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의 굽이에서 – 제113화: 돌아올 수 없는 경계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Prev113 / 206Next

# 제113화: 돌아올 수 없는 경계

설원의 하늘에 지는 해는 은서와 민준이의 뒷모습을 따뜻한 빛으로 비추고 있었다. 은서는 민준이의 손을 놓지 않은 채 강변 둑길로 내려가는 길목에 서 있었다. 그들의 발자국만이 하얀 눈 위에 선명한 흔적을 남겼고, 뒤돌아보면 자신들이 걸어온 길이 보였다. 앞을 보면 마을로 돌아가는 길이 있었다. 그 사이에 은서가 있었다.

“언제까지 여기 있을 거야?”

민준이의 목소리는 작았고, 질문이라기보다 확인하는 듯했다. 은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손을 더 꼭 잡았다. 그의 손가락들이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파고들었다. 그 손의 온기만이 이 추운 겨울에 따뜻했다.

“할머니가 밥을 준비하고 있을 거야. 도현이는 분교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수민이는…”

“알아.”

은서가 그를 끊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침착했지만, 눈썹 사이에 미세한 주름이 생겼다. 강바람이 그들을 휩쌌고, 하늘에서는 서서히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다 알아. 근데…”

민준이가 그녀를 돌려 세웠다. 그의 양손이 그녀의 양 옆면을 감쌌다. 겨울 외투를 통해 느껴지는 그의 손의 온기. 은서는 그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그의 심장 박동이 들렸다. 규칙적이고, 분명하고, 살아있는 소리.

“서울로 가지 마.”

그것이 질문이 아니라는 걸 은서는 알았다. 명령도 아니었다. 간청이었다. 민준이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그가 흔들리는 건 처음이었다. 지난 몇 달간 그의 모습은 늘 조용하고 단단했다. 찰흙을 다루듯, 자신의 감정을 다루는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지금 그의 목소리에는 균열이 있었다.

“왜?”

은서가 물었다. 단 한 단어. 그것으로 충분했다. 어둠이 깔리는 하늘에 반딧불이처럼 그의 눈이 빛났다.

“왜냐고? 넌 왜 묻니?”

민준이가 그녀를 밀어내려 하지 않았다. 대신 더 끌어당겼다. 그의 목소리는 더 떨렸다. 그 떨림은 그의 어깨로, 가슴으로, 그리고 그의 목소리로 전해졌다.

“너는 알아. 내가 왜 이 얘기를 하는지. 너는… 이미 알고 있어.”

은서는 그의 가슴에서 얼굴을 들었다. 그의 눈을 봤다. 검은 눈동자 가운데 무언가가 타오르고 있었다. 두려움일 수도 있었다. 절망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그 둘의 섞임. 강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냉기가 그들의 발을 사로잡았다.

“내가 뭘 알아?”

“넌 떠날 거야. 그리고 나는… 너를 붙잡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어.”

그 말이 나오는 순간, 민준이의 얼굴이 굳었다. 마치 자신의 진심을 누군가에게 들킨 것처럼. 은서는 그의 팔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목 주변에 자신의 팔을 감았다. 그의 체향이 그녀의 코를 찔렀다. 그의 향이었다.

“그럼 붙잡지 마.”

“뭐라고?”

“붙잡지 마. 대신… 기다려 줄래?”

은서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의 목소리가 아닌 것처럼 들렸다. 더 작고, 더 약하고, 더 진실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민준이는 그녀를 더 꼭 안았다. 그의 심장박동이 더 빨라졌다. 그의 체온이 더욱 뜨겁게 느껴졌다.

“기다린다는 게 무슨 뜻이야?”

“서울에 가서 일을 마무리할 거야. 4년 동안 나를 옭아매던 것들을 정리할 거야. 그리고…”

은서가 멈췄다. 강바람이 그들의 주위를 휩쌌다. 얼어붙은 강물이 희미하게 보였다. 강이 여기까지 흘러온 길은 얼마나 길었을까. 그리고 또 어디로 흘러갈까. 그의 손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었다. 그의 손길이 그녀의 가슴을 간지럽혔다.

“그리고?”

민준이가 재촉했다.

“돌아올 거야. 여기로.”

은서가 그 말을 하는 순간, 뭔가가 부러지는 소리처럼 들렸다. 민준이의 어깨가 떨렸다. 그가 울고 있었다. 은서는 처음으로 그가 우는 걸 봤다. 눈물이 그의 눈동자에서 흘렀다. 그의 얼굴에 소금기가 맺혔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그의 눈물은 따뜻했다.

“약속이야?”

“응. 약속이야.”

“진짜?”

은서는 그의 얼굴을 들어올렸다. 그의 눈을 봤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두 번, 세 번. 각각의 끄덕임이 하나의 서약처럼 느껴졌다. 그의 가슴팍에 그의 심장박동이 느껴졌다.

“진짜다.”

민준이가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입술이 차가웠다. 그리고 그 차가움이 뜨거웠다. 모순이었다. 하지만 모든 게 모순이었다. 떠나는 것과 돌아오는 것. 끝나는 것과 시작되는 것. 겨울과 봄. 그의 입술이 그녀의 이마에서 떨어지면서 그의 숨이 그녀의 얼굴을 쓸었다.

“언제?”

“봄이 오면.”

“봄이 오면?”

“응. 봄이 오면 돌아올 거야.”

민준이가 웃었다. 작은 웃음이었다. 거의 한숨에 가까운 웃음. 하지만 그것은 웃음이었다. 그의 웃음에 그의 눈동자가 빛났다. 그의 체온이 그녀의 몸에 전해졌다.

“봄은 언제 와?”

“모르지. 하지만 온다. 매년 온다. 봄은 항상 온다.”

은서가 그를 바라봤다. 그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해가 지고 있었다. 곧 밤이 될 것이었다. 그들이 여기 서 있던 이 시간은 끝날 것이었다. 하지만 끝이라는 것이 새로운 시작을 의미할 수도 있다는 걸 은서는 알고 있었다. 그의 손이 그녀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의 체온이 그녀의 체온과 섞였다.

“내가 서울에서 뭘 해야 하냐고 물어볼 거야?”

“뭘 해야 해?”

“그 출판사에 가서… 4년 전의 그 일들을 정리할 거야. 내가 정말로 한 실수가 뭔지, 한 게 뭔지. 그리고 나를 옭아매던 죄책감이 진짜 내 것인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의 것인지 알아낼 거야.”

민준이가 그녀를 바라봤다. 그의 눈에 뭔가가 빛났다. 별빛 같은 것. 아니면 그보다 더 따뜻한 것. 그의 가슴이 그녀의 가슴에 닿았다. 그의 심장박동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리고 할머니를 챙길 거야. 할머니가 혼자 있는 동안 내가 챙기지 못한 것들을. 그리고 분교 아이들한테 편지를 쓸 거야. 특히 수민이한테.”

“수민이가?”

“응. 수민이가 나한테 뭔가를 말하려고 했어. 계속. 하지만 나는 자꾸 듣지 않으려고 했어. 내가 너무 바빴거든. 내가 너무 자신의 세상에만 갇혀 있었거든.”

은서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번엔 추위 때문이 아니었다. 그의 체온이 그녀의 떨림을 가라앉혔다.

“이제 들을 거야. 귀를 기울일 거야. 그리고… 그게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

민준이가 그녀의 얼굴에 손을 얹었다. 그의 손가락이 그녀의 뺨을 쓸었다. 따뜻했다. 이상할 정도로 따뜻했다. 어디서 나오는 열일까. 그의 가슴속에서일까. 아니면 그들 사이에서일까. 그녀의 손가락이 그의 손과 얽혔다.

“넌 혼자 가는 거야? 서울로?”

“응. 혼자 가야 해.”

“내가 따라가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야. 이건 내가 혼자 해야 하는 일이야. 그리고…”

은서가 멈췄다. 바람이 더 강해졌다. 강 위에 눈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의 손이 그녀의 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넌 여기 있어야 해. 공방에서 일해야 해. 아직 다 안 하신 작품들이 있잖아. 그리고… 나는 네가 여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해. 그래야 내가 서울에서 견딜 수 있을 것 같아.”

민준이가 그녀를 다시 안았다. 이번엔 더 강하게. 마치 자신이 풀어주지 않으면 그녀가 바람에 날아갈 것처럼. 그의 체온이 그녀의 체온과 하나가 되었다. 그의 심장박동이 그녀의 심장박동과 하나가 되었다.

“넌 날 떠나려고 하지 않아?”

“떠나? 넌 정신 차려. 난 돌아올 거야.”

“약속이지?”

민준이가 그녀를 밀어내려 하지 않았다. 대신 더 끌어당겼다.

“너는 알아. 내가 왜 이 얘기를 하는지. 너는… 이미 알고 있어.”

은서는 그의 가슴에서 얼굴을 들었다. 그의 눈을 봤다. 검은 눈동자 가운데 무언가가 타오르고 있었다. 두려움일 수도 있었다. 절망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그 둘의 섞임.

“내가 뭘 알아?”

“넌 떠날 거야. 그리고 나는… 너를 붙잡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어.”

그 말이 나오는 순간, 민준이의 얼굴이 굳었다. 마치 자신의 진심을 누군가에게 들킨 것처럼. 은서는 그의 팔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목 주변에 자신의 팔을 감았다.

“그럼 붙잡지 마.”

“뭐라고?”

“붙잡지 마. 대신… 기다려 줄래?”

은서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의 목소리가 아닌 것처럼 들렸다. 더 작고, 더 약하고, 더 진실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민준이는 그녀를 더 꼭 안았다.

“기다린다는 게 무슨 뜻이야?”

“서울에 가서 일을 마무리할 거야. 4년 동안 나를 옭아매던 것들을 정리할 거야. 그리고…”

은서가 멈췄다. 강바람이 그들의 주위를 휘돌았다. 얼어붙은 강물이 희미하게 보였다. 강이 여기까지 흘러온 길은 얼마나 길었을까. 그리고 또 어디로 흘러갈까.

“그리고?”

민준이가 재촉했다.

“돌아올 거야. 여기로.”

은서가 그 말을 하는 순간, 뭔가가 부러졌다. 그건 얼음이 깨지는 소리처럼 들렸다. 민준이의 어깨가 떨렸다. 그가 울고 있었다. 은서는 처음으로 그가 우는 걸 봤다. 눈물이 흘렀다. 얼굴에 소금기가 맺혔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따뜻한 액체.

“약속이야?”

“응. 약속이야.”

“진짜?”

은서는 그의 얼굴을 들어올렸다. 그의 눈을 봤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두 번, 세 번. 각각의 끄덕임이 하나의 서약처럼 느껴졌다.

“진짜다.”

민준이가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입술이 차가웠다. 그리고 그 차가움이 뜨거웠다. 모순이었다. 하지만 모든 게 모순이었다. 떠나는 것과 돌아오는 것. 끝나는 것과 시작되는 것. 겨울과 봄.

“언제?”

“봄이 오면.”

“봄이 오면?”

“응. 봄이 오면 돌아올 거야.”

민준이가 웃었다. 작은 웃음이었다. 거의 한숨에 가까운 웃음. 하지만 그것은 웃음이었다.

“봄은 언제 와?”

“모르지. 하지만 온다. 매년 온다. 봄은 항상 온다.”

은서가 그를 바라봤다. 그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해가 지고 있었다. 곧 밤이 될 것이었다. 그들이 여기 서 있던 이 시간은 끝날 것이었다. 하지만 끝이라는 것이 새로운 시작을 의미할 수도 있다는 걸 은서는 알고 있었다.

“내가 서울에서 뭘 해야 하냐고 물어볼 거야?”

“뭘 해야 해?”

“그 출판사에 가서… 4년 전의 그 일들을 정리할 거야. 내가 정말로 한 실수가 뭔지, 한 게 뭔지. 그리고 나를 옭아매던 죄책감이 진짜 내 것인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의 것인지 알아낼 거야.”

민준이가 그녀를 바라봤다. 그의 눈에 뭔가가 빛났다. 별빛 같은 것. 아니면 그보다 더 따뜻한 것.

“그리고?”

“그리고 할머니를 챙길 거야. 할머니가 혼자 있는 동안 내가 챙기지 못한 것들을. 그리고 분교 아이들한테 편지를 쓸 거야. 특히 수민이한테.”

“수민이가?”

“응. 수민이가 나한테 뭔가를 말하려고 했어. 계속. 하지만 나는 자꾸 듣지 않으려고 했어. 내가 너무 바빴거든. 내가 너무 자신의 세상에만 갇혀 있었거든.”

은서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번엔 추위 때문이 아니었다.

“이제 들을 거야. 귀를 기울일 거야. 그리고… 그게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

민준이가 그녀의 얼굴에 손을 얹었다. 그의 손가락이 그녀의 뺨을 쓸었다. 따뜻했다. 이상할 정도로 따뜻했다. 어디서 나오는 열일까. 그의 가슴속에서일까. 아니면 그들 사이에서일까.

“넌 혼자 가는 거야? 서울로?”

“응. 혼자 가야 해.”

“내가 따라가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야. 이건 내가 혼자 해야 하는 일이야. 그리고…”

은서가 멈췄다. 바람이 더 강해졌다. 강 위에 눈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리고?”

“넌 여기 있어야 해. 공방에서 일해야 해. 아직 다 안 하신 작품들이 있잖아. 그리고… 나는 네가 여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해. 그래야 내가 서울에서 견딜 수 있을 것 같아.”

민준이가 그녀를 다시 안았다. 이번엔 더 강하게. 마치 자신이 풀어주지 않으면 그녀가 바람에 날아갈 것처럼.

“넌 날 떠나려고 하지 않아?”

“떠나? 넌 정신 차려. 난 돌아올 거야.”

“약속이지?”

“약속이다.”

강물 위의 눈이 계속 춤을 추고 있었다. 은서는 그것을 봤다. 눈이 어디서 왔을까. 하늘에서. 그리고 언젠가는 다시 하늘로 돌아갈 것이다. 물이 되어, 흘러가서, 증발해서, 다시 하늘로.

모든 것이 순환한다. 모든 것이 돌아온다. 그래서 겨울도 끝나고, 봄이 온다.


할머니의 집에 돌아갔을 때,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된장찌개, 계란말이, 시금치 나물, 그리고 밥. 할머니는 부엌에 서 있었다.

“늦었네. 추웠을 거여.”

할머니가 은서를 봤다. 그녀의 얼굴은 읽기 쉬운 책이 아니었다. 하지만 은서는 할머니의 눈 가장자리에 있는 미세한 주름을 봤다. 걱정의 주름.

“할머니, 난 서울에 가야 해.”

은서가 말했다. 돌아가자마자.

할머니는 밥을 푸고 있었다. 움직임이 멈추지 않았다. 숟가락이 밥통과 밥그릇 사이를 왕복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언제?”

“내일. 아니면 모레.”

“얼마나?”

“한 달쯤?”

할머니가 밥그릇을 내려놨다. 그리고 은서의 얼굴을 봤다. 오랫동안.

“그리고?”

“그리고 다시 돌아올 거야. 봄이 오면.”

할머니가 웃었다. 작은 웃음이었다. 마치 무언가를 오래 알고 있었던 사람의 웃음.

“봄이 오면?”

“응. 봄이 오면.”

할머니가 밥그릇을 은서 앞에 놨다. 따뜻한 밥. 그 위에 국물이 스며들고 있었다.

“그럼 밥을 먹어라. 밥을 먹고 가야지, 이 추운 세상을 견딜 수 있다.”

은서는 숟가락을 들었다. 밥을 떴다. 입에 넣었다. 씹었다.

따뜻했다.

할머니가 앉았다. 은서 맞은편에. 그리고 그녀를 봤다. 말 없이.

“할머니, 나 혼자 가도 괜찮아?”

“괜찮고 말고. 넌 원래 혼자 잘하는 애다.”

“근데 이번엔… 다를 수도 있어. 이번엔 내가 뭔가를 되돌려야 하는 거거든.”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깊은 고개.

“그럼 되돌려 와라. 그게 너의 일이다.”

은서가 밥을 먹었다. 한 숟가락씩. 한 숟가락씩. 따뜻함이 그녀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위장을 거쳐, 혈관을 거쳐, 심장에 도달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멈추지 않았다. 계속 퍼져 나갔다. 손가락 끝까지, 발가락 끝까지, 그리고 그 너머로.

밤이 깊어졌다. 은서는 방에 누웠다. 천장을 봤다. 오래된 목재의 무늬가 보였다. 그것이 패턴처럼 보였다. 무질서한 패턴. 하지만 아름다운 패턴.

핸드폰이 울렸다. 민준이였다.

“잠깐 깨 있어?”

“응.”

“난 너를 못 본다는 생각이 들어.”

은서가 웃음을 삼켰다.

“난 아직 여기 있어. 내일까지. 내일 오후까지.”

“그 다음은?”

“그 다음은… 봄이 올 때까지는 못 본다.”

“오래 걸리나?”

“한 달쯤.”

“오래네.”

“응. 오래다.”

침묵이 흘렀다. 핸드폰 너머의 침묵. 하지만 그것은 텅 빈 침묵이 아니었다. 그 안에 무언가가 있었다. 약속이 있었다.

“은서.”

“응?”

“봄이 정말 올까?”

“올 거야. 항상 온다.”

“그럼 난 여기서 기다릴게. 너를 기다릴게.”

“응. 기다려.”

통화가 끝났다. 은서는 다시 천장을 봤다. 오래된 목재의 무늬가 여전히 보였다. 그것이 어떤 나무에서 온 것일까. 얼마나 오래됐을까. 그 나무는 이 집이 지어질 때부터 여기 있었을까.

시간이 흐른다. 모든 것이 흐른다. 그리고 어딘가로 간다.

하지만 돌아온다. 봄이 오는 것처럼.

창밖으로 눈이 계속 내리고 있었다. 하얀 눈. 끝없는 눈. 그것이 멈출 것 같지 않았다. 마치 봄이 올 것 같지 않은 것처럼.

하지만 은서는 알고 있었다.

봄은 온다. 항상.

그리고 그녀도 돌아올 것이다.


다음 날 아침, 은서는 짐을 쌌다. 옷 몇 벌, 책 몇 권, 그리고 민준이가 만든 작은 도자기 찻잔 하나. 그 찻잔은 비뚤었다. 완벽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은서가 가장 좋아하는 이유였다.

할머니가 도와줬다. 말없이. 옷을 개어주고, 짐을 확인해주고, 마지막에 보자기에 싸서 음식을 넣어줬다.

“먹으면서 가.”

“응. 고마워, 할머니.”

은서가 할머니를 안았다. 오래. 할머니의 몸은 작았다. 그리고 따뜻했다.

“돌아와. 꼭.”

“응. 꼭 돌아올게.”

버스가 마을을 떠나갔다. 은서는 뒤를 봤다. 강변 둑길이 보였다. 그 너머에 민준이의 공방이 있었다. 그리고 그 너머에 할머니의 집이 있었다.

그것들이 작아지고 있었다. 점점 더 작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사라지지는 않았다.

강은 여전히 흐르고 있었다. 겨울 강. 차갑고, 검고, 깊은 강.

하지만 봄이 오면, 그것도 변할 것이다.

은서는 창을 통해 강을 봤다. 그리고 기다렸다.

봄을.

그리고 돌아올 자신의 시간을.

이 들어.”

113 / 206

Leave a Comment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Scroll to Top