화이트 벽에 스튜디오 조명이 반사되고 있었다. 영화 세트는 항상 낮처럼 밝았다. 햇빛이 인공으로 만들어진 공간. 자연을 완벽하게 모방한 거짓. 민준은 그 복도를 걸으며, 자신이 지옥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지옥은 밝고 따뜻했다. 그의 발소리는 복도의 유리 바닥에 반사되었다. 그의 심장은 아직도 그의 몸에 반응하고 있었다.
“민준 형, 컨디션 어때?”
누군가가 뒤에서 말했다. 민준은 돌아봤다. 배우. 이름은 태현. 서른 정도 되는 배우. 이 영화에서 그의 아버지 역을 하는 사람. 착한 얼굴. 진정성 있는 미소. 하지만 눈은 계산적이었다. 연기하는 눈이었다. 항상.
“괜찮습니다.”
“아, 그래? 너는 항상 괜찮대.” 태현이 웃었다. 따뜻한 웃음처럼 들렸다. 하지만 민준은 그 웃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다. ‘넌 너무 조용하다’는 뜻이었다. ‘넌 읽기가 힘들다’는 뜻이었다. ‘넌 뭔가 숨기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것이 정확했다. 민준은 그 사실을 알았다. 그는 아직도 그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 그의 몸은 아직도 그 무게를 느끼고 있었다. 그의 마음은 아직도 그 질문의 중량을 느끼고 있었다.
세트는 거실이었다. 어떤 가정의 거실. 파스텔 톤의 소파, 창문을 통해 흘러드는 인공 햇빛, 벽에 붙은 가족 사진들. 모두 거짓이었다. 실제로는 한 번도 존재한 적 없는 가정. 그런데 그 거짓이 너무나 설득력 있었다. 민준은 그 거실에 서 있으면서, 이것이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반지하 방보다. 천장의 곰팡이 지도보다. 이 가짜 집이 더 진정성 있었다. 그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는 아직도 진실을 찾고 있었다.
“첫 번째 테이크. 준비됐나?”
PD 박미라가 말했다. 여자. 오십대 초반. 머리는 회색으로 물들어 있었고, 눈은 매서웠다. 그녀의 눈은 배우들의 거짓을 보는 눈이었다. 아니, 거짓을 요구하는 눈이었다. 진정성 있는 거짓. 그것이 영화였다.
“네.”
“이 씬은 너와 태현이가 오랜만에 만나는 장면이야. 넌 아버지를 보고 뭘 느껴야 해? 미안함? 죄책감? 사랑? 뭘 선택할 거야?”
민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 모든 감정이 동시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를 선택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아무 감정도 선택하지 않기로 했다. 그는 아직도 그 감정을 찾고 있었다. 그는 아직도 그 진실을 찾고 있었다.
“그냥… 있는 그대로 해볼게요.”
“있는 그대로?” PD가 눈을 좁혔다. “넌 있는 그대로 뭐야?”
그 질문이 맞았다. 정확한 질문이었다. 민준은 누구인가? 준호의 카페에서 무너진 사람? 아니면 지금 여기서 서 있는 배우? 아니면 그 둘 사이의 어딘가? 그 질문에 대한 答을 그는 알지 못했다. 그는 아직도 그 질문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롤링.”
촬영이 시작됐다.
민준은 거실 문으로 들어왔다. 느리게. 마치 처음 그 집에 발을 디디는 것처럼. 태현은 소파에 앉아 있었다. 신문을 읽고 있는 척. 연기하는 척. 모든 것이 연기였다. 이 영화라는 무대 위에서. 민준은 그 사실을 알았다. 그는 아직도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버지.”
민준의 목소리는 나왔다. 자신의 목소리인지, 캐릭터의 목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그것은 그 사이의 어딘가였다. 중간의 목소리. 중간의 존재.
태현이 신문을 내렸다. 천천히. 마치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신문지인 것처럼. 연기하는 무게. 그것을 보는 민준의 눈이 흔들렸다. 그의 심장은 아직도 그의 몸에 반응하고 있었다. 그의 마음은 아직도 그 질문의 중량을 느끼고 있었다.
“오래간만이다.”
태현의 목소리. 따뜻했다. 아버지의 목소리. 그런데 민준의 아버지는 이렇게 말한 적이 없었다. 민준의 아버지는…
‘민준아, 넌 배우가 되고 싶구나. 그럼 해봐. 아버지는 실패했지만, 넌… 넌 다를 수 있어.’
10년 전의 목소리. 지붕에서 들었던 목소리. 그 다음에는 바람 소리만 있었다. 낙하하는 신체의 소리. 그것을 들었을 때의 침묵.
민준의 얼굴이 변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칠한 파운데이션 아래로 뭔가가 흘러나왔다. 눈물. 연기가 아닌 눈물.
“컷!”
PD가 외쳤다.
모든 것이 멈췄다. 세트가 멈추고, 태현이 움직임을 멈추고, 조명의 인공 햇빛도 움직임을 멈췄다. 오직 민준의 눈물만 계속 흘렀다.
“좋아. 그거야. 그 감정. 그거 정확해.” PD의 목소리. 기쁨이 실려 있었다. “한 번 더. 같은 감정으로.”
그러나 민준은 그 감정을 다시 불러올 수 없었다. 감정은 한 번만 진짜였다. 두 번째는 항상 연기였다. 그래서 그는 첫 번째 눈물을 기억하고, 그것을 복제했다. 근육을 같은 방식으로 움직이고, 호흡을 같은 방식으로 조절하고, 눈물을 같은 방식으로 흘렸다. 과학적인 감정. 계산된 슬픔.
“좋아. 롤링.”
두 번째 테이크.
“오래간만이다.”
태현의 목소리. 이번에는 다르게 들렸다. 첫 번째보다 가볍게. 마치 그것이 대사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아니, 그것이 대사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항상 더 인위적이었다.
민준은 눈물을 흘렸다. 같은 방식으로. 같은 강도로. 하지만 그것은 더 이상 진짜가 아니었다. 그는 아직도 그 감정을 찾고 있었다. 그는 아직도 그 진실을 찾고 있었다.
그것이 정확했다.
세트는 거실이었다. 어떤 가정의 거실. 파스텔 톤의 소파, 창문을 통해 흘러드는 인공 햇빛, 벽에 붙은 가족 사진들. 모두 거짓이었다. 실제로는 한 번도 존재한 적 없는 가정. 그런데 그 거짓이 너무나 설득력 있었다. 민준은 그 거실에 서 있으면서, 이것이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반지하 방보다. 천장의 곰팡이 지도보다. 이 가짜 집이 더 진정성 있었다.
“첫 번째 테이크. 준비됐나?”
PD 박미라가 말했다. 여자. 오십대 초반. 머리는 회색으로 물들어 있었고, 눈은 매서웠다. 그녀의 눈은 배우들의 거짓을 보는 눈이었다. 아니, 거짓을 요구하는 눈이었다. 진정성 있는 거짓. 그것이 영화였다.
“네.”
“이 씬은 너와 태현이가 오랜만에 만나는 장면이야. 넌 아버지를 보고 뭘 느껴야 해? 미안함? 죄책감? 사랑? 뭘 선택할 거야?”
민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 모든 감정이 동시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를 선택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아무 감정도 선택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있는 그대로 해볼게요.”
“있는 그대로?” PD가 눈을 좁혔다. “넌 있는 그대로 뭐야?”
그 질문이 맞았다. 정확한 질문이었다. 민준은 누구인가? 준호의 카페에서 무너진 사람? 아니면 지금 여기서 서 있는 배우? 아니면 그 둘 사이의 어딘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그는 알지 못했다.
“롤링.”
촬영이 시작됐다.
민준은 거실 문으로 들어왔다. 느리게. 마치 처음 그 집에 발을 디디는 것처럼. 태현은 소파에 앉아 있었다. 신문을 읽고 있는 척. 연기하는 척. 모든 것이 연기였다. 이 영화라는 무대 위에서.
“아버지.”
민준의 목소리는 나왔다. 자신의 목소리인지, 캐릭터의 목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그것은 그 사이의 어딘가였다. 중간의 목소리. 중간의 존재.
태현이 신문을 내렸다. 천천히. 마치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신문지인 것처럼. 연기하는 무게. 그것을 보는 민준의 눈이 흔들렸다.
“오래간만이다.”
태현의 목소리. 따뜻했다. 아버지의 목소리. 그런데 민준의 아버지는 이렇게 말한 적이 없었다. 민준의 아버지는… 아버지는…
‘민준아, 넌 배우가 되고 싶구나. 그럼 해봐. 아버지는 실패했지만, 넌… 넌 다를 수 있어.’
10년 전의 목소리. 지붕에서 들었던 목소리. 그 다음에는 바람 소리만 있었다. 낙하하는 신체의 소리. 그것을 들었을 때의 침묵.
민준의 얼굴이 변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칠한 파운데이션 아래로 뭔가가 흘러나왔다. 눈물. 연기가 아닌 눈물.
“컷!”
PD가 외쳤다.
모든 것이 멈췄다. 세트가 멈추고, 태현이 움직임을 멈추고, 조명의 인공 햇빛도 움직임을 멈췄다. 오직 민준의 눈물만 계속 흘렀다.
“좋아. 그거야. 그 감정. 그거 정확해.” PD의 목소리. 기쁨이 실려 있었다. “한 번 더. 같은 감정으로.”
그러나 민준은 그 감정을 다시 불러올 수 없었다. 감정은 한 번만 진짜였다. 두 번째는 항상 연기였다. 그래서 그는 첫 번째 눈물을 기억하고, 그것을 복제했다. 근육을 같은 방식으로 움직이고, 호흡을 같은 방식으로 조절하고, 눈물을 같은 방식으로 흘렸다. 과학적인 감정. 계산된 슬픔.
“좋아. 롤링.”
두 번째 테이크.
“오래간만이다.”
태현의 목소리. 이번에는 다르게 들렸다. 첫 번째보다 가볍게. 마치 그것이 대사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아니, 그것이 대사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항상 더 인위적이었다.
민준은 눈물을 흘렸다. 같은 방식으로. 같은 강도로. 하지만 그것은 더 이상 진짜가 아니었다.
“컷. 좋아. 다음 씬으로 넘어가자.”
세트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배우들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스태프들이 카메라를 옮기기 시작했다. 거실이 해체되기 시작했다. 그 가짜 가정이 조각조각 떨어져 나갔다. 벽이 옮겨지고, 소파가 치워지고, 인공 햇빛이 꺼졌다.
민준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움직이지 않고. 거실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것을 보는 것이 낯설지 않았다. 모든 것이 사라진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휴대폰이 울렸다. 주머니 속에서. 민준은 손을 넣어 휴대폰을 꺼냈다. 화면에는 준호의 이름이 떠 있었다. 다시. 또. 계속.
화면을 누르지 않았다. 그냥 울리게 두었다. 소리가 멈췄다. 그리고 거의 즉시 문자가 도착했다.
‘오늘 촬영 끝나고 만나자. 중요한 거 있어.’
민준은 문자를 읽었다. 두 번. 세 번. 그 문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했다. ‘중요한 거’가 뭐였을까? 그는 이미 가장 중요한 것을 알고 있었다. 거짓이 진짜보다 더 설득력 있다는 것. 연기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그리고 자신이 이미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것.
세트를 나가는 길. 복도. 같은 화이트 벽. 같은 인공 조명. 메이크업 제거실로 가는 길. 거울. 거울 속에 자신의 얼굴이 있었다. 파운데이션은 여전히 있었고, 아이섀도는 흐르고 있었고, 눈물은 말라가고 있었다. 그것이 연기의 흔적이었다. 감정의 유물.
그가 거울을 보고 있을 때, 옆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였다.
“오늘 촬영 좋았어요. 진짜 감정이 드러났어요.”
민준은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거짓이었다. 또 다른 거짓. 칭찬에 대한 감사의 거짓. 그리고 그는 그 거짓이 얼마나 자연스러웠는지 깨달았다. 이제 거짓이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 되었다. 진실이 이상한 것이 되었다.
거울에서 눈을 돌렸다. 자신의 얼굴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얼굴이 자신의 얼굴이 아니었으니까. 그것은 배우의 얼굴이었다. 캐릭터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 둘 사이에서 민준이라는 사람은 사라지고 있었다.
휴대폰을 다시 들었다. 준호의 문자. 다시 읽었다. ‘중요한 거 있어.’ 그 문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 이것은 시작이었다. 더 깊은 어둠으로의 시작. 그리고 민준은 그 어둠으로 들어갈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가야 했다. 배우는 항상 간다. 무대로. 조명으로. 거짓의 세계로.
오후 6시 47분. 세트에서 나왔다. 서울의 저녁 공기가 얼굴을 스쳤다. 차갑고, 습하고, 도시의 냄새가 묻어 있었다. 그것이 유일한 진실이었다. 공기. 그것은 거짓할 수 없었다. 항상 같은 냄새. 항상 같은 온도. 변하지 않는 현실.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 사람들이 몰려왔다. 퇴근하는 사람들. 각자의 거짓을 들고 집으로 가는 사람들. 직장에서는 연기를 했고, 이제 집에서 다른 연기를 할 것이다. 아무도 진짜가 아니었다. 모두가 배우였다. 무의식적인 배우.
민준도 그 중 하나였다. 그저 자신이 배우라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었다.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준호. 또.
이번에는 받았다.
“어디야?”
“지하철에…”
“강남역으로 와. 우리 항상 만나던 카페.”
카페. 타임스톤. 그곳에서는 무엇이 일어났던가? 민준은 기억을 더듬었다. 아메리카노. 식은 아메리카노. 준호의 차가운 눈. 그 눈이 절망적이었던 이유. 그것은 여전히 미스터리였다.
“알겠습니다.”
통화를 끝냈다.
강남역. 지하철 2호선. 사람들이 몰려왔다. 저녁 6시 58분. 퇴근 시간의 절정. 민준은 그 물결 속으로 들어갔다. 파도처럼. 파도는 개별적인 물방울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은 단지 움직임일 뿐이다. 민준도 그렇게 느껴졌다. 개별적인 존재가 아닌, 단지 움직임. 흐름. 시스템의 일부.
카페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창가 테이블에는 준호가 앉아 있었다. 아메리카노 두 잔. 하나는 이미 식고 있었다. 같은 장면. 반복. 루프. 민준은 그것을 깨달았다. 자신이 같은 장면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 같은 대사를 말하고, 같은 움직임을 하고, 같은 결과를 받고 있다는 것.
“앉아.”
준호가 말했다. 같은 목소리. 같은 톤. 마치 대사처럼.
“네.”
민준이 앉았다. 거울을 보는 대신, 이제 준호를 봤다. 준호의 얼굴. 그것도 거짓이었다. 선의의 거짓. 보호하려는 거짓. 하지만 거짓은 거짓이었다.
“오늘 촬영은 어땠어?”
“좋았습니다.”
“그래? 좋았어?” 준호가 웃었다. 그런데 그 웃음에는 웃음이 없었다. “민준이, 넌 항상 좋다고 해. 촬영도 좋고, 감정도 좋고, 뭐든 좋아. 그런데 넌 좋은 적이 있어?”
그 질문. 또 다른 질문. 또 다른 거짓. 그래서 민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거울을 보는 것처럼, 준호를 봤다. 그의 얼굴 뒤에 있는 것을 보려고 했다. 그 뒤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었다.
“준호 형.”
“응?”
“나한테 뭘 원하세요?”
그 질문. 모든 것을 바꾼 질문. 준호의 얼굴이 변했다. 마치 배우가 새로운 감정으로 전환하는 것처럼. 하지만 이것은 연기가 아니었다. 이것은 진짜였다. 그리고 그것이 더 무서웠다.
준호는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아메리카노를 들었다가 다시 내려놨다. 손가락이 탁자를 두드렸다. 리듬 없는 리듬. 불안의 신호.
“넌… 넌 지금 뭘 생각하고 있어?”
민준은 대답했다. 천천히. “거울을 봤어요. 세트에서. 그리고 그 거울 속에서 나를 찾을 수 없었어요. 거기는 배우만 있었어요. 민준은 없었어요.”
준호는 말이 없었다. 오래. 길게. 그 침묵 속에는 모든 것이 있었다. 모든 거짓. 모든 진실. 모든 불가능한 것들.
그리고 마침내, 준호가 말했다.
“넌 이미 알고 있구나.”
“뭘요?”
“이게 함정이라는 거.”
시간은 오후 7시 23분이었다. 창밖으로는 서울의 저녁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민준은, 드디어, 진짜 무언가가 시작되려고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들이 몰려왔다. 저녁 6시 58분. 퇴근 시간의 절정. 민준은 그 물결 속으로 들어갔다. 파도처럼. 파도는 개별적인 물방울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은 단지 움직임일 뿐이다. 민준도 그렇게 느껴졌다. 개별적인 존재가 아닌, 단지 움직임. 흐름. 시스템의 일부. 그는 사람들이 주고받는 대화 소리, 차들의 경적 소리, 그리고 도시의 다양한 소음 속에서 자신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카페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창가 테이블에는 준호가 앉아 있었다. 아메리카노 두 잔. 하나는 이미 식고 있었다. 같은 장면. 반복. 루프. 민준은 그것을 깨달았다. 자신이 같은 장면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 같은 대사를 말하고, 같은 움직임을 하고, 같은 결과를 받고 있다는 것. 이 생각은 그를 불안하게 만들었고, 그는 자신이 왜 이곳에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채로 준호를 향해 걸어갔다.
“앉아.”
준호가 말했다. 같은 목소리. 같은 톤. 마치 대사처럼. 민준은 그 목소리에 익숙해져 있었지만, 오늘은 그声音이 조금 다르게 들렸다. 조금 더 진지하고, 조금 더 진실로 느껴졌다.
“네.”
민준이 앉았다. 거울을 보는 대신, 이제 준호를 봤다. 준호의 얼굴. 그것도 거짓이었다. 선의의 거짓. 보호하려는 거짓. 하지만 거짓은 거짓이었다. 민준은 지금까지 그 거짓을 믿어왔지만, 오늘은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오늘 촬영은 어땠어?”
“좋았습니다.”
“그래? 좋았어?” 준호가 웃었다. 그런데 그 웃음에는 웃음이 없었다. 민준은 그 웃음이 가식적인 것임을 알았다. 준호가 자신을 위로하려는 것이라는 것을 느꼈다.
“민준이, 넌 항상 좋다고 해. 촬영도 좋고, 감정도 좋고, 뭐든 좋아. 그런데 넌 좋은 적이 있어?”
그 질문. 또 다른 질문. 또 다른 거짓. 그래서 민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거울을 보는 것처럼, 준호를 봤다. 그의 얼굴 뒤에 있는 것을 보려고 했다. 그 뒤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었다. 민준은 준호의 시선을 따라가보았지만, 그의 눈 속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공허함만이 있었다.
“준호 형.”
“응?”
“나한테 뭘 원하세요?”
그 질문. 모든 것을 바꾼 질문. 준호의 얼굴이 변했다. 마치 배우가 새로운 감정으로 전환하는 것처럼. 하지만 이것은 연기가 아니었다. 이것은 진짜였다. 그리고 그것이 더 무서웠다. 민준은 자신의 마음속에서 불안감이 엄습해오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왜 이곳에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채로 준호를 향해 말했다.
준호는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아메리카노를 들었다가 다시 내려놨다. 손가락이 탁자를 두드렸다. 리듬 없는 리듬. 불안의 신호. 민준은 그 행동을 보고 자신의 예상을 확인했다. 준호는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것이었다.
“넌… 넌 지금 뭘 생각하고 있어?”
민준은 대답했다. 천천히. “거울을 봤어요. 세트에서. 그리고 그 거울 속에서 나를 찾을 수 없었어요. 거기는 배우만 있었어요. 민준은 없었어요.” 민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감정에 대해 잘 알고 있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이 무언가를 찾고 있다는 것은 알았다.
준호는 말이 없었다. 오래. 길게. 그 침묵 속에는 모든 것이 있었다. 모든 거짓. 모든 진실. 모든 불가능한 것들. 민준은 그 침묵이 자신의 마음속에 공허함을 만들어내는 것을 느꼈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채로 준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준호가 말했다.
“넌 이미 알고 있구나.”
“뭘요?”
“이게 함정이라는 거.”
시간은 오후 7시 23분이었다. 창밖으로는 서울의 저녁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민준은, 드디어, 진짜 무언가가 시작되려고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찾아야 할지 모르는 채로 준호를 향해 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되돌아보며,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조금씩 알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여정은 이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